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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의 집은 자연이다. 보노보를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지 모르겠다.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유인원의 하나이다. 초기에는 그냥 침팬지의 한 종류로 알려져 있었지만, 다른 유인원으로 밝혀졌다. 이 보노보가 알려진것은 그들의 사회 속에서의 성생활(성의 역활)로 우리에게 호색한 유인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인간의 기준이다. 우리는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자연계에는 대부분 동물들은 오직 자손을 얻기 위해서 교미를 하나 몇몇 유인원들은 그렇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침팬지가 채식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동물원에서 침팬지들에게 채소, 과일 등을 주었고, 그것을 먹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렇게 알려졌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침팬지는 아주 흉악한 동물(인간과 더불어 폭력적인)로 사냥을 통한 육식과 전쟁을 일삼는다. 물론 이것도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이지만, 보노보들은 모계중심의 사회를 이루며 아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 교육에서는 인간만이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 다른 동물들과 구별을 하였다. 그러나 연구결과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들이 제법 있어서, 더 이상 이런 구분이 인간의 특징이 될 수 없다. 최근 연구에서는 유인원류, 돌고래 등도 동료의 죽음을 인지하고 슬퍼하는 장면이 가끔 언급된다. 과연 인간만이 동정심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일까
보노보는 언어를 가진 지적 존재(?), 언어능력 보다는 지능을 가진 존재이다. 배움에서 다른 유인원보다 빠르고, 배움이 깊고, 뛰어났고, 평화로운 동물이다. 처음에 이 책이 보보노에 대한 과학소설(?)이라고 추측했다. 516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이지만, 읽기에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술술 넘어가는 책이다. 손에 땀을 쥐고 읽을 그런 요소는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한 것 같다. 6마리의 보노보와 이사벨(생물학자)과 존(기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군상들의 모습들이 보노보보다 못하다는 느낌도 받지만, 인간도 인간 나름이기에 여전히 사랑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것 같다. 보노보를 연구하는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 화재에 음모가 숨어있다. 이 음모가 풀려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보노보의 집이 만들어지고, 24시간 생중계된다. “사람들은 보보노의 섹스에 대해 매력과 불편함을 모두 느꼈다.”. 보노보들은 생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흥미거리도 전락했다. 보노보들의 인간언어의 이해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잠시간이었다. 의외로 보노보의 출산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을 보면서, 역시 인간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욕구보다 근원적인 욕구라는 것”라고 할 수 있을지. 이 보노보의 집을 실타래로해서 사건은 풀어져간다. 보노보의 기억력으로 찾은 범인 많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인간의 탐욕과 인간의 지성 과연 우리는 보노보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흥미를 올리기 위해서 제공된 총과 술, 인간을 미치게 하는 요소들이지만, 보노보들은 던져 버린다. “이 보노보들이 인간의 언어에 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법원은 보노보의 증언을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론의 법정에서는 분명히 증원할 수 있을 겁니다.”로 사건은 마무리 된다. 그렇게 강한 주제와 사건을 없지만, 나름 많은 가르침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 똑똑한 보노보들도 자연상태에서 점점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이대로 가면 금방 멸종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탐욕적인 개발로 그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져가기에. 이 지구상에서 인간은 유일한 지적생명체가 아니다. 최근 연구로 점점 많은 생물들의 지성이 밝혀지고 있다. 단지 인간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의 척도가 생기는 것 아닐까? 과연 유인원이나 동물들에게 생체실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과 동물의 공통적인 병이 아주 적어 이 동물실험은 서서히 줄어 들어가고 있다. 영장류 동물의 존엄과 자율 그리고 삶의 질을 고민하라고 한다. 단지 영장류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져 봄직하다. 인간의 탐욕은 같은 인간을 헤치고, 사랑이라고 위장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존과 아만다 부부의 삶에서 사랑이란을 조금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생활 속에서 서로가 있기에 서로를 위해서 나아가는 사랑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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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의 집을 난 정말 보노보노의 이야기로 알았다. 