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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백리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황희의 삶을 <백성의 臣 황희>라는 소설을 통하여 들여다보게 된다. 검소한 삶과 더불어 몇몇 일화에 등장한 황희이지만, 정작 역사적으로 그의 업적을 마주한 적이 없기에 이 책의 내용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해 보인다. 사실 고려 말에 태어나서 관리 생활을 하였고, 조선 세종 시대에도 정승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기에 황희의 삶을 통하여 여말선초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음은 일전에 읽었던 주경철 교수의 [유럽인 이야기] 시리즈와도 통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특히 저자가 세종과 황희에 대하여 다수의 책을 썼던 이력이 있었기에 소설이면서 오히려 허구가 아닌 생생한 황희의 삶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과연 황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의 시작은 아쉽게도 조선의 태종이 제위에 올라있던 시기부터 시작된다. 고려말에 그의 삶의 여정과 더불어 두문동에서 칩거하다가 조선의 조정에 참여한 과정을 알고자 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내 책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삶의 질곡이 바로 조선 초기의 정치 상황과 고스란히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왕자의 난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조선 초기의 정치 상황, 그리고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의 치세 역시 복잡한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하여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양녕대군의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세자 자리에서 폐위가 되고, 태종의 셋째였던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후일 세종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빚어진 태종의 고뇌와 신하들과의 갈등은 잘 알려진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황희를 통하여 그러한 모습을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양녕대군의 일탈을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황희의 입장은 왕자의 난을 통하여 결국 왕위에 오른 태종이 가급적 양녕을 폐위하지 않으려는 속마음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일충파라 불리우는 공신 세력은 그러한 황희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태종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다른 세력이 없던 황희의 입장은 결국 태종과 공신들의 세력 다툼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입장은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에도 반대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와 더불어 귀향을 떠나게 된다. 이후 세자의 장인이자 세자빈의 아버지인 심온이 강상인의 옥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의 가문이 풍지박산이 나는 것 역시 외척을 배제하기 위한 태종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기에 황희의 귀향 역시 정치적인 희생이었음을 보여준다. 남원에서 귀양 생활을 하던 황희가 4년 뒤 세종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복귀하는 시점 역시 의미가 있다. 공신들로 구성된 일충파의 전횡을 막고 견제하기 위하여 세종은 자신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였던 황희를 다시 등용시킨 것이다. 태종이 자신의 공신이었지만, 이숙번을 귀향을 보내고 하륜을 견제할만큼 공신들의 발호는 꽤 부담스러운 것이었는데, 세종은 황희를 통하여 그들을 억누르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황희의 귀양의 시작과 복귀는 조선 초기의 공신 세력과 왕의 갈등과 연관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황희의 복귀와 더불어 공신 세력은 서서히 조정에서 배제되기 시작하며, 황희는 중립적인 입장을 표방하면서도 세종의 의중대로 점차 조정의 실권을 차지하게 된다. 그가 의정부의 정승이 되는 시점은 일충파의 몰락, 즉, 공신 세력의 약화와 더불어 비로소 세종의 왕권이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게 된다. 이쯤되면 <백성의 臣 황희>는 단순히 황희라는 인물의 삶을 시간에 따라 배열한 것도 아니고, 황희의 업적을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중반 이후에는 황희가 아닌 세종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시점에서 책 제목의 '신(臣)'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내용들이 전개가 된다. 공신 세력이 위축된 시점에서 황희는 세종에게 바로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의 시행을 주장한 것이다. 애초 조선의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 정도전은 조선이 왕 중심의 왕권 국가가 아닌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신권 국가임을 천명한 바가 있다. 물론 이방원에 의하여 척살되면서 이방원은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가 아닌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채택하게 된다. 이는 이조를 비롯한 육조에서 각 부서에 맞는 정책을 직접 왕에게 건의하면 왕이 그에 대한 채택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것으로서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황희는 정도전의 '신권'에 주목하면서 왕이 어리석거나 포악한 경우를 대비하여 의정부서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세종에게 건의한 것이다. 