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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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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아신경증’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현대 사회는 추구하는 방향은 세계화이다. 글로벌한 세상을 하나로 묶고 교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사회의 이해와 개인의 정체성 문제가 결부되어 이것이 옳은 방법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사회는 발전한다고 하지만 현대인들은 본인을 잃어가면서 점점 소진되어 간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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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아신경증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현대 사회는 추구하는 방향은 세계화이다. 글로벌한 세상을 하나로 묶고 교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사회의 이해와 개인의 정체성 문제가 결부되어 이것이 옳은 방법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사회는 발전한다고 하지만 현대인들은 본인을 잃어가면서 점점 소진되어 간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와 해답은 무엇일까? 소진 시대의 철학에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p.75

문화적 다양성을 습득하고 문화적 차이와 인류의 보편적 시민의식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끊임없이 동요하고 불안하게 삶을 재선택해야 하는 자아의 고난을 요구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세계화를 통해 이전 시대에 없었던 지적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다른 나라로 쉽게 여행을 갈 수 있고 외국에 가서야 느낄 수 있는 문화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변 국가에 의해 다양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모든 나라가 해당될 수 있을만큼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은 가까워졌다.

 

문화적 다양성은 커졌다. 세계화를 통해 문화적 거리감은 줄게 되고 전세계적 아젠다를 추구하게 된 반면 시민 개개인은 다양한 요소의 출현과 통제력을 갖지 못한 채 상실과 박탈에 따른 무력감도 발생하고 있다.

 


p.90~91

21세기 현대사회는 인간을 분주함부산함속에 몰아넣고 성과주의로 몰아세운다. 지표, 평가, 효율성, 순위, 생존, 구조조정 등의 용어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유럽의 경제적 존립을 좌우하는 언어가 되었다. (중략) 현대인은 분주하지만 활기 없고 조급해하고 허둥대며 불안 속에서 부유물처럼 살아간다. 존재의 무력감과 부적절함의 느낌은 생각 없이 허둥대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더욱 독촉하고 몰아세운다.

 

책은 현대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좀 더 주목했다. 현대인을 본인을 잃어간 채 어떤 의식 없이 살아가는 부유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기계 부속품을 비유하였다. 더 살기 좋아져야 하는 세상이 와야함에도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성과와 결과지상주의의 세상이 되었다. 점점 요구하는 것은 빨라지고 이를 맞춰나가야 할 현대인들은 본인의 무력감에 빠져들어갔다.

 

프로이트는 행성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중심이 되는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과정에서 영혼을 얻기 위해 키르케고르, 니체, 세네카는 고독의 힘을 믿었고 다른 방법으로 일상의 성찰, 내려 놓기, 생각 바꾸기, 심리적 조력자 집단 또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집단을 형성하고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제안한다.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은 삶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물리적 혹은 생물학적 종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과 더불어 진행되는 사건임을 시사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마지막이 아니라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이 제시하는 이유를 자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p.136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바탕이 되어야 하듯이, 인간이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산소가 풍부해야만 한다. 정신적 산소는 무한히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자가 생산해야 하는 인문학적 자원이며 영혼의 보살핌과 마음의 관리를 통해 더욱 풍부해지는 인간적 가치의 자원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삶을 지향해야 하고 정신적 산소라는 자원을 풍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뵈쉐마이어는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미 문제는 발생됐고 악화되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좀 더 지금의 문제를 진정 마주하고 해결하다보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워라벨(일과 삶이 균형있는 삶)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니체 또한 현대 문명의 불안정의 원인을 노동()’활동의 강조를 꼽았다. 경제적 가치 수단을 뛰어넘어 노동 과잉이 이뤄지는 은 바뀌어야 한다.

