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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맺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관계의 결핍, 관계의 끊어짐이 곧 자신의 소멸이라도 되는 듯이 기어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연명하고자 노력한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고,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에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관계가 주는 평온함, 안정감으로 우리는 '관계의 관성'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허약한 관계'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얼룩지더라도 말이다.
우리 삶에 그림자와 같은, 관계의 실타래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관계를 벗어나서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관계에서 소외된, 혹은 '자발적 독립'이라 명명하고자 하는 '고독의 시간'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관계 속에 물들어진 인간의 가치를 고독이라는 내면적 울림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용기와 함께. 외로움과 쓸쓸함의 경계로만 생각했던 고독이란 이름 앞에 어떤 말을 앞세워 삶의 위로를 건네려고 하는 걸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저자는 관계의 부재 속에서도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관계가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니듯이, 불완전한 관계를 벗어나 내면적 통합과정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냄으로써, 고독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고독해야 하는 이유, 고독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하는 이유, 혼자 있는 능력, 창조적인 상상력의 발현, '나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논리를 제시한다.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발자취 속에서 말이다.
대상이론 관점에서 개인의 존재가 정당화되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즉,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갈 때, 그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그러나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았던 위대한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려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우주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통찰을 얻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혼자 있는 순간이다. -전혀다른 두 가지 욕망과 통합 (p.19-20)-
때때로 고독 속에 감춰진 그들의 삶을 정신 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볼지라도, 그들의 삶에서 '고독'은 유일한 도피처이자, 삶의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계에서 배제된 삶이 '아무 의미 없다'라는 대상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그들은 자발적 고독 속에서 보다 자유로이,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외부세계의 연결을 꾀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인간관계뿐만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건, 타고난 재능과 능력, 기질 차이 등 여러 요소에 따라, 한 개인이 인생의 의미를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는가 아니면 고독에서 찾는가가 결정된다. (p.48)
'인간은 평생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친교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에 인류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모두가 동의하듯이(p.339),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삶의 동력을 유지해나간다. '관계'는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자, 동력의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한다. 관계가 행복의 유일한 수단이 아닐지라도, 고독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낀다. 불완전한 개개인이 사회라는 합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불완전한 관계가 오히려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의 관성에서 벗어나, 자발적 독립을 향한 발걸음을 내딜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가장 행복한 삶이란 인간관계나 인간관계 이외의 것 어느 한 쪽에 대한 관심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이상화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전체를 향한 소망과 추구에는 인간 본성의 양면 모두가 포함되어야 한다. (p.49)
사회로부터 완전한 고립, 타인의 관계에 대한 물리적 고립은 아닐지라도, 정신적 고독에 대한 갈망과 그 의미에 대해 꽤나 합리적인 답을 찾아주는 듯 했다. (위로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결국은 '중도'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혼자 있고 싶은 이유, 그토록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러한 시간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위로와 함께. 지금 내가 갈망하는 '고독'은 치열하게 벗어나고자 했던 관계에 대한 외로움과는 다르다. 물리적으로 혼자임에는 같지만, 그 안에서 홀로 침잠하는 수동적 자아와는 달리, '나'를 찾고자 하는, 혹은 나를 잃지 않고자 하는 적극적 자아와의 만남을 갈망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관계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관계와 '나'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작업장을 간직하고 있어서 언제든 마음대로 그곳으로 들어가 자유와 고독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 미셸 드 몽테뉴 -
언제고 한 번은 나 자신과 마주해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때론 막연한 고립감에 그저 회피하고 싶어질 때도 있고, 싹트는 감정을 무시해버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 들여야지만, 상처 입은 내면의 나를 치유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본연의 나를 찾을 수 있으며, 무한한 상상력의 발현을 통해 창조적인 삶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인생이기에, 적어도 한 번은 자신만의 길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와 고독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고독으로부터 자신을 쓰다듬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한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 윌리엄 워즈워스 -
◎ 고독에 답하다 : http://blog.yes24.com/document/10476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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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p.17)
난 얼마쯤은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온전한 나일 때는 사람들 속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다. 하지만 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다. 사교적이지 않은 나의 성격이 어떤 결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 속에 복작이며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더 편안함과 충족감을 느끼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폭넓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속에서 인간관계가 좋아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았기 때문인가 보다. 저자는 인간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과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간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끌리며, 이러한 인간조건의 특징이야말로 삶에 적응하는 데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난 삶과 관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관계보다 어떤 관심사-일이나 취미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은 개인에 따른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인 것이다.
