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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대학시절 청년노동자 우리들의 하느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p10 「불온서적」
가만히 앉아 표지를 매만지는 것도 사치스러운 시기에 시집을 샀다. 그리고 딱 두 편을 눈에 새겼다. 시인 김현은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책을 펼치기 전까진 민감했던 모든 주제도 예외는 없다. 때문에 독자는 여유롭게 실소할 만한 틈이 생긴다. 그게 첫 감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상 없이는 시를 못 느꼈기에, 단 두 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 강의 시간에 쫓겨 책을 덮어뒀다. 그다음이 재밌다. 단 두 편으로 나는 온종일 웃었다. 끝을 봐야 하는 책이었다. 하나같이 ‘나’는 없다. 김현의 시에 ‘나’는 없다.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을 향할 뿐이다. 그것은 눈이 되었다가 얼굴이 되었다가, 입술이 된다. 입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말하고,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만물은 적어도 둘 이상의 기능을 한다며, 김현은 발가락 끝부터 일깨운다. 방식이 직설적일 뿐 그가 언급하는 대상은 물 흐르듯 모양을 시시각각 바꾼다.
여자와 남자는 가슴 없는 보지와 자지 달린 가슴을 전시한다 자리마다 투쟁이다 투쟁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p132 「가슴에 손을 얹고」 중
종교와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 김현의 시에는 기도와 전前 대통령이 담긴다. 영혼까지 열어 보여주는 듯한 단어만 족족 골라내어 시를 덧입힌다. 시 속에서 그들은 기도하고, 천사가 되고, 예배당에서 또다시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전 대통령은, 또 세상은 김현을 부추긴다. 불온서적이란 단어를 입술에 올리게 하고 과거를 현실 위에 떠올린다. 시위자에게 물대포를 쐈던 그 날을 끌어올린다. 그 과거를1)영혼에 동공을 만들어서까지 바라보게 한다. 세상에게 우리는 과거를 직시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아니 싸워나가는 존재기 때문에 김현은 말한다. 종교에게 성 소수자는 존재하노라고 말한다. 성별을 두고 어떤 모습으로든 이 땅에서 발 딛고 살아가고 있다고. 김현은 고한다.
2018년 1월 빛이 있는 곳에서 김현 p211 시인의 말
영혼과 빛. 김현의 시에서 ‘빛’은 그저 시어로 쓰이다가도 말과 위로를 건넨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몸을 통과한다. 그것이 참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 따스하다. 그리고 시인의 말 마지막에 스민 빛은 책의 끝을 알리는 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빛에 도달한 시인 김현의 곁에 도달하면 이 모든 고통이 매듭지어진다. 종국엔 그렇게 되리라는 김현의 빛 같은 확신이다. 그리고 김현은 누구에게도 잊힐까 걱정하듯 시 한 편, 한 편 영혼을 언급한다. 그림 하나를 조목조목 뜯어보는데 하필 추상화인 것처럼, 책을 덮기까지 수많은 영혼과 마주해 마음이 고됐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열기는 두 번째로 책을 덮었을 때도 가시질 않았다. 김현에게 영혼을 그러한 것이 아닐까. 괴로워도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 입술을 열어 꺼내놓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이미 빛에 도달해 영혼을 입에 담고, 흘러 흘러 당신도 이 어려운 걸 담아보라고 이끄는 듯한 단어. 우리는 입술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곧 추락할 입술일지라도. 어느 순간 마음을 편해질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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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과 피가 섞인 칸타타를 작곡했노라” ㅡ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5」
“한 예술가가 형상을 창조하면 그는 그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게 된다. 생각이란, 세계를 정서적으로 인지해 낸 형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예술적 형상이란 작가에게는 자신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공고물인 것이다. 생각이란 단명(短命)하지만 예술적 형상은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감수성이 있는 인간이 한 예술 작품에서 받는 인상과, 순수한 종교적 체험 사이의 유사성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ㅡ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김현, 진이정, 타르코프스키, 마크 로스코, 반 고흐를 한데 모아 찍은 저 사진에서 당신은 어떤 공통점을 보는가. 이들이 그려내는 빛 속에 강렬하게 드러나는 종교성 때문에 나는 저 사진을 찍고 말았다. 김현 《입술을 열면》에는 “영혼”과 “빛”이란 단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님”, “신”, “십자가”, “예배당”, “교회”, “성당”, “기도”, “정령”, “창조”, “사랑”, “천사”, “영원”, “진실의 종”, “운명”, “평화”, “축복”, “말씀”, “전지전능”, “은총” 등의 단어들이 계열어로 호위하고 있다. 진이정 시집이 “아트만”부터 “신령”, “굿”, “업보”, “윤회” 등 그러한 계열어로 가득했듯이. 보고 있으면서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눈(雪) 같은 의미의 폭설이다. 눈을 한 움큼 두 손에 담았다고 눈을 가졌다고 찾았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의(시인으로서도, 독자로서도) 궁지다.
