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읽었던 작품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읽을 때는 살짝 지루하고 불편하여, 겉도는듯 싶다가도... 어느 순간, 줄을 쫙쫙 치면서, 빠리나 프랑스의 지도 혹은, 거리들의 사진이나 이미지를 머리속에 그리며...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스물 한 살이 될 때까지의 자전소설, 이라는 짧은 정보.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얼마전 무릎팍 도사 재방송으로 보았던, 배우'윤여정'이다. 모디아노가 배고픔 극복을 위한 생계형 작가는 아니였던 것 같지만, 그의 유년기와 태생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프랑스 당대 최고의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어떤 숙명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작가들과 살짝 비교해 보게 된다.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자전 소설은 주로, 가난하고 궁상맞았지만..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했던 뭔가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런데,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답게...부모도 쿨~ 하게 인정머리가 별로 없어 보이고, 작가도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기는 매 한 가지이다. 그저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것이 특이했다.(동생의 죽음을 제외하면, 이야기들이 본인과 그닥 관계가 없다고 쓰여져 있다.)
나름, 마음을 후비는 단락이 있어서, 색연필로 줄을 쳐 두었는데, 다 옮겨 적기는 뭣하고...--;; 본인 스스로를, 혈통도 없이 지나치게 혼자 내버려진 개,처럼 비유하는 부분에서는, 프랑스로 쫓아가서 작가 등을 두드려 주며...위로라도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자아도취에 빠져 청승을 떨기 마련이고, 그렇다보면..'육갑떨고 있네'하며 작가와 평행선을 그으며, 담을 쌓기 마련인데...담담히 남 이야기 하듯이 적힌 글 때문에, 더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ps. 예민하게 느낀바 가 커서...조금 시니컬한 이야기는 책 앞장에다 적어두었음.
ps. 모디아노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편린(片鱗:한 조각의 작은 비늘)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나는 사실, 모디아노의 불편한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을 흘린다거나, 감동하며 읽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그가 던져 놓은 그 편린들을 하나 하나 주워담으며, 나의 그것과 비교를 해보거나...혹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그것에 대해서 상상해 보는... 문학 작품 읽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
|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연결하는 것, 그것은 파편조각의 연속이고 이러한 파편이 억지 퍼즐로 맞춰진다는 차원에서 삶(인생)은 전체적으로 조망되지 않는다. 그저 파편 덩어리들의 연속일 뿐 인 인생에서 저자는 '혈통'이라는 단어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사실, 혈통이라는 것도 그저 냉소적일 뿐 이다. 과거의 파편 조각들이 현재를 좌우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계속 되면서도 읽는 내가 갖게 되는 파편의 두둔은 파편 조각이 내 인생에 박혀 있기에 그리고 박힐 정도의 강렬함이 있기에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남는 다는 것이다. 적어도 좋지 않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삶의 정도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만이 남는다고 할 수 있다.