결국 저자는 가장 행복한 삶이란 인간관계나 인간관계 이외의 것 어느 한 쪽에 대한 관심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이상화하지 않는 삶이라고 한다. 전체를 향한 소망과 추구에는 인간 본성의 양면 모두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p.49)
다른 사람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지면 그 결과로 훨씬 더 진정한 자신, ‘진짜 자기’, 진정한 자기, 진짜 정체성이 된다.(p.47) 혼자 있는 능력은 자아 발견과 자아실현, 즉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구와 느낌과 충동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p.81) 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게 해주는 것은 고독이다.(p.92)
아주 친밀한 관계라 해도 분명 결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며,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불행해하고 서로를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충족감을 얻으려 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도 필요하다.(p.129)
<고독의 위로>를 통해 느낀 것은 '관계'에 좀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교적이냐 아니냐는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일 뿐이며,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충족감을 느낀다면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창조적인 일을 더 많이 해낸 사례(칸트. 비트겐슈타인, 베토벤 등)를 저자는 무수히 들고 있다. 물론 인간관계와 관심사 사이에 균형은 중요하겠지만, 관심사에 더 비중이 쏠려 있다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고독한 일상의 순간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우리에게 주는 큰 위로가 아닐까 싶다.
----------------------------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창의적인 상상력의 개발로 치유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p.48) 친밀한 애착관계는 삶이 전개되는 하나의 중심축일 뿐, 유일한 중심축은 아니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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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주요 문구 >>
p. 17
오늘날 우리는 인간과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살밍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p.244
창작 과정은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한다는 느낌을 되찾게 해 주며, 사별로 자아에 상처를 입거나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질 때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울증은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다.상실을 겪을 때 대개의 사람들이 느끼는 종류의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을 확실하고 간단하게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우울증은 그 깊이와 강도가 아주 다양하지만 본질은 다 같다.
p.266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있고, 흥미로우며 자아존중감도 충족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다면 꼭 가깝고 친밀한 관계가 없다 해도 만족스럽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또한 덧 붙이고 싶다.
일, 특히 시간이 흠름에 따라 변화하고 진보하고 깊이를 더하는 창의적인 일은 한 사람의 개인성 안에서 통합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목만 보면 요즘 서점가의 대세 분야인 자기계발서 느낌이다. 다만, 앞서 뽑아낸 문구처럼 보는 방향은 다소 차이가 있다. "고독"해도 괜찮다고, 오히려 천재적인 삶을 살던 이들은 고독한 이들이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중반까지 읽으면서 음...그렇다고 고독이 천재성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잖어??라는 의문이 슬금 슬금 떠올랐다. 작가는 고독과 천재성의 관계를 입증하려 이 책을 쓴거야?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 찬찬히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작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일까? 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답
<The Times>가 평한 '아름답고 인간적이고 지적이고 사려깊은 글이다' 작가 소개에서 정신분석의 지나친 독단을 거부하고, 정신병을 구분하려는 시도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말, 그리고 강제적 치료를 강하게 반대하며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상이 아니며, 정신병자로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신이 온전하다"고 한 점에서 '고독 예찬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고독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괜찮다는 고독이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간신히 나름의 답을 찾고 나니 글이 조금 더 편하고 따뜻하게 읽힌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이 성경과도 같았을 정신분석학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신적으로 힘든 이를 위로했을 그이기에 수많은 작가, 작곡가 들의 고독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안타까우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앤서니 스토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이 책이 내게 주는 메시지
1. 내가 엄마라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린 시절의 양육자의 태도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꾸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앤서니 스토는 그게 다가 아니다라고 온 책을 통해 어필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에게 좋은 양육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p.154
엄마가 아이에게 겁을 주고 아이와 신체 접촉을 거부하면 아이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가 겁을 먹으면 애착을 강렬하게 원하는데, 애착의 주된 기능이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위험의 원천이 아이가 보호를 청해야 하는 그 바로 그 사람이라면, 아이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한다.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아이는 접근, 회피, 분노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이러한 행동의 분열을 줄이려면 아이가 엄마와 할 수 있는 모든 걸 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회피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순응 행동을 보이는 아이보다 더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2. 고독이 한 개인에게 주는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공감하지만, 정작 워킹맘인 내겐 고독을 즐길 시간이 거의 없다. 고독은 커녕 멀티 플레이로 정신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짜 단 하루만이라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다면, 차라리 진짜 넘 아파서 병원에라도 입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t.t 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나마 '독서'하는 시간,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그나마 내 나름의 고독을 확보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서라는 고독한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소중한 시간들이니 감사히 생각해야겠다.!!!!!
