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루쉰은「아큐정전」「광인일기」의 작가인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루쉰의 소설 작품은 중단편 합쳐서 33편에 불과하다. 그것도 비교적 그의 생애 초기와 말기에 쓴 것들이다. 대신 루쉰이 공들여 썼던 원고들은 그가 ‘잡문’이라고 불렀던 현실 참여의 성격이 강한 2000여 편이 넘는 칼럼들이다. 이 책 『꽃이 없는 장미』는 그 2000여 편의 칼럼 중에서 그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녹아 있는 대표적인 글들을 선별하고 발췌해서 수록한 루쉰의 글, 즉 잡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잡문’은 말 그대로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잡스러운 글’ 정도의 의미이다. 중국의 루쉰 연구가들은 잡문의 개념 정의와 범주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벌여왔다. 그러나 흔히 하는 장르 구분에 따르면 산문에 속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루쉰의 산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
![]() 위의 도서 『꽃이 없는 장미』는 루쉰 魯迅(노신) Lu Xun 의 2000여 편의 잡문 중 조관희 교수가 가려 뽑아 엮은 도서이다. 그의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크게 나눠 순차적으로 소개하는데, "나의 작품은 너무 어둡소. 나는 항상 '어둠과 허무'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이것들을 향해 절망적인 항전을 벌이려 하기 때문일 것이오. 그래서 편벽되고 과격한 목소리가 많은 것이오. 사실 이것은 나이와 경력 때문이지도 모르겠소. 어쩌면 확실한 게 아닐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나는 끝내 어둠과 허무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오." p 110, 1925년 3월 18일 -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라며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듯 저항의 목소리가 오롯이 담겨있는 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러 글들 중에서 특히 개성, 청춘 그리고 정의에 대한 글들이 눈에 띠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 立人'이다. 사람이 세워진 뒤에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곧 반드시 개성을 존중하고 정신을 길러야 한다. p 097, 제2부 질풍노도 - 문화편향론 몸 밖의 청춘을 찾지 못하더라도 결국 내 안의 늙음을 내 스스로 던져버려야 한다. p 122, 제3부 암중모색 - 희망 '페어'는 반드시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시행해야 하며, 그놈이 어떻게 물에 빠졌든지 간에 사람이라면 그를 돕고, 개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나쁜 개라면 때려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같은 패는 규합하고 다른 패거리는 정벌한다. 同黨伐異' 는 것이다……. p 143,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먹으로 쓴 거짓말은 결코 피로 쓴 사실을 덮을 수 없다. 피로 진 빚은 반드시 같은 것으로 되갚아야 한다. 늦게 갚을수록 이자는 더 많아진다! p 150,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꽃이 없는 장미 2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무지를 적극적으로 고백하는 자세도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지금도 끝내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p 152, 『무덤』 뒤에 쓰다 -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내 작품을 편애하는 독자는 이따금씩 내 문장이 참말을 하고 있다고 비평한다. 이것은 사실 과찬이며, 그 까닭은 그가 편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p 153, 『무덤』 뒤에 쓰다 -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무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보면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의 무지의 경지를 주장한 소크라테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지 못하다고 생각도 한다." p 061, 『소크라테스의 변명』 - I. 첫번 연설 : 유무죄에 관련된 항변 연설 시대의 위인으로 평가받는 이들에게 이러한 자세가 공통적으로 스며있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끝으로 게으른 탓에 미루기만 한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 을 이제는 읽어야 할 때가 왔음을 다시 느끼며 『꽃이 없는 장미』에 대한 서평을 마친다 . p.s. 루신 도서 소개 영상 1:32:31 부터 『페어 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루신 저 - 《김용민 브리핑》 정선태 교수의 '오늘을 읽는 책' 2016. 10. 18 1:33:30 부터 『광인일기』 루신 저 - 《김용민 브리핑》 정선태 교수의 '오늘을 읽는 책' 2017. 02. 26 2:55 부터 『외침』 루신 저 - 《김용민 브리핑》 정선태 교수의 '오늘을 읽는 책' 2018. 02. 26 p.s. 2. 루쉰 魯迅(노신) Lu Xun ▷ 루신, 다큐, 교육연구용 ▷ 위대한 사상가, 루쉰 - 중국 여행 - 상하이 ============================== 생명의 흙이 땅위에 버려졌으나 키 큰 나무는 나지 않고 들풀만 났다. 이건은 나의 죄과이다. 들풀은 뿌리가 깊지 않고, 꽃과 잎도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이슬과 물, 오래된 주검의 피와 살을 빨아들여 제각각 생존을 쟁취한다. 살아 있을 때도 짓밟히고 베어져 죽어서도 부패한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고 흔연하다. 나는 크게 웃고 노래할 것이다. 나는 나의 들풀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들풀을 장식으로 삼는 이 땅을 증오한다. 땅불이 지하에서 운행하며 치달린다. 용암이 분출하면 들풀과 키 큰 나무들을 모조리 태워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부패할 것도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고 흔연하다. 나는 크게 웃고 노래할 것이다. 천지가 이렇듯 고요하니 나는 크게 웃을 수도 노래할 수도 없다. 