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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저의 『신성한 모독자』 를 읽고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서 다양하게 대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것을 포함하여 고전과 현재 미래에 걸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오래 만에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세계 역사에 있어서 단단한 몫을 담당했던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던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지성의 역사 시기에 철학을 다루었던 철학자 13인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왠지 더더욱 마음이 두근거리면서 읽는 내내 그 시대로 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고백해본다. 그래서 위인전을 읽는 묘미가 남다름을 느껴본다. 세계사에 있어서 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지배당하는 시대이다. 특히 로마 교황청 중심의 강력한 체제하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체제 하에 벗어나는 것은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 '다른 길'이자 '잘못된 길'임을 뜻한다. 혹시나 그리스도교 내부에 있더라도 기존의 그리스도교를 지탱하는 신학 내지 철학을 벗어나는 활동을 하게 된다면 역시 이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뭔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특별한 학문을 연구하고, 저작물을 발행한다든지 하더라도 이단으로 찍힌 사람들은 함부로 활동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 중에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낯선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 만큼 비밀리에 활동을 해왔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가장 악조건인 가장 잔인무도한 환경의 시기를 견뎌내면서도 온몸으로 진리를 수호한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사상을 극적으로 펼쳐낸 철학자 모습들의 일대기는 당대에는 어쩔 수 없이 각종 '신성모독죄'라는 누명으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르지만 후대에는 '위대한 철학의 순교자' 혹은 '신성한 모독자'로 기려졌다. 그리고 그 철학자들이 주장한 생각들은 후대의 철학, 수학, 과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합당하게 여겨지게 되어 질서와 세계관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진정으로 천 년이라는 금기를 깨뜨린 가장 위험한 철학자들의 용기에서 내 자신도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흥분된 독서시간이었다. '천국은 모두의 것이다.','자기 이성을 믿어라. 자신감을 가져라.', '합리적 신앙은 가능하다.', '날 찢어라. 그러나 진리는 찢어지지 않는다.',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 진리는 진리일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성스럽다.' 이런 후대에까지 하나의 진리로 남겨지는 멋진 말을 에리우게나에서 스피노자까지 중세 천 년을 불태운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명 철학자의 거룩한 이단의 역사를 통해서 뭔가 확실한 철학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면서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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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이단이라 불렸던 이들..당대에는 금기를 깨뜨린 위험한 철학자로 치부되었지만, 후대에는 새로운 철학의 사조를 열어주는 선구자적 역할을 한 13인에 대한 내하는 세상과 용이 담긴 책이다. 인간의 이성을 긍정하였기에 두번이나 이단으로 낙인찍힌 에리우게나, 서유럽 철학과 유대교 철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이븐 시나와 이븐 루시드, 경험을 중시하고 관차과 실험에 근거하여 빛과 무지개의 원리를 밝혔다가 신의 신비에 대한 인간의 이성 침범이라며 이단 선고를 받은 로저베이컨, 근대 정치철의 문을 열었다는 오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을 마주한 에크하르트, 의학적 성과에도 이단으로 규정되 어 힘겨운 삶을 살았던 파라켈수스,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칼뱅의 삼위일체 신학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이단으로 규정된 세르베투스, 지금은 국제법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는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등 역경의 시기를 견뎌냈던 이단아들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자신에게 같음을 강요하는 세상과 맛서 싸운 하는 이단적 인간들의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에 고개를 숙이고 사는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고유한 다름과 개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다름과 벗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지혜를 주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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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당시에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경우 이들은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시간이 흘러 이들을 돌이켜 보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자신의 생각을 목숨으로 지켜낸 사람들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현대인의 삶을 ‘호모 사케르’라 정의한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사회로부터 배제시키는 형벌을 받은 죄인들을 가리키던 용어이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사형을 당하지는 않지만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잃게 되어 단순한 생명체로 살아가야 했다. 극단적인 경우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음을 뜻했다. 13명의 철학자들은 그 시대에 호모 사케르가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똑같은 생각과 시선만을 강요받던 시대, 다름을 틀림으로 보고 불에 타서 죽어야했던 시기가 이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다른 생각에 대한 폭력적 시선과 차별이 또 다른 이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도만 알았지만 천국은 모두의 것이라고 주장했던 에리우게나, 뛰어난 의사이자 선진 과학에 정통한 이븐 시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까지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서양의 철학자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던 중세의 철학자들의 모습에서 학교라는 사회에서 배제당한 체 살아가는 왕따의 모습을 본다. 왕따를 폭행해도 가해학생은 종종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왕따는 호모 사케르를 너무도 닮아 있다. 