 

p.248

의미 있는 삶을 누리고,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자각하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북돋우고 그런 힘으로 스스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이미 과거부터 고민했지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바로 행복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고 다양한 연구와 해법이 도출 되었다. 정답은 애초에 없을 수도 있다.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마다 다르고 시간, 환경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각 조차 하지 않는 삶이 되어선 안 된다. 개인의 실존적 자아를 잃어버린 피로 사회, 불안 사회에서 개인이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으로 개선되길 바라본다.

 

+ 저자는 다양한 사상가의 이론을 다뤘지만 특히 니체를 많이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사상가 니체를 좋아하는데 니체와의 연결고리가 생겨 어렵지만 굉장히 기쁘게 읽은 책이었다


b*******o 2018.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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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소진 시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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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내가 초등학생 때, 포스터나 글짓기에서는 상상하며 그렸던 21세기의 모습은 기술과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하고, 기계화되어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시기를 상상해왔다. 그 시기에는 인간이 조금 더 노동에서 벗어나 쉼을 누리며, 부족함없는 평안함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그리고 그 상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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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내가 초등학생 때, 포스터나 글짓기에서는 상상하며 그렸던 21세기의 모습은 기술과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하고, 기계화되어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시기를 상상해왔다. 그 시기에는 인간이 조금 더 노동에서 벗어나 쉼을 누리며, 부족함없는 평안함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상하던 현대 사회가 되었다. 자본, 정보, 네트워크…등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때가 도달했으나 우리의 상상과 달리 사람들은 우리는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와 욕구를 증명해야하고, 스스로에게 성과를 강요하고 자기를 착취하며 만성 피로에 젖어 탈진하거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과 분노, 무기력이 만연한 이 시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금 한국 사회는 상당한 '분노'를 분출하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 때때로 나조차도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 어깨를 치고 가기만 해도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일 때가 있고,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사람을 폭행하기도 하는 기이한 사건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모두에게 내재된 분노를 지닌 채, 시한 폭탄처럼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낯설지 않은 물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당대 문명에 내재한 불안정의 원인을 ‘활동하는 자’, 즉 과도하게 일하며 부산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풍토로 적시했다.


엄청난 삶의 속도와 자기 성찰 결여, 과잉 활동, 피로 및 불안의 증대는 현대사회의 주요 특징이다. 이렇게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점차 무관심해지는 이러한 개인주의 경향을 그는 '자기 몰입'이라는 어휘로 표현한다.


이러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타인의 삶과 사회에 무관심해지는 것, 과잉 활동으로 피로와 불안 가운데 놓여있는 이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젊은 청년에게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자아 실현', '성공', '비전'이라고 하는 모호한 단어들로 삶의 목표를 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

"노력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


이러한 구호들을 통하여 세뇌된 우리는 하이데거식으로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향한 '닦달(몰아세움)'과 성과에 대한 강박으로 경쟁의 격화와 자기 생산성의 과열을 초래하고 있다. 또 인간은 성과적 자동 인간으로 자신을 태우며 피로와 존재의 소진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 또한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내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고자 애썼던 지난 날들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리고 나도 스스로를 소진시킨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이 시대의 고질병'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우울증'이나 무력감, 삶의 고난을 헤쳐나가기에 부적절하다는 느낌(부적절함) 또한 경험해보았고, 지금도 그 느낌 가운데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다. 분주하지만 활기없고 조급해하고 허둥대며 불안 속에서 부유물처럼 살아간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고,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내 안에 소진된 존재와 불안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누군가에게 최근에 꽤 많이 했었다. 이렇게 바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야하는데 이 삶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나요? 누군가 정답을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다.

- 세상에 '삶의 의미'같은 건 없어.

- 그런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어.

- 그런 생각할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해. 등등


삶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물음과 진실한 삶에 대한 물음 없이 허둥대며 살고 있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태도, 즉 '무정신성'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사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꽤 오래 고심했다.


나는 내가 번아웃을 경험하며, 삶의 방향을 잃어 오랜 시간 상담을 받았었다. 난 늘 물었다. 과연 이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까지도 충분히 고단했고, 앞으로도 고단할걸 아는데.