사실 사람이란 늘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나 역시 늘 그런 생각의 오류를 가져온다.보노보에 무지했기에 보노보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고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보노보가 매춘하는 동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관점의 차이이다. 보노보가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것만을 두고 명명한 관점이고 사실 보노보는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침팬지의 무리들과는 달리 아주 평화로운 모계사회를 형성한 유일한 유인원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한 정의이다. 게다가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닮은 유인원이다. 직립보행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의 유전자와는 99% 동질이고 단 1%미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침팬지, 보노보, 네안데르탈인 , 인류 모두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다. ) 그러나 그런 보노보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보노보의 집>은 새러 그루언이 멸종위기인 보노보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보노보에 대한 경각심과 사랑을 가지길 원하는 마음에 집필했다고 한다. 거의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집필된 이 이야기는 다양한 사건들을 무척 생생하게 다루는 동시에 가족의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동시에 동물학대에 관한 경종을 울리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기자인 존이 보노보의 취재를 위해 켄자스대학교 영장류언어연구소 이사벨 박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이사벨과 가족같이 지내는 여섯의 보노보들과 핑크머리염색의 조교 실리아와의 만남이 이들의 첫만남이다. 그러나 이 만남이후 가족과 같은 애정으로 보노보를 돌보는 이사벨박사에 흥미를 느꼈던 존은 이사벨박사를 오랫동안 다시 만나게 되지 못할 줄은 몰랐다. 다음날 영장류언어연구소가 지구해방연맹이라는 테러집단에 의해 동물의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에 가해진 테러로 연구소의 여러사람이 죽고 이사벨박사는 크게 다친데다가 보노보들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보노보의 취재를 한 기사를 동료 캣에게 빼앗기고 신문사에서는 짤리고 소설가를 꿈꾸는 아내 아만다는 실업상황인 상태에서 존과 아만다의 부부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더불어 그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존의 부모님과 아만다의 부모님이다. 가족관계의 대립과 갈등속에서 존은 철없는 아내 아만다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욕에 직장을 구해 떠나게 되자 결국 자신도 아만다를 따라 뉴욕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게 되는데 마음속에서는 보노보에 대한 생각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보노보의 집이 상영되는 것을 보고 보노보의 취재를 다시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인다.
턱관절이 나가고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부러져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고 화상을 입은데다가 얼굴엔 수술자국,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온 몸에는 멍을 단 채로 생활하게 된 이사벨은 보노보의 행방을 알수 없자 초조해지고 불법해킹까지 하며 보노보를 찾지만 소식을 알수 없어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 포르노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보노보의 집>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보노보의 모계사회에서 수컷들을 통제하기 위해 성행위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과정에서 보노보의 끊임없는 성교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엄청남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보노보의 집이 선정성으로 인해 방송비를 지불해야 함에도 보노보의 집은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결국 그들이 수화로 대화를 하는 것을 눈치챈 방송관계자들은 그들의 수화를 말풍선을 만들어 방영하기까지 한다. 임신한 마케나는 아기가 나올 때가 되자 본지에게 이사벨을 불러달라고 애원하고 이사벨은 방송을 통해 보노보들이 자신을 애타게 찾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불법해킹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포르노 방송사와 약혼자 피터가 공모하여 보노보들을 빼돌리고 영장류연구소를 테러한 장본인들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 이사벨은 약혼자 피터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현재 방영되는 보노보의 집의 심각한 위생상태와 함께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보노보를 되찾기 위해 삼류잡지기자가 된 존에게 모든 정보를 보낸다.