인상파(印象派)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둔 미술 사조이다. 추상표현주의 거장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도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빛과 색이 더 중요하다. 정제된 시적 몽상으로 가득한 타르코프스키의 영상도 이야기와 빛이 인상깊게 엮어 있다. 김현은 언어로서만 가능한 효과를 꿈꾼다.
이 시집에 나오는 ‘빛-밤’, ‘흰-검은’, ‘생명-죽음’, ‘조선-박근혜’는 “이곳은 아주 컴컴하고 희구나. 빛이 없구나. 어둠으로 환하구나.”(「조선마음 6」)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리는 눈(雪)을 눈(目)없이 만끽할 수 없듯, 몽환 속을 걷던 잠에서 깨야 아침을 맞듯 그것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시가 아닌 것에 시간이라는 제목을 붙”(「죽음과 시간」)이고, “시간이란 그토록 유용한 넘나듦”임에도 우리는 “민숭민숭하게 늙어버”(「조선마음 8」)리는 순간만을 겪기에 시인은 계속 이어 붙인다. 신 없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듯이 없는 조선과 옛 고궁도 시인에게는 이 현실의 예배당으로 작동한다. 진이정이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갔듯이 말이다. 시간을 돌려 읽으며 “조선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말하게 되어 버리는 우리가 읽지 못하는 현상(시간, 나, 세계 등등)을 멈춰 가져오는 게 그의 시적 방법론 같다. 그렇기에 그의 인용과 차용과 각주가 넘치는 ‘캠프적 작법’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끝에 가서는 이해가 됐다. 그리고 단순히 방법론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타르코프스키의 걸작 중 하나인 《희생》의 주인공 알렉산더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광인’이 되어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듯이 김현 시인도 기꺼이 그러하리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술가로서 나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 광기는 누구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시인의 말」) 중)
“예술에 있어서는 개성이 진실임을 판명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좀더 보편적이고 좀더 높은 이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예술가란 자기 자신에게 마치 기적과 같이 부여된 재능에 대해 소위 관세를 물어야만 하는 하인이다. 진정한 개성이란 오로지 희생을 통해 얻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ㅡ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희생의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은 “빛은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나는 그것이 최초도 최후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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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28 입술을 열어 어떤 말을 하는가 ― 입술을 열면 김현 창비, 2018.2.10. 뱃살이 늘어간다 그걸 평화라고 부를 수 있겠지 뱃살의 평화 (빛의 뱃살/30쪽)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하고 입술을 엽니다. 저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래, 즐겁게 꿈을 꾸었니?” 하고 입술을 엽니다. 말을 하려면 입술을 엽니다. 입술을 열지 않고서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 속으로 꿍얼거리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제대로 생각을 나누어 말을 섞자면 입술을 제대로 열어야 합니다. 그게 어느새 / 늙어버린 우리 얼굴 // 견딜 수 없는 / 얼굴을 사이에 두고 // 우리는 우리를 본다 / 우리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조선마음 11/51쪽) 입술은 곱게 열 수 있습니다. 곱게 여는 입술로 곱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입술은 밉게 열 수 있겠지요. 