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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새로운 도금시대에 살고있나?(폴 클르쿠먼) 이 책 애프터 피케티의 3장 첫번째로 실린 글이다. 도금시대 벨 에포크시대 [도금시대/남북전쟁 후의 미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악몽과 같은 물욕에 사로잡혀 각종 사회적 부정이 속출하는 시대를 통렬한 필치로 비판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1865∼1890년경에 이르는 시대를 ‘도금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이 작품에서 유래한다./ 벨에포크(좋은시대, 19세말~20세기초)] 21세기 자본이 나오기전,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불평등 연구자들은 보통 노동소득(급여)은 모든 활동이 존재하는 곳에서 발생하고, 자본소득은 중요하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관심의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케티는 오늘날에도 노동이 아닌 자본에서 얻어진 소득은 소득분배에서 최상위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과거, 즉 유럽의 벨에포크 시대와 이 정도의 번영시기는 아니었지만, 미국의 도금시대의 불평등한 자산소유가 소득 격차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런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90쪽) 21세기 자본은 경제 성정과 부의 소득의 분배에 관한 논의를 통합하려는 이론체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피케티는 경제사를 자본축적과 성장을 촉진하는 다른 요소들, 즉 주로 인구증가와 기술발전 간의 경쟁관계로 본다. 1차 대전 발발전 유럽은 국민소득의 6~7배달하는 자본축적, 이후 40년간 물리적 파괴와 저축액은 전쟁물자로 전환, 반감됐고, 2차 대전 이후 자본축적이 다시 시작됐지만, 경제성장기(영광의 30년)동안 소득대비 자본비율은 낮았다. 1970년 이후 더딘 경제성장으로 자본의 비율 증가, 결과적으로 자본과 부는 과거 벨에포크 시대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피케티는 이런 자본 축적을 누진과세로 억제하지 않는 한, 결국 그때와 같은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대, 왜 상속재산의 역할을 등한시하는 가?, 피케티는 말한다. '부는 많은 사회 구성원이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집중돼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부를 초현실적이거나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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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논의와 담론들은 21세기 자본론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21세기 자본론에서 피캐티는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민간자본 축척의 동학으로 인해 부와 권력이 필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손에 집중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에 사이먼 쿠즈네츠가 생각했던 것처럼 더 발전된 단계에서는 성장, 경쟁, 기술적 진보에 따라 균형을 잡아가는 힘 덕분에 불평등이 줄어들고 계층 간의 조화로운 안전성이 확보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사용된 자료들은 3세기에 걸쳐 20개국 이상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5부로 이뤄졌고, 위와 같은 피케티의 견해에 대한 각 연구자들의 논의를 정리했다. 먼저, 피케티는 옳은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만큼 불평등이 중요한가?, 결론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 전제가 됐다. 1부에서는 피케티 현상을, 골드해머와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가 피케티 현상에 대한 견해를, 2부는 피케티가 제시한 자본의 개념을 놓고 그 의미와 이론 구조를 따라가며 각 영역별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이론적 접근이다. 3부는 자본의 고르지 못한 분배가 야기할 수 있는 불평등을 다룬다. 눈에 띄는 대목은 크리스토프 라크너(11장)는 피케티가 민족국가 내의 불평등을 비교 방식으로 다루는 것을 비판, 가레스 존스(12장)는 21세기자본에서의 공간 부재를 비판했다. 4부는 피케티 논지에 대한 다양한 반론을 다루는 한편, 경제 부문에서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정치적·법률적 장치들을 분석한다. 5부는 이 모든 비평의 시작인 피케티가 이제까지의 문제제기 및 주장과 비평에 대하여 해명과 답변, 보충설명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피케티의 문제제기에 여러 학자들의 생각을 담은 책은, 21세기 자본을 읽지 않은 이라도, 알 수는 있겠지만, 읽어 내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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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불평등의 규모 부의 불평등은.. 어쩔수가 없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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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 또한 아직 21세기 자본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애프터 피케티를 구매했다. 책에 대한 감상을 돌이켜보면 생각의 골방 안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종종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런 후기들을 보게 되면 아, 이 내용을 이런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구나. 와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이 책은 석학들이 21세기 자본을 읽고 떠드는 것을 받아적은 것 같다. 아는 것도 많고 깊은 생각을 해본 분들이 같은 책을 주제로 떠드는 것에는 분명 얻을 것이 있다. 고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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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해서, 가장 현학적 허세(?)를 부리기 쉬운 장르가 '경제학'분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저처럼 고등학교(자연계열)와, 대학교(처음은 '공학계열'이었다가, 다시 시험을 쳐서, '(순수)자연과학계열'로 아예 전과 수준이 아닌, 대학교 자체도 바꾼..)에서 문과(?)파트라고 할 수 있는 상대, 사회대 쪽 서적과는 별로 친한척조차도 하지 않았었던 터여서.. 한마디로 까막눈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군대도 전역하고 복학해서, 학교를 다닐무렵, 무슨 연유였는지.. 과생활을 통한 동기나 후배를 챙기고 또 교수의 뒤치다꺼리를 하기보다는 그저 중앙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세상과 유리된 것처럼 책에 파묻혀 지낸적이 있었었지요.