나는 이 한 무더기 들풀을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친구와 적, 사람과 짐승,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지 않는 이 앞에 바쳐 증거로 삼으리라. 나 자신을 위해, 친구와 적, 사람과 짐승,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지 않는 이를 위해 나는 이 들풀이 죽어 부패하는 날이 불같이 닥쳐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일찍이 생존했던 적이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죽어 부패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될 터이다. 가거라, 들풀이여, 나의 머리말과 함께! 1927년 4월 26일 광저우 바이윈러우白雲樓에서 루쉰이 쓰다 p 010, 011 『들풀』 머리말 프롤로그 ============================== 이제 내가 보았던 이야기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그윽하며 재미있고도 분명해졌던 것이다. 푸른 하늘 위 무수하게 많은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일들을 보았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응시하려 했다……. 내가 막 그것들을 응시하려는 순간, 흠칫 놀라 눈을 떴다. 구름 비단 역시 주름이 잡히더니 헝클어져 버렸다. 마치 누군가 강물에 커다란 돌멩이를 던진 듯, 물결이 높이 일고 그림자 전체가 조각조각 흩어졌다. 나는 무심코 거의 땅에 떨어질 뻔한 『초학기』를 황망히 수습했다. 눈앞에는 여전히 무지갯빛 그림자 조각이 어른거렸다. 나는 진정 이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림자 자취가 아직 남아 있을 때 그것을 되짚어서 완성시키고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던져버리고 기지개를 켜며 손을 뻗어 붓을 잡았다. 그러나 어찌 조각 그림자가 남아 있으랴. 단지 어둑한 등잔불만 보일 뿐이다. 나는 작은 배를 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억한다. 어둡고 침침한 한밤중에……. 1925년 2월 24일 p 020 아름다운 이야기 제1부 어린시절 ============================== 사람이 정신없이 잠들어 있을 때, 그림자가 다음과 같은 말로 작별을 고한다. 내가 내켜 하지 않는 게 천당에 있으니 나는 가고 싶지 않소. 내가 내켜 하지 않는 게 지옥에 있으니 나는 가고 싶지 않소. 내가 내켜 하지 않는 게 장차 다가올 황금 세계에 있으니 나는 가고 싶지 않소. 그런데 그대는 내가 내켜 하지 않는 바이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소. 나는 머물고 싶지 않소. 나는 원치 않소! 오호라! 나는 원치 않소. 나는 차라리 이 한 몸 둘 데 없는 곳에서 방황하려오. 나는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그대와 작별하고 어둠 속으로 침잠하려오. 어둠은 나를 삼켜버릴 것이나 밝음 또한 나를 사라지게 할 것이오. 하지만 나는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느니 차라리 어둠 속에 침잠하려오. 그러나 결국 나는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소. 나는 황혼인지 여명인지 모르오. 나는 잠시 잿빛 검은 손으로 짐짓 술 한잔 마시는 척하리다. 나는 장차 언제인지 모를 때 홀로 먼 길 떠날 것이오. 오호라! 황혼이라면 어두운 밤이 나를 침몰시킬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백주 대낮에 사라질 것이오. 만약 지금이 여명이라면. 벗이여, 시간이 다가왔소. 나는 장차 어둠 속에서 이 한 몸 둘 데 없는 곳에서 방황할 것이오. 그대는 아직도 나의 선물을 바라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소? 없소이다. 암흑과 허공뿐. 하지만 나는 암흑이기만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대낮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이오. 나는 허공이기만 바라오. 그대의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나는 그러기만 바라오, 벗이여ㅡ 나는 홀로 먼 길을 떠날 것이오. 그대도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어둠 속에 다른 그림자도 없을 것이오. 단지 내가 어둠 속에 가라앉으면 세계는 온전히 내 것이 될 것이오. 1924년 9월 24일 ※ 이 글은 1924년 12월 8일 《어사》 주간 제4기에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들풀』에 수록되었다. 루쉰은 1925년 3월 18일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작품은 너무 어둡소. 나는 항상 '어둠과 허무'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이것들을 향해 절망적인 항전을 벌이려 하기 때문일 것이오. 그래서 편벽되고 과격한 목소리가 많은 것이오. 사실 이것은 나이와 경력 때문이지도 모르겠소. 어쩌면 확실한 게 아닐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나는 끝내 어둠과 허무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오." p 046 ~ 048, 110 그림자의 작별 인사 제2부 질풍노도 ==============================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과학자들이 배출되어 화학, 생물학 지학의 진보가 찬란하게 이루어졌으나 그것이 사회를 얼마나 복되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답변하기 어렵다. …… 과학을 연구했던 위대한 인물들을 돌아보면 그들은 그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앞서 말한 대로 대체로 진리를 아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사고의 파도를 확대하고, 학계의 황폐함을 일소하기 위해 몸과 마음, 시간과 정력을 다해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탐구했을 뿐이다. …… 하지만 과학만이 실제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고, 실제 사업은 과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과학의 번영만 흠모한다면 이 또한 옳은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일이 번잡해지고, 분업의 필요가 생기면서 각자 전문적으로 하는 일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서로 도와야 둘 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사업이 과학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경우는 