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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의 한국판 창간호다.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된 계간 잡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 처음으로 발행했나 보다. 최근의 잡지들에 이미 푹 빠져 있던 터라 내용이나 편집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해야겠다. 이미 이때부터 이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더란 말이지, 나는 모르고 있었고, 몇몇 블로그 이웃님들이 좋다고 하는데도 못 들은 척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내게 철학적 사고력이 없었다는 증거이겠다. 그래도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아주 적으나마 의식의 바탕에 깔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어 마음이 놓인다.
창간호에서 '접속'이라는 주제를 다룬 게 좀 낯설었다. 그보다는 철학의 더 기본적인 메시지를 알려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내 식대로의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바와 모르고 있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혼란에서 비롯된 일임을 책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접속이라는 게, 연결이라는 게, 이어지고 끊어지고 끌어당기고 물리치는 모든 일과 시간과 과정이 철학적 사고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이 속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철학을 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까지.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겠지만 대상이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좋거나 일방적으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노력만이, 끝내 도달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내 부족함을 매순간 확인하면서 일깨워나가는 생이어야 한다는 것만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얼마나 자주 쿵쿵거렸던지, 책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싶었다.
한 편 한 편 허투루 읽은 게 없다. 그림 한 조각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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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잡지라니! 너무 멋있잖아! 하며 덜컥 구매했다. 구매할 당시에 이미 여러 권이 나와있었지만 창간호가 궁금해서 굳이 구매했다. 게다가 주제가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라 소통에 관한 거라 특히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각 호마다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춰서 여러 사람의 글을 싣고, 관련 정보도 실으리라.
-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는 때에 맞춰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잡지 (4)
한국판 편집장의 글에서 설명한 잡지의 특색이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가 창간호에도 어울린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논점이자 잡지 자체도 함께 소통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니. 앞으로도 어떤 소통을 나눌지 기대된다.
이번 호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 글은 뉴필로소퍼 부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앙드레 다오의 Critic <타인의 고통>과 가디언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버크먼이 쓴 Feature로 <나에게 집중할 권리> 두 편.
- 자기가 겪은 고난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가운데 동정심을 바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불쌍히 여겨지고 싶은 사람은 아예 없다. 오히려 이들의 어조에는 귀 기울여 달라는 요구, 정의를 실현해 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44)
먼저 <타인의 고통>에서의 결론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글쓴이의 말대로 그저 동정심만을 바라는 이는 없을 테다. 목소리를 내고, 주장하는 바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하나의 신호로 봐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집중할 권리는 주의력에 대한 새로운 비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
- 주의를 끌려는 시도를 거절하면서도 당신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지불되는 비용이 바로 ‘주의력’이다. (59)
- 인간의 ‘주의력’을 은행에 저축된 현금과 같이 한 개인이 소유한 자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의존하는 공유 자원(commons)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자 매튜 크로포드 <당신의 머리를 뛰어넘는 세계>, 60)
나의 주의력이 타인들에 의해, 나에게 부당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 실제로 곳곳에서 우리는 광고를 보게 된다. 티비나 라디오 프로그램 사이의 광고는 익숙하고, 프로그램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ppl. 여기에 sns속에서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광고 공격을 당한다. sns업체 입장에서는 광고 많이 넣어서 돈을 벌어야 하니 당연하다 싶긴 하다.
하지만 곳곳에서 우리의 주의력을 갈취당하고 있으니 씁쓸한 것은 사실. 스마트폰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의 주의력을 갈취하는 날강도 같은 느낌이다. 너무 일찍부터 울려대는 전화와 문자에 길들여진 나는 폰에 주의력을 빼앗기는 게 몹시 심해 종종 힘들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리라. 주의력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도와야 할 세상이 되었다.
아, 여기에 Feature <페이크 뉴스>도 흥미롭게 읽었다. 기술철학자이자 작가인 톰 챗필드라는 이가 쓴 글이었는데 개소리라고 분류하고 되도 않은 이야기에 쓴 소리를 뱉는다.
- 거짓말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일부 사람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효과가 입증된 수단을 통해 뻔뻔하게 반복하면 그만이다. (88)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가짜 뉴스에 당한다. 글쓴이는 독자들이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데 무관심하고 그저 흥미 위주의 이야기들에 집중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흥미를 끄는지, 아닌지로만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뉴스의 진위여부는 이미 논외다. 이런 세상에서 그로 인해 피해 입는 이들이 늘어난다.