의정부서사제는 육조에서 정책을 입안하면 그에 대하여 의정부에서 심의하여 왕에게 보고를 하고, 왕은 의정부가 올린 내용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서 신권 정치에 부합하는 제도였다. 태종 시기에는 불가능한 이러한 발상은 세종이 신하들과의 적절한 타협을 위하여 수용하게 됨으로써 후일 조선은 왕권이 아닌 신권 중심의 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이는 세종의 배려와 더불어 정책 입안에 있어서 국왕 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는 그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병권이라든지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권은 의정부가 아닌 왕에게 곧바로 보고하는 안전 장치를 포함하고 있으니 결국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조화를 꾀하는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세에 대한 내용은 아마도 이 책에서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예전 국사 시험에서 자주 등장하던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토지의 상태에 따라 징수의 기준을 마련한 '전분 6등법', 그해 작황에 따라 세금을 걷는 '연분 9등법'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이르기까지 세종과 신하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를 이 책을 통하여 새로이 알 수 있게 된다. 원래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징수하던 공법과 작황에 따라 징수 기준을 책정하던 답험법이 있었는데, 세종은 공법을 선호하였고 황희는 답험법을 주장하였다. 작황을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부정이 있을 수 있기에 정해진 징수 기준을 선호하던 세종과 이 책의 제목처럼 백성의 입장에서 작황에 따라 징수한 것을 주장하는 황희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공법과 답험법이 교대로 실행이 되면서 백성들의 불만이 증폭하였기에 공법과 답험업의 장점을 취하면서 단점을 보완하여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의 탄생 과정은 황희와 세종의 애민에 관한 부분과 더불어 왕과 신하 사이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백성의 臣 황희>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황희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청백리이자 검소의 대명사이지만, 그 역시 뇌물(아주 사소한 것이지만)을 받아서 탄핵을 받은 적이 있었으며 두 아들이 번갈아가면서 부정을 저지르면서 곤혹을 치뤘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세종 역시 그러한 황희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다소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황희의 명암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야기에서 대화를 나타내는 큰 따옴표가 남발되어 대화 주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말하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옴표를 여러번 사용하여 대화 상황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물론 문맥상 어느 정도 파악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가독성에는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에 묘사된 황희와 세종의 관계는 거꾸로 조선 초기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비록 이 책이 황희의 생애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인지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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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고 느낀 바> 이 책을 읽고 나서 최 씨 고집은 아무것도 아니네 싶었다. 황희 고집을 보면서 친구 황을 떠올렸다. 초, 중, 고교 동창이지만 말해 본 기억도 없는데 첫 직장을 함께 다녔다. 이 친구는 나랑 성향이 달랐는데 결혼한 후 만난 적이 있었다. 깍두기와 생채 중 자신은 좋아하나 남편은 싫어하는 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한다고. 그게 뭐 이상해 하는 태도라서 당황했고,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는데 어떻게 안해주냐 라고 했던 것 같다.
청렴결백의 대명사 황희.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로 위인전 읽는다는 마음으로 만났다. 위인전은 맞는데 사극 한 편이 거기에 있었다. 오롯이 그려지는 정통 사극의 당파 싸움들. 아니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등등의 대사. 그게 큰 죄인가 싶은데 미리 연막전을 치듯 죄를 청하고, 나아가 사직을 청한다. 당파 싸움에서는 자신내 이익과 입지를 위해 한데 뭉친다. 오늘날의 여당과 야당이 거기에 고스란히 있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당파 싸움의 뿌리이자 근본.
이 책은 태종이 집권말부터 세종이 54세로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의 과정이다. 세종이 어린 나이로 왕이 되기 전부터의 황희는 파란만장했다. 태종의 장자 양녕의 자유분방함이 야기시킨 일들. 치기어린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도록 부채질하는 아랫것들이 있다. 세자는 학자 타입나 군주 타입이 아니었던 셈. 우리네가 알고 있는 양녕은 세종을 위해 그런 처세을 했다는데 여기서보니 그런 사람이다. 격 떨어지는 세자를 아버지가 감싸느라 주위 사람이 애먼 죄를 받고, 신하들마저 애둘러 세자만 놔두고 죄를 청원하는 식.
태종이 양녕 문제를 황희에게 물었다. 황희 아뢰기를 세자는 아직 어리십니다. 태종은 세자를 이해해주는 황희가 고마웠다. 일충파들은 황희가 세자의 죄를 묻지 않았다하여 황희의 죄를 청원하고 견디다 못한 태종은 황희에게 벌을 내린다. 4년여를 유배지에서 지내는 동안 황희는 만감이 교차한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일충파의 동태 살핌에도 묵묵부답으로 입닫고 귀막는다. 그런 시련의 세월을 지나 세종의 부름을 받는다.
