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자기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리가 불편하다면 힘껏 달리는 일이 그럴 것이고 들리지 않는다면 말을 하는게 데 있어서 불편함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을 볼 수가 없다면 어떠할 것인가.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눈으로 봄으로써 해결한다. 그러므로 어떤 제한보다도 더 많은 제약을 받을 것이다. 그들을 위한 많은 도와주는 도구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음성인식이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단지 불편하고 약간 느릴 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그림이나 사진같은 것은 어떨까. 비장애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을수가 있을가 하고 의아해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그들이 단체로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책에서 읽었었다. 그들은 일대일로 도와주는 헬퍼가 붙어있고 주위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해주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구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사진은 보이는 사람들의 딱 맞춰진 구도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생각지도 못한 그런 사진들이 작품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림 또한 그러할 것이다. 다수의 개인전과 작가전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모여있는 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그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저 재미삼아, 장난삼아, 놀이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재능이 있거나 하는 학생들은 미대에도 진학을 할 수가 있다. 두눈이 다 보이는 학생들도 하기 힘든 것을 그들이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들 또한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과를 잘못 보고 면접에도 가지못해 떨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었지만 1년간의 재수 끝에 학생은 미대에 합격했고 그 이후로 '가지 않은 길'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실행중이다. 말그대로 시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미대진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98p)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왔던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글이 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코끼리 한마리를 가져다 놓고 저마다 자신이 만진 부분만을 이야기하면서 코끼는 이렇게 생겼다고 우기는 내용이다.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피상적으로만 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저자는 이것을 직접적으로 현실에서 만들어 내었다. 앞이 안 보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직접 코끼리를 만지러 떠난 것이다. 국내의 다수의 동물원에서는 당연히 불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같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린 결과 코끼리 학교에서 답을 찾아낸다.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곳에서 드디어 코끼리를 만난 학생들. 그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차츰 용기를 가지고 하나씩 만져보면서 이 동물이 어떻게 생겼나를 파악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또는 찱흙으로 빚어내기에 이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보이는 사람은 단지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리고 만들뿐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술을 하기에 더욱 좋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할 때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마사지라도 하는 법을 더 배울것이지 미술을 배워서 뭐하냐고, 그림을 그려서 뭐하냐고 말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필요없다는 것이겠고 좋게 말하면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들이라고도 볼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재한적인 것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닌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둘 사이에 차이점은 없다. 적어도 예술에 있어서는 말이다. *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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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시각을 위주로 하는 미술과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과의 협업은 처음에는 굉장히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미술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통해 <우리들의 눈>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후에는 미술과 시각장애인의 조합은 필연적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책 속에서 아이들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할 때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진을 찾기 위해 몇장 뒤를 계속 넘겨봤다. 그들은 어떻게 보고 표현해냈는지,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은 무엇일지 궁금해서 떨리기까지 했다.
그들이 해낸 작업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단연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이다.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라는 열반경의 격언에서 모티프를 얻은 프로젝트인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우리들의 눈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이다. 여기서는 격언의 의미와는 역설적으로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이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창의성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을 통해 인식한 코끼리의 모양은 다양하지만 비시각장애인들이 눈으로 인식한 코끼리는 일률적이다. 이처럼 시각이라는 것이 창의적 생각을 하는 데 있어서 큰 방해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 창의적 생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가장 민감하고 빠른 것이 시각이다. 따라서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에서는 빠른 인식을 위해 눈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것, 시각적으로 더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시각에 그만큼 의존한다는 것은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코끼리를 눈에 보이는대로 “큰 몸집의 넓적한 귀와 긴 코, 하얀 상아를 가지고 있다.”는 묘사와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근육 처럼 딱딱한 코를 가졌고 코 속에는 털이 나있고 바람이 불며 안은 축축하다.”라고 표현 한 것중에 무엇이 더 코끼리의 본질과 가깝고, 중요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 코끼리의 본질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들이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편견없이 합하여 진정한 코끼리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 파악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은 대상에 대하여 더 자세히 체험하고 습득할 기회를 박탈한다. 