- 우리가 하는 게임이 진실과 거짓이 서로 힘을 겨루는 것인가 아니면 승자가 내키는 대로 규칙을 만드는 것인가? 우리는 현실이 어떤지 미래에는 어떤 지식이 탄생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평생 망사에 빠진 상황에서 역사를 바꾸려고 하고 있는가? (90)
지금 코로나니, n번방이니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이 창간호가 나온지 2년이 되가는데도 여전히 현실적이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흥미로운 소재는 ‘편지’라는 오래전 메시지였다. 마크 트웨인이나 베토벤이 쓴 편지는 위대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
하나의 소재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여러 방향에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충분히 구독해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철학 잡지라니. 간지나잖아!!
(그나저나 뒷표지와 책기둥이 뚝 하고 떨어졌다. 아주 깔끔하게. 흡사 원래 떨어지는 것인마냥… 이건 좀 슬프다 ㅜㅜ)
![]() (이건 실제 우리 모습인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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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네요 재밌습니다. 근데 책이 우네요... 불었나봐요... 읽다가 보고 속상해서ㅠㅠ 그래도 정말 재미있어요. 안그래도 의미없는 대화나 알 필요없는 뉴스기사, 가십거리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명상을 해도 해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심했는데.. 나름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아서 좋습니다.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읽는 동안은 정말 뇌가 편하게 쉬어서 좋아요. 읽는 동안은 핸드폰은 멀리했어요. 진짜 그러고 싶었거든요.. 다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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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라고 하면 보통 여성잡지, 정치잡지 이런 선입견 밖에 없고 뭔가 색깔이 저차원적인??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잡지는 철학잡지라니!!!! 오~~ 하고 놀랬습니다. 우리나라에 철학잡지가 있다니요!! 잡지가 여러권 있던데 제목이 가장 끌리는 것이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 참으로 시대 통찰적인 문구라서 쏙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유식한 편은 아니라서, 어려운 내용을 잘 소화해내지는 못하지만 이 잡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고 잘 읽혔습니다. 시대통찰적인 접근을 통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접속이 자랑이고 유능이니 세상이지만 그것이 너~~무 많은 것이 되어버려서 오히려 과유불급인 세상입니다. 이런 철학책을 접하면서 그대로 생각을 하고 뭔가를 고민해보고 역발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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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보가 집합되어 있는 잡지였어요 영화 경제 심리 도서 철학 등등 읽으면서 상식이 쌓이는 기분이었어요 휴대폰 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휴대폰중독이 아닌 접속중독이라고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거 같다 나 역시 그런거 같고 시간마다 접속하면 포인트 주는 앱 걸으면 포인트 주는 앱 수시로 접속하게 만드는 앱이 많아 휴대폰을 수시로 보게 만든다 친구를 만나도 이때쯤 들어가면 포인트 쌓아야 하는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람을 앞에 두고도 휴대폰만 보게 된다 끊어야 하지만 끊을 수 없는 접속중독 사람과의 사이를 메마르게 하는 중독 이로 인해 세상이 참 많이 변한거 같아 씁쓸한 일인중 한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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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뉴필로소퍼 잡지지만, 이제야 계간호를 사게되네요. 철학을 다루는 인문잡지인데, 철학에 관심이 있지만 내 취향에 맞는, 내가 알고싶은, 그런 의도로 담긴 잡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 뉴필로소퍼를 제외하면.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뉴필로소퍼가 나왔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사모을 예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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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불안 _계간지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Vol. 1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를 읽고 나서. 한 때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흥미로운 주제의 잡지를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특히 잡지는 그들이 추구하는 내용을 커버 디자인을 통해 얼마나 잘 보여주고 있는가가 판매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 같은 경우 단순히 표지만 휘황찬란한 디자인보다, 잡지의 이름과 그 달의 주제가 잘 맞아 떨어지는 커버 디자인에 신뢰를 가지고 실질적인 구매까지 이어지는 편이다. 요즘같이 서점보다 인터넷으로, 실물을 거의 보지 않고 책을 사는 시대에서는 어느 책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한 세련된 디자인이 중요하다. 디자인이 세련되면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시대를 간파하는 유익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 맛이 크다. 최근 여러 책을 구매하다가 ‘예스24 어플’에서 추천도서 목록을 띄우며, 나의 손가락 터치질을 인도해 주었는데, 덕분에 흥미로운 잡지를 읽게 되었다. 눈에 띄는 붉은색 표지와 진중해 보이는 주제의식을 가진 인문·철학 계간지[뉴필로소퍼] 한국판 창간호이다.