어떤 말을 해주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삶의 이유는 스스로 찾아야하는 것임으로 그 누구도 정답을 제시해줄 수 없을테니까.


아마도 그런 물음에 누구보다 갈급하게 답을 찾고 있었기에 이 책이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내가 왜 사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나의 삶이 타인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타인을 배려하는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물으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진실하게 이끌어나가려는 실존적 의지는 오토 랑크가 말하고 있듯이 삶의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행복,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니체는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삶(비타 콘템플라티바)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색은 '한가로운 삶'을 복원함으로 열리게 되는데, 한가로운 사람은 무위도식하며 게으르고 나태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조급함에 저항하고 영혼의 살림살이를 통해 성숙한 삶의 태도와 존재의 동력을 획득한 사람이다.


니체는 부산한 활동의 가치가 과대평가되는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태도는 '사색적 삶'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허약함이나 정신적 염증, 무기력, 분노, 공격성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첫째,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두는 능력. 삶의 시련, 고난, 고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부정적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고 이를 성숙한 의식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사고의 성찰뿐만 아니라 '일상의 성찰'이 필요하다. 매일 마음을 점검하고 다스리는 훈련으로 일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습관, 즉 자기 성찰의 습관이 필요하다.


셋째, 영혼의 훈련은 '내려놓음'의 훈련이기도 하다. 내게 중요한 것과 가치가 덜한 것을 구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 이러한 분별이 필요한 이유, 인생관과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내면을 돌보고, 약한 자에게 손을 내밀고, 조금씩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통해 모범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난 일들과 감정을 해석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삶을.


우리는 언제부터 방향을 잃었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는 회복할 수 있을까?


나에게 이 책이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너무나 듣고 싶었던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스스로를 닦달하며 몰아세우고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소진하고 지쳐있다면 권해주고싶다. 우리가 진정 살아야하는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고.



YES마니아 : 플래티넘 s****i 2018.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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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현대인의 자아신경증 치유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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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현대인의 자아신경증 치유는 가능한가   ​​블안의 치유와 소통의 사유, 자기긍정으로 보살펴라 ​​    현대사회는 성과 사회다. 이로써 피로 사회로 연결된다.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는 삶은 과잉 행동을 야기하고피로와 불안을 증대시킨다.이는 현대사회가 삶의 기속화에 따라 피로사회와 불안사회의 이중 결속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며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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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현대인의 자아신경증 치유는 가능한가
 

 


블안의 치유와 소통의 사유, 자기긍정으로 보살펴라 

 

 

 

 


현대사회는 성과 사회다. 이로써 피로 사회로 연결된다.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는 삶은 과잉 행동을 야기하고
피로와 불안을 증대시킨다.
이는 현대사회가 삶의 기속화에 따라
피로사회와 불안사회의 이중 결속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대가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모순에 빠진 상태임을 의미한다.
즉, 문명은 발전하되 우리는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철학박사 찰스 테일러는 현대인의 불안 원인으로
개인주의, 도구이성의 지배, 중앙집권화된 관료주의 정치를 꼽았다.

개인주의는 각자 자신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즉 자기 몰입에 빠져
세계와 삶에 대한 광범위한 시야를 상실하는 계기가 된다.
도구이성의 지배는 모든 것을 시장적 조건, 즉 소득-비용 효율성으로 평가하기에
건강한 삶의 목표가 상실됨을 의미한다.
위 두 가지는 정치에 영향을 미쳐
자아도취적 개인의 고립성은 중앙집권화된 관료주위 정치세계에서
개인의 무력화 및 공공 영역에서의 소외 등을 야기한다.