태종은 어쩔 수 없이 황희를 유배 보내고도 그만한 사람은 없음을 각인시켰다. 세종이 보위에 오르며 일충파가 모든 권한을 가진 상태서 조용히 불러 들인다. 꼿꼿하고 충직한 황희를 내치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총애는 현명하게 발휘된다. 어우렁더우렁 일충파와 같이 할 수 없었던 세종은 애민 정신을 타고난 군주였다.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황희가 있어야함을, 태종이 그리도 각인시킨 이유를 알게 된다.
백성을 위한 정치의 뜻이 같았으나 17년을 끌어간 건 조세법. 기존법의 폐단을 알고 고치려는 세종의 절치부심에 늘 쌍기를 들고 맞서는 황희. 둘의 근본은 같으나 이견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린다. 황희의 권세때문이기도 하나 보통의 대신들이 황희 같은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지 싶다. 오히려 세종만이 군신들을 앞서가는 창의성의 대가였구나. 세종이 황희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른 것과는 별개로 그 나이차(세대차)도 한몫했지 싶다.
훈민정음의 창제 부분이 흥미롭게 기술되지 않고 조세 개혁을 위하여 장장 17년을 끌었다는 부분이 새롭고도 흥미로웠다. 모든 일에 앞장서는 황희가 조세 개혁만큼은 쌍기를 들고 항상 반대했다. 노인네 고집 대단하네 싶었다. 얄밉도록 응하지 않을 때 황희의 두 아들이 사고를 치고, 그럴 때 조금이나마 정상참작의 여지를 주는 식으로 황희를 회유하기도 한다. 임금과 신하가 밀당하는게 참 어이없기도 하나 한편으론 세종의 마음이 이해된게 애민 정신이 기본이라서다. 믿고 찾는 사람이 된다는 건 그만큼 중용의 자세가 되어야하며 또 타겟이 될 수 있음이라.
자나깨나 오로지 조세 개혁을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고, 수정하고, 그러다 원점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상소가 올라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 간절하고, 옥체는 날이 갈수록 쇠하여지면서 세종은 붕하했다.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조세 개혁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아들이 보위에 오르면서 시행되었다. 애민을 넘어 위민 정신이 자자손손 이어지도록 초석을 닦은 세종. 그와 같이한 세월 속에서 황희는 항상 버팀목이자 대들보였다. 다만, 조세 개혁 부분에서만 사사건건 의견대립이 있었다. 절충하려는 노력조차를 안하더라는.
황희의 첫 부인이 9년 만에 죽고 둘째 부인과 수십 년을 해로했기에 상실감은 컸다. 그러던차 정치적 연인이기도 한 세종마저 떠나자 황희의 적막감은 말할 수 없었다. 초가집에 기거하는 정승을 위해 기와집을 하사하고 죽기 전에 유언장을 써 허례허식을 금하기도 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곤 운명했다. 일생을 청렴결백하게 지낸 그의 정신이 빛을 발할 수 밖에 없음이다. 한 시대를 살며 사내대장부로서 뜻을 같이하는 주군을 만나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건 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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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청렴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역사상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오늘날 부정부패로 공직기강이 무너진 사회에서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다. 이 소설은 그의 인물됨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책이 잘 읽히고, 인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이 인물에 대해 소설에서 제시한 내용과 함께 나름대로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늘 하는 얘기지만 그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가 죽을 때 그의 집에는 먹을거리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 조금은 있겠지만 영의정을 그리 오랜 시간 하고, 많은 관직에 있었던 그가 이런 흔적을 보인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청렴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그의 가난이 현실적인 것이기에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는 뇌물과 거리가 있었고, 이권과도 상관이 없었다. 그의 집에 줄을 서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스스로 열심히 하는 능력 있는 자들을 그렇게 대우하고, 그 능력을 사용한 리더였다고 보면 된다. 그러기에 그리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고, 특히 당시에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일충파 무리들은 그를 제거하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다. 태종, 세종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강한 세력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황희도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기는 상황이 된다. 물론 세종의 안배로 당대 그들의 힘을 서서히 약화시켜 나가, 그의 집권이 순조롭게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 일에 황희의 도움이 크게 작용한다. 그는 곧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장자가 대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세자 양녕이 망령된 행동을 할 때도 그를 놓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 간언하다가 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많은 적을 만들게 되고 결국은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의 고향인 남원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으며 결국은 죽을 고비를 맞기도 한다. 단지 그 곧은 성품을 태종이 알고 있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는 남원에서 살면서 춘향전의 무대가 되는 광한루를 만들고 그곳에 거주하기도 한다. 남원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를 기다리며 자중하는 기회의 땅이 되기도 한다.
