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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라는 것은 '젊은 상태. 또는 젊은 기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육체적만을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의 사전적 의미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는 시기에 있는 사람. 나이가 20대 정도인 남자를 이르나 때로는 그 시기에 있는 여자를 포함해서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젊음을 지닌 청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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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들을 읽고 있다. 그들을 한 가지 측면으로 모아 읽고 있다. 국제정치학과 전쟁의 권위자인 하영선 교수의 눈을 통해 250년 정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수재들의 이야기들이다. 그것들을 복합파란 말을 통해 제시해 나간다.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한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00년대의 이야기가 2000년대에도 통용되는 이유를 복합이란 말로 설명하면서 8명의 인물을 연결하고 있다. 참으로 공감이 간다. 연암과 다산은 너무도 많이 읽혀진 분들이다. 다양한 저서도 그렇고, 그들의 행적도 인구에 회자되었다. 숱한 논문이 그들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제시되었고, 다양한 각도로 연구가 되었다. 한 인물에 대해 수천의 논문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만큼 출중함이 따랐다는 말이다. 문학에 대해서,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해서까지 다양하게 언급된 그들의 업적이 또 다룰 내용이 있을까 저어한다면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정말 그럴 듯하다. 그들을 다룬다는 것은 너무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글은 이들의 일을 군사학적인, 정치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고 있는 형태를 보인다. 연암의 경우는 청조 대외 정책의 복합성에 연암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적고 있다. 청조는 열하라는 곳에서 청 황제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몽골을 대등한 입장에 두고 위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오랑캐라고 치부하여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제갈량의 칠종칠금하는 지혜를 보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연암은 이 열하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의 저서가 연경을 다녀온 기록이면서 연경에서 숱한 시간을 가야하는 열하를 제명으로 삼은 것도 그런 뜻이라고 보여 진다. 그래서 돌아와서도 연암은 북벌의 허구성을 제언하면서 청을 배우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산도 마찬가지다. 다산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1표2서를 먼저 읽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편지나 잡문 등을 읽을 때 다산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고, 그 깊이에 따라 1표2서를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산이 다양한 개혁 정책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정리하는데 그친 것은 정조와의 이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정조를 통해 그의 새로운 사고를 국가적인 정책으로 옮겨보고자 한 강한 소망이 정조의 죽음으로 갇히게 되고, 강진으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시행하고자 했던 무수한 정책들을 언어로 옮기게 된다. 그것이 그의 위대한 문서 업적으로 나타났다. 그의 세상을 다스려 나가고자 했던 왕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실제적인 능력을 염두에 두는 통치, 다스림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연암과 연결성을 지니게 된다. 책은 강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8개의 강의가 복합파라는 하나의 주제 속에 8명의 인물들을 연결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다. 복합파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8시간의 강의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데, 그 사이에 인물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그들의 삶과 업적을 그려 나간다. 개화기 사상과 정치적 기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강의가 재미가 있다.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들을 모아놓고 있다. 세 번째 네 번째는 박규수와 유길준을 제시하고 있다. 박규수는 박지원의 손자다. 그는 정치적으론 효명태자와 관련이 많다. 효명태자가 짧은 시간에 죽자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많이 좁아지는 상황을 겪는다. 그러나 후에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많은 개화 지식인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감당한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을 그의 사랑방에서 길러내고, 갑오개혁의 주인공들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규수는 북학이라는 연암의 사상에서 그리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서구 세력들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동양의 틀 속에서 그들을 인식하고, 결국은 그들을 변화의 중심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동양의 사상 속에서 기반을 두고 서구의 것들은 필요한 부분만 수용해 나가는 이론을 세운다. 그런데 그것이 획기적인 변화의 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갑오개혁의 주인공들이 성장하면서 무한한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만나는 세계는 벌써 서구의 모든 것들이 우위를 점하면서 급격하게 우리의 모든 삶을 바꿀 것을 요구해 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길준은 문화의 내습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유길준은 양절 체제론이란 것을 주장하게 된다. 복합파적인 사고다. 전통과 근대를 함께 공유하겠다는 생각, 청국과의 관계도 일본 서구와의 관계도 다 맺어나가는 주의다. 그런 사고가 아마 한 쪽을 선택하여 그들의 정치, 경제를 개혁해 지배 국가로 발돋움한 일본과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되고, 반도 내에서 이국들의 전쟁을 가져오게 된 사고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유길준으로선 참으로 실행하기 힘들었던 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이 후 일제시대 조선어학회 사건의 제정을 도왔다는 일 때문에 옥고를 치른 김양수를 이야기하고, 자주적 세계화를 내걸고 활동을 했던 민세 안재홍을 거론한다. 