 

 

 

 



성과사회와 피로사회라는 이중적 특징을 지닌 현대사회는
자연스레 개인의 불안을 조장한다.
인간의 불행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현 세대의 특징적 불안을 꼽자면 공허감, 고독감, 불안이겠다.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의 공허감은 어떤 일을 수행할 만한 힘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방해하고
절망감이나 자학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고독감 역시 자의식과 삶의 좌표를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점인 불안은
인간의 정신적 힘과 실존적 불확실성에 영향을 미쳐
스스로를 성과적 자동인간으로 규정하고 닦달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든 증세의 치료를 위해 작가는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을 꺼내 삶에 대한 성찰을 주장한다.
'자기관계성의 위기'로 규정한 현대인의 문제를
외형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로써 해결하라고 권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고
삶을 진실성 있게 이끌어나감으로써
열린 정신과 소통할 것을 권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가 없는 책이다.
내가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좋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 수상하여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면,
건강한 정신으로 잘 살아가고 싶다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일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p********g 2018.0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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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 김정현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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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우리는 과연 건강한 정신을 가진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 소진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이 필요하다.성과 사회, 피로 사회, 불안 사회, 분노 사회, 위험 사회 등으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사회를'소진 시대'라 진단한 철학자 김정현이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수많은 문제와 그 원인, 해결책을 사유하여 그 궤적을 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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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우리는 과연 건강한 정신을 가진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피로와 불안 속에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 소진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성과 사회, 피로 사회, 불안 사회, 분노 사회, 위험 사회 등으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사회를
'소진 시대'라 진단한 철학자 김정현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수많은 문제와 그 원인, 해결책을 사유하여 그 궤적을 담았다.
소통과 치유의 철학,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꾸리기 위한 방법을 음미해보자.

 

 

 

 

 

 

 

김정현
니체 철학 연구자.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사회학, 종교학을 공부했다.
현재 원광대학교 철학과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니체의 몸살학≫, ≪니체 철학과 생명과 치유의 철학≫ 외 다수가 있다.

 

 

 

 

 

 

 

p********g 2018.0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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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성찰,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고민들 - 고독, 죽음, 행복에 대하여 [소진시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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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진(burnout)은 과도한 업무나 학업에 지쳐 자기 혐오감, 무기력증, 불만, 비관, 무관심 등이 극도로 커진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소진시대의 철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저자 김정현 교수는 오늘날 인간이 성과와 성공을 지향하며 일(노동)하는 존재로 전락하여 계속해서 소진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속도 경쟁과 유목적 이동
"내면의 성찰,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고민들 - 고독, 죽음, 행복에 대하여 [소진시대의 철학]" 내용보기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진(burnout)은 과도한 업무나 학업에 지쳐 자기 혐오감, 무기력증, 불만, 비관, 무관심 등이 극도로 커진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소진시대의 철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저자 김정현 교수는 오늘날 인간이 성과와 성공을 지향하며 일(노동)하는 존재로 전락하여 계속해서 소진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속도 경쟁과 유목적 이동의 자유로움을 누리는 대신 나르시시즘의 문화 속에서 삶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공격성과 분노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고 사색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고민하고, 수많은 문제점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연구, 발표한 글들을 모아 수정, 보완해서 엮었기에, 총3부로 나뉘어지는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1부에서는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지구촌 시대 읽기), 2부에서는 오늘날 무엇이 문제인가(지구촌 시대의 문제들)를 다루고 마지막 3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살림과 치유사상)를 다룬다.

 

1부에서는 프로이트를 인용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행성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도 또한 중심이 되는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개별적인 인간 역시 독자적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한다” 행성의 자전과 공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듯이, 인간 역시 자기 삶의 자전 운동을 하고 동시에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인류의 삶 주위를 공전하며 움직여간다. 우리는 자연 및 타인의 삶과 유의미하게 얽힌 세계라는 그물망 속에서 자신과 인간의 삶을 동시에 살아간다. p.52~53

 

프로이트의 이 말은 2부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삶의 과정에서 자전이란 고요 속에서 자기 내면과 만나는 활동에, 공전이란 인간의 사회적 삶에 참여하는 소통적 활동에 해당할 것이다. p.99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성찰이 중요함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부에서부터는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3부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직면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룬다.