참으로 많고, 과학이 실제 사업의 도움을 받는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 따라서 다른 나라의 강대함에 놀라 겁에 질려 스스로 위태롭다 여기고는 사업을 일으키고 군대를 진작해야 한다 는 주장을 매일 입에 올리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순간 각성한 것 같지만, 실제 따지고 보면 눈앞의 사물에 현혹되었을 뿐 그 참뜻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 오늘날 세상은 옛날과 같지 않아 실리를 존중하는 것도 가능하고 방법을 모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도도히 물결을 가로질러 옛 현인들처럼 미래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씨앗을 지금에 뿌리고, 뿌리가 튼튼한 행복의 품종을 조국에 옮겨 심을 수 있는 사람 역시 사회로부터 요구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마땅히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제 앞에서 이야기한 예들을 종합해보면, 근본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개 말단은 한순간 빛을 발할 수 있지만 견실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버리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능력을 비축해야 오래갈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소홀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사회가 한쪽으로 편향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날로 한 극단으로만 내달리면 정신은 점차 소실되고 파멸이 뒤따를 것이다. 온 세상이 지식만을 숭상한다면 인생은 반드시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고적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상태로 오래가게 되면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옅어질 것이고, 명민한 사상은 사라질 것이며, 이른바 과학이라는 것 역시 없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뉴턴에 그치지 않고 셰익스피어 같은 시인도 바라고 보일뿐만이 아니라 라파엘로 같은 화가도 바라며, 칸트가 있다면 베토벤 같은 음악가도 있어야 하고, 다윈이 있다면 반드시 칼라일 같은 문인도 있어야 한다. 무릇 이들은 모두 인성을 온전하게 해 편향되게 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의 문명을 보게 한 사람들이다. 아, 저 인류 문화의 역사적 사실이 가르치고 있는 바는 진정으로 이와 같을진저! 1907년 작. p 089 ~ 091 과학사교편 제2부 질풍노도 ============================== 그러나 유럽이든 미국이든 물질과 다수로써 세계에서 찬연히 빛나는 것은 그 바탕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다수는 말단적인 현상일 뿐, 근원은 심오해 통찰하기 어려우나 화려한 꽃은 밝게 빛나기에 쉽게 사람의 이목을 끄는 법이다. 이 때문에 천지간에 살아가면서 열강과 각축을 벌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 立人'이다. 사람이 세워진 뒤에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곧 반드시 개성을 존중하고 정신을 길러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하는 데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중국은 본래 물질을 숭상하고 천재를 질시했으니, 선왕의 은택은 날로 사라지고, 외부의 압력을 받기에 이르러 마침내 쇠퇴하여 자기조차 보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하찮은 재주와 지혜를 가진 무리가 크게 떠들어대며 물질로써 말살하고 다수로 억압하여 개성이 남김없이 박탈당했다. 과거에는 중국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난 반신불수였다면, 지금은 왕래를 통해 전해진 새로운 질병을 얻게 되었으니, 이 두 가지 질병이 갈아들며 중국의 침몰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오호라, 미래를 생각하면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도다! 1907년 작 p 097, 098 문화편향론 제2부 질풍노도 ============================== 옛 근원을 추구하는 자는 장차 미구에 닥칠 샘물을 찾고, 새로운 근원을 찾게 될 것이다. 아, 내 형제들이여, 머지않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샘물이 심연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_ 니체 1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문화사를 읽으며 시대를 따라 내려가다가 책의 마무리에 이르면 누구나 처량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것은 마치 따뜻한 봄날이 지나 소슬한 가을로 접어들어 생기를 잃고 마른 나뭇가지만 눈앞에 펼치는 것과 같다. 이름을 붙이기는 좀 그렇지만 쓸쓸함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대개 후세에 남겨진 인문 가운데 가장 힘있는 것으로는 마음의 소리만 한 것이 없다. 옛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자연의 오묘함에 닿아 있고, 세상만물과 알게 모르게 연계되어 있어, 그것을 깨닫고 그 말할 수 있는 바를 말하게 되면 시가가 된다. 그 소리가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입을 봉하고 같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더욱 무성해져 그 종족과 민족에게 나타난다. 점차 학문이 쇠퇴하면 종족과 민족의 운명도 다하고, 뭇 생명의 울림이 끊기면 그 영화도 빛을 거둔다. 역사를 읽는 사람의 쓸쓸한 느낌은 곧 분노로 일어나고, 이 문명사의 기록도 점차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간다. … 새로운 소리의 구별은 상세히 따져볼 수 없지만, 힘을 다해 사람을 진작시킬 수 있고, 또한 말이 비교적 깊은 흥취가 있는 것으로는 마라시파摩羅詩派만 한 것이 없다. 마라라는 말은 인도에서 빌려온 것으로 하늘의 마귀를 이르며, 유럽 사람들은 사탄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본래 바이런 G. Byron 을 그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제 모든 시인들 가운데 반항에 뜻을 두고 행동에 목적을 두어 세상이 별로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은 다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들의 언행과 사유, 유파와 영향을 전하기 위해, 그 시조 격인 바이런에서 시작해 마자르(헝가리)의 문인에 서 마칠 것이다. 