밉게 여는 입술로 밉게 가시 돋힌 이야기를 퍼부울 수 있어요. 겉보기로는 입술을 여는 똑같은 모습일 테지만, 우리 마음에 따라서 말씨가 사뭇 다릅니다. 서로 즐거운 입술짓이 될 수 있으나, 서로 지치거나 싫은 입술질이 될 수 있어요. 물은 딱딱한 돌 / 한번에 여러번 죽어간 인간들을 보면 알 수 있지 // 보릿자루를 풀었다 / 묶었다가 // 하루아침에 생명을 다 썼다 (무서운 꿈/122쪽) 김현 님 시집을 읽습니다. 마치 영화처럼 꾸미고 싶었다는 《입술을 열면》(김현, 창비, 2018)입니다. 시마다 글이름에 어깨무늬를 달고서 끝자락에 덧말을 붙여요. 시는 시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덧말에는 덧말대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시 한 꼭지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섞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시 한 꼭지에 달리는 두 가지 이야기를 나란히 읽어도 되고, 하나만 읽어도 됩니다. 둘을 함께 살펴도 좋고, 하나만 살펴도 좋습니다. 시를 쓴 분은 우리가 영화를 보며 저마다 좋아하는 흐름을 살피거나 좇듯, 시를 읽을 적에도 ‘시를 쓴 마음을 읽’되 ‘시를 읽는 우리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를 새롭게 헤아리며 읽’기를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귀에 대고 말을 하면 / 말은 귀에 담긴다 // 내 입술이 / 네 귀와 가까워지려는 말 (귓속말/166쪽) 새로운 틀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가 흐르는 《입술을 열면》을 읽으면서 때때로 놀라기도 합니다. 시인은 살섞기하고 얽힌 낱말을 갑자기 거침없이 풀어놓기도 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김현 시인은 이 시집하고 《질문 있습니다》라는 산문책을 나란히 내놓았습니다. 김현 시인이 쓴 산문책은 ‘문단 성폭력’을 비롯한, 우리 사회 한켠에 꽁꽁 감춰진 이야기를 낱낱이 풀어내는 책이라지요. 시인이라는 자리에 앞서 평등하고 인권을 살피고픈 활동가로 지켜보고 맞닥뜨린 아픔이랑 생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책이라 하고요. 산문책에서는 이 땅 한켠에서 아프거나 괴로운 이웃이 얼마나 아프거나 괴로운가를 줄줄이 풀어내는 글로 들려준다면, 시집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여러 눈으로 바라보자는 뜻을 어깨무늬+덧말로 그린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는 일요일 아침을 세계화하는 데 쓴다 그림일기는 꼬맹이들의 몫 아이의 왼쪽 팔 옆에는 딸기스무디가 엄마와 형이 있고 아이는 영양가 있는 세계라는 말을 배워서 곧이곧대로 사용한다 어른들은 영양가라는 말에 사족을 못 쓴다 (일요일 아침 태현이는/135쪽) 김현 시인이 들려주는 시는 꽤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이란 글재주를 부려서 어렵다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일요일 아침 태현이’가 겪는 하루처럼 입시·대학·점수·돈·취업 같은 데에 얽매여 아이들을 다그치는 몸짓에서 비롯했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아이들은 어른이 쓰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씁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보는 새소식을 같이 지켜보며 방송이나 신문에 흐르는 말을 하나하나 받아들여서 씁니다. 아이들은 시사상식을 살펴서 받아들이고, 사회비평을 하며 논술을 하는 훈련을 학교나 학원에서 해요. 아이들 입에서 ‘세계화·영양가 있는 세계’ 같은 말마디가 아무렇지 않게 흐른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입술을 어떻게 열어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입술을 언제 어떻게 열어야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입술을 언제 어떻게 왜 열면서 어떤 말로 이야기를 지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입술을 열기 앞서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면서 생각을 열며, 입술·마음·생각을 열며 사랑도 함께 열 줄 아는 어른으로 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2018.3.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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