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톨릭과 개신교인을 합할 경우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되었네요. 조선시대 말 반 강제로 개항을 하게 되면서부터 서양의 선교사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선교를 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종교는 눈에 보이는게 아니라 추상적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신유박해, 경인박해 등 수많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선언문을 쓴 33명의 민족대표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네요. 성경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고전들도 많이 번역되었는데 그중에 '천로역정' 은 한 남자가 성경을 읽고 갖은 유혹과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여정을 쓴 책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았거나 제목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로역정 :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 은 부제를 보는 것만으로도 한번 읽어보고 싶게 하네요. 외국인 선교사들과 조선인 사이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기독교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때는 그림을 보여주는게 이해하기 편한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천로역정은 제임스 선교사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하였고, 화가인 김준근에게 부탁해 삽화를 그리도록 했다고 하네요. 표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서양인이 아니라 조선인이 갓을 쓰고 등에는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정자에서 쉬거나 두루마리를 입는다고 하는 등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단어들로 대체되어 있네요. 중간중간 나오는 삽화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민화를 보는 것처럼 산과 나무 등을 볼 수 있는데, 그림만 훑어보면서 간단히 설명을 들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삽화는 당시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은 길을 떠나는 동안 위선, 욕망, 나태, 거만 등 많은 장애물을 만나지만 믿음, 선의, 소망 등의 도움을 얻어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모든 감정들이 의인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모두 우리의 내면에 있을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유혹에 빠지지 않기가 쉽지 않지만 만약 이겨낸다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교훈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네요. 전에 한번 읽어보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조선시대 삽화와 함께 보니 색다르게 느껴지네요. 당시 이 책으로 기독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번역도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1907년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밀 결사대는 거의 대부분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조선 후기 신유박해와 병인박해가 있었고,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음을 당한 사실은 익히 알아고 있습니다. 그 때 당시 외국인 선교사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이 있었다고 역사속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선교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그 때의 선교활동을 엿 볼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며,기독교 고전으로 유명한 존 번연의 천로 역경(톈로 역경) 이 번역되어서 출간되어서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
|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는 그 <천로역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천로역정 : 텬로력뎡>은 더욱 특별함이 숨어 있다. 바로 조선시대 화가인 기산 김준근이 그린 삽도가 42점 실려 있다는 것. 중간중간에 장면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삽도를 볼 때마다 감탄을 했다. 이게 진정 조선시대에 그려진 게 맞는가. |
|
천로역정 그 위대한 발견, 저자의 변명으로 시작되는 서두에서 작가가 이 글을 쓰기 전에 마치 권면하듯 ...앞으로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쓸테니까 읽으려거든 읽고 아니면 읽지 않아도 좋으니 내 진심은 이것이요 라며 오히려 내용의 궁금증을 더하도록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흥미진진한 서두를 읽어내려가며 다시 한번 내 손에 놓인'' 천로역정,,하드커버에 얌전하게 그려진 삽화들이 매우 인상적이고 귀한 문서를 손에 받은 것만 같은 설레임을 안겨 준 기독교 고전의 대 서사시 같은 천로역정 그 말투며 그 대화체하며 삽화된 그림과 참 잘 어울려서 마치 사극 한편을 세밀하게 만든 영화 같아서 읽는내내 그 대본의 문장의 결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듯해 생동감있었다 이를테면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의 이름들을 그 캐릭터에 대표명사로 붙여 고집쟁이씨,유순씨,혹은 허례와 위선 수다쟁이 아첨 시기 사심 불신 무지 허영의 등장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덮치는 많은 내면의 소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대화체가 많다. 그때마다 크리스천 주인공은 지혜롭게 믿음을 선택하고 또는 계속적인 전도자의 도움, 해석자, 만나는 모든 분별,경건,자애를 통한 분별력으로 신중한 선택으로 이끈다. 크리스천은 떄때로 어려움을 만나지만 많은 순간에 하나님에 의해 도움을 받아가며 그 여정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는 가족마저 버리고 떠 날 수 있었던 이땅에서의 쾌락이 아닌 영원한 소망을 향해 멸망해 버리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없음이 계속적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선택을 할때 크리스천의 여정에 있어 세속에 대한 미련없음을 볼때에 나의 신앙도 점검이 되는 순간 순간들이었다. 자칫 그 유혹에 빠지는 날에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그 여정을 뒤 돌아서 다시 멀리 멀리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겪는 주인공을 통해 얼마나 순례의 길에 있어 모든 적은 바로 내 안의 불신과 다투는 내면의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그 순례의 길을 갈 때 비로서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근본적인 결함과 실제적인 결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라 고백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그 의로움의 빛을 발견할 수 없으며 내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오직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리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서 고백하는 그 진리를 결코 맛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계시 없이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 할 수도 알수도 없으니 또한 그 믿음과 소망조차도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면 우리는 다다를 수 없으니 겸손하게 주만 바라보고 나아갈때 내 안에는 전혀 없는 하나님의 의를 통해 우리의 모든 추악함을 바로 볼 떄 비로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무지에게 권면하고 있다. 무지여 어리석음을 버리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선량한 무언가가 있어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알량한 자존심이나 자신에게 뭐라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는 일찍이 버리고 오직 예수님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라고 그렇지 않고 자신을 보는 순간 길을 잃어버리게 될꺼라고 깜깜한 어둠속에 갇혀 버릴 것이라고 천로역정은 크리스천을 통해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다. 두려움을 가지고 조금 더 깊은 죄의식을 가지라고 그 두려움은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게 하며 그의 말씀과 그의 길을 열심으로 지키게 하고, 거기서 벗어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일을 못하게 막는 다고 이야기 하며 우리 시대에 지금의 교회에게 고전을 통해 어쩌면 죄로부터 사면 칭의의 결과에 따른 그 약속에 따른 감사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는 자녀가 결코 그 아비를 향해 계속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랑받는 자녀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여러가지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복음을 들었을 때 자꾸만 방종으로 이끌려 가는 것은 사랑받게 된 주체가 무엇으로부터 인지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주 계속적으로 우리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하며 더욱 찬양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임을 다시한 번 각성하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경건서적은 언제나 옳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고 복음의 진실성과 적절성을 내 삶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고전을 통한 기독교 문서 사역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찾고 읽는자가 많아지길 소망해 본다. |
