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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명연설만한 것도 없을 듯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내뱉는 표정, 손짓에서 그 사람의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시절 우리의 교장 선생님들은 왜 그리도 지루한 연설로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었던지, 저러다가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적이 꽤 여러 번이다. 연설 못지 않은 파급효과를 지녔으면, 아니, 어쩌면 연설보다도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포스터다. 며칠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 각 선본은 자신이 최적의 인물임을 드러내고자 안간힘을 썼는데, 포스터도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당시 두 명의 서울시장 후보자는 동일한 문구를 포스터에 삽입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들은 낙선함으로써 그들이 외쳤던 구호, “바꾸자 서울”이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선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여기 오랜 시간동안 곳곳에서 사용된 포스터를 엮어 만든 책 한 권이 있다. 저자인 조시 맥피는 지난 20년 동안 ‘민중의 역사를 기억하라’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책에는 3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10개국 이상 출신의 작가와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포스터가 수록됐다. 이를 받아들이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우선 이 책을 받아들임에 있어 중요한 건 관점이지 싶다. 종종 사용되곤 하는 ‘민중’이라는 단어에 우리나라의 적잖은 사람들은 반감을 표현한다. 아마도 우리의 적대적 반쪽이 택한 체제 탓이 클 것이다. 그들이 품은 거부감은 단지 단어에만 국한되지 아니한다. 그들 중 일부는 감히 국가를 거부해서는 아니 된다는 사고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부여한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는 걸 당연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각종 언론이 퍼뜨리는 프로파간다를 거스르는 일을 감히 행하려 들지 않는 그들에게 민중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불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이 책은 불편할 것이다. 국가 전복에 버금가는 움직임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책을 손에 들기가 무섭게 떨궜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책을 읽고자 안간힘을 썼다면 그들은 분명 신세계를 접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저항을 억누르는 힘은 분명 강했다. 저항하는 측이 늘 비폭력을 고수하는 건 아니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강력한 저항의 흐름엔 언제나 폭력이 가해졌다. 포스터 속 인물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그리고 때론 지금까지도 누군지 밝혀지지 아니 한 집단에 제거 당했다. 정당하다 여겨지는 권력에 의한 경우엔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순화가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살해’라는 듣기 영 껄끄러운 단어가 사용됐다. 무엇이 그들의 고결한 삶을 무참히 꺾어버린 것일까. 뜻한 바를 이루고자 노력한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결과는 허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지도자격 인물이 사라진 빈 자리는 곧 다른 이로 대체됐다. 꼭 지도자급 인사가 등장하지 않을지라도 특정할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분노했고 제 목소리를 냈다. 끊어질 듯 이어진 저항의 물결이 낳은 결과는 위대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적어도 오늘날 흑인이라는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 당하진 않는다. 여성이니까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듣지도 않는다. 사건 하나하나는 파편적인 듯하면서도 이토록 거대한 흐름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하나로 수렴됐다. 변화는 처음부터 크고 굵지 않았다. 예술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수록된 포스터를 조악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다채로운 색을 사용했더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었겠지만 단 2가지 색으로 모든 걸 표현한 경우도 많았다. 미를 탐하는 게 포스터의 목적은 아니다. 보다 널리 퍼뜨림으로써 역사의 현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이들 포스터의 역할이었다. 최대한 단가를 낮추어야 했으며 재빠른 인쇄가 가능할수록 좋았다. 기능에 충실한 포스터들이 있어 저항과 혁명은 지속될 수 있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흐른다.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손에 들렸을 수많은 문구들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써본다. 이미 많은 부분이 기억 너머로 사라졌지만, 분명 우리의 포스터도 강렬했을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기 위한 순간은 언제나 짜릿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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