그는 지혜로웠다. 세종이 일충파 등의 기존 대신들에 치여 어려운 정치 행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고 자신들에 반대가 되는 인물들은 탄핵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의 정권을 세종 중심으로 돌린 사람이 황희다. 그는 자신이 직접 앞에 나서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뒤에서 마련하고 일은 세종이 해나가도록 하였다. 유정현을 중심으로 한 일충파를 몰아낼 때도 그런 자신의 지혜를 어김없이 발휘한다. 그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 명 한 명 그 약점을 잡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결국 그들을 몰아내게 된다. 사욕을 추구하던 그들을 왕의 권력으로 그 힘을 약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반역이니까 그들도 그 금기는 건드릴 수가 없었다.
사랑이 많았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대하다. 글의 제목도 백성들의 신하. 황희라고 적어 놓고 있다. 백성들을 위해 아낌없지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강원도 관찰사로 역임을 할 때 강원도가 큰 기근에 시달린다. 그것을 그는 나라에 탄원한다. 그래서 감세를 하게하고 그들이 최대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간다. 이런 일들이 자산이 되어 1년 만에 강원도도 먹고 살만한 곳으로 변한다. 그가 그곳을 떠난 후에 백성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돌로 단을 쌓고 소공대라 이름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의 애민은 남달랐다. 그것이 자신의 문제로도 나타났지만 세종의 문제로 표현되어, 세종이 가장 성군이 되게 하는데 일조한다. 그는 백성들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사랑이 많았다. 황희, 그는 이 책이 아니더라도 재상의 표상이다. 이 책도 그의 이 재상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권력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도 그는 사람의 능력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자세가 되어 있다. 그의 인품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곧은 성품을 관철시켜 나가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단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고 집권자의 뜻이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단한 참모다. 그는 세종의 참모로 세종이 제대로 된 일들을 하게 만든 산 증인이다. 세종은 그와 더불어 나라를 이루어나간다. 많은 법들을 만들고, 백성들이 억울함이 없게 만들어 나가는 일을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모두 반대하는 지기원억고소법 같은 것을 만들어 백성들 편에 선다. 또 공법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나가고자 한다. 황희는 세종에게도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그의 지조와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공법과 관련된 부분에선 세종도 황희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공법이 시행되면서 세금을 많이 걷어 백성들을 힘들게 할 때, 세종은 단호하게 말한다. 공법은 그대로 시행하되 백성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라고. 결국은 서로의 의견이 접합점을 찾아가면서 백상들을 위하게 된다. 모든 관점이 백성들의 넉넉한 삶에 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황희는 90이 가까운 나이에 사직 상소를 낸다. 공이 없이 녹만 축내고 있다고. 그리고 파주로 내려가 초가에 기거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것을 들은 세종은 내 부르면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하며 집을 한 채 하사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극구 사양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는다. 그리고 세종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세종의 유언으로 문종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가 90에 세상을 떠나자 조정의 이서와 여러 관사의 노복까지 제물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을 위한 머슴으로서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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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臣 황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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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희'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우유부단(?)의 극치라고 우스갯 소리로 언급되는 일화들 정도만 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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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초기 태조 이후, 3명의 왕이 모두 태조의 아들이니만큼 그 시대가 빨리 돌아갔으리라는 짐작은 있지만, 왕을 4명이나 섬긴 신하, 그만큼 신임을 받았던 인물은 그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조선시대의 왕 중 업적이 많았던 것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과 함께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신하로 지냈던 그의 청렴함과 애민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재상의 자리에 20년 가까이 머물렀으나, 그에게는 초가집 한 칸이 전부였다니... 청백리(淸白吏 :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무엇을 탐하는 마음이 없는 관리), 포의지사(布衣之士 : 베옷을 입은 선비. 벼슬을 못한 가난한 선비) ...라 일컬어지는 그의 삶이 참 대단하다 싶다.
특히나, 요즘처럼 나랏일 하면서 사리사욕 채우는 인간 같지 않은 군상들을 많이 보다보니...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책이다. 좀 읽고 느끼고 부끄러움을 좀 알라고...
아, 책을 읽는 내내 손에 잡히는 종이의 질감이 독특했다. 소설책임에도 불구하고, 참고서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만큼 얇고 좋은 종이였다. 출판사 이름을 다시한번 확인하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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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훌륭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도서출판 어울림, 그리고 YES24에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일단 이 책을 이야기 하기전에 부끄럽지만 몇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아는 황희 정승의 이야기를 열거하면 딱 이겁니다.