3. 인간관계 회복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 바로, 일에서이다. 그런데...일도 요즘 너무 재미없다. t.t 아이를 다키우신 선배들이 절대 일 그만두지 말라고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일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모른다고 조언해 준다. 이 책에서도 굳이 인간관계 회복에 에너지를 쏟지말고 자신의 일로 충분히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좀 더 힘을 내고 즐기며 일을 할 수 있도록 업무관련 책 100권 읽기를 미루지 말고 한 번 도전할까 말까 할까말까..^^:::: 고민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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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언론이라는 거대한 악마에게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언론이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하여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의 범죄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을 뿐, 실제로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의 범죄율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범죄율보다 낮다는 통계가 있다.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흥미만 끌기 위해 노력하고 진실에는 관심없는 언론. 그런 경우는 정신병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실제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언론은 마치 그 사람을 이미 범죄자인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언론의 개혁도 역시,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독의 위로』를 얘기하면서 왜 이 얘기를 하는 걸까.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 p.17
우리는 언론이라는 거대한 악마에게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언론의 몰아가기 형태에 동조하거나 또는,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왠지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고독의 위로』는 인간관계보다 고독한 삶이라도, 고독한 하루라도 괜찮은 삶이라고 얘기한다. 『고독의 위로』에서 현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연결시켜 볼 만한 의미는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의 깊이는 다양하다. 모든 인간은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건, 타고난 재능과 능력, 기질 차이 등 여러 요소에 따라, 한 개인이 인생의 의미를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는가 아니면 고독에서 찾는가가 결정된다. - p. 48
과연, 인간관계가 나의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요소인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2. 나빠진 인간관계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기도는 신을 움직이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기도와 명상을 하는 동안은 이전까지만 해도 관련이 없던 생각과 느낌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면 가장 깊이 있는 생각이나 느낌이 새로운 형태로 결합하거나 연결될 시간을 갖는 것은, 긴장 완화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창조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뇌가 가장 좋은 상태로 기능하고 개인이 각자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욕구와 느낌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 세계와끊임없이 접촉하게 해 주는 것은 고독이다. - p.92
고독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고독의 위로』에서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나,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창의성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충분히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시간이고, 그 명상이 창의적인 사고를 제공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갖추게 된다.
정신질환은 특히 창의적인 작가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정신질환에 걸리기 쉬운 성향이 작가들에게 자극제가 되어, 내면의 깊은 곳을 탐험하고 거기에서 발견하는 내용을 기록하는 고독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대개는 보답이 없는 작업을 시작하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납득이 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쉽게 불안정해지면서도 자신의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더 많이 갖추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창의적인 사람들을 치료해본 경험이 이는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도움을 구할 때는 아창의력이 마비될 때뿐이라고 말한다. - p.223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성인기에 이르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혼자 있으려 하는 성향을 어느 정도는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 장에서 말하려는 사람들은 그 이상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 친밀감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은 관계가 나빠질 때 별로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친밀한 인간관계에 삶의 의미를 과도하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 p.258
사실, 인간관계는 나빠지는 경우는 꽤나 많다. 그럴 때마다 괴로워하다 보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간관계가 나빠졌을 경우에는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빠진 인간관계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창의적인 사고는 그 순간에도 찾아온다. 고독한 삶은 이렇게 우리에게 창의적 사고를 제공함으로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3.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창작 활동은 상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창작 활동은 상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에 겪은 사별 때문에 상실감을 느낄 때나 여러 원인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낄 때나 마찬가지다. 사별을 경험하거나 여러 이유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을 때,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상실을 극복할 수 있따. 이 장 첫머리에서 말했듯,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이용해 회복 혹은 재창조의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과정은 상실을 부정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시도가 아니라 상실을 인정하고 고통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일고십 질문란에 있는 <내가 나일 수 있는 방법은?>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글쓰는 순간, 나를 나이게 하고, 비로소 나라고 느껴진다. 이것이 내 삶이고, 내가 살아가야 할 목표라는 걸 확연하게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쓰기가 내 삶을 이끌고, 내 삶이 글쓰기를 이끈다. 글쓰기는 내 삶을 결정짓는 요소이며, 인간관계에 실패하더라도, 살면서 겪는 상실이 있더라도, 내가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글쓰기가 어느 정도까지 내 삶을 이끌지는 모르겠으나,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삶이 나아지고 있고 특히 고독한 순간의 글쓰기는 나의 창의성을 더욱 더 확장시켜 나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과거였고,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고, 미래의 꿈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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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누구와 소통하며 나를 발견하는 것에 한계를 스스로 느낀 것 같았다. 