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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습해 오는 시간의 엄숙함. 피할수 없는 운명같은 여명벗은 환상의 상황. 인생이 그리 환희스럽지도 그리 실의스럽지도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지만 마디의 아픈거리를 헤메일 때나 엄습한 진실을 자행하기엔 너무나 허허롭다. 무릎 가지엔 잔재만이 허덕인 채 겨우 자신의 흔한 충만의 이상을 적시어야 하는 남루하고 폐허된 잔재들. 용기가 필요 할때나 질주롭게 세상을 피력 할때도 미리 직감한 마지막 잔재는 요행히 피해 가진 않는다. 양파껍질 처럼 자신의 허물이나 자행한 모든 실행은 마음과 도덕의 끈을 풀어재낀다. 양심으로 그리고 본연의 외진곳에 우리내 모진 마음이 살지만 그나마 시린 아픔만이 동행한다. 운명의 행운이 깃들기를 바래고 자신의 허물마져 모른체 지나가길 요원한 기만된 허울은 아직도 너울거린다. 어리석은 것이 우리네 여린 마음에 사는 풋내나고 가난하며 초라한 이상의 동경은 퍼득이며 상황에 갇히고 만다. 무엇을 댓가하여 실험의 위로와 희생을 부리기전에 막다른 골목길을 회유할 탈출의 우리을 들먹이곤 한다. 그대로 스스럼없이 살고 싶건만 운명이나 시기심 잦은 세상은 나를 그만 가두려 우리를 짓고 있다. 운명의 예감이나 질주가 멈춘 화차처럼 초라한 두려움이 가로 막는다. 사람은 자신에 행한 실험적 양심에도 의무를 지닌 것이 본연의 행방이다. 무작정 길을 갈수 없듯 용기나 이상의 동경에도 항상 자신의 몫이 존재한다. 순간에 머무는 인연의 자락에도 우리네 흔적은 존재하고 그만한 잔재를 넘을 강직한 신념이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모든것을 잃을 무료함이 자신을 나태 시키거나 모든것이 감흥의 잔재로 자신을 매료 시키지 못할때 가장 힘든 체념의 모순이 온다. 무력함이란 잔재된 허울의 잔저리에 남겨지는 것이다. 허울의 끝 동경의 종착역처럼 다음의 이정표도 없는 회의가 본연의 혼자인 나그네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무지하게도 남겨진 잔재속에 순연의 순응을 따르면 찾지못한 새로운 동경의 세상을 만날수 있을까? 나 자신이 환상을 깨우면 높고 깊은곳에 잠든 본연의 고향 같은 부드러운 순응을 만날까? 짙은 장막을 거두고 마지막 정점에서 본연에 미련된 허울을 벗을순 있을까? 오랜된 허물을 벋고 갈등의 잔저리를 넘어 뛰어들 인생의 본연적 삶이 너무도 낯설어 도래할길 없는 막다른 정점의 높다란 벽의 골목길. 마음과 흔적을 삼키는 기술로 훔뻑 적시어 여울의 나락에 다달을 수밖에 없던 끝이 있던 정점의 흔적의 거리. 다시 난 홀로 남겨 질 것이고 초연의 희망을 다시 만질지 모른다. 본능적 약속을 잊고 비틀 거리며 날으는 하얀 영혼의 흔적. 다시 회유하여 본성의 고향이 그리운건 기만의 만용이런가? 어디로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야할 여정이 이젠 정점에 다달은다. 모두가 내려야 한다. 오래돼 바랜 갈등과 허울 그리고 타다만 욕망의 잔재들도........ 인생과 삶의 유희도 언젠가 혼자만이 걷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제 홀연히 걸을수 있는 각오와 용기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제껏 갇힌 홀로 보다 더욱더 깊은 고뇌에서 부터 곧장 당당히 걷는 연습이 필요로 한 시간이 된 것이다. 외롭고 고뇌 스런것이 사람이듯...... 언젠가는 본연의 덫안에 스스로 갇힌 자신 앞으로 다가 서는 것이다. 아픔과 여운을 남긴채 익숙한 우리네 여정을 걸어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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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아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무리 이동을 하는 여러 동물들의 행동양식과 이동경로 등을 보여주는 이 책은 총 4개의 소주제(본능의 대이동, 번식의 숙명, 생존을 위한 질주, 만찬 혹은 굶주림)를 다루고 있다.
내용 설명이 간략하면서도 체계적이어서 상쾌한 기분으로 글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장을 가득 채우는 장엄한 그림들은 정말로 드넓은 들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혹은 새파란 바다 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무리 이동을 하는 대표적인 동물들이 거의 모두 소개되어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다양한 동물들의 장엄한 대이동의 장면이 선명한 사진들과 함께 담겨져 있어, 마치 그 위대한 여정을 함께하는 듯 설레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