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 붉은색 표지 색 속에는 노란 불 빛이 반짝이는 남색 건물을 배경으로 남자가 홀로 서 있다. 그 남자는 ‘종’모양의 불투명한 형상 안에 서 있다. ‘종’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댕-댕-’ 울리며, 그 남자를 따라다니고 있는 걸까? 아무튼, 마치 남자를 가둬놓은 듯 보이는 불투명한 종 내부는 매끈하지 않고 노이즈가 잔뜩 껴 홀로 서 있는 남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듯 보였다. 말이 없는 표지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라는 창간호 주제가 표지 그림을 더 의미심장하게 했다. 이제는 늘 스마트폰을 내 몸의 일부라도 되는 마냥 지니고 다니며, 나의 입과 눈 그리고 귀가 되고 있는 시점에 짚고 넘어가야할 상황들에 대해 뉴필로소퍼는 다양한 칼럼들을 실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초고속 네트워크 시스템은 메시지를 빠르게 전송하고, 클릭 한번으로 뭐든 편안하게 주문할 수 있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해야할 시간까지 줄여버렸다. 뉴스는 매 초, 매 분마다 인터넷상에 업데이트되며 과도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자극적이거나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까지 한다. 살면서 스마트폰을 최대한 멀리 하고 싶었던 나지만, 자유시간이 많아진 요즘은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지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대도시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지 않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자주 보거나, 타인의 sns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카카오톡 메시지를 자주 보내며 시간을 보내는 편은 아니지만, 대신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뉴스채널은 자주 보는 편이다. 실시간으로 새로운 기사를 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뉴스를 챙겨보게 되었다. 내가 보는 뉴스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대체로 누군가의 죽음과 불행이 담겨 있거나, 연예인들의 사생활 폭로, 정치인들의 뻔한 말과 선동적인 뉘앙스의 댓글들 등 누군가를 혐오하게 하고, 화가 나며, 불안하게 만드는, 절로 혀끝을 차며 ‘쯧쯧’거리게 만들거나, ‘불안하다. 무섭다’와 같은 감정이 들게 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과도하게 기사에 몰입하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내 내면을 지배해 세상이 정말 미쳐돌아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관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 “워딩에 사는 존슨 씨가 아직 죽지 않다.” 같은 문구를 벽보에 새기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인류 모두의 행복을 알릴 수 없다. _G.K.체스터턴, p83 언론은 소수의 불행에 관심이 많고, 다수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사람들도 남들의 불행과 인간의 온갖 악행에 관심이 많다. 연예인 커플의 이혼 소식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익명의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마디씩 한다. 유튜브에는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을 걸고, 잔혹한 살인사건을 다루거나 자극적인 영화를 소개해 주는 영상도 넘쳐 난다. 미디어가 분위기를 조장하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자극적인 뉴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만 취재를 하는 걸까? 뭐가 먼저든 미디어 매체는 ‘돈’이 되는 상품만 찍어내는 공장이 되어버렸다. 실재로 지금 나의 주위를 돌아보면, 분명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평온하고, 내 주변도 큰 사고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타국의 여행지를 가보아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낀다.(물론, 그 이면의 어두운 면들도 보이지만)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사는 내가 운이 좋은 걸까? 운이 좋다고 해야 겸손한 걸까? 아무튼, 뉴스를 통해 보는 세상은 ‘요지경’ 그 자체다. “거짓말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일부 사람이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효과가 입증된 수단을 통해 뻔뻔하게 반복하면 그만이다.” [페이크 뉴스]_톰 챗필드, p88 종이 신문을 읽던 예전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뉴스를 읽고, 누군가의 불행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익명의 사람들의 재미거리가 되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불행을 지켜보며, 가볍게 동정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상상해 보며 끔찍해 하거나, 내가 모르는 타인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감정을 가졌다. 이런 타인의 불행을 은근슬쩍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불안을 조장하는 인터넷 뉴스와 조금은 멀어지기로 했다. 믿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내용만 반복하는 기사들, 같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기사들, 제대로된 취재도 없이 써내려진 가짜뉴스들로부터. 그리고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는 눈, 누군가를 혐오하는 감정적인 반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각적인 시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리고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창작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더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처음 읽어보게 된 [뉴필로소퍼] 계간지를 계속 예의 주시하며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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