이 시인들은 외모는 사뭇 다르고, 각자 자기 나라만의 특색을 품고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 주요한 경향을 총괄하면 하나로 모아진다. 그들은 대체로 세상에 순종하는 온화한 소리를 내지 않되, 일단 부르짖으면 그 소리를 듣는 자 떨쳐 일어나 하늘과 싸우고 세속을 거부했으니, 이들의 정신은 다시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켜 끝없이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 p 099 ~ 101 마라시력설 제2부 질풍노도 ============================== 2 평화라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평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전쟁이 막 끝난 뒤나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때에 불과하다. ……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있으면 호흡을 하기 때문에 공기를 두고 다툼이 생기되 폐가 강한 자가 승리한다. 따라서 생존경쟁은 생명의 존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니, 평화라는 이름은 없는 것과 같다. p 101, 102 마라시력설 제2부 질풍노도 ============================== 3 순문학으로 말하자면, 모든 예술의 본질은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 일어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문장은 예술의 하나이니, 이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마땅히 그러하다. 그러하기에 개인이나 나라의 존망과는 관계가 없고, 실리와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치를 따지는 것도 없다. 따라서 그 효용으로 말하자면 지식을 늘리는 데는 역사만 못하고, 사람을 계도하는 데는 격언만 못하고, 재산을 불리는 데는 공업이나 상업만 못하고, 공명을 추구하는 데는 졸업장만 못하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문장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에 만족하고 있다. …… 그 밖에 문장을 유려하게 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로 특수한 쓰임새가 하나 있다. 세계의 위대한 문장은 대개 인생의 관건이 되는 것을 열어주지 않는 게 없다. 곧 인생의 사실과 법칙을 직접 말해주는 것은 과학이 할 수 없는 일이다……. p 103 마라시력설 제2부 질풍노도 ============================== 5 자존감이 지극한 사람은 항상 불평이 끊이지 않고, 세속에 분개하고 질시하여, 이것이 거대한 진동이 되어 그 대척점이 있는 무리와 투쟁한다. 대개 어느 한 사람이 홀로 자존감을 내세우게 되면 물러나 양보함이 없고, 타협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에 맡겨 자신이 원하는 바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점차 사회와 충돌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p 103, 104 마라시력설 제2부 질풍노도 ============================== 9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사람들은 그 품성과 언행, 사유가 종족에 따라 다르고 환경도 다양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유파로 귀결된다. 모두 강건하여 꺾이지 않고 진정을 고수했으며, 대중에게 아첨하거나 구습을 따르지 않았고, 웅대한 소리를 내어 국민들의 새로운 탄생을 일떠세우고 자기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려고 했다. … 이들은 대개 열성적인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은 자들이고, 독과 같이 뜨거운 마음을 품고 서로 의기투합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생은 몹시 비슷해 대부분 무기를 잡고 피를 흘렸다. 검투사같이 대중의 눈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들이 전율과 통쾌함을 안고 그 싸움을 구경하게 했다. 그러므로 대중의 눈앞에서 피를 흘리는 자가 업다는 것은 그 무리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p 107 ~ 109 마라시력설 제2부 질풍노도 ============================== 만약 내가 여전히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허망'속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면, 저 흘러가버린 처량하고 아득한 청춘을 추구해야 하리라. 그것이 몸 밖에 있을지라도. 몸 밖의 청춘이 소멸되면 내 몸 안의 늙음 역시 곧바로 시들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다. 말라죽은 나비, 허탈한 웃음, 사랑의 춤도 없다. 하지만 청년들은 아주 평안하다. 나는 하릴없이 이 공허 속의 어두운 밤과 맞설 수밖에 없다. 몸 밖의 청춘을 찾지 못하더라도 결국 내 안의 늙음을 내 스스로 던져버려야 한다. 하지만 어두운 밤은 또 어디에?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고, 허탈한 웃음, 사랑의 춤도 없다. 청년들은 아주 평안하고, 내 앞에도 진짜 어두운 밤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절망이 허망하다면, 희망 역시 그러하다!* * 페퇴피 상도르 Petöfi Sándor (1823 ~ 1849, 헝가리 시인) p 122 희망 제3부 암중모색 ============================== 현재의 조물주는 비겁자이다. 그는 암암리에 하늘과 땅을 뒤집어놓지만, 지구를 훼멸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암암리에 살아 있는 것들을 쇠망케 하면서도 모든 시체들을 오랫동안 남겨둘 엄두는 내지 못한다. 암암리에 인류가 고통받게 하면서도 인류가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과 동류 ㅡ 인류 가운데 비겁자 ㅡ 만을 위해 일을 꾸민다. 폐허와 황량한 무덤으로 화려한 집을 부각시키고, 시간으로 고통과 핏자국을 바래게 한다. 날마다 살짝 단맛이 있는 쓰디쓴 술을 적지도 많지도 않게 살짝 취할 만큼만 따라 인간 세상에 보내 마시는 자들을 울게 또 노래 부르게 하고, 깨어 있는 듯 또 취한 듯, 아는 듯 또 무지한 듯, 죽고 싶게 또 살고 싶게 만든다. 그는 모든 것을 살고 싶게 만들어야 하되, 인류를 멸절할 용기가 없다. 