|
언젠가는 꼭 한 번 읽으려고 벼르는 책이 있다. 살아가면서 그 책을 읽게 되기도 하고 여전히 언젠가는 읽을 책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천로역정』도 언젠가 한 번 읽으려고 생각하던 책 중 한 권이었는데,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을지 마땅치 않아서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 삽화 수록 에디션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 책으로 선택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CH북스에서 나온『천로역정』을 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기독교의 고전을 접해보는 시간을 보낸다. ![]() ![]() "세상의 황폐한 광야 지대를 두루 다니다가 어떤 곳에 이르니 거기에는 굴이 있었다. 나는 그 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낸『천로역정』은 영국 청교도 문학을 대표하는 존 번연(1628-1688)의 우의소설로 1678년에 초판이 나왔다.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성경을 읽고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서)
이 책의 저자는 존 번연. 1628년 영국 베드퍼드의 옐스토우에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649년 혼수로 아서 덴트의『보통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과 루이스 베일리의『경건의 실천』을 가져온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 그는 이 경건서적들과 아내의 영향으로 회심하였고, 1653년 베드퍼드에 있는 기퍼드 목사의 독립파 교회에 가입한 후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660년 찰스 2세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설교가 금지됐었는데, 번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설교한 죄로 체포되어 12년간의 감옥 생활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천로역정』과『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도 이때 집필한 것이다. 그림은 김준근. 호 기산. 정확한 생몰연대나 경력은 알려지지 않았따. 구한말 풍속화가로 188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원산, 부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외국인에게 조선인의 생활과 문화를 묘사한 그림을 대량 제작해 수출화로 판매하였다. 한국사 최초로 그림을 수출하였고,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텬로력뎡』이 우리말로 처음 옮겨진 것은 1895년도에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이 부인 해리엇과 이창직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서양소설이기도 하다고. 이 책을 통해 개화기 번역문학의 효시를 접해본다. 여기에는 기산 김준근이 그린 삽도도 42점이 실려 있는데, 2017년 5월 29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685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옛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표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천로역정: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은 현대한글로 번역된 천로역정 1부의 이야기와 기산 김준근 화백이 그린『텬로력뎡』의 삽도 42점을 수록하여 출간한 것이다. 독자들에게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텬로력뎡』의 초기 모습을 일부라도 보여드리기 위함이다. 조선시대 화풍으로 그려진 삽도들과 그것들에 대한 해설, 그리고 이야기 본문에 대한 해설은 독자들에게 많은 유익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책속에서) ![]() ![]() 여느 고전 작품들과 같이『천로역정』도 초시간적인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는 다른 어떤 고찰을 훨씬 초월하는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안목을 체험하게 된다. 각 영혼의 가치에 대한 강조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삶에 대한 강력한 표현, 그리고 지금 현재 그것이 주는 의미 등을 통해, 이 꿈은 핵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완전히 적용되는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런 외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331쪽) 이 책을 통해 천로역정을 처음으로 접했다.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이라는 점이 장점이고,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또다시 읽는다면 그때의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한 번만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닌 책이기에 책장에 꽂아두고 또 읽을 기회를 만들어나가야겠다.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사라지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책은 어떤 부분에서 가치를 지닌 것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 책도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한 번 접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이번이 그 기회가 되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책이니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또한 이 책이 종교도서이기는 하지만 종교여부와 상관없이 평생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천로역정은 기독교, 그
중에서도 프로테스탄트 청교도들의 고전입니다.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 설파, 전개되었는지 물어 보면
대답 못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고전은 유구한 시대의 시련을 이겨 내고 그 자리에 오른 텍스트라서, 따분하고 지루하겠다는 막연한,
근거 없는 선입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꽤나 흥미진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의인화와 풍유를 적절히 섞어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이 책을
읽어 보면, 의외로 옛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한 발상과 소재가 많아서 오히려 우리들 현대의 독자들이 놀라게 됩니다. |
|
사실 이 작품은 오래 전에 한 번 읽은 적이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읽게되는 작품아닐까? 세상에 책이 하도 많아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번 이상 읽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된 것은 겉표지에도 나와 있지만 조선시대 삽화가 무려 42점이나 수록되어 있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며,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님이 당시 우리말로 번역된『텬로력뎡』을 읽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 냈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사실 난 이 시기가 궁금하다. 그것은 언젠가 우연히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고 난 후부터였는데, 손양원 목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순교할 수 있는 밑바탕엔 바로 이 평양 대부흥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 대부흥의 밑바탕엔 이 책의 영향이 있었다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땐 이런 배경 없이 읽었는데 배경을 모르고 읽을 때와 배경을 알고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를테니 감흥도 남다르지 않을까?