필라델피아 동물원에 화재가 일어나 침팬지 우리안에 아이가 떨어지자 한 고릴라가 아이를 주워 건네주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 사람들은 고릴라의 행동이 동물원에서 배운 안전교육에 의한 행동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법으로 규정해도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안전교육인데 설마 동물들에게 엄청난 수고를 하면서까지 안전교육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보노보는 인간과의 친화를 위해 인간의 언어를 배웠지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월함과 거만함으로 보노보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침팬지와 같은 종이지만 새끼를 갈갈이 찢어죽이는 수컷의 잔인함을 다스리기 위해 모계사회를 구축하여 평화라는 공존의 방법을 터득한 보노보는 미국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고 동물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보노보를 매춘하는 동물로 보든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보든 그것은 우리가 보고싶은 것에 달려 있다.. <보노보의 집>은 동물과 인간의 사랑뿐만아니라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의 내면갈등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가족소설로 볼 수도 있는 아주 재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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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보노보의 집>은 올해 영화로 만들어진 <워터포엘러펀트>를 쓴 새러 그루언의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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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이해가 담긴 소설로 그들을 향한 사회적 보호와 사랑이 촉구되길 바라는 새러 그루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동물에 대한 사랑과 그 책임감에 대한 부피를 소설로 풀어내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탁월한 듯 하다. 워낙 귀얇은 나이기에 쉽게 감화되어버렸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윤리의 부재 속에 자행되어지는 폭력적 행위와 결과들이 만연한 가운데 작고 힘은 없지만 행위로서 이상적인 조직을 보여주는 <보노보의 집>에서 새러 그루언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보노보의 집>을 통해 쉽고 확실하게 미래에 대한 비폭력적 윤리의식과 동물들에 대한 인도적인 체재를 바라게 된다.
침팬지와 비슷한 외관이지만 좀 더 작고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인 보노보들. 워낙 문외한이라 몰랐는데 침팬지는 다소 공격적 성향이 있다는데 보노보들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사회는 웃음짓게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든 요인 중의 하나란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사랑과 평화를 전달하는 존재들이 더 많은 보호와 관심 속에 평안해야하는데 강한자가 존재를 더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반증인 것 같이 못내 씁쓸하다.
<보노보의 집>에서는 보노보에 대해 알아가며 그들에 대한 보호를 각성하게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저술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과 흡사한 생명체들과의 교류, 또 그들간의 작은 세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를 반추하게 된다. 관계와 관계의 끊임없는 연속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연속에 대한 자연스러움과 책임을 느끼기에 권리에 대한 의무감과 박애주의를 고취시킨다.
곳곳에 녹아있는 섬세한 캐릭터들에 대한 설정은 작품 안에 새러 그루언의 보노보에 대한 관찰로 생긴 그들과의 유대가 어느정도 녹아있으리라 짐작 된다. 단지 문제를 환기시키는데만 그친다면 소설로서의 매력이 없겠지만 타고난 소설가적 면모를 보여 긴장감을 부여해 <보노보의 집>에 감칠맛을 돌게 했다. 손에 들자마자 어느새 결말을 접하게 될 것이다. 재미로 읽어들어가서 새로운 개체대 대한 이해와 그들에 대한 의무감, 인간사회 내에서의 관계에 대해 반추하는 독서였다.