그래서 표면적인 인지에 그치게 되고 오히려 시각적 체험이 없었을 때보다 본질의 의미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시각장애인들이 표현하는 세상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이며 이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편중되어있는 세상에 물음을 던지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코끼리처럼 거대하고도 복잡다단한 세상을 파악하고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눈들의 협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는 가치들이 무수히 많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대상을 진정으로 알려고 할 때 기존의 틀은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 창의적 사고가 트일 수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은 후에 제목은 다시 나에게 질문한다. 자, 이제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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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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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보지 못할까, 나는 왜 보이지 나는 남과 내가 다르다는걸 알
기까지 그리고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경험이 필요했다. 여기서 다름은 내가 어떤 ‘특별한’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같은 것을 보아도 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걸 알기까지를 말한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맛있는건 남들도 맛있을거야, 내가 좋은건 남들도 틀림없이 좋아해’ 라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틀림없으니깐!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를 읽으면서 정말 본다는 것은 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끊임없이 질문 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본다’ 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일화들을 통해 나 자신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맹학교 미술수업 봉사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올랐다. 수업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이건 여기에, 저건 저기에’ 이다. 나에게 당연한 정보를 전달할 때 나는 ‘아차’ 한다. 나와 이름이 같은 지혜라는 친구는 나의 화요일 미술수업 짝꿍이다. 이제 한 달 총 네 번의 수업을 같이 하면서 내가 지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굉장히 똑똑한 친구라는 것. 수업 전 선생님에게 들었을 때는 약시라고 들었고(실제로 안경을 쓰고 있다) 첫 만남 때도 나는 지혜가 어떻게 얼마큼 보이는지 가늠하지도 못했지만 ‘보인다고’ 생각했다. 네 번의 수업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혜가 전혀 안보일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보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 교실을 들어올 때도 내 목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성큼성큼 걸어온다. 야외 수업으로 놀이터를 나갈 때도 복도를 나보다 앞장서서 걸어간다. 자꾸 부딪히고 이제는 지혜가 안보일수도 있다는 걸 안 내가 ‘지혜야 선생님이랑 같이 가자, 선생님 길을 몰라 손잡고 같이가줘’ 해도 진심반 손잡을 핑계반인 내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성큼성큼 간다. 의자에, 문턱에, 정수기에 아무리 부딪혀도 앞으로 간다. 당당하고 확신 있는 지혜 모습을 보면 미술시간이 재밌을까? 자기가 한 작업이 전혀 안보이는데 만드는 거에 회의감이 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든 다. 혹시 보고싶지는 않을까? 길을 걷는 거야 익숙해질 수 있지만 미술수업은 색을 볼 수 없다, 만들고 있는걸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지혜는 어떻게 생각할까. 손이 빠르고 표현하는걸 좋아해서 매번 수업시간을 즐기는 지혜를 보면서도 내 마음 한켠에는 늘 저 질문이 있다.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면 ‘아 나는 여전히 내가 보는 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구나’ 한다. 그러다가 힘들고 지루하다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는 지혜를 보면 마음 속 질문들은 다시 들어간다. 어느새 나도 뿌듯해하고 즐거워한다. 내 짝궁이라서가 아니라 지혜가 완성한 미술시간 작품들은 늘 새롭고 멋지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에는 다양한 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반짝거리는 게 궁금한 친구,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친구, 예쁘게 생긴 것과 그렇지 않을게 궁금한 친구, 차이나 타운을 덥다로 기억하는 친구, 원거리가 안보이지만 풍경화를 그린 친구... 한 에피소드중 기억에 남는 학생의 말이 있다. 학생의 엄마도 자신도 뿌옇게 보여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이는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걸 알게된 학생이 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틀리게 보는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른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다 다르게 보인다는걸 듣고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남들도 다 다르게 보인데요’ 가볍게 들으면 한 없이 가볍지만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같은 색을 말해도 머릿속에 떠올리는 색은 보이는 사람들도 다르다. 같은걸 보아도 다르게 받아들이는게 당연한 세상에서 이 친구는 다름을 다름이라 누구보다 잘 이해한거 같았다.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 우리가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걸 아는 일을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을 걸쳐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해한다. 라는 말이 아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은 몸에 지닌 ‘장애’ 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이 보지 못함은 약점이나 불편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것들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보일까? 그들이 보지 못해서 아는 걸 보이는 이 에게 알려주듯이 나는 보여서 아는 걸 그들에게 알려줘야한다. 세상에 보지 못한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같이 살면서 서로 다른 걸 모르고 산다면 보인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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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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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가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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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에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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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단순히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아프다는 것,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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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만들어 낼까?