장정도 최대한 옛날 조선시대 책 분위기가 나게 꾸몄다. 옛날 문자가 발달되기 전에는 '텬로력뎡'이라 썼다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된 것은 1895년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이 부인 해리엇(E. G. Harriet)이 이창직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서양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초의 번역 소설이란 말은 나도 오래 전에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가 온갖 어려움과 유혹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마침내 천국에 이른다는 단순해 보이는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면이나 이야기 흐름속에 성경 말씀을 정말도 꿰었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도대체 성경을 몇 번 읽으면 이런 서사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그 믿음을 일생 동안 믿음을 지켜 나간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중간에 믿음에 대한 회의와 위기가 오기도 하고, 그래서 믿음의 길을 떠나기도 하고 떠났다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잘 믿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고, 그 반대로 살아 있을 땐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다 죽는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이를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이중 가장 좋은 건 세상에서 해 볼 거 다해 보고 마지막에 예수님 믿고 턱걸이로 천국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고. 그만큼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믿음은 마라톤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다. 더구나 100세 시대다. 옛날엔 신앙 하나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고 핍박도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앙 말고도 위로 받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궁구진하게 많아졌다. 또한 온갖 이단 사설도 세분화되고 조직적이 되었다. 또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교회안에서도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신앙의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격려 받는다는 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신앙을 가져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 천로역정은 시대와 상관없이 오늘 날에도 신앙인이라면 성경과 함께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책에 나온 기산 김준근의 그림을 처음에 보면 김홍도를 연상케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풍속화가였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다보면 중국의 느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으로 봐 기산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텬로력뎡>은「천로역정(합질)」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5월 29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68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어 보인다. |
|
저는 이제 곧 반백년의 세월을 살아가게 됩니다. 제가 이런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변화하지 않은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가지고 태어나는 그래서 죽을때까지 변함이 없는 성질이고요. 이건 변화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성격은 바뀔 수 있지만 성질은 바뀌지 않는 다네요. 그리고 두 번째는 아마 '기독교인' 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평창올림픽 때문에 방한한 미국의 부통령인 펜시처럼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렇다고 펜시처럼 아집이 가득한 보수 꼴통 기독교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보수 꼴통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부터 번역되어서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읽었고 또는 들어는 보았을 책 '천로역정'에 대하여 오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천로역정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기에 따로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듯하지만 간단하게 정말 간단하게 이야기를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한 사람(크리스천)이 성경을 읽고 멸망의 도시를 벗어나 많은 역경과 유혹들을 이겨내면서 시온성(하나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리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인(크리스천)이 걸어가는 여정에 위선,욕망,나태,거만등의 장애물을 만나고 그 장애물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소망,선의 등의로 헤쳐나가서 종국에는 시온성(하나님나라)에 도착한다는 내용입니다. 우화적으로 그리다 보니 각각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의인화가 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참 오래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기독교인들도 아니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어떤 푯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읽어 보면 절대 후회를 하지 않을 그런 책입니다. 특별히 이번 책에서는 책에 내용 보다는 책의 겉모습에 또한 책안에 있는 삽화에 좀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에 부제로 달려있는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 이라는 말처럼 책안에 그려진 삽화가 모두 다른 번역본에는 외국인의 모습으로 그려진것과는 전혀 다르게 조선시대에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삽화로 인하여 이 책이 주려고 하는 이야기에 우리 정서를 조금 더 담아내고 있는듯한 생각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모습도 소장하기에 참 좋은 책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표지는 하드커버로 옛날에 한지로 만든 책의 겉모습을 보는 듯한 색감을 가지고 있어서 책꽃이에 책을 전시하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참 가지고 싶은 책입니다. 한가지 약간의 흠이라면 내용에 글이 약간은 작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은 지금보다는 글자 포인트가 커도 부담이 없을듯합니다. 물론 편집을 하시는 분들이 이쁘게 그리고 가독성도 높여서 편집을 하셨겠지만 순전히 반백년을 살고있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조금 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무리를 하면 이 책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좋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혹여 들어는 보았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꼭 추천을 드리고 싶으며 이 책을 소장해서 아들에게 또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은 분들도 특별한 삽화가 들어간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같이 물려주시면 참으로 좋을듯합니다. 참고로 저는 지금 초4학년인 아들에게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제가 느낀 점을 적어서 전해주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참 많이 상세하게요. 지금은 글로된 책보다는 만화로 된 책을 더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
|
근대의 첫 번역소설
이책을 처음 접한것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였다. 사실 카톨릭신자로써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 이라기에 더욱더 보고싶어졌던 것 같다.