(이 서평은 두드림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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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소설책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제인 구달의 책처럼 <보노노>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어 '동물학대'에 대한 끔찍한 일을 새삼 일깨워주고, 사람과 동물은 모두 존중받아야할 소중한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보고서> 형식의 책일 거라고 찰떡같이 믿었더랬다. 그런데 그런 책치고는 시작이 이상하다싶더니 뒤늦게 이 책은 소설책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실망했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소설형식을 띠긴 했으나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답시고 학대와 학살을 자행하는 내용을 담은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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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는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유인원을 말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칭해지는 동물이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다. 어느 공간에 이들이 보호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어 살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울타리를 만들어 두고 그곳에서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동물로 취급하는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곳에 들어가 이들과 함께 기족이 되어 대화를 하고 살아가는 이사벨 박사의 이야기도 함께한다. 즉 이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의 생활을 관리해 주는 내용이 전개된다. 그런데 일부 동물애호주의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동물 학대를 하는 장소로 여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이사벨 박사와 보노보들이 함께 살고 있던 공간에 폭발 사건이 일어난다. 우선은 시위자들이 의심을 받는다. 이 글은 그 폭발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보노보를 보호하면서 함께 살던 이사벨 박사는 크게 다친다. 그리고 보노보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이 보노보를 취재하던 존이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 그의 아내와 함께 기자로서의 사명감으로 보노보의 행방을 추적하고,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 노력한다. 한편 이사벨 박사도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보노보들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그러면서 폭발 사건을 일으킨 자들이 누구인지 찾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존은 회사에서 이 일이 다른 자에 의해서 기사화 되어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한다. 진실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사벨과 연결이 되고 함께 그 폭발 사건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사실 그 사건은 어느 조직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일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들은 보노보를 획득하여 그들의 생활공간을 화면으로 제공하면서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들이 ‘보노보의 집’이란 공간을 만들게 되고, 그곳을 화면으로 찍어 방영을 하게 된다. 그들은 보노보들을 존재 가치를 가진 개체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로 인식한다. 이사벨과 그들 사이에 크나큰 갭은 바로 보노보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다. 그들은 시청률이 그렇게 상승하지 않자 갖은 방법으로 보노보들을 괴롭히면서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된다. 그런데 보노보 중의 하나가 아기를 놓으면서 시청율이 상승하는 기회를 잡기는 한다. 이런 그들이 만든 화면을 이사벨이 보게 되고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취재하던 존에게 진실을 제시함으로 존은 그것을 기사화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부정이 세상에 명백하게 들어난다. 하여 보노보를 이사벨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공존의 생활을 해나간다. 그들과 함께 가족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인간과 인간의 언어에 대한 지각 능력이 있는 보노보의 가족생활이 주된 내용이다. 그것을 상술로 이용한 무리들로부터 그들을 지켜내며 생명의 소중함과 영장류의 삶을 얘기해 나간다. 정말 보노보를 대하는 상황이 너무나 다른 두 대립되는 세력들을 보면서 무엇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생명의 존귀함과 생명을 서로 나누는 관계를 다시 조명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보노보로 제시된 인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문명화된 제국주의자들이 다른 땅을 점령해 나가면서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생명을 도구화해 나간 사실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프리카를, 아메리카를 신대륙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도구화했을 것인가? 그들의 삶이 보노보를 통해서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았다.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생명,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의 생명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하나의 무생물처럼, 우리가 식용으로 삼는 생명체처럼 그렇게 취급되어서는 안될 듯하다. 그들은 우리의 말도 알아듣는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존재를 이처럼 도구화시켜 나간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일깨움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들어 주는 글이다. 