 

저자는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함을 이야기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키르케고르, 니체와 같은 철학자는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자기를 찾는 조건을 고독에서 찾는다. 고독이란 홀로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즉 자기 몰입 상태에서 경험하는 비생산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이는 세계와 단절되어 홀로 있는 자의 외로움이라는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과 대면하며 성장하거나 성숙할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이다. 고독은 자기 삶의 텍스트와 만나는 존재의 생산적 용기이다.....분주함(바쁨)이나 부산함 속에서 과잉 활동에 내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과 대면하는 이러한 내면적 성찰이다 p.99~100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키르케고르,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이 고독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p.102

 

사색의 삶은 한가롭게 걸을 때 생겨날 수 있다. 한가롭게 걷는 사람은 천천히 곱씹으면서 책의 공간을 걷고, 성찰하는 시선으로 세계를 두루 살피며 타자와의 관계 공간을 산보하고, 머뭇거리고 멈추어 서고 다시 잰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절제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의 무게와 리듬을 지닌다. 인문학적 사유는 한가로움을 복원할 때 이루어지며, 성찰적·사색적 삶은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삶의 공간이 마련될 때 건강한 자신을 찾는 일로 연결된다. p127~128

 

고독을 통한 내면의 성찰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과 만나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데는 성숙한 정신세계가 필요하다. 미성숙하고 자기 존재를 변화시킬 용기가 부족하고 소통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다른 사람 탓을 하게 된다......소통이란 자신과 만나는 행위를 통해 성숙해진 자아가 타인과 공동체의 가치, 인간적 가치를 함께 나누는 연대적 삶의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과 생산적인 만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p.103

 

자아의 소통은 나를 고집하거나 나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세계와 타자를 향해 나를 열어놓는 지향성에서 성립된다. p.105

 

결국 저자는 진실한 자기 만남은 사회관계에서 참된 인간적 만남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부버는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한다. 너와 마주하면서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은 나의 선택인 동시에 너로부터 받는 동시적 선택이며 능동인 동시에 수동의 한 행위이다. 만남이란 능동과 수동이 하나로 되는 행위이며,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찾는 행위이다. p.107

 

한편 저자는 삶의 깊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삶의 깊이를 알 수 없고,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를 성찰하지 못하면 결코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 죽음의 성찰은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p.152

 

우리는 자신이 언젠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삶의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다. p.158

 

삶이란 죽음에 대한 자각적 체험, 즉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영적 역량에서 성숙된다. 깨어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과 자신의 유한성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p.160

 

밤이 깊을수록 별들이 선명하게 반짝이듯 삶의 의미와 가치 역시 죽음이 있는 곳에서, 죽음의 테두리 안에서 더욱 극명하게 부각될 수 있다. p.161

 

스티브 잡스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라고 말했듯 죽음에 대한 이해는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큰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을 줍니다. 모든 외형적 기대들, 각종 자만심, 좌절이나 실패로 인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게 됩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어떤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사 中에서)

 

저자는 오늘날 타인의 죽음이 사회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의미없는 사건이 된 것을 지적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죽음이란 많은 경우 평생 한번 본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고인의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의례에 불과하다. 고인을 추모하는 일보다 문상을 통해 유족과 맺은 사회관계를 확인하고 유지하려는 세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p.148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인간관계를 유지했으며, 어떻게 가정을 꾸렸는지, 또 어떻게 죽음의 과정에 이르렀으며, 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형식적인 문상을 한다. 이후 장례식장은 곧 평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소식을 전하는 사회적 사교나 담소의 장소가 된다. 죽음의 장소에서 죽은 자는 실종되고 살아 있는 자의 일상적 관심사가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p.151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에 고인이 쓰던 유품을 전시하거나 고인에 대한 자료 혹은 영상을 편집해 접대실에서 틀며 문상객들이 고인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최준식의 제안도 한국의 장례 문화를 개선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162