|
|
4.혈통-파트릭 모디아노 과거의 모디아노와 현재의 모디아노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파트릭 모디아노가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자 '아! 모디아노가 있었지!'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잊혀진 아스라한 추억의 빛 속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다 다시 빛으로 걸어들어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알리는 사람인 것처럼. 누군가는 이 수상이 의아하다고 했고, 이해가 안됐다고도 했지만, 기억을 되돌리며 모디아노를 되새김질해본 나는 이 수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아스라한 추억 사이를 떠돌며 그 추억을 희미하고 불확실하지만 아름답게 재구성해내는 이 '추억의 예술가'의 흐릿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문득 과거에 모디아노를 책으로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혈통 있는 척하는 한 마리의 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뚜렷한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불확실해서 마치 반쯤 지워진 글자들로 신분증명서나 행정서식을 채우려 애쓰는 것처럼, 나는 이 흐르는 모래 속에서 몇 가지 흔적이나 몇 가지 표시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10) 당시 나는 문학이 아닌 비문학 책들만 잔뜩 읽어서 생긴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황폐해진 감성. 지나친 이성 중심주의의 영향으로 날카로워진 정신이 남들을 비판하고 공격하다 못해 자기 자신마저 공격하는 상황에서 생긴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함. 필연적으로 나는 독서 성향의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고 비문학 중심의 독서에서 문학 중심의 독서로 독서 성향의 전환을 꾀하게 됐다. 그 와중에 나는 파트릭 모디아노를 만났다. <한밤의 사고>. 이 작품으로 만난 파트릭 모디아노는 추리소설적 구성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추리소설을 거부하며 인간 삶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통해 '세상에 이런 추리소설도 있구나'(??)라는 이상한 느낌을 전해주며 감동을 주었다. 나름 인상적이었던지 나는 모디아노의 소설을 몇 권 더 읽었다. 읽다보니 소설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흐릿하고 아릿하며 쓸쓸한 아름다움이 내게 남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모디아노의 문학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의 소설들과 스치듯 안녕을 고했다. 나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삶을 끝내기 위해 마치 조서 혹은 이력서를 작성하듯 이 페이지들을 써나간다. 이것은 사랑과 행위의 단순한 필름에 지나지 않는다.(44) '아! 모디아노가 있었지.' 이 말을 통해 나는 다시 모디아노의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가 다시 만난 그의 세계는 이전과 달랐다. 나는 과거에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었지만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이 문학의 아름다움이 내게 주었던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수한 문학의 숲을 거닐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그 감정. 이제서야 나는 모디아노가 펼쳐보이는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 희미하게 빛나는 추억과 기억의 쓸쓸함과 아릿함과 안타까움, 불확실하게 재구성되지만 잊혀지지 않는 한 순간들의 집적으로 만들어지는 기억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정체성이, 기억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며, 문학이 그 인간의 존재 조건을 아름답게 상기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렇게 모디아노는 프루스트의 뒤를 이어 기억의 예술가가 되어 기억의 존재인 인간을 흐릿하지만 아름답게 비추어준다. 나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삶을 끝내기 위해 마치 조서 혹은 이력서를 작성하듯 이 페이지들을 써나간다. 이것을 사건과 행위의 단순한 필름에 지나지 않는다.(44) 모디아노의 소설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마치 한 권의 책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것처럼. 모디아노의 작품들을 한 권의 책의 다양한 변주라고 한다면, 그건 모디아노 자신의 삶이라는 책의 변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혈통>은 모디아노 작품의 원형인 모디아노의 삶을 재구성하여 소설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모디아노 작품들에 흩어져 있는 부분들과 공통되는 부분들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기르던 개가 창밖에 떨어져 죽어도 신경쓰지 않는 무심함을 가지고 아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 어머니와 비밀스런 삶을 살며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거리감을 두고 아들을 이해하지 않은 아버지 사이에서 고립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상처받은 영혼의 추억들이 책에는 가득하다. 자신의 사업을 위해 아들을 이용하는 아버지,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아들을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어머니, 자신이 가라는 길을 가지 않는다고 굶주림에 시달려서 찾아온 아들을 새아내가 신고하자 앞장서서 경찰에게 인도하고 아들이 불량배라고 진술하는 아버지, 새아내의 압박 속에 자신에게 못오게 하려고 다른 곳의 기숙사 학교에 아들을 보내버리는 아버지, 자신의 일에만 빠져 아들에게 무심하고 애정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어둠의 세계에 사는 아버지의 지인들과 어머니를 통해 알게된 사람들의 이야기들. <혈통>은 아직 다양한 작품들로 분화되지 않은 모디아노 작품의 원형질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은 아직 문학이 되지 않은 문학이자 소설이 되지 않은 소설로서의 모디아노의 삶을 보여준다. 거기서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지만 생명의 숨소리를 내지르며 태동하는 모디아노 문학을 느꼈다. 흐릿하고 아득하고 쓸쓸하고도 아름답게. 나는 나보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느낌, 즉 모든 것이 스크린 이미지 프로세스로 전개되었고 나는 아직 내 삶을 살 수 없구나 하는 그 느낌을 옮기고 싶다.(45)
|
|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누구에게든 근본은 있게 마련이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되기까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을까 하는 공상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니까.