감사하게 읽었다. 진실은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또한 만났다. 가치가 목적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의 고귀한 가치를 위해 물질적으로 너무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했던 애완동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데,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를 하나의 유희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세태에 대한 경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는 그러한 세상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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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전 보노보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보노보’는 영장류의 일종으로 침팬지나 오랑우탄과는 달리 온순하며 이타적인 습성이 있다고 한다. 영장류란 영장목에 속하는 포유류를 뜻하는 말로 여우원숭이, 원숭이, 유인원, 사람을 포함한다고 하는데 포유류 중 지능이 뛰어나고 다양한 능력을 지닌, 영장류는 광범위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보노보는 침팬지와 유사하게 생겼으나 크기는 좀 더 작지만 지능이 높아 도구를 쓸 줄 알며 언어학습 능력도 있다고 한다. 작가인 새러 그루언은 2011년 초에 개봉한 영화 '워터포엘리펀트'의 원작자로서, 작품을 통해 동물들을 실험대상이 아닌 인간의 친구로 애정을 담아 묘사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2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역작이다. 이 소설에서는 보노보의 이런 이타적인 습성에 기초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동물 집단들에서 힘과 신체적 외모에 영향을 미친 것과 같이, 자연선택은 동일한 진화적 맥락과 방식으로 영장류의 지능을 연마시켜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려다 뒤틀린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스토리는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되어 왔다. 어떤 종의 동물인지 정도만 바뀌곤 했지만 이런 영화들이 가진 차별점이라면 가장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가 인간의 지능을 가지게 된다면'이라는 전제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동물 종 가운데 가장 성공한 비범하고 놀라운 종의 일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설 '보노보의 집'은 올해 개봉된 영화 ‘워터 포 엘리펀트’의 원작자 새러 그루언의 신작 소설로 작가의 전작을 살펴보면 동물들을 소모품이나 실험대상이 아닌 '인간의 친구'로서 애정을 담아 묘사해온 작품이 많다고 한다. 이 소설 역시 멸종 위기 동물 보노보에 대한 학대,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유쾌한 모험담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가슴 아픈 부분들이 많은 소설이었다. 저자는 동물 실험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는데도 동물 실험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조화와 경쟁 중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는가?라는 물음은 인간의 폭력성에 관한 대답을 염두해 준 질문이다. 조화관계보다 경쟁관계에 돌입하는 인간이라면, 폭력성이 이면에 깔려있다. 특히. 언어가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고유한 특질이 아니란 것을 밝힘과 동시에 앞으로도 영장류의 언어습득과 인지능력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 같다. 양극성이 가장 심하기에, 우리는 균형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머리로 배우는 것은 가슴으로 실천하라는 말이 있듯이, 배움으로 진화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보노보를 통해 인간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기에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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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공존 무엇이 전재 되어야 할까? 수년전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제니퍼 모건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다니’(지안출판사)를 통해 야생 활동을 하는 동물에게 수화를 가르쳐 그들과 인간이 소통하는 이야기를 접했다. 인간과 유사한 동물과 인간의 소통은 굳이 자연보호나 야생동물 보호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매우 의미 있고 흥미로운 사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흔히 동물에 대한 이러한 실험은 병원이나 제약회사가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전에 행하는 실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동물 실험은 찬반 양자의 입장차가 분명하게 갈린다. 동물보호자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버젓이 행해지는 이러한 실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보노보의 집’은 소설 ‘다니’의 줄거리와 비슷하다.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항하는 또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다니’와 ‘보노보의 집’의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야생상태와 그렇지 않음의 차이다. ‘보노보의 집’은 대학 내 영장류언어연구소라는 시설 내에 갇힌 동물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는 사소한 차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 야생의 자연활동과 연구소의 우리는 다른 환경이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동물 ‘보노보’는 ‘피그미침팬지’(Pygmy chimpanzee)라고도 한다. 침팬지와 매우 흡사한 동물이며 이 둘을 구분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열대우림에 살면서 무리활동을 하고 음성체계가 사람과 다르지만 언어학습 능력이 있다. 