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어릴적 동화책을 다시 읽다
"어릴적 동화책을 다시 읽다" 내용보기
어릴 적 읽은 동화책들우체국에 가까와질수록 심장이 떨리고, 입가 근육이 긴장되었다. 우체국 직원 앞으로 가서 개미 소리로 말했다. ‘저어…우표 하나 줘유~~.’ 얼굴이 화끈화끈.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에 내려가보니 그 곳 사람들은 말끝마다 ‘-요’ 대신에 ‘-유우~’를 길게 늘여서 말을 했다.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서울말 한다고 친구들이 놀렸다. 우체국에 우표 사러 가거
"어릴적 동화책을 다시 읽다" 내용보기

어릴 적 읽은 동화책들



우체국에 가까와질수록 심장이 떨리고, 입가 근육이 긴장되었다. 우체국 직원 앞으로 가서 개미 소리로 말했다. ‘저어…우표 하나 줘유~~.’ 얼굴이 화끈화끈.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에 내려가보니 그 곳 사람들은 말끝마다 ‘-요’ 대신에 ‘-유우~’를 길게 늘여서 말을 했다.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서울말 한다고 친구들이 놀렸다. 우체국에 우표 사러 가거나 굴집(구멍 가게 집 이름)에 뭘 사러 심부름 가면 ‘요’라고 해야할지, ‘유’라고 해야할지 여간 고민되는게 아니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온 가족이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아빠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 종합상가에 아빠랑 손잡고 놀러 가면 거기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아빠에게서 나를 양도 받아 에스컬레이터도 태워주고 바나나도 사주었다. 그런 서울 아이가 다시 시골에 와서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식 날 학교에 가니 구두 신고, 가방 메고 학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엄마도 신식 엄마였다. 엄마는 식구가 열명이 넘는 대가족 큰 며느리였는데 종종 서울에 2,3일 다녀오곤 하셨다. 증조할머니 옆이 나의 잠자리였는데, 자고나면 머리맡에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서울 가신 엄마가 사 온 책들이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소공자>, <소공녀>, <플란다스의 개>, <성냥팔이 소녀> 이런 것들이었다. 시골에도 차츰 전기가 들어온 후에는,  TV 만화나 영화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왜 이런 책을 읽지 않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건초 한 푸대 가져오기. 여름 방학이 끝날때면, 우리는 낫을 들고 풀을 베러 친구들과 함께 들로 몰려 다녔다. 그것들을 며칠동안 잘 말려서 푸대에 담아봐도 한 푸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등교날 아침에 아빠가 베어놓은 풀로 다시 꽉꽉 채워 주셨다. 무게가 얼마 이상 나가야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마른 풀이라지만 오리나 되는 길을 건초 한 푸대 들고 가는 것은 아이에게 무리였다. 아빠가 자전거 뒤에 푸대를 싣고 나를 앞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셨다. 비록 숙제로 하는 건초였지만, 마른 풀 냄새가 어린 내 코 끝에도 향긋하였다. 하이디의 할아버지는 잘 마른 건초더미 위에 하이디의 잠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알프스 산 중턱에서 자란 허브들의 향기는 더욱 그윽했으리라. 그 위에 누워 코에 가득한 풀향기와 곳간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이디는 행복해 했다. ‘나중에 크면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침대를 만들어 주어야지.’ 푸대에 담긴 마른 풀 향기를 맡으며 나는 어느새 하이디가 되어 알프스를 뛰어다녔다.


뉴욕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던 세드릭은 어느 날 갑자기 영국 도링코트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 지목되어 사랑하는 엄마 곁을 난생 처음 보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게 된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인색하며 꼬장꼬장한 도도한 백작이었다. 그러나 손자 세드릭의 영리함과 붙임성에 감화되어 차차 따뜻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며느리가 미국 사람이라고 결혼과 함께 아들까지 외면하였으며, 세 아들이 모두 죽자 오직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손자를 빼앗다시피 데려온 할아버지이지만, 나중에는 세드릭의 엄마도 영국으로 불러 들인다. 병으로 쇠약한 부잣집 딸 클라라를 웃게 만든 하이디와 할아버지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세드릭, 그들의 품성은 이후로 내가 지향해 온 이상적 성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세드릭과 하이디처럼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한 기운으로 녹이고, 닫힌 문을 열게 하여 깜깜한 고립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아오게 하는 매력을 지닌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커다란 별과 지팡이 사탕이 달려 있고, 그 아래는 선물 상자가 수북히 쌓여 있는 집이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수 십 년 살았지만 성탄절에 그렇게 풍성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어느 창문 밑에 몹시 부러운 눈으로 남의 집 안을 들여다 보는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 신발도 한 짝 잃어버리고 마지막 성냥 한 개를 피워 언 손을 녹이는 소녀의 모습은 동화책 그림 그대로 나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었나보다. 알루아와 친한 것이 못마땅한 알루아 아버지의 모함으로 네로는 온 동네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돌봐주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끼니를 이어가기도 힘든데, 화가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대회에 그림을 출품하지만, 그의 그림은 당선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 크리스마스 날이 밝아오자 루벤스의 그림 아래서 프란다스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된다. 네로의 마지막을 함께 해 준 것은 플란다스의 개뿐이었다. <성냥팔이 소녀>와 <플란다스의 개>는 <소공자>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달리 따스하고 착한 마음도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쓸쓸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작품 덕분에 나는 누군가 풍요를 누리는 순간 한편에서는 다른 네로와 성냥팔이 소녀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문혜영 (분당우리교회, 로고스서원)

h*******g 2015.01.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