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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간이 들어가 있는 역사와 인간이 역사 서술에서 빠져버린 역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는 역사의 발전이니, 구조니, 제도니
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것, 즉 인간이 빠져버린 역사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통사로서의 역사만을 배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역사가 아닌 이야기로서의 역사, 생활사로서의 역사, 그리고 사람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사 전체를 생활사로 조망하는 작업을 하였고, 그 결과를 7권의 책으로 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저자는 인간과 자연, 가족과 혼인 그리고 사회와 신분을 다룬 세 권의 책을 몇 년 전에 출간하였고,
이번에 국가와 제도를 다룬 새로운 책 세 권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출간할
책은 외교와 이민족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처음 펴낸 세 권의 책 [이 땅에 태어나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말 타고 종 부리고]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던 지라, 이 책이 나오자마자 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다시 한번 사람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전에 읽었던 그 맛, 그 향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책에서 사람냄새가 나는 것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과 불편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이 책
[농사짓고 장사하고]는 저자가 국가와 제도를 다루는 세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으로, 전통시대 백성들의 신분을 분류한 사민(四民), 즉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농(農)과 상(商)을 다루고 있다. 전통시대에는 농업을 본업(本業)이라 하여 중히 여겼고, 수공업과
상업은 생업(生業) 다시 말해 말업(末業)이라 하여 낮추어 보았다. 그러나
생산의 기본이 된다고 하여 중히 여긴 농업은 말업에 비해 이득이 적고 힘은 힘대로 들었다. 농민의 고통이
여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 백성들 중 90퍼센트 이상이
농민이었으니, 그것은 곧 나라 전체의 고통이어야 했지만, 사대부는
이 고통에서 제외되었고, 그 몫은 오롯이 농민들에게 전가 되었다.
전통시대,
남부지방에서는 쌀이 주식이었지만, 산간지형이라 논이 없는 북쪽에서는 조나 수수가 주식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주식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들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농지가 필요했다. 따라서 농가의 으뜸은 농지였고,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소였다고 한다. 소는 한 마을의 농사를 담당했다. 소가 없는 경우 사람이 쟁기를
끄는데 보통 여덟 명이나 아홉 명이 필요했다고 하니, 농사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소는 기껏해야 한 마을에 두,세 마리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소 도살은 소나무 베는 것, 술
빚는 것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금지령에 해당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조선에서 제일 인기 있는 고기가 쇠고기였다고 하니 아이러니 하기만 하다.
전통시대 거래는 물물교환이었다. 수도에는 시전 이라 부르는 상설시장이 개설되었다. 국가에서 행랑을
지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임대하고 세금을 받는 관설시장 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전의 경계 밖에서는 무허가
상인들이 활동하였으니 이를 난전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 열리는 거래는 엄격히 규제하였다. 성종대에 흉년이 들자 전라도 지방에서 장문이라는 시장이 열렸으나, 조정에서는
이를 금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18세기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지방에서도 장시가 열리기 시작했다. 장시는 상설시장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마다 여는 정기시장이었고, 18세기 말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이후 5일장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전통시대에도 거래에 속임수나 매점매석이 있었으며, 장시가 서는 날이면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이는 상업에 대한 사대부들의 부정적 인식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거래수단으로는 삼베나 무명과 같은 옷감이나 곡물이 사용되었다.
주조화폐인 동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이고, 지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저화가 등장했지만, 실생활에서는 사용되지 못하다가, 17세기
후반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 비로소 화폐경제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과거를 보러 가거나, 여행할 때, 그 기간 동안 필요한 물품을 직접 가지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재정의 기본원칙은 양입위출(量入爲出)이었다. 즉, 수입을 헤아려 그 중 일부를 저축하고 나머지로 지출했다고 한다. 현재의
예산이 세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대비된다. 나라에는 보통 지출의 3년치에 해당되는 양이 비축되어, 흉년이나 전쟁들을 대비하였다고 하니
건전재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것도 조선중기로 넘어가면서 왕실의 지출이 늘어나고, 또 양란이후 전답의 황폐화, 사대부들의 수탈로 필요한 지출마저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재정의 기초가 되는 조세제도는 조용조(租庸調)를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조(租)는 토지를 대상으로 부과되는 세금이었고, 용(庸)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력부과 그리고 조(調)는 집을 대상으로 부과되는 공물제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조세행정과 형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사료에 나타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통시대의 삶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를 배워오면서 통사중심으로 배워왔다. 그러기에 외워야
할 것은 많았지만, 막상 우리네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왕조가 어떻게 변했고, 지배층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 땅에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책은 이야기 책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그렇다고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역사책들과 실록에서 찾아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네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생활사로써 바라보는 역사,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사람냄새가 풍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제도와 생활상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소개되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머리말에서 행한 민족사관에 대한 비판(?)과, 실증사관에 대한 옹호(?) –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 가 묘하게 엇물리면서 불편한 심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