나는 이 세상의 광야를 걸어 다니다가 어느 동굴에 이르게 되었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자게 되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사람이 허름한 옷을 입고 자기 집을 등지고 섰는데,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등에는 큰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펴서 그것을 읽으면서 울었고 무서워하였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슬픈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 어렵다(?)였다. 주인공 크리스찬의 경우도 전도사를 만나 앞으로 나아가고...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온전한 말씀에 따라 행동하며, 선함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이 도서에 삽화가 참 좋았단 생각이다. 그리고 고전답게 참 착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용에 군더더기 없이 술술 잘 넘어가는 점도 그렇고, 다 보고나니 왠지모를 뿌듯함(?)으로 영성이 풍만해진 느낌^^;; 편견없이 읽어보기에 너무나 좋았던 도서를 추천한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
|
이 책의 소설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은 17세기 작가 존 번연이
지은 소설로 우화(allegory)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느날 성경책을 읽고 세상
멸망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좁은 문을 통해 빛나는 성(천국)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우화 소설의 대표작답게 수많은 추상명사가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나태, 천박, 거만, 위선, 등등. 또다른
특이한 점은, 크리스천이 순례 여정 속에서 만나 싸우게 되는 악마(바알세불, 아볼루온)를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는 갑옷과 무기가 성서에 등장하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인 존 번연이 청교도라서 청교도적인 사상과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면, 칼빈주의에
기반한 금욕적인 생활 태도와 경건한 생활 자세 등은 [믿음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근면, 자각, 겸손 등의 생활 자세는 [무지와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헛된 확신’에
대한 비판과 끊임없는 성찰과 확인은 [소망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죄를 뉘우치고
생활 개선을 시도하면서 신앙 고백을 하고 기도에 의한 계시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되는 진정한 청교도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앙 생활의 일련의
과정이 [소망과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 무지와 크리스천 사이의
대화]에서 기술되고 있다. 17세기 후반 시점에서 종교개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 소설 중에 나오는 교황과 카톨릭 교회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비판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한 작가가 청교도 입장에서 전통적인 카톨릭교도나 비기독교신자와의
사이에서 논쟁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이다: [사심씨, 세상 욕심씨, 돈 사랑씨, 구두쇠
씨 사이의 대화]에서 목사와 상인의 태도를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에서 묘사함으로써 청교도적인 교리와 대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광범위한 성경 구절의 인용은 작가가 청교도로서
이해하는 성경 교리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서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책만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1895년 최초 한글 번역본 [천로역정]에 수록된 조선화가 김준근의 작품 42점의 삽도를 그대로 싣고 있다는 점이다. 박효은 교수의 지적대로 19세기말에 활동한 조선 풍속 화가가 이해한 기독교, 특히 청교도의 교리의 뜻을 살펴볼 수 있고 서양 미술의 양식을 참고하여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해낸 표현 양식의 대비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역사적 그리고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천국의 모습은 동양의 신선 사상에서 나오는 신선들의 세계로 묘사한다거나 크리스천이 여러 세속적인 관념들에 모욕과 조롱을 당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된 인물의 등장으로 그림을 표현한 것은, 교리에 대한 이해보다는 서양 삽화의 모방에 충실한 모습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천사를 신선이나 선녀로 묘사한다든지, 원전 속의 이야기와 서양 삽화 속의 등장 인물을 반드시 일치시키지 않았으며, 서양 삽화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이외의 일체의 배경은 생략한다든지, 서양 삽화에 사용된 명암기법이나 원근기법을 무시하고 단순화한다든지 하는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