대기업에 혜택을 주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낙수효과의 거짓에 법인세가 감면되었고 그룹 총수의 사면을 위한 전시용으로 고졸신입사원을 채용했다가 정권이 바뀌니 퇴사 처리되는 청년실업자들의 현실 자체는 백스, 노숙자, 불법 체류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참여의 권리를 배제당한 호모 사케르로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에리우게나에서 스피노자까지 중세 천 년을 불태운 거룩한 이단의 역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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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이란 다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말이나 행동으로 이 책 '나를 미쳤다고 불러도 좋다'는 역사는 현시대를 평가할 수 없고, 지식의 무지(無知)는 욕망에 의해 깨어지는 편견의 중심이다. 중세시대의 지성사를 수놓은 수 많은 인물들 중 13인의 철학자들은 종교적 핍박과 혼돈의 카오스라고도 할 수 있는 현실의 세계에도 여전히 이단아는 필요하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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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정신의 근본은 기독교에 있다고 한다. 기독교.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서양의 종교가 된 이 최고의 가르침(종교의 한자 뜻)은 처음부터 박제되고 길들여진 정신은 아니었다. 원래는 대 제국 이라는 애굽에서 경험한 정치적 해방을 그 정신의 뿌리로하는 자유의 정신이었다. 그리스도교는 노예로, 종으로, 천하디 천한 천민으로 살다가 탈출하고 해방을 경험한 작고 작은 민족의 살아있는 해방정신을 폭발적으로 되살리는 사건들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요 이야기였다. 그리스도인이란 정치적 해방 정신이 예수에게서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들이요, 자신들도 예수처엄 살겠다고 모인 모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과 이야기는 문서화 되었고 전해지면서 제국의 종교가 되었고, 이 박제된 제국의 종교는 기독교 왕국을 꿈꾸게 되었다. 찬란한 제국의 종교!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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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특별한 책을 만나서 호기심과 집중력이 마구마구 살아나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 [신성한 모독자]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이 소개된다고 하는데 특별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특별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 있었습니다.
이 책 [신성한 모독자]가 이야기하는 내용들~ 그것은 우리의 길고 긴 역사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일컬을 수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13인의 철학자의 이야기에서 이들이 과연 '이단'이라는 이름하에 어떠한 일들을 하고 어떠한 사상들을 펼쳤는지에 대해서도 이모저모 잘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 몰입하여 책 속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벗어나는 생각들이나 신앙들에 관대하지 않았던 역사 속에서 어떠한 믿음을 근간으로 그들은 '이단'이라는 오명도 마다하지 않고서 그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사상을 피력했던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에 잠겨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내용이 되었습니다. 신의 말씀을 어긴 다른 길로 가고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그들에게 '신성모독죄'가 주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낙인을 가지고서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을 맞이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들~ 이 [신성한 모독자]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뜻깊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신성한 모독자]들이 들려주는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그 의미, 인간적인 고뇌와 신에게 아무리 묻고 기도해도 들리지 않던 답들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풀어나가 볼 수 있어서 더 특별한 독서시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 [신성한 모독자]는 역사와 종교, 철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그 누구라도 진지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신성한 모독자]에는, 신에 대한 도전의 이야기가 있었던 그 시대, 중세 시대의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흔들던 말그대로 신에 대한 모독자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근대를 이끌었던 주역으로 신비한 신의 빛에서 이제는 자연의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로저 베이컨'의 이야기, 인간의 존재성을 강조했던 '데카르트'의 이야기,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탄압받았던 '스피노자'의 이야기들에 주목하면서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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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미쳤다고 불러도 좋다 요즘도 여전히 이단-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종종 귀에 들린다. 이단이 제일 많은 곳은 아무래도 종교계가 아닐까 싶은 데 이단이라기 보다는 사이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종교도 많다. 이러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음이 놀랍다. 이 책은 중세 천 년을 불태운 거룩한 이단의 역사로 에리우게나에서 스피노자까지 총 13명의 시대를 앞서간 '신성 모독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일찍이 시대를 잘못 만나 이단아로 낙인 찍힌 이들이지만 사후 그들의 철학이 당연한 상식이 되고 성인으로 시성됨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저자는 '원래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에 용기 내어 외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인물이 필요함을 설파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유로 곳곳의 불합리한 관행과 악습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넘치고 있다. 누군가 소리치지 않으면 늘 그랬듯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단적 학문과 신성한 모독자들의 생존기를 통해 다양성의 가치가 요구되는 시대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 도서였다. 저자는 철학의 목적을 행복에 두었다. 행복해지기 위한 인간의 지적 몸부림! 옳다구나~!!!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를 철학적 고민의 마지막 질문으로 두었는 데 철학은 역시나 쉽지 않구나. 내게 있어 지극히 어려운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단아' 또는 '반역자'였지만 그 이단아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성공한 이단아'라고 말한다. 혹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 '선구자'로 기억됨을 강조한다. 