나를 잃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그땐 매체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고독이라는 말에 꽂혔었는데 그때 이 책을 발견했다. 다른 책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앤서니 스토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나왔다. 그때 읽었던 책이 꽤 마음에 들어서 앤서니 스토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타 말하면 읽기 잘했다. 사례중심, 인물중심이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고독의 시간을 지낸 인물이 어떠한 업적을 남기게 됐는지 그 시간동안 무엇을 깨달았는지 서술되어 있다. 처음 반쯤 읽었을 때는 내가 요즘 잘하고 있구나. 역시 고독함은 필요해. 라며 만족스러웠다. 근데 이 책이 꽤 길다보니 역설스럽게도 마지막쯤엔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졌다. 고독의 시간만큼이나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함도 같이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는 조금 양극단을 좋아하고 흑백인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흑백논리로 딱 2개로 나누려고 했던 것 같다. 고독이거나 아니거나, 그런 시간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적절히 섞어가며 살아가는게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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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고독의 위로" 이다. 고독이란 행위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고독과 외로움은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른 차이가 있다. 내가 타인과의 어울림을 원하는데 타인이 없을 경우는 외로움이고, 나 스스로 혼자이고 싶은 것은 고독이라고 한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충동을 느낀다. 다른 이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이 그 한가지고, 또 한가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p.19, 에필로그) 이 두가지 충동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경험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 모두와 결합되어 있는 황홀한 감각을 느낀다. (p.25, 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우주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감각, 다른 사람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감각, 그리고 자신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감각은 밀접하게 연과되어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라고 믿는다(p.27, 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다른 한가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융은 자기 분석 과정을 통해 청년의 임무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인 반면, 중년의 임무는 한 개인로서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융은 개인성을 '살아 있는 존재의 선천적인 특질이 궁극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정의했다.(p.32, 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개인들이 융의 인도에 따라 시작한 자기 개발의 길을 융은 '개인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과정에서는 '완전함'이나 '통합'. 그러니까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정신 구조의 여러 요소가 새롭게 결합되어 합일된 상태를 목표로 했다. (p.35,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모든 사람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관심사도 필요로 한다. 관심사도 인간관계 못지 않게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삶에 의미를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114, 혼자서마 느낄 수 있는 충족감) 이 두가지 욕망의 통합은 갑자기 일어나든 점차적으로 일어나든 이런 통합의 경험은 아주 강렬해서 대개는 마음 속에 영구적인 영향을 남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상태에 한번 도달하면 언제까지나 방해받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할 거라고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대양과 같은 고요함의 상태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p.40,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융은 개인성을 완전하게 개발하는 것은 절대 완성될 수 없는 일생의 임무, 어떤 목적지를 향해 희망에 부풀어 갈 길을 떠나지만 절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p.41,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이상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람이라면 인간관계와 관심사 모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상에 대한 관심이 인간관계의 실패에서 비롯된느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친말한 관계가 하는 역할의 일부를 관심사가 떠맡을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p.270,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뉴턴의 고독) 수많은 작가, 작곡가, 화가 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려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 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우주에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과정이 명상이나 기도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별 관계가 없지만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귀중한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통찰을 얻는 순간, 다시 말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혼자 있는 순간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대개는 그렇다.(p.19-20, 에필로그) * '고독'이 위안이 되는 이유 개인화 과정과 창조과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첫째, 새로운 개념이나 영감이 떠오를 때의 마음 상태는 융이 '적극적인 상상'이라고 일컫은 것 둘째, 창의성은 그때까지 이질적으로 보이던 실체들을 새로운 고리로 연결하는 것 셋째, 창조 과정은 일생을 통해 계속된다. 네째, 창조 과정과 개인화 과정은 둘 다 주로 고독 속에서 일어난다. (p.42-45, 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그레이스 월러스가 말한 창의적 사고의 첫번째 단계는 '준비'다. 창의적인 사람은 일단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구할 수 있는 모든 관련 정보를 읽어본다. 그 다음이 부화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축적해 놓은 자료가 저절로 끓어오른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검토가 되고, 이미 머릿속에 있던 다른 내용들과 비교되고, 정리되고 다듬어진다. 우리는 이 부화의 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다음의 '발현'단계에 필요한 예비단계라는 사실이다. 이 시간동안 창의적인 사람은 새로운 통찰을 얻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며, 자신이 모은 재료를 중요한 원칙이나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해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된다.(중략) 하지만 이 과정이 진행되는 데는 시간과 수동성, 그리고 되도록이면 고독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p.88, 혼자 있는 능력) 내면 가장 깊이 있는 생각이나 느낌이 로운 형태로 결합하거나 연결될 시간을 갖는 것은, 긴장 완화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창조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뇌가 가장 좋은 상태로 기능하고 개인이 각자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 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게 해주는 것은 고독이다.(p.92, 혼자 있는 능력) |
![]() (간지 철철.. 그래서 선택 미션, 카페에서 반드시 이 책 읽고 인증하기가 있닼ㅋㅋㅋ)
새벽 4시. 이 책의 리뷰를
쓰기에 딱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밖에서는 약간의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랑,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들린다. 새?