 

영화에서 종종 보게 되는 서양의 장례식에서는 고인을 다양한 방법으로 추모하고, 고인과의 추억들을 되새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일상에서 대면하는 죽음을 무관심하게 삶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진지하게 수용할 때 삶과 죽음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삶을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공부는 곧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가기 위한 생명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다.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탐욕과 집착, 소유욕에서 벗어나 일상을 의미 있고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의미 없이 소멸돼버리는 작은 죽음에 이르는 삶이 아니라 삶을 의미 있게 꾸려나가며 성숙하게 완성하는 큰 죽음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p.163

 

소진시대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나갈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파스칼은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자신의 거주지에 있지 않는데서 생긴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거주해야 할 거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거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면 혹은 들어가고 나갈 자리와 때를 구분하지 못하면 인간의 삶은 불행해진다. 자신이 거주할 장소나 할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잘 알 필요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묻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긍정하고, ‘가질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되며, 버릴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 이리하여 자신에 대한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집착이 없어지고 삶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된다. 마음이 열리면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다시 깨어나 삶을 긍정하는 에너지가 활성화되며 세계의 긍정적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p.206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세계관이 요청된다. p.215

 

행복이란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삶을 철저히 살아온 사람의 몫이다. 세속적 의미의 가난이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함, 진지함, 깨어 있음, 삶을 긍정하려는 노력, 사랑과 헌신, 감사의 가치를 인지하는 능력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가치가 다름 아닌 행복인 것이다. p.216

 

행복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 몸의 편안함으로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니체에게 행복은 “충만한 감정과 그것에 수반되는 자부심”으로 특징지어진다. 행복이란 산란기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하(溯河) 특성을 지닌 연어처럼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는 힘의 느낌, 살아 있다는 생명감의 정점에서 오는 존재의 충만감과 자기 존재를 자각함으로써 얻는 자부심과 같은 감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p.225

 

결국 행복이란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능동적인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고뇌와 극복 과정이라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인간은 실존의 파도가 해안까지 밀어 올리는 진귀한 조개를 얻을 수 있다. 조개에 들어온 이물질에 대응하기 위해 생성된 분비물의 결정체가 진주가 되듯이 고통과 불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넘어설 때 삶의 의미가 분비되고 영롱한 현존재의 의미체, 다시 말해 삶의 진주가 되는 것이다. p.232

 

행복이란 세속적 의미의 가난이나 실패 혹은 가치 평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성실함, 진지함, 깨어 있음, 삶에 대한 긍정, 사랑과 감사의 가치를 인지하는 인생의 가치인 것이다. 행복이란 고난과 시련, 어려움과 저항을 극복해나가며 자신을 표현하는 능동적 활동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니체는 이를 위해 일상의 관리술 뿐만 아니라 망각과 조형력, 충일한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을 제시한다. p.247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1부는 일단 건너 뛰고 2부, 3부를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해드린다.

 

1부는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라는 제목답게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어디에 와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루는데, 철학적 배경지식이 별로 없다면 읽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목적합리성 원리에 의한 근대의 합리화 과정에 관한 분석,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die instrumentelle Vernunft)' 비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선진 산업사회에서의 기술제국주의와 ’일차원적 사유(das eindimensionale Denken)'에 대한 비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인간 자아(Ich)와 (사물적 삼인칭의) ‘그것(Es)'의 관계라는 실존적 관계 양식에 대한 논의 등은 서양 근대에 있어서 이성의 과잉과 변형에 대한 니체적 비판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데리다의 이성중심주의에 관한 존재론적 논의를 선취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논의는 근대정신의 설계도에 따라 지어진 근대 문명이라는 건축물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와 새로 그려야 할 현대정신이 나아갈 바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p.37

 

예로 든 위 부분이 쉽게 이해가 되시는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다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어 멍한 기분이었다.

 

나처럼 철학적 지식이 일천하신 분은 2부부터 읽으시는게 정신적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일 듯 하다.

