| 구운몽, 무슨 뜻일까? 아홉가지 구름 같은 꿈? 혹은 구운이라는 사람이 꾼 꿈인가? '처음에 육관대사께 수청하여 풍도옥으로 떨어져 인간세에 환생하여 양시문중의 아들 되어 장원급제 한림학사되고, 다시 나아가서는 장수되고 돌아온 후 재상되어 공훈을 세우고서 벼슬에서 물러나 두 공주와 여섯 낭자로 더불어 여생을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 꿈이로다. 짐작컨대 팰연 스승이 나의 생각이 그릇됨을 알고, 나로 하여금 이런 꿈을 꾸게 하여 인간의 부귀와 남녀의 사귐이 다 허무한 일임을 알게 함이로다!' 아홉 사람의 구름 같은 꿈. 책의 말미에 나오는 성진의 독백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한 표현이랄까. 나에게 있어 이름을 떨치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고픈 마음 없는 건 아니다. 성진의 마음, 내 마음도 그를 따른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성진을 나라고 표현하며 동일시하고 싶진 않다. 단지 그리울 뿐이다. 멀리 있는 그를... 그런 생을 겪고 깨달음을 얻은 그가 못내 그리워 상상하여 보는 것이다. '세상의 남아로 생겨나서 어려서 공맹의 글을 읽고 자라서 성군을 섬겨 나아가면 삼군의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백관의 어른이 되어 금의를 입고 허리엔 금인을 차고 눈으로 고운 빛을 보고 귀로 신묘한 소리를 들어 미녀와의 애련과 공명의 자취를 후세에 전한느 것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어늘, 슬프다. 우리 불가의 도는 한 그릇 밥과 한 잔 정화수며 수십 권 경문에 백팔 염주를 목에 걸고 설법하는 일뿐이라. 그 도가 비록 높고 깊다 할지라도 아주 적막하여, 설령 최상의 교리를 깨달아 대사의 도를 이어받아 연화대 위에 앉을지라도 삼혼칠백이 한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뉘라서 성진이 생겨났던 줄을 알리오.' 성진의 심정 헤아림이 왜 없을까. 그의 말 구구절절 내 심중의 것들을 끄집어 읽는 것 같아 애닲음만 더하다. 사랑은 해보아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한 여인도 사랑 못하는 이가 어찌 그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냐고? 평범하고 다소곳한 생활만을, 젊음을 억제하고, 다른 곳에 열정을 쏟으라고, 성진은 내가 아닐진대, 왜 그는 그리 말하는가? 내 나이 나라를 걱정하고 큰 뜻을 품어 백성 위함을 펴 나가야 할 때, 난 무엇이라고 여깅 헛된 공상만 일쌈고 한탄하는가. 아홉 여인을 만나 꿈같은 사랑을 나누고, 나라에 충성하여 널리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 부귀영화의 모든 걸 취하나, 이미 그 위치에 오른 성진은 자신 본 모습의 성진을 그리워하게 되는가. 세상을 쫓아 살면서 얻는 바 이 뿐이겠는가만은 그의 손실은 얼마인가. 보고만 살다가 시력을 잃음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근본을 잊지 아니하면 비록 열 길 티끌 속에 떨어질지라도 필경 돌아올 날이 있나니, 네가 이곳에 돌아오고자 할진대 내가 친히 데려올지니, 너는 의심 말고 곧 행할지어다' 근본을 잘못 알고 있었다면, 언젠가 크게 깨달아 참근본으로 오리라. 근본을 알고 잊지 않는다면, 그 근본을 찾아 그 길로 오리라. 성진의 삶이 단지 인공 연못의 물처럼 돌도 도는 게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더 큰 바다로 귀환하니, 헛된 것이라 할 수 없는 깨달음의 길이리라. 작자 김만중 이분의 소설 구성의 치밀함과 극적 과정이 뛰어나 읽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의 소설 속에 유, 불, 선의 조화와 공주와 비녀가 의형제를 맺고 화평을 이룸은, 그 시대 사상의 척박함과 신분간의 충돌을 알 수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평등에 기본하고 있으며 숙종 15년 유배 중 그가 깨달음은 바를 소설 속에 응축시킨 힘은 가히 고전이라 손꼽힐마나큼 탁월하여 생명력을 지녔다. 한 번 읽는다면 내 삶을 생각하고, 두 번 읽는다면 내 주위를 둘러보고, 또 한 번 읽는다면 현실 직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