폐허와 황량한 무덤이 몇 개 땅 위에 흩어져 빛바랜 핏자국을 비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사이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비애와 고통을 곱씹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뱉어내려 하지 않고, 차라리 공허함보다 낫다고 여긴다. 각자는 '하늘의 징벌을 받은 사람'이라 자처하며 다른 사람과 자신의 아득한 비애와 고통을 곱씹는 데 대한 변명거리로 살고 있다. 아울러 두려움에 숨죽인 채 새로운 비애와 고통의 도래를 조용히 기다린다. 새로움이야말로 그들을 두렵게 하고 또한 서로의 만남을 갈망케 한다. 이 모두가 조물주의 온순한 백성들이다. 그는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 반역의 용맹한 무사가 인간 세상에 나타난다. 그는 우뚝 서서 이미 변해버렸거나 그대로인 폐허와 황량한 무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광활하고 오래된 모든 고통을 기억한 채, 중첩되고 응어리진 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는 이미 죽어버린 것과 막 태어나는 것, 장차 태어날 것과 태어나지 않은 모든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그는 조물주의 농간을 간파하고 있다. 그가 박차고 일어나서 인류를 소생시키거나 멸절시킬 것이다. 이들 조물주의 온순한 백성들을. 조물주, 비겁자가 부끄러워하며 숨는다. 하늘과 땅이 용맹한 무사의 눈앞에서 색을 바꾼다. 1926년 4월 8일 p 134 ~ 136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2. '물에 빠진 개'는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 때릴 수 있는 부류에 속한다. 오늘날 논자들은 흔히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과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을 함께 논하면서 모두 비겁한 짓에 가깝다고 여긴다. 나는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은 겁을 내면서도 용감한 척하는 것으로 자못 익살스러운 데가 있으며, 비겁하다는 혐의를 벗기는 어렵지만 겁내는 게 오히려 사람들이 귀엽게 여기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이라면 결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마땅히 어떤 개인지, 그리고 어떻게 물에 빠진 것인지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물에 빠진 원인을 따져보면 대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개가 스스로 실족해 물에 빠진 경우, 둘째 다른 사람이 때려서 빠뜨린 경우, 셋째 자기가 때려서 빠뜨린 경우. 앞의 두 경우를 당하여 부화뇌동해서 때린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게 되겠지만, 만약 개와 싸우다 직접 때려서 물에 빠뜨렸다면 대나무 장대로 물속에서 계속 때려주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이것은 앞의 두 경우와 같이 논해서는 안 된다. 듣자 하니 강인하고 용감한 권법의 대가는 결코 이미 쓰러진 적수를 다시 때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본다. 곧 적수 역시 강인하고 용감한 투사로 한번 진 뒤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더 이상 달려들지 않거나 당당하게 와서 보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의 경우라면 이를 끌어다 예로 삼으면서 대등한 적수로 볼 수 없다. 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도 무슨 '도의'같은 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요컨대 사람을 무는 개라면 그놈이 언덕 위에 있든 물속에 있든 모두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p 138, 139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남의 자식을 망치는 것이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려야 할지 말지는 무엇보다 이놈이 언덕에 기어올라온 다음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1만 년 뒤라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현재이다. 만약 물에 떨어진 뒤 아주 불쌍하게 여기기로 말한다면, 사람을 해치는 동물 가운데에도 불쌍한 게 정말 많다. 콜레라 병균만 하더라도 비록 빠르게 번식하지만 그 성격은 오히려 얼마나 온순한가. 하지만 의사는 결코 그놈들을 놓아두지 않는다. 지금의 관료와 토신사 또는 양신사들은 자기 뜻과 맞지 않으면 빨갱이니 공산당이니 말한다. p 140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5. 거덜 난 인물은 '물에 빠진 개'와 같이 논해서는 안 된다. '남이 나에게 잘못해도 따지고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관용의 도恕道 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은 직접 행하는 도直道 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것은 오히려 왜곡하는 도枉道 여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아 도리어 개에게 물리고 만다. 그러나 이는 사실 어리숙한 사람이 스스로 사서 고생하는 것이다……. p 142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6. 지금은 아직 '페어'만 할 수 없다. 어진 사람들은 혹시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페어플레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나는 즉시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물론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 토신사나 양신사들은 늘 중국은 특별한 나라 사정이 있어 외국의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등등의 것들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페어플레이'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당신에게 '페어'하지 않는데 당신이 오히려 그에게 '페어' 한다면, 그 결과 자기만 손해를 보게 된다. '페어'하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페어'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페어'를 받아들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전혀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그놈도 '페어'하게 되었을 때, 그때 가서 다시 그놈과 '페어'를 따져도 늦지 않다. …… 그래서 만약 '페어플레이' 정신을 널리 시행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최소한 이른바 '물에 빠진 개' 들이 인간다움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또 차등이 잇어야 하는데, 즉 '페어'는 반드시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시행해야 하며, 그놈이 어떻게 물에 빠졌든지 간에 사람이라면 그를 돕고, 개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나쁜 개라면 때려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같은 패는 규합하고 다른 패거리는 정벌한다. 