 

읽기에 만만치 않은 철학책이지만 이 책은 소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준다.

 

우리의 삶은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 성찰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y*********7 2018.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진 시대의 철학 - 위험이 있는 곳에, 그러나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
"소진 시대의 철학 - 위험이 있는 곳에, 그러나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 내용보기
요즘은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나 성격 급하기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속도는 생명이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다 보니 그래도 어쨋든 고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IT 강국이라는 보기 좋은 명함을 가지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으나 선진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가려진 이면의 문제점들은 허다하다.
"소진 시대의 철학 - 위험이 있는 곳에, 그러나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 내용보기

 

 

요즘은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나 성격 급하기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속도는 생명이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다 보니 그래도 어쨋든 고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IT 강국이라는 보기 좋은 명함을 가지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으나 선진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가려진 이면의 문제점들은 허다하다. ‘201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8개국의 나라의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5.984점을 얻어 4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와 함께 끊임 없이 대두되는 높은 자살률이나 분노범죄는 분명 우리 사회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 옛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를 전 세계와 연결해 주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기술혁신은 우리에게 시공간의 한계를 없애주며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가공하여 교환하는 지식 소비의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렇기에 이젠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도 구글맵으로 손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고 고민 없이 그곳의 맛집을 서칭하여 실패 없는 식사를 하고 빈방 있는지 여기저기 다닐 필요 없이 어플로 간단하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외에도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그렇게 발달되어 있기에 우린 그 어느 시절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보 매체가 발달하며 우리는 점점 가상의 공간에 집착하게 되고 실제 외부의 인간관계의 단절은 공허함을 낳고 그 공허함을 물질적으로 채우고 보상 받으려 하기에 진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오감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시대적 물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대적인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를 내는 노동 활동을 해야만 했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 혹은 자기계발이라는 명목 아래 끊임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자신의 존재를 소진하며 과도한 피로에 빠져 있는 ‘불안 사회’,’피로 사회’,’소진 사회’로 표현되고 있다. 삶이 힘들고 불안한 사람들은 돈이나 소유물을 통해 삶의 안정과 존재를 확인하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게 된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끝없이 노동하고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과도한 자기 몰입은 가족의 해체와 인간관계의 소멸을 불러 일으키며 고독하고 고립된 생활을 부추기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 즉 집이나 차, 명품등이 우리를 나타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물건들이 나를 품격 있는 명품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 끝엔 나는 누구이고 내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가 효율성, 경제성, 실용성의 잣대로 배제해 왔던 철학,문학,역사등의 인문학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실용성과 경제적 효과, 취업, 창업만을 강조하면 당장에는 작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삶을 깊이 성찰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기에,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존재의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문학적 ‘정신적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건강한 사람이다. - 뵈쉐마이어



우리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욕망을 과잉 생산하고 지식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가운데 인간적 삶의 위기 문제를 겪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상실하고 욕망만을 채워가는 현대인은 자아를 상실한 ‘자본주의적 욕망 기계’가 되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과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회복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진실하게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는 삶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신경증이나 존재의 불안에서 탈피하려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삶을 창조해나가려는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도구화되고 사물화 된 인간이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선 영혼이 깨어 있도록 새로운 사고 습관을 들이는 정신 근육을 단련하고 일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의 습관이 필요하며 우리 삶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익숙한 사고와 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삶이나 삶의 사태를 바라보는 영혼의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성찰과 깨달음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주변 세계에서 떼어지고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상실하며 고독 속에 놓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점점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란 우리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탐욕과 집착, 소유욕에서 벗어나 일상을 의미 있고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나 대지의 문제를 우리의 삶을 위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안락한 삶의 풍요를 위해 화학 물질은 더 많이 사용되고 있고, 오염 물질의 독성은 대기,토양,강,바다 등 삶의 터전인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몸에 그대로 노출되고 축적되고 있다. 대지가 죽으면 인간의 삶도 죽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대지가 우리 삶의 터전이며 몸도 우주 생명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생명 자각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행복을 얻기 위한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행복은 우연히 얻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마음의 관리나 훈련, 즉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시련을 극복할 때의 느낌, 즉 내가 지금 의미 있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행복이 단순히 어려움이 없고 평안한 안락 상태 혹은 단순한 욕구의 충족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 지고 자신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타인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 