1) 네말도 옳다 그리고 네말도 옳다
2) 검은소 누렁소
3) 청백리
4) 두문불출
5) 오래사신 정승
이게 나이먹은 어른인가 싶을정도로 아는게 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위의 에피소드 말고는 황희 정승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대부분 저런 단편적 이야기가 일반인들이 아는 황희 정승의 대부분이란 걸 알았지요.
그리고 그 궁금증에 대해서 묻던중 이 책을 서평단에 신청한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1) 인물의 평설이 아닙니다.
2) 전기 문학과도 다릅니다.
3) 이 책은 위의 평설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또한 재미난것은 이 오기수 작가님은 소설 작가가 아니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몸담고 계시고 세종대왕 관련 서적을 출간하신 전문가이십니다.
그렇다면 극중의 이야기가 딱딱하느냐? 또 그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고 또한 앞서 이야기한 황희 정승에 대한 단편적인 모습을 떠나서 그리고 세종조에 한정된것이 아닌 태종부터 세종대왕에 이르기 까지의 각 역사적 사실을 1부 2부로 나누어 다룹니다.
이은성 작가님의 "동의보감"처럼 허구가 과하지도 않고 (이 책은 그 허구 때문에 논란도 있었죠) 또 반면 그만치 갈등의 기복도 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정종 태종 세종대왕을 보필하면서 수십년간 공직에 임무를 다한 그의 모습이 그저 요즘 못난 관료처럼 보신에 입각한 사람과는 다르듯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묵직한 기개와 감흥또한 없는 것이 아닙니다.
괜히 대왕을 셋이나 모셨겠습니까? 간사한 혀로 아첨을 일삼으며 버틴 신하와는 다릅니다.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제목 그대로 "백성의 臣"이라는 뜻이 와닿는 참 정승의 일대기입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도서출판"어울"으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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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세종을 만나기 전 죽음의 나락에서 4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불충한 역신(逆臣)으로 낙인 되었다. 세종은 그런 황희를 다 늙은 나이인 60세에 불렀다. 그리고 서로는 28년간 백성만을 바라보는 지치(至治, 매우 잘 다스려진 정치)의 동반자가 되었다. 세종은 자신이 깊은 못가에 서 있고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다 하면서, 황희를 우뚝 솟은 태산이요 샛별이라 높이며 정사를 맡기고 의지했다. 세종이 한 말이다. 황희는 나라의 의심나는 일이 있을 대에 시귀(蓍龜)와 같았으며, 정사와 형벌을 의논할 때에 권형(權衡)과 같았다. 황희는 복권되자마자 황실의 제사에 고기 대신 나물 반찬을 올리게 했다. 영의정이 되어서는 세종이 혼신을 다해 혁신하려 한 공법(貢法)을 17년 동안 반대 했었다.
백성을 위한 백성의 신(臣)으로 산 것이다.
87세에 영의정에서 물러난 황희는 파주(반구정)에서 여생으로 보내다 90살에 죽었다.
저자 무곡(無谷) 오기수 - 김포 대학교 교수 - (전) 한국조세사학회 회장 - (전) 김포대학교 총장직무대행
저서 - 세종대왕의 혁신 리더십(2013. 어울림) - 세종 공법(2016년, 조율) 대한민국학술원 학술우수도서 - 황희, 민본 시대를 이끈 행복한 2인자(2017년, 고반) 외 다수
2018. 2.
작가의 이력과 그 간의 저서들을 보니 어떻게 이와 같은 내용의 책이 출간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본 책은 황희와 세종과의 '공법 시행'에 관한 내용이 큰 틀을 이루고 있다. 학생 때 국사시험에서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제'를 달달 외웠던, 단지 기억 끝에 뜻 모를 그 단어만 간신히 살아있었는데, 본 책을 통해 세종이 세우려던 세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기쁘다. 그러나 내게 더욱 반갑고 기쁜 것은 본 책을 통해 세종대왕이 왜 '대왕'이라 불리울만 하는지, 그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는지를 더 깊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왕을 보필하는 신하의 자세에 대해, 특히 왕의 뜻을 거스르는 신하를 왕은 어떻게 품고 존중하며 나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뻤다.
황희는 태종때부터 이조판서를 지낸 관료이다. 태종 또한 황희를 마음에 두고 그의 깊이를 존중하였었다. 그러나 세자(양녕대군)의 일로 파직을 당한다. 그저 황희는 태종의 의중을 염두하여 '세자는 연소하다'고 말했으나 황희를 시기한 다른 신하들이 이를 역적으로 몰아간 것이다.