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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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과 시야와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세상도 내가 보는 세상과 네가 보는 세상이 다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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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질문하고 발견하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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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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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모두의 관심사인 눈과 세상을 보는 방식,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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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 창조적 생각! 상상력!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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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감각의 결핍은 감각의 회복으로 가는 우회의 길일지도 모른다.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몸을 가진,
가끔은 결핍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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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질문의 빛을 따라서 내가 본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말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본 것을 말로 표현 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대한 관심,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다'라는 것과 관련된 표현이나 사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 갔다.이 궁금함은 보는 것 너머에 무엇에 대한 끌림이기도 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내 오랜 질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만남면서 '그럼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물론 오래전부터 철학과 미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이 질문은 늘 있어 왔고 나 역시 그러한 철학적 기초 위에서 예술가로서의 탐구를 해왔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시각장애의 세계에도 이어 가며 관념이 아닌 현실로 들어오려는 시도가 있었던가?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술적,철학적, 과학적, 종교적 접근을 한 이들의 경험과 깨달음,오해 그리고 작품들은 이제 막 시각장애의 세계를 엿보기 시작한 나에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특히 블라인드 컬렉션은 내가 납득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낯선 표현과 몸짓을 그냥 스치지 않고 바라보게 하는 용기와 상상력을 주었다. P54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고서 소심스레 상대의 얼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간지러워서 때론 어색해서인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웃음소리와 탄성이 쏱아져 나왔다.늘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지만 서로의 얼굴을 작정하고 만져 보기는 처음인 듯 했다. 나도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선생님 얼굴도 만져 봐, 사람의 얼굴은 다 다르거든." P57 그러나 나의 상상이 맞든 틀리든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그보다는 이렇게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시각 중심의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시각 외 다른 감각들의 세계가 던지는 질문은 충격이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호기심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들을 흔들어 놓고 다시금 보게 하는 설렘을 안겨 주었다. P190~191 용이든 호랑이든 심장이든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몸에 새겨지는 순간 나보다 작은 한 부분이 되어 버린다.이 같은 크기의 반전은 감정의 변화도 동반하여 상상하는 재미가 커진다.세계적으로 코끼리 냉장고 넣기의 패러디가 많은 것도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아이들은 자신의 머리,발등,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코끼리 작품을 보여 주었다.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 ,볼수 있는 것,볼수 없는 것 우리가 직접 확인 할수 없는 것들이지만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보이지 않는것 볼 수 없는것들도 그 나름 대로의 모양을 이루어내고 하나의 작품이 되어감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휴식이 되는 책을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책읽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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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름30]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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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옆에
피카소의 말이 정말
그렇구나. 엄정순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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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우리는 그 시각을 달리한다. 어쩌면 세상에 하나하나 질서가 잡힌 세계처럼 확고해 보인다고 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큰 장애로 받아들이는지 당사자는 직접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달리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을 이롭게 바라보려는 좋은 경험의 산물이자 은혜가 된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마음은 편견 없이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에는 작은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고정관념이라는 일종의 나의 틀이나 고집이 생겨 그것을 유연하게 바꾸기는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해야 균형감을 가질 수 있을지 알아가는 생각이 형성될 수 있다. 책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 코끼리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만지는 체험을 통해 인식하는 그 감정의 이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해 준다. 마찬가지로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세상은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반으로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속에서 경험할 수 있게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더욱 넓어지고 유연해지게 된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이 영화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인간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효빈이의 풍경화도 나에게는 도미니크 보비의 자서전과 다르지 않았다. 짧은 한 문장을 말할 때에도 숨이 차오르고 초점을 맞춰서 보기에도 부족한 시력을 가졌으며, 30분 서 있으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허약한 몸을 지녔지만 그는 늘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했다. 