또 저자의 스승이요 일반국제 정치학을 오래 연구하셨던 이용희 선생을 제시한다. 저자는 분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까지 생각을 하는, 이용희의 학문에 매료된 사람이다. 그리고 8강의에는 자신의 복합파와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미국 독주의 세계가 열릴 듯하던 세상이 다원주의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많은 국가들의 다양한 갈등이 문제가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국제 관계는 다양성을 띌 수밖에 없어졌다. 그 다양화된 세상을 인정하고 다각도의 관계를 모색하는 사회를 이루어가는 것이 목합파의 주된 논점이다. 어느 하나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비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론이 작가의 복합파적인 사고다. 이때까지 다양하게 제시된 복합파적인 요소의 실패를 극복하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정치 일선에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활약해야 함을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관계를 복합적인 관계로 보고 관계 조절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논리다. 정말 다양성이 요구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다각도로 나타나는 세계의 관계이고 모든 면에서 그렇게 되는 모습의 세상이다. 다방면의 다양한 사고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서 해결되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은 특히 한 면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많은 것들의 조화가 세상을 이루어나가는 원리가 될 때, 보다 나은 관계 설정이 되고 건강한 나라, 민족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젊은 선각자들의 삶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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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이 구절은 올해 초 나온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에서 내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부분이다. 이 인상적인 구절을 읽고 나는 정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우리 사회의 정치 혐오 또는 정치에 대한 복합 심리는 유명하다. 사회가 개선되기를 바라면서 정작 정치나 정치인들을 혐오하거나 합의나 절차를 불편해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만청(晩靑) 하영선 교수(河英善:1947 - )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을 처음 접했을 때도 나는 정치에 대한 일련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가졌었다. 연암(燕巖) 박지원, 다산(茶山) 정약용 등 내가 좋아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정치학자의 관점에 대해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정서를 가졌었다. 연암이나 다산,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정조(正祖)의 좌절을 보며 나는 우리 역사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것은 나만에 한(限)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은 결국 조선의 정치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것은 “정치 없이 인간 사회의 평화와 안전, 복리를 이룰 수 없고, 정치 없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진작시키기 어렵다.”는 박상훈의 말이 아니라 해도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런데 조선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조선의 정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치환(置換)하는 데에는 한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조선의 군주나 사대부들에게 평화와 안전, 자유와 평등 등의 개념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위민(爲民)은 있었지만 민권(民權)은 없었다는 평을 받는 다산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런 의문은 타당한 듯 보인다. 우리는 과도한 성리학 중심주의의 폐단을 극복하지 못한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실학과 갑신정변(1884년) 중 하나만이라도 성공했다면, 아니 정조가 사망한 1800년부터 (우리를 식민지배한)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켜 우리를 침략할 발판을 마련한 1868년까지의 60여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흔히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고 지금 여기와 관련해 의미가 궁구(窮究)되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 1807 - 1876),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 1856 - 1914), 약영(若瓔) 김양수(金良洙: 1896 - 1969),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1891 - 1965), 동주(東洲) 이용희(李用熙: 1917 - 1997) 등 18세기 실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에 이르는 주요 선각자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은 냉엄한 현실 세계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실리적으로 보게 하는 책이다. (책의 전면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복합파로 소개된 분은 하영선 교수이다.) 그러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은 주의해서 보아야 할 몇 가지 이슈를 지니고 있다. 복합이라는 개념, 역사 속 인물들의 문제의식과 21세기의 문제의식을 연결하는 것, 개인사와 정치사의 긴밀한 연관성을 놓치지 않는 것 등이다. 개인과 정치의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보여주는 대목은 연암이나 다산, 구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호방하고 활달한 문체로 해학적인 글을 많이 남긴 연암이 세상을 자주 향원(鄕員: 사이비 세상, 가짜 세상)이라 부른 것은 남다른 예민함으로 인해 앓았던 심병(心病: 우울증)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다. 좌절한 개혁의 명분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경학(經學)을 연구한 다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산은 주희(朱熹)의 숙명론을 거부했는데 그것은 그에게 중요했던 것이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실천을 통해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유배지에서 다산이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정조와 함께 펼쳐 보려다 못 이룬 꿈을 글로라도 현실화해 보려는 절규였다는 저자의 지적 역시 차원이 같다. 1875년에 완성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평을 받는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개인 역량의 한계가 아닌 3중고의 시대 상황에서 가택 연금을 당한 채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저자 하영선 교수는 20대의 10년을 루소의 책들과 씨름했던 정치학자이다. 