同黨伐異' 는 것이다……. p 142, 143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7. '바로 그 사람의 도리로 그 사람의 몸을 다스린다.' '페어플레이'는 특히 병폐가 있으며, 심지어 약점으로 변해 도리어 악한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 p 144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6 중국은 호랑이와 이리가 마음대로 뜯어먹게 내버려두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상관하는 것은 몇 명의 청년 학생뿐으로, 그들은 본래 마음 편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시국이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지 못하도록 뒤흔들어놓았다. 만약 당국자에게 양심이란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스스로 돌아보고 자책을 해야만 그 알량한 양심이라도 발휘할 게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학살을 하고 말았다! p 148, 149 꽃이 없는 장미 2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8 먹으로 쓴 거짓말은 결코 피로 쓴 사실을 덮을 수 없다. 피로 진 빚은 반드시 같은 것으로 되갚아야 한다. 늦게 갚을수록 이자는 더 많아진다! p 150 꽃이 없는 장미 2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9 이상은 모두 헛된 이야기이다. 붓으로 쓰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탄에 맞아 흘러나온 것은 청년의 피이다. 피는 먹으로 쓴 거짓말로 가릴 수 없고, 먹으로 쓴 만가輓歌 에도 취하지 않는다. 위세도 피를 억누를 수 없다. 왜냐하면 피는 속일 수 없고 때려서 죽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3월 18일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 쓰다 p 150 꽃이 없는 장미 2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나는 잡문을 간행한 것에 대해 조금은 후회스러운 생각이 드는 듯하다. 그 후회가 몹시 기괴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내가 맞닥뜨려보지 못한 것으로, 나는 지금까지도 이른바 회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깊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심정도 곧 사라지고, 당연하게도 잡문은 그대로 간행되겠지만, 지금 당장 내 자신의 애수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몇 마디 해야겠다. 앞서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는 거롤 기억하는데, 이것은 내 생활의 진부한 흔적의 일부에 불과하다. 만약 내 과거도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도 일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수와 같은 사상이나 위대하고 화려한 문장이 없으며, 선전할 만한 주의도 없고, 무슨 운동 같은 것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실망은 그것이 크든 작든 일종의 쓴맛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요 몇 년 동안 누군가 내가 붓을 놀리기를 요구하면, 의견이 그다지 상반되지 않거나 내 능력이 감당할 만한 것이라면 힘닿는 대로 몇 구절 써서 차장온 이에게 아주 보잘것없는 기쁨이라도 주었다. 인생이란 게 신산한 고통이 많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때로 아주 쉽게 위안을 받으니, 구태여 필묵을 아껴가며 고독의 비애를 더 맛보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소설과 잡감 이외에도 점차 길고 짧은 잡문 십여 편이 생기게 되었다. 그중에는 물론 돈을 벌기 위해 한 것도 있는데, 이번에 모두 한데 섞어놓았다. 내 생명의 일부분을 소모해 이런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끝내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 그러나 이 또한 그저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숨을 쉬고 있을 때,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이라면, 나도 이따금씩 진부한 흔적을 거두어 보존하고 싶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어쨌든 미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 잡문을 모아 『무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도 결국은 교묘한 눈가림일 것이다. …… 그래서 이 책의 간행은 내 자신에게는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앞서도 이미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글을 편애하는 단골에게는 약간의 즐거움을 주고 싶고, 내 글을 증오하는 치들에게는 약간의 구역질을 주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이 그다지 도량이 넓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치들이 내 글로 인해 구역질을 한다면 나는 아주 기쁘다. 달리 아무런 뜻도 없다. …… 내 작품을 편애하는 독자는 이따금씩 내 문장이 참말을 하고 있다고 비평한다. 이것은 사실 과찬이며, 그 까닭은 그가 편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남을 크게 기만할 생각은 없지만, 마음속의 말을 그대로 다 말한 적은 없으면, 대체로 그냥 건네줘도 될 만하다고 보여지면 그걸로 끝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해부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내 자신을 더 사정없이 해부한다. 