나에게는 그 표현이 자화상이 아니라 풍경화였기에 더욱 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절대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감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완성해 가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단지 보지 못할 뿐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만드는 과정이 아주 눈에 녹아질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준다. 그렇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힘은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람을 우리가 깊이 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안 보이는데 미술을 해서 뭐하나 쓸데없이. 그 시간에 영어나 안마를 해야지 쯧쯧.” 실제로 몇몇 맹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스쳐 가며 던진 말이었다. 미술보다는 현실에서 좀 더 쓸모 있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빵과 장미가 동시에 있어야 사람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미술을 접하고 초·중·고등학교에 걸쳐서 미술 수업을 받는 것은 꼭 직업을 갖기 위한 목적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 “화장실 안 가도 되니?” “이거 다 만들고 갈 거예요. 참을 수 있어요.” 나에게도 저들처럼 일주일이 기다려지는 수업이 있었던가? 미술의 무엇이 어린 소년이 화장실 가는 것도 참게 만드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안 보여서 미술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참 다른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묻혀 두지 말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을 보일 때 더 궁금해지는 일을 만드는 것이 좋은 성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믿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더 깊은 생각으로 들어가게 하는 의미로 더 깊이 느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더욱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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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엄정순씨는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행한다. 시각장애인과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아트프로젝트가 ‘우리들의 눈’이다. 안 보이는 사람들과 미술작업을 시도한다. ‘코끼리 만지기’프로젝트는 앞이 안보이는 아이들이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만져 보고 이미지로 만드는 세계 최초의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와 코끼리의 콜라보 프로젝트이다. 안과에는 가끔씩 아이들과도 다녀오는데 병원에서 대기하면서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안 보이는 것이 장애 중에 가장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내 두 딸이 안경을 처음 착용하던 때도 걱정으로 조바심까지 가졌던 기억이 있다. 20년 전 우연한 기회에 시각장애 학생들을 만나면서 맹학교를 찾아가 자원봉사자로 미술 시간을 맡아서 해보고 싶다고 부탁을 했고 그렇게 맹학교의 미술 시간을 맡으면서 다른 눈을 가진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실명을 하고도 국립도서관장이 된 아르헨티나 소설과 보르헤스를 소개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공직을 맡았던 강영우 선생, 뉴욕 월가의 재무 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신순규씨는 한국인 시각장애인들이라고 한다. 놀라웠다. 며칠 전에 ‘스티비 원더’ 의 대표곡인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아이들과 함께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스티비 원더가 시각장애인이라고 알려주니 많이 놀랐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걸쳐 12개의 맹학교가 있다고 한다. 인천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학생들과 지하철을 타고 차이나타운까지 가서 자유공원 언덕을 걸어가 보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야외수업을 했다. 아이들에게 다녀온 기억을 표현해보라고 했다. 약시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비슷하게나마 재현을 해보았고 전맹인 초등4학년 여학생은 힘들게 걸었던 계단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10미터가 넘는 대형 종이 가득 계단을 그려 넣었다. 차이나타운-천 개의 계단 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책속에서 보았다. ‘그림은 앞이 보이지 않는 자가 하는 일이다. 그는 본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느낌을 표현한다.’ -파블로 피카소 (64쪽)
매번 미술 시간에 완성한 자기 작품을 휴대폰에 찍어 놓고는 비시각장애인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려원이를 보면서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사진 수업을 시작하게되고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디지털 카메라 12대를 시작으로 2008년 맹학교 정규 미술 수업에서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 사진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맹인 사진작가 앨리스 윙월은 “나는 시력을 잃었지만 시각화하는 능력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라고 고백했다. 나는 종종 뉴스를 통해서 시각장애인들이 모임을 통해서 등산대회를 가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비시각장애인들이 함께 도움을 주지만 여러 후원단체들이 너무 감사했다. 작가가 생각해낸 가장 큰 프로젝트가 ‘코끼리 만지기’이다. 2009년 맹학교 학생들과 서울대공원 다음으로 큰 규모의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갔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거나 타보는 것은 돈을 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체험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코끼리의 몸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수의사와 조련사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조합토 덩어리로 코끼리를 만들었다. 2011년 여름이 되기 전에 국립서울맹학교 아이들과 우치동물원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오고 코끼리들이 모두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경영문제로 일본의 사파리회사에 매각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웠다. 어찌되는 것일까? 궁금증에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코끼리란 이름을 타고 세상을 서핑 하던 중에 태국의 치앙마이 근처에 있는 코끼리 캠프를 발견한다. 청주맹학교 학생들 여덟 명과 4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온다. 코끼리를 만져 보고 점토를 주물럭거리면서 코끼리를 만들었다. “코끼리를 만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잠을 자는 코끼리’를 만들었는데 자고 있는 코끼리는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책 177쪽)
처음에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가 힘들었을 때, 어느 공원에 가면 공룡조각상이 많이 있듯이 어디에 코끼리 조각상도 있을 것인데 차가운 돌 조각이라도 맹학교 아이들이 만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창의성이라고 한다. 창의적인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덕목이 상상력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시각 중심으로 살아온 감각이 그로 인한 인식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감각을 고르게 가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 것이다. (책 203쪽) 나도 두눈을 감고 맹학교 아이들과 코끼리만지기를 해보고싶다. 작가의 아름다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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