그런 그가 정치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정치를 전공한 저자 개인의 이력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선각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시각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정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그가 정치학자여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신이 연암, 다산, 환재 등 선각자들을 지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은 국제 정치 역학의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과정, 새롭게 변화하는 21세기를 공부하는 과정 등을 통해 복합적으로 형성되었다. 이 국제 정치 역학이란 군사와 경제 양면에서 중국이 보이는 괄목한 말한 부상(浮上)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복합이란 개념은 하이브리드적 사고 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책 전편을 가로지르는 주요 개념이다. 그것은 ‘민족주의 + 지구주의 = 복합주의’라는 등식을 통해 보듯 상반되는 두 가지 노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 가장 현명하고 명확하게 복합적 시각을 보여준 예는 소프트 파워와 네트워크 외교를 결합해 대청 외교를 펼칠 것을 주장한 연암이다. 연암은 소박한 의미에서 청(淸)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북벌론(北伐論)에서 벗어나 그 둘을 결합해 살아남기 위해 복합 전략을 제시했다. 중국과 서양을 동시에 품자는 구당의 양절체제론(兩截體制論)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19세기에 이미 맹목적인 국제화를 경계했던 구당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우리에게 동아시아, 한반도, 지구, 사이버 공간, 국내의 5중 네트워크를 짜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의 좌표를 의식하게 해준다. 변화는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의 변화는 그 어떤 떄보다 질적으로 다른 듯 하다. 영의정을 지낸 말년의 환재(연암의 손자)가 박영효(1861 - 1939), 홍영식(1855 - 1884), 서광범(1859 - 1897), 유길준 등에게 개화사상을 가르친 박규수 사랑방의 좌장(座長)을 맡았었듯 저자는 정치 학술 포럼인 여의도 사랑방을 이끌고 있다. 그의 복합론은 통합이나 융섭보다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복잡계(Complex System)에서 비롯된 용어로 근대와 탈근대의 혼재,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과도기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개념이다.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의 타겟은 복합적이다. 그것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권력이기도 하고 역사 속의 젊은 우리들이기도 하다. 역사 속 젊은 우리들이란 역사 속 젊은 그들의 좌절한 꿈을 계승해야 할 세대를 말한다. 저자는 21세기의 복합은 실패로 끝난 19세기나 20세기의 복합과는 다르다는 말을 한다.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은 개혁적이었던 젊은 그들과의 역사적 대화이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학문적 성과와 정치사상적 배경의 연관성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역사 속의 젊은 그대'는 좋은 책이란 기존의 틀을 깨는 책, 이슈를 제기하는 책임을 재확인 하게 해주었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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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불투명한 미래는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여, 많은 정치가, 사회학자, 철학자를 비롯한 학문을 하는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미래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현실적 요소들을 분석하며 전망을 내놓는다. 그렇게 내놓은 전망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희망적으로 설계하는데 실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이 현실의 분석을 잘못했거나 내놓은 전망이 불투명할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도 이를 바탕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그러한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정치현실이든 학문의 일선에 서서 장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고 그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평가하는 기준과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보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는 과거를 무시하고는 현재는 없으며 미래역시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무엇을 봐야 할까?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하영선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 바로 그런 예시를 제시하는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18세기부터 시작하여 지금 오늘의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하영선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복잡한 현실 국제정치의 맥을 잡아내며 미래를 전망할 것인가이다. 하여, 하영선이 주목하는 사람은 18세기 박지원, 19세기 정약용, 20세기 조선말과 일제시기 박규수, 유길준, 김양수, 그리고 해방이후 안재홍, 그리고 현대에 이용희와 복합파에 이른다. 이 흐름 속에 일정한 맥이 있으며 그 맥이 바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전망하는 시각을 찾아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18세기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담고 있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주목하며 또한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 속에 나타나 있는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의 전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왜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났는지 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제치하, 해방정국과 미군정을 지나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살핀다. 또한, 저자 하영선이 각각의 인물들과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의 고민과 저자의 고민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그가 주목하는 인물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며 이미 많은 연구가 된 박지원이나 정약용 같은 사람도 있지만 김양수나 이용희 같은 생소한 사람도 있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흥미로움도 있다. 