행복은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보편적 ‘명사’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올 때 비로소 의미가 구체화되는 ‘동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떤 문제든 돈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나 데이터화하여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방법으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바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대학만해도 순수문학은 어느샌가 취업이 되지 않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비인기 학과라는 오명으로 축소되거나 없어지기까지 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문학에 대해 등한시하고 외면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사람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피로와 소진의 시대에 찌들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과 물질적 보상을 준다한들 그들의 삶과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철학적인 접근법은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삶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적어도 내가 어떤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며 인간으로서 버리지 말아야 할 도덕적 가치나 지구촌이라는 말에 걸맞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세계 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올바른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혼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라면 분명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의미있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행성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중심이 되는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 프로이트

m*********9 2018.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를 소진하는 시대
"나를 소진하는 시대" 내용보기
세상에 나온지 21년 밖에 되지 않았다. 100세시대라고 하니 이제 1/5를 지나온거라고 치자. 내 인생의 0.2 만큼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나를 가꾸고, 나를 계발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는 모두가 쳇바퀴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뭐, 서점에는 자기계발서가 가득하고 이제는 자기'계발'도 아닌 자기'경영'으로 나아가 더 한 차원 고품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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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온지 21년 밖에 되지 않았다. 100세시대라고 하니 이제 1/5를 지나온거라고 치자. 내 인생의 0.2 만큼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나를 가꾸고, 나를 계발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는 모두가 쳇바퀴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뭐, 서점에는 자기계발서가 가득하고 이제는 자기'계발'도 아닌 자기'경영'으로 나아가 더 한 차원 고품격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 같더라. 서점에 가끔 가서 신간과 베스트셀러 칸을 쭉 훑다보면 그 칸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피곤함이 몇 겹은 쌓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고, 쉴 때 제대로 쉬어서도 안되고, 항상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알려고 하고, 모르는게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크게는 죄책감을 느끼는 삶.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아신경증'의 흔한 증상이다. 저자는 이에 '행복 테라피'를 주장했지만 나는 이 상황 자체가 그냥 말 그대로 '답이 없다'고 느낀다. 현대인에게는 '행복 테라피' 조차도 자본으로 환산되고 일과 연관된 무언가로 환산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행복 테라피'가 현대인의 필수 조건이 된다면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서 서열화 시키고 그 안에서 등급을 나눌 사람들이다.


 원래 사람들이 그렇다.


 소진하는 것이 나쁘다, 또는 잘못되었다, 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나를 잃는 자아신경증이 당연히 좋지도 않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활동하는 자, 즉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활동하는 자'와 '부산한 자'가 높이 평가받는 것이 또 뭐가 나쁘냐? 고 묻는다면 거기엔 또 할 말이 없더라. 어떤 사람이 부산스럽게 활동하는 이유는 분명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이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것일 것. 그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저자는 우리가 걷는 이 길을 '문명의 미로'라고 칭하고 부디 이 길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거나, 추락하거나, 외톨이로 사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길 바란다니. 미로는 원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렵게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누군가 만든 어려운 길이다. '문명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는 것도 현대인들에게는 '수행과제(task)'가 될 것이다. 


 그러니 치유의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도 이 미로를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치유'는 병이나 상처가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 미로를 미궁이 아닌 모두가 똑같이 걷는 하나의 길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 길에서 길을 잠시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속에서 추락하는 경험을 겪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도 한번 쯤 겪어본 경험이다. 


 그 미로 속에서 내가 나를 소진(消盡)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철학이다.


s******0 2018.0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