발표를 조금만 해도 온화함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미 냉혹함을 느껴버린다. 만약 내 혈육을 전부 드러낸다면 그 말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만약 다른 사람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조차 아직도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대체로 청년들의 '선배'와 '스승'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니며, 나 역시 그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기에 누가 가르켜줄 필요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길에 있다. 그 길은 물론 하나일 수 없는데, 비록 지금도 가끔 찾고 있지만, 나는 정말 어느 길이 좋은지는 알지 못한다. …… 내 번역이나 저서의 인쇄 부수는 처음에는 1차 인쇄가 1천이었지만, 나중에 5백이 늘어났고, 요즘은 2천에서 4천이다. …… 내 자신은 무슨 전사도 아니고, 게다가 선구자라 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망설임과 회고가 있는 것이다. 아직도 3,4 년 전 일이 기억난다. 학생 하나가 와서 내 책을 사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 손에 내려놓았는데, 그 돈에는 여전히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 체온은 곧바로 내 마음에 낙인을 찍어놓아 지금도 글을 쓰려고 할 때면 항상 내가 이런 청년들을 독살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머뭇거리며 감히 붓을 대지 못하고 있다. … 내가 충분히 노력한다면 아마도 구어를 널리 취해 내 문장을 개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으르고 바쁜 탓에 여태껏 그러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게 옛날 책을 읽은 것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나 의심했다. 내 마음속에 옛사람이 책에 써놓은 가증스러운 사상이 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 불행하게도 고문과 백화가 섞여 있는 내 잡문집이 마침 이때 출판되어 아마도 독자들에게 약간은 해독을 줄 것이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의연하고도 결연하게 그것을 없애버리지 못하고, 그래도 이를 빌려 잠시나마 지나간 생활의 남은 흔적을 살펴보려고 한다……. 1926년 11월 11일밤 루쉰 p 152 ~ 156 『무덤』 뒤에 쓰다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우리는 현대의, 자신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백화를 써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선배 선생들의 비웃음을 삽니다. 그들은 백화문은 비천하고 아무 가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의 작품은 유치하고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고 말합니다. …… 청년들은 우선 중국을 소리가 있는 중국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대담하게 말하고 용감하게 나아가면서 모든 이해관계를 잊고, 옛사람들을 밀어내고, 자신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발표해야 합니다. ㅡ 참이라는 건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태도는 참되기 어렵습니다. 강연할 때는 나의 참된 태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친구와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의 태도는 이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ㅡ 하지만 그렇더라도 비교적 참된 말을 하고 비교적 참된 소리를 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참된 소리만이 중국과 세계의 사람들을 감동 시킬 수 있습니다. 참된 소리가 있어야만 세계의 사람들과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p 159 소리 없는 중국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내 생각에는 문학, 문학이니 하는 것은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힘없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실제 권력이 있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고 사람을 죽이며, 압박을 받는 사람은 몇 마디 말을 하거나 몇 글자 쓰게 되면 피살됩니다. 요행히 피살되지 않는다 해도, 날마다 소리치고 괴로움을 호소하고 불평을 늘어놓은들, 실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압박하고 학대하며 살육하니 그들에 맞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문학이란 게 사람들에게 무슨 이로운 점이 있겠습니까? … 그러나 이곳 혁명 지방의 문학가들은 문학과 혁명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문학을 이용해 혁명을 선전하고 고무하고 선동하고 촉진하고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문장은 무력합니다. 좋은 문예 작품이라는 건 이제껏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지 않고 이해관계를 돌아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게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p 165, 166 혁명시대의 문학 ㅡ 4월 8일 황푸군관학교에서의 강연 제4부 새로운 세상 그러나 ============================== 문학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끈질겨야'합니다. …… 우리는 한두 권의 시집이나 소설집을 낸 뒤 영영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것은 책을 한 권이나 두 권을 내고 나면 크건 작건 이름을 얻고 교수나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되는데, 공을 이루어 명성이 뒤따르면 더 이상 시나 소설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영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문학이건 과학이건 모두 변변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p 206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의견 ㅡ 3월 2일 좌익작가연맹 창립대회에서의 강연 제5부 절망에 대한 반항 ============================== 위대한 장성이여! 