저자 하영선의 전공은 정치학이다. 정치학은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국가 간의 힘의 관계나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기에 이렇게 역사 속의 사람들을 찾아 그가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열악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세계열강에 둘러싸인 젊은 그들은 어떻게 외교 강국의 길을 찾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실리를 추구하는 국가 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 또한 현실과 유리되어 찾을 수 없는 것이리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일본의 막강한 세력 사이에 위치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여 그들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현실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 책의 요지라 여겨진다. 그가 주목하는 방안으로 ‘복합’이라는 용어가 있다.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이차원이나 삼차원이 아닌 다차원의 복합 성향을 가지기에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희망으로 밝혀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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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선 저 | 을유문화사 | 400쪽 | 711g | 153*224mm | 2011년 10월 15일 | 정가 : 15,000원
[열하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글을 글로만 읽어서 될 것이 아니라 시대 그리고 사상, 글쓴이의 상황 등을 여러가지 살펴볼 필요가 사실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때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 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추천해준 그 지인께 감사한다. 내가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리뷰는 쓰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글을 읽어내었지 내용까지 읽어내었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남들이 공부하고 독서할때 제대로 놀지도 못했으면서 허송세월 보낸 것이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참으로 아쉽다. 역사와 인물, 그리고 시대를 조금 더 이해하고 있었다면 수월하게 읽고,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든다. 이 책은 시대순으로 나열된 여덟명의 인물에 대해 저자가 그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만남]와, 그리고 저자가 살펴본 그들의 인생[삶]을 이야기 하고, 그들이 그 시대에 생각[앎]했던 것들을 풀어내는 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책에 나온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을 이해하고 친해지기 위한 가이드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사를 수박 겉 핥았던 나는 밖으로만 빙빙 돌았다. 단, 최근에 연암선생과 다산선생의 글을 좀 읽었다고 이분들의 이야기는 그나마 좀 읽혔다. 아는 만큼 읽힌다.이 책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글 사이에 깨알 같이 박혀 있는 복함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국제정치와 연암선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달리 할 수 있을 듯 하다.
책 상태는 좋다. 강의록을 옮긴 것임에도 산만하지 않고 정리된 느낌인데 책도 그 정리된 느낌을 잘 옮긴 듯 하다. 적절하게 사진도 포함하고 있어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인사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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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젊은 그들/하영선/을유문화사 국제 정치학자인 저자가 전공 분야와는 색다른 주제로 강연을 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8명의 ‘젊은 그들’(?)을 소개하고 있다. 18세기 북학파에 속하는 연암 박지원으로부터 정약용, 박규수, 유길준, 김양수, 안재홍, 이용희, 그리고 복합파를 자처하는 저자 자신이다. 삶 자체의 중요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지난 250년 동안 한반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커다란 변화를 읽고 또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현실의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인물의 선정 기준을 밝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 세대에 꿈이 전달되는 사회는 살아남고, 꿈이 끊어지는 사회는 자동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진실을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독자들에게는 반드시 국제 정치학이나 외국과 관련된 전문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여덟 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삶과 앎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로 삼길 바라고 있다. 박지원에서 이용희에 이르는 선각적인 ‘젊은 그들’의 사상이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해석한다. 북학파의 대표 주자인 연암 박지원은 당시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명과 청 사이에서 장점만을 취해 발전시키자는 균형적인 사상을 연암집과 허생전에서 주장하고 있다. 정약용 역시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개혁가로서 활동했지만 그의 포부는 정조의 죽음으로 저서 속에서 꽃 피울 수밖에 없었다. 진취적인 이상과 꿈을 가졌던 박규수와 유길준도 열강의 각축 속에서 끝내 좌절하였고 김양수의 시대를 앞서간 국제적 시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전은 옳았으나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국제 역량의 장악과 활용에 실패한 민세 안재홍의 좌절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에서 거론한 ‘젊은 그들’은 하나 같이 현실 속에서 실패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그 대열에 자신의 스승 이용희를 왜 합류시켰을까? 그것은 스승 이용희로부터 시작된 한국 국제 정치학파가 ‘복합파’를 자처하는 자신으로 이어져 연암으로부터 시작된 선각자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전개와 역사의식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속내를 숨기기 위해서 옛것을 적되 새것을 짓지 않는다는 술이부작의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공자의 겸손을 빌어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를 말하는 ‘복합파’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해석을 할 수 있는 역량은 가지지 못했지만, 이념과 국경을 뛰어 넘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오늘의 국제정세는, 복합적인 시선과 판단으로 해석해야만 바르게 볼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된다. 