그러면서, 거의 늦깍이 형태로, 말그대로, 그냥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읽어보게 되었고(물론 지금은 읽었었다는 기억만 있을뿐.. 내용은 거의 생각나진 않네요. ㅎㅎ)
또 계절학기에, 교양과목은 남는 학점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수받는 평점과는 무관하게, 맨큐의 경제학 을 읽게되는 강의를 수강신청해서 대충이라도 훑어본 기억도 나네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사회에 나와보니,
또 이런저런 만남과 교류의 장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이공계열 졸업하셨다면서.. 어떻게 경제나 경영 또 법률 쪽 마인드가 말에서 느껴진다!!!
라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암튼, 좀 듣기도 했던 거 같네요.
피케티 교수의 책은 이미, 이 책 이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서 익히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대략 2년전 같은데.. 한번 읽어나보자.. 하는 심산에서 구매해서 1/4쯤 읽다가 그냥 책장에 끼워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번에, 이 책을 사면서도..
에궁~ 저번에 것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이 책조차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그렇게 될꺼 같네요. 너무 확실한 예측같아요. ㅠㅠ)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즐겨듣는 라디오 시사 프로에서, 한때 고정 출연을 하셨었던, 칼 폴라니 연구소 의 정태인 소장님께서, 한때 피케티 교수의 책(예전것)을 언급하시면서, 그때의 경제상황 전반을 개괄적으로 코멘트 하시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아~~ 나도 읽다가 (현재는)말았지만.. 읽긴 했었었지.. 하는 생각도 났고요.ㅋ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요번에는 두 권 다 천천히 한번 완독이나마 해보겠습니다.
현학적 허세지수가 +10 정도 될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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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속부터 문과로 경제학용어와 수식은 외계어와 다를 바 없어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완독도 하지 못했으니 리뷰를 쓰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이 리뷰는 문송에게만 바친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아무나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봐야 하는 책이다.
21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학자들이 피케티의 이론에 대해서 고찰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증에 열띤 주장이 이어진다.
누가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옳은 사람이 있다면 부의 불평등은 해결 했을테니까 말이다.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 있다면 일단 읽어봐라.