모디아노의 책을 계속 읽다 보니 느끼는 게 있다. 희한하게도 소설 자체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나 자신에게 빠져든다는 점이다. 내가 작가라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내가 그 인물이라면, 나는 나는 나는.... 그러니 별로 두껍지도 않은 소설이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 것이다. 이 노릇을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해야 할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여기서 또 만난다. 올 겨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을 찾아야 할 텐데. 이런 책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꽤 많이 얻는 것을 보면 과거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을 테다. 그 그리움이 좋은 쪽이었든 좋지 않은 쪽이었든 지나온 시간의 힘은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바꾸어 줄 것이고.
작가는 남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면 더 좋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본다. 살아오는 동안에는 분명히 남들보다 어떤 면에서든 고달팠을 것이나 그때의 고달팠던 경험을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능력만 있다면 그 또한 은혜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이 부분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단한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받게 될 경우 변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한 문학 작품으로 내가 감동을 받았던 것만은 사실이니 깊은 용서를 구한다.
모디아노도 평범하게 자란 사람은 아니었으니, 더욱이 유대인의 자손으로서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 책으로 유추해 보건대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으니(내가 잘못 짐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속 부자 관계가 나빴을 뿐일지도).
우리 엄마와 아빠(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말을 일부러 안 쓰고 싶다.) 생각을 오래 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을 생각하게 될 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내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우리 부부의 은밀한 비밀들,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 아빠와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없다. 어렸을 때 내가 뭔가 여쭈어 보았던 기억이 있기는 했는데, 그때 아빠와 엄마는 제대로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다. 분명히 감추고 싶은 것이 있었으리라.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은혜로운 일이다. |
|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 중 몇 해 전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그를 무작정 좋아하기로 했고 그의 작품들을 되도록이면 꼭 찾아 읽으려 하는 편이다. 그의 작품에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나오고 그와 함께 텅 빈 거리와 같은 과거를 향해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찾아나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참 외롭고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점이 바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그만의 이야기인 것이다.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적인 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과 자료를 통해 년도와 과거 속 인물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과 부모님과의 관계를 서술형식으로 진술한다. 평범하지 않은 부모님과의 유년시절은 작가에게 너무 이른 혼란과 외로움을 주었고 유일하게 유년시절에 작가의 삶과 연결된 끈이라고 생각했던 동생의 죽음은 그를 더 이상 어린 소년으로 멈춰있게 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과의 거리는 결코 메울 수가 없었고 소년은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바로 글쓰기, 소설을 통해서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만의 삶을 이루게 된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자전적 소설은 그 짧은 분량에 상관없이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게 했고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에는 나 역시 작가처럼 끊임없이 정체성 찾기에 몰두해야 하고 그래야만 하니까 말이다. '혈통'을 통해서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에 대해서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기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외로워졌지만 참을 수 있었다. |
|
특별히 무언가를 느끼는 독서는 아니었다. 그저, 궁금해서 읽고 싶었던 책이고, 운좋게 만난 책이다. 파트릭 모디아노 작가의 이름도 처음 접했고, 작품 역시 처음으로 읽어봤다. 항상 그러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있는 상황이라, 그런 책들을 찾아 읽는 재미도 언젠가는 쏠쏠할 것 같다.
이 책은,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다른 작품과의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제목 그대로, 혈통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부모님의 연결고리... 사실적인 나열이라고 해야되나? 문서를 통한 보고서 형식의 글들이 써있는 듯하다.
워낙 얇은 책이라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막상 이 책을 설명하려면, 딱히 그럴 듯한 표현이 어려운...
그냥, 다 읽다보니 누구나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해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라기보다는, 어느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뒤에 풀어쓴 과거처럼 읽은 것 같다.
정체성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좀 그렇지만... 자기 고백같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라서, 공감하기가 쉬웠던 건 아니지만, 그냥 슬렁슬렁 읽어봤다. 조만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한번 읽어보련다. 그때는 작가에 대한 어떤 느낌이 새로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