결코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험난한 길을 선택한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들이었다. 에리우게나를 필두로 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 등등의 신성한 모독자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다소 생소한 이들이 많았고 그들의 철학을 이해함에 있어 집중력을 발휘하며 읽어야했다. 나에게 늘 숙제 같았던 '형이상학'에 대한 의미는 파고들면 들수록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가는구나..... 그래서 잠시 접어버렸다. ^^;; 이 책을 통해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중세 유럽 등의 시대적 상황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신성한 모독자들의 의미 넘치는 삶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철학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되는 내용들이 어쩜 그 시대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이단적인 내용으로 비춰졌는지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였지만 혹여나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도 했다. 비교적 쉽게 풀어쓴 책이어서 청소년 자녀랑 함께 읽기에도 좋을 듯하다.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의미있는 삶을 들여다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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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삶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위인들이 살아서 이단 소리를 들었다. 에리우게나 , 이븐 시나 , 이븐 루시드 , 베이컨 , 갈릴레이 , 데카르트 등은 지성으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생전에도 그 명예를 누렸을까? 알고보면 그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한 이단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철학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서지 못한다. Nemo intrat in caelum nisi per philosophiam. 9세기 유럽, 고트샬크(Godescalcus)는 ‘이중예정설“을 주장했다. 잠시 소개하자. 인간의 모든 행위는 예정되어 있다. 1분 후나 죽은 후나 모두 정해져있다. 인간은 자유가 없다. 그 근거는 이렇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따라서 인간의 미래도 알고 있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해도 신이 알고 있는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리우게나의 반박은 이렇다. 신은 선하다. 따라서 선하게 살아도 정해진 운명에 따라 지옥에 가는 인간을 방관하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하자. 전지전능한 신은 답답한 논리식에서도 자유롭다. 미래도 바꿀 수 있다. 에리우게나가 해석한 신의 전능함은 ‘사랑’이다. 존재하는 모든 이를 향하여 신의 사랑이 있어야 마땅하다. 여기서부터 에리우게나는 이단이 된다. 모든 이를 사랑하는 신이 과연 특수한 형태의 지옥을 만들어 고통을 주려할까 전지전능하기에 세상논리에서 자유롭고, 사랑을 그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는데? 에리우게나는 특수한 공간 지옥을 부정하고 죄를 참회하는 상태를 지옥으로 봤다. 이후 그의 사고는 범신론적으로 뻗어간다. 엘리트 에리우게나는 이단 고트샬크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이단이 된다. 16세기까지 그의 책은 금서가 된다. 에리우게나의 생각이 수세기동안 금지된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날 이단이란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양심의 자유에서 사상의 자유를 유추하는 사람이 있으나, 실제 사례를 보면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고 보기 어렵다. 헌법개정과정에서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결과다.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이다. 군필 남성이라면 베트남사례 정신교육을 기억할 것이다. 반공 분위기가 옅었기 때문에 괴뢰공작으로 공산통일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 논리는 독재정권의 반공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적절하다. 이단에 대한 생각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좀 더 치열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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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다. “미쳐야 미친다”라고 하나에 제대로 집중해야 끝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미쳐야 한다는 것인데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미친다는 것도 상대성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린 이 세상의 질서가 있고, 다른 차원의 세상 질서가 있다. 주관과 객관의 차이를 오락가락 하는 순간 그것은 점점 미쳐가는 것이니까. 철학자 유대칠이 쓴 <신성한 모독자>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자신의 시대에서 미친놈 취급을 받고 불태워진 이단자들의 이야기다. 이들 이단자들은 자신의 논리의 끝에 도달했고 그 시대를 뛰어넘는 논리를 통해 세상의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이단으로 취급을 받아 불 태워 지거나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 이단자들이 주장한 이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왔다. 중세 천년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은 마녀다. 마녀사냥을 통해 당시 중세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불에 던져졌다. 기존 질서에 반대하면 능멸당하는 것은 지금도 그러한데 종교가 세상의 법 아니 천상의 법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당시에는 오죽했겠나. 하지만 이들 이단아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촛불처럼 밝혔다. <신성한 모독자>에 소개된 13명의 이단아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람은 역시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자명한 사실을 주장하든 안 하든 그건 자명하니까? 하지만 지식인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게 된 진리를 분명하게 설파해야 한다. 지식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서 오컴이다. 면도칼(?) 철학자인 그의 분명한 주장이다. 모든 것은 단순화 시키고 현실적이며 직설적으로 찌르는 것이다. 그대의 이기적 욕심, ‘의도된 복잡’을 배제하면 된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진리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욕심을 감추기 위한 이론으로 감싸여 이기 때문이다. 교황과 황제가 요구하는 모든 제도와 절차와 질서는 결국 그들의 권력을 위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지금도 바뀌지 않는다. 자본권력을 위한 이 복잡한 질서에서 살아 남는 자와 죽는 자는 무엇으로 구분될까? 자본권력은 ‘의도된 복잡’의 최상위에 있지 않을까? 이것을 거스르면 흔히 ‘낙오자’라고 딱지를 붙인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욕심인가. 저 말의 의도는 무엇인가? 저 사람의 말하는 순수한 의도를 순수하게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