차라리 앞의 여섯 명은 ‘역사 속의 젊은 그들’로, 이용희와 자신의 강의 부분은 부제처럼 ‘21세기 한국의 복합파’라는 별도의 제목으로 엮는 것이 괜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연구를 더 빛나게 하는 타당한 편집이라고 보인다. 그동안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약영 김양수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긍정적인 해석을 한 부분은 큰 성과이며 학계에 던진 또 하나의 화두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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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영선 저, 역사 속의 젊은 그들 :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 나에게는 다소 낯선 외교사라는 분야의 책을 읽었다. 주제도 낯설었지만 저자는 더욱 낯설었다. 가끔씩 엉터리 저자의 엉터리 책을 읽게 되는데 혹시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저자와 관련된 사항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저자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국제관계학 분야에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일간 신문에도 오랫동안 칼럼을 썼다는 내용이 나왔다. 엉터리 책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00%는 아니지만 연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으니 그래도 괜찮은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을 읽어보니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강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책의 초반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외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을 소개해 준다는 내용을 서문에 써주었다면 책을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제목에도 서문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이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이 어떤 부류의 책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제목은 책의 얼굴인데 여기서도 제목이 너무 불친절하다. 책의 제목이 너무 어렵고 딱딱하면 판매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라는 제목은 너무 포괄적이고,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라는 부제목은 너무 세부적이다. 한국 외교와 관련된 내용이 제목이나 부제목에 들어갔다면 책을 이해하기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우리나라 외교사를 주요 인물 8명을 통해서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펴야할지 이야기 하고 있다. 앞의 4단원은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박규수, 유길준 등 역사책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이 어떤 외교 정책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술 방식은 딱딱하게 핵심 내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인물의 생애를 통해서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천천히 설명하고 있다. 그 덕분에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을 크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앞의 네 명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뒤의 네 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앞의 앞부분의 네 명에 비해 뒷부분의 네 명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은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뒷부분의 네 명을 박지원이나 정약용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인지도나 중요도 측면에서 약간 무리가 따르는 듯하다. 단원명을 인물이 아닌 그들의 사상이나 정책 방향만을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7장과 8장에서 저자와 저자의 스승을 자화자찬한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저자가 자기의 생각을 강조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약간은 그런 내용을 숨기는 것이 미덕인데, 노골적으로 자기 스승과 주변 사람들 자랑을 하고 있으니 읽으면서 민망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점을 제외하고는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우리나라를 단지 사회적, 경제적으로만 이해하는 책을 자주 읽다가 외교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었다는 점이 도움이 된다. 박지원, 정약용 등 조선 후기 인물들 외에도 일제 강점기 시기와 해방 이후 시기의 인물들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국제 정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에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하는 자세나 방법에 관해서도 도움이 되는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저자가 8장에서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에 관한 내용이다. 8장에서 저자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취해야할 외교 정책의 방향을 설명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필요한 외교 전략은 일방적인 미국 의존적 외교 정책보다는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다차원적 외교 정책의 필요성이 높다는 내용에 공감이 간다. 또한 북한의 외교 전략을 이해하는데 저자는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일반 언론은 북한의 주장을 설명도 안하고 비판만 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북한의 외교적 의도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외교적 관점에서 북한이 왜 그러한 외교 전략을 펴는지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외교사와 현재의 남북한 및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외교 관련 분야에 대한 책은 처음 읽어보는 터라 뭐라 평하기는 어렵지만 나 같은 문외한도 어렵게 읽지 않을 수 있고 오늘날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외교사와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 이해에 관한 도움을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