답은 못구해도, 원인은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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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이론서들은 교과서를 제외하고 기껏해야 수 천권이 팔리지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피케티현상이란 불리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미국 대학생들이 21세기 자본의 중요 공식인 r > g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 담론을 변화시켰다. r > g의 의미는 자본에 대한 평균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상회하면 "과거가 미래를 집어삼키는 경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자본소유는 노동소득보다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자본의 증가는 결국 불평등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리고 소수에게 집중된 부가 정치적 방향성을 만들고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즉, 경제불평등은 정치적 양극화와 상관관계가 크므로 민주주의에서 "의견표출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다원주의 천국에서 발견되는 결함은 천상의 합창곡에 상류계급의 악센트가 강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피케티 이후는 역사적 데이터와 수학모형을 통해 불평등의 장기적 추세에 관한 통찰력을 이끌어 낸 21세기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에 대한 경제 정치 역사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펼치는 지적향연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피케티의 주장이 옳은지를 다룬 Part 1. 피케티현상, part 2. 자본의 이해 불평등이 중요한가에 관한 Part 3. 불평등의 규모 Part 4. 자본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앞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Part 5. 피케티가 답하다. 21세기 자본을 읽지 않은 독자는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 로보트 솔로와 폴 크르그먼이 쓴 2장과 3장이 그리고 특히,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인한 미래의 일자리에 관심있는 사람은 현대 정보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마이클 스펜스가 쓴 8장 기술이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도움이 될것이다. 논의에 참가한 학자들은 피케티 경제모형의 문제점으로 자본과 노동간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전제, 매우 큰 사회적 이익을 낳는 인적자본의 배제, 지난 수십 년간 불평등의 주요 동인인 기술변화와 세계화에 대한 관심 부족 등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답은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으로 여기는 피케티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매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이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형성한 표상들, 이 행위자들의 역학관계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집합적 선택들에 의존한다." '우리는 99%'와 '금수저 흑수저'란 말속에서 역설적이지만 대부분의부가 최상위 계층에게 돌아가 기회의 균등이라는 가치가 매우 손상되었다는 대중의 문제인식에 희망을, 더 나아가 경쟁을 통한 재분배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소수에 집중된 세습자본주의가 정치과정을 왜곡시키고 있으므로 민주주의가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거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물론,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주의냐 민주주의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 내재한 자본주의 역학관계속에서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합리성은 불평등의 영속을 상당히 용인하며 결코 민주적 합리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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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영화가 드러낸 이 나라 현재 경제 계급의 분리와 충돌을 똑똑히 목격하고는 피케티를 뒤늦게 읽게 되었죠. 따라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21세기 자본」은 하나의 완결된 저작으로서도 훌륭했다고 봅니다(이 책에 실린 글들은 비판이라기보다는 '보충'이겠죠. 이 모든 상세한 논점들까지 포괄했어야 '완결된 저작'이였다면 그건 불가능했겠죠). 경제와 친숙하지 않은 저 같은 독자도 쉽고 흥미롭게 읽었고요. 그러나 이 책 「애프터 피케티」는 상당히 불친절했어요. 쟁쟁한 저자가 스무 명이 넘는 만큼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서술했겠으니 아마 깊은 이해보다는 겉핥기 식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여기서 번역도 탓하고 싶네요. 각 장마다 편차가 있었는데 어떤 장은 정말 번역자가 자신이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 메타아카데미아에 대한 생각을 좀 하게 됩니다. 큰 줄기를 잡고 큰 그림을 그려보인 사람이 있고, 그 그림의 완성을 위해 어찌 보면 주변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큰 줄기와 맞닿는 문제이기도 한 보완을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가로이 시간이나 때우고 비평이나 끄적이기 위해서 이분들의 일생의 연구를 골때려가며 읽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우리들을 모두 이끌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이 가고자 하는 지향이 파악될 때(인간의 지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라도 가능하다면) 우리는 가고 있는가. 「불평등」이란 주제에 대해서 탐구하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필자들 모두의 가슴 속에 근원적인 문제 의식이 있음을 말하죠. 우리의 인식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문제의식을 더 날카롭게 정련하고... 그렇게 해서 현실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나 결국에는, 이 인식을 위한 탐구가,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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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는 과연 옳았는가?"로 시작되는 <애프터 피케티>. 피케티의 문제작 <21세기 자본>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폴 크루그먼 등 저명한 25인의 학자들이 그간의 변화에 대해 검증하고 평가하면서 피케티에 질의한다. <21세기 자본>에서 소개되었던 피케티의 주장과 증거들에 대해 <애프터 피케티>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나온 수많은 자료와 이론들에 견줘 상호 대비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적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 일으키게 한다. 차분히 읽어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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