"똑같은 일인데 왜 지난번 사람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고, 오늘 온 사람에게는 안 지내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십니가?" 황희가 대답했다. "부인의 말도 옳소." "저번 사람은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였기에 지내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고, 이번 사람은 제사를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안 지내는 것이 옳다고 했소. 제사를 모시는 것이야 각자의 마음가짐과 성의가 중요하지 않겠소?"
황희의 성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황희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왕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깊은 마음을 왕들이 모를 일이 있겠는가. 그런 황희가 세종의 뜻을 알면서도 '공법'은 끝까지 반대한다. 황희의 생각엔 기존의 '결부법'이 백성을 위한 세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결부법'의 패단을 알고 있는 세종 또한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세법을 고치려 하고 있다. 이 두 팽팽한 긴장감이 이 책의 후반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희의 쇠심줄 같은 고집에 세종은 '공법'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읽으며, 리더와 2인자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의견이 다를 뿐이지 이는 적이 아니다. 그 두 사람 모두 그 의견을 내세우는 데는 동일한 동기가 있다. '백성을 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둘은 서로의 의견을 더욱더 생각하고 고심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들의 의견을 더욱 세밀하고 세분화하여 적용하려 한다. 적용또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2인자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자가 아니다. 어느 순간에, 왕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는 것 쯤 감내할 수 있는 것이 또한 2인자의 몫이다.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를 읽는 듯, 예전 세종대왕을 연기했던 김상경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세법'이라는 다소 다가가기 힘든 내용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소설로 엮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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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신 황희>는 황희라는 인물이 얼마나 백성을 위했던 인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소신과 강직함으로 오로지 백성을 위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18년이란 기간인 오랬동안 영의정이란 국가의 수장으로 오랜 재임기간동안 변질되지않고 오로지 백성을 위해 살았던 인물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그런 황희이다.
고려 공민왕 시기 태어나 조선의 5대 왕인 정종때까지 활동하였다. 여려차례의 곤란을 겪으면서도 세종때 세종을 보필하며 조선의 백성을 위해 헌신하였다. 우리가 아는 황희는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침착하였다. 그리고 사려가 깊고 청렴하며, 충효가 지극하였다. 학문에 힘써 높은 학덕을 쌓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런 인물이었다. 그리고 정치적 이력으로는 많은 결과물들이 있었겠으나 이조의 사대부적인 모습에선 여지없이 벗어날 수없는 전형적인 사대부의 모습을 갖춘 당대의 흐름을 탈피하지못하고 고스란히 답습한 인물이다. 책은 그런 그의 모습중 일부인 오롯이 백성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 집중하였다.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성의 臣 황희>에서 그의 모습을 부각되고 있다. 감히 백성의 신하라 표현하고 있다.
책은 한편의 스토리텔링처럼 물흐르듯 흐르고 있어 읽는 독자로부터 서사시인 옛날이야기 한편을 듣는 듯하다. 황희의 드러남과 세종의 드러남이 번갈아가며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또한 책은 어찌보면 세종과 황희의 기난긴 세월의 백성을 향한 마음의 갈등의 애증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서로다른 사랑의 방법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책은 세종의 사망과 황희의 사망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황희의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그를 존경해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자신보자 주변인들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볼때 요즘이나 그 때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아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한 조선의 유교적 모습에서 가족사에 관대해질 수 밖에 없는 그의 정치가로서의 모습은 또한 그의 다른 모습에 또 다른 감정을 품게 만든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려했던 것 같으나 개인적으론 반감이 더 커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임을 잊지않아야 한다.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 사실과 판단은 역시 독자의 몫이다.
소설<백성의 신 황희>는 요즘같이 백성이-국민이 경시되어지는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라 생각되어진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도 이런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사려된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위정자들이 매번 때만 되면 국민들에게 살갑게 군다. 그러나 순간이 지나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국민은 마음을 잃고 발길을 잃는다. 또한 기대했던 국가의 대표자가 황망한 짓거리를 할 땐 아예 갈 곳을 잃고 헤메이게 된다. 때론 분노하게되기도 하고, 심지어 떠돌이가 되어 유랑하기도 한다. 그런 국민을 붙잡아줄 그런 인물을 국민은-백성은 기대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이미 포기했으려나.
모든 역사는 후대가 판단한다. 지금의 상황도 후대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목마른 국민은 저자의 표현대로 '가시고기'같은 삶을 국민과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 누구인가를....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 도서출판 어울림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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