이것으로부터 이 소설은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학습 능력이 있는 보노보를 대학의 연구실에서 수화를 가르쳐 간단한 소통을 하면서 보노보의 전반적 생활 습성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소에 영장류의 언어와 인지능력에 관심이 있던 신문기자 존 티그펜이 찾아오고 그날 저녁 연수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폭탄테러를 당한다. 연구소의 연구원인 이사벨이 얼굴과 몸에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하며 연구소의 보노보들의 상황에 애를 태운다. 이 보노보들은 대학에서 한 기업으로 팔려가고 만다. 여기에는 커다란 음모가 있다. 사업가의 돈과 연구소 관련자의 야망이 결합된 것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가는 보노보들을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된 집안에 가두고 이를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하여 리얼리티 TV쇼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편, 사고이후 보노보들의 행방을 찾던 폭발당시 상처를 입었던 연구원과 사고 당일에 연구소를 찾았고 리얼리티 TV쇼가 진행되는 ‘보노보의 집’에 취재를 온 기자가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만나게 되고 이들의 노력으로 보노보들은 안전하게 구출된다. 동물의 언어와 인지능력을 알아내는 것이 인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우리에 가두어두고 먹이를 공급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아낀다고 하는 것이 그 동물들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바람직한 환경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어쩌면 불가피하게 이러한 실험을 할 수밖에 없을 지라도 지극히 제한적인 조치가 필요하리라. 이러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이야기하는 동물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대한 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만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전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멸종위기동물인 보노보를 알리고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동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오는 이 소설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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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노보의 집』은 현재 진행 중인 유인원에 대한 학대,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저자 새러 그루언은 올해(2011년) 초 개봉한 영화《워터포엘리펀트WATER FOR ELEPHANT》의 원작자로 미국 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전작을 통해 동물들을 소모품이나 실험대상이 아닌 ‘인간의 친구’로서 애정을 담아 묘사해왔다. 이 책은 그런 그루언이 2년간, 교육기관과 연구소들을 오가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역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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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전문가인 바네사우즈 과학자는 “내가 보노보를 위해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작가가 해냈다”고 전한다. 처음엔 보노보란 생소한 단어에 이끌렸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DNA의 98.7%가 일치할 만큼 인간과 너무나도 닮은 보노보. 예전에는 피그미침팬지라 불리웠다고 한다. 이 책을 영화화해도 흥행할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존은 영장류 언어연구소를 취재한 후 폭발사고로 건물이 파괴되고 인터뷰를 했던 이사벨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떠난다. 취재 당시 보노보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신체적으로 허물없이 지내는 이사벨의 모습에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 여자가 더욱 걱정되었다. 동료인 캣이 존의 기사를 교묘하게 가로채고 편집장은 존을 불러들인다. 이사벨은 어느 정도 상태가 나아진 후 약혼자인 피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보노보를 지켜주지 못한 피터에게 한바탕 퍼붓고 쫒다시피한다. 인턴이었던 실리아와 함께 지내면서 이사벨은 보노보 여섯 마리가 흔적없이 사라질 리가 없다며 애타게 찾아다닌다.
새로 들어온 침팬지 여섯 마리가 있다고 해서 유인원 실험실인 코스턴 재단을 찾아가지만 보노보들이 아님을 알고 절망감에 빠진다. 침팬지 한 마리씩 살펴보다가 “사람처럼 키우다가 단지 재미가 없어졌다고, 아기 대용품으로서 가치가 없어졌다고 이 침팬지들을 버렸단 말인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분홍색 발레복을 입히고 조그만 자전거를 타게 했단 말인가? 그러기위해 번식용으로 키우고 새끼를 낳자마자 빼앗는 학대를 반복했단 말인가?“ 화를 냈다. 책임자는 당신에 연구 부장한테, 아니 남자 친구한테 영장류연구협회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었다고 자기들을 “주말 해커”라고 하는 실리아의 친구들 도움으로 피터가 연구조교로 있으면서 침팬지의 모성박탈. 움직이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영향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사벨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 유괴범이자 고문관, 살인자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던 사실을 말이다.
이사벨은 우연히 전광판에서 보노보들을 보게 된다. 웹사이트 주소와 앞으로 1주일 남았다는 카운트다운되고 있는 광고였다. 주소를 추적해보니 폭스엔터프라이즈 본사였다. 사주인 폭스는 포르노 제작자다. 보노보의 성적인 습성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 것인지 걱정이 되고 불안해진다. 드디어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노보들을 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대 대중매체를 통해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된다. 보노보들의 놀라운 언어능력과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으면서 행복감을 다시 찾은 보노보들의 모습. 한 보노보의 유리벽 안쪽에 입술 자국에 존은 본지의 입술과 높이를 맞춰 입을 맞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