이 프로젝트는 비록 지도 위에 조그마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무릇 세계적으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제껏 수많은 노동자들이 헛되이 노역에 시달리다 죽었을 뿐, 오랑캐를 막아냈던 적이 없다. 이제는 오래된 유적일 뿐이지만,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여전히 보존될 것이다. 나는 항상 장성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고 느낀다. 그 장성의 구성 재료는 예전부터 있던 낡은 벽돌과 보수하면서 덧붙인 새로운 벽돌이다. 이 두 가지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성벽을 이루고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다. 언제쯤 장성에 새 벽돌을 보태지 않아도 될까? 저 위대하고도 저주스러운 장성이여! p 219, 220 장성 長城 제6부 투창과 비수가 되어 ============================== 이것은 명나라가 망한 뒤의 일이다. 무릇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일부는 마음으로부터 복종했지만, 대다수는 강압으로 복종했다. 하지만 가장 편안하게 멋대로 산 것은 한간漢奸 들이었다. 가장 독야청청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아간 것은 한간들을 호되게 꾸짖었던 유민들이었다. 나중에는 숲속에서 천수를 다했고, 자식들은 이미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데 거리낄 게 없었으며, 각자 훌륭한 아비를 두었다. 묵묵히 항전에 나섰던 열사들은 오히려 자식 하나 남긴 경우가 드물었다. 나는 목전의 문예가들에게 저 옛날의 유민과 같은 기질이 없기를 바란다. p 225 반하 소집 제6부 투창과 비수가 되어 ============================== 나는 유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관대작의 고귀한 신분으로 대단한 부자였다면 아들, 사위나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진즉 나에게 유언장을 쓰라고 다그쳤을 텐데, 지금 아무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 장 남기도록 하자. 당시는 몇 가지 생각이 났었던 듯하다. 모두 가족에게 쓴 것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하나. 상을 치를 때, 누구의 돈이건 한 푼도 받지 말라. 다만, 오랜 벗의 돈은 예외이다. 둘. 바로 염을 해서 매장하고 말라. 셋. 어떤 기념행사도 하지 말라. 넷. 나는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활을 해나가라. 그리지 않는다면 정말 바보 멍청이다. 다섯. 아이가 자라서 재능이 없으면 작은 일을 찾아 살아가도록 하라. 절대 허망한 문학가·예술가 따위는 하지 말라. 여섯. 다른 사람이 너에게 허락한 것을 진짜라 여기지 말라. 일곱. 다른 사람의 이빨과 눈을 손상시켜놓고서 오히려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 당연히 이것 말고도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잊어버렸다. 다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열이 났을 때 유럽인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생각난 것이다. 그것은 다른사람에게 너그러운 용서를 청하고 자신도 다른사람에게 너그러운 용서를 하는 것이다. 나는 적이 많다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새로운 문물을 맛본 이가 나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은 그들이 나에게 원한을 품게 하라. 나 역시 그들을 한 명도 용서치 않으리라. 하지만 이런 의식은 거행하지 않았다. 유언장도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누워 있있을 따름이다. 어떤 때는 더 절박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원래 이렇게 가는구나. 오히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종하는 순간은 아마 이렇지 않겠지. 그러나 평생에 한 번뿐이니 어떻게 되든 감당할 수 있겠지. 나중에 오히려 전기가 찾아와 호전되었다. 현재에 이르러 나는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아마도 진짜 죽기 전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진짜 죽을 때는 이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9월 5일 p 233, 234 죽음 제6부 투창과 비수가 되어 ============================== 전진하려는 청년은 대체로 스승을 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그들은 스승을 영원히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구할 수 없는 게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이는 불민하다면서 사양하는데, 스스로 자부하는 이는 과연 정말로 길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무릇 스스로 길을 알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대개 '이립 而立'의 나이를 넘겨,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로서, 늙은이 태가 역력해 그저 동글동글 살아갈 뿐인데, 자기 자신은 길을 알고 있다고 잘못 여기고 있다. 만약 진정으로 길을 안다면 진즉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을 터인데, 어째서 여전히 스승 노릇이나 하고 있겠는가? … 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스승을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생존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라.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개척해 평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너른 들판을 만나면 나무를 심을 수 있을 것이며, 사막을 만나면 우물을 팔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가시덤불로 막혀 있는 낡은 길을 묻고, 무엇 때문에 너절한 스승을 찾아 헤매는가! p 252 ~ 254 스승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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