새가 있었나-_-; 새소리가 들리는 게 신기하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이기도 하다.
고독에 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내게, 내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나 자신임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엄마도 되고, 부인도 되고, 나도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 낸 두 가지가 독서와 명상이다. 둘 다 우연찮게 혼자 있어야 것이다. (사실 엄마이기 때문에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꾸준한 시간에 무언가 대외적인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나 혼자이고, 그 시간 동안만큼은 주변에
누가 있는 것과 상관없이 나만 존재할 수 있다. 거기에 파생되어 나온 활동이 이 글쓰기.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 창작 활동이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고독 속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는 이점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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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 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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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능력은 자아 발견과 자아 실현, 즉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구와 느낌과 충동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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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
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게 해주는 것은 고독이다. (p.92)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고독함, 혹은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며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내면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책의 후반에서 정신적 성숙함에 혼자 있는 능력과 같은 항목이 없다는 것에 이야기 한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고독’을 잘 다루는
것이 꽤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고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이 있다. 괜히 부정적인 것 같고, 쓸쓸할 것 같고. 나는 혼자 있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끊임없이 사랑 받고 인정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게으른 본성은
혼자 있고 싶어한다. 두 가지가 매번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 관계에서 긍정적인 상황을 꽤 오랫동안 유지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인간 관계에 집착하면서도
그 안에서도 혼자 있고 싶어하는, 혹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그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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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성공을 거둬야 자아 존중감이 지켜지는 것처럼 행동한다. 과거에 사랑이나 인정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그들 내면에는
의지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본질 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도 없는 듯하다. (p.150)
정말 소름 끼치게 놀란 대목이었다. 다른 부분들에서도 ‘앗, 내 이야기다.. 하핫.. 부끄럽군.’ 했다. 하지만
이처럼 날 잘 설명한 대목은 다른 책에서도 찾지 못한 듯 하다. 내가 정말 딱 이런 유형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자아존중감이 낮고, 쉽게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몰아간다고 여기고 있을 정도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일종의 ‘병’일지도 모른다.
의지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를 극구 밀어내고, 이제껏 쌓아 올라온 ‘나’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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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이 보이는 정신 병리학적 증상은 우리 모두에게도 존재하는 특징이 확대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290)
현대인들은 누구나가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나 또한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그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불완전하기에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아닐까? 나의 저런 일종의 병
같은 생각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작용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나 스스로가
못 잡아 먹어 안달난 내 자아가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악마(조르바..?)가 날 뛰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과정 동안 괴롭고
힘들지라도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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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익숙한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비록 보잘것없다고 해도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지지해주는 것이다. (p.340)
혼자서 자아 존중감을 쌓을 수 없는 나는 끊임없이 외부적인 요인들을 찾아 헤맸다. 특히 사랑에 더 목 매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연인에게서, 친구에게서, 가족들에게서 어떻게든 사랑을 받아서 쌓고 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항상 텅 빈 공허감이 있었다. 아무리 받아서 채워
넣어도 도무지 차질 않았다. 다른 모든 책들에서는 그것이 내가 잘못 된 것이라고, 내가 나 자신을 바꾸어야 된다고 혼내기만 하고 해결책이랍시고 정신 상태 개조만을 주창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의 다른 측면을 봐준 듯 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오히려 그런 마음을 다른 곳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러니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보라고 달리 이야기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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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과정은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한다는 느낌을 되찾게 해주며, 사별로 자아에 상처를 입거나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질 때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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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능력은 ‘고립 상태에 있는 개인의 발달’에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 하다. (p.270)
이 책이 왜 고독의 ‘위로’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자를
탈탈 턴다. 정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내게 만든다. 혼자
있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나 자신을 돌아보고 탈탈 털어 내는 과정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긴 했지만, 사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내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쉽게 쓴 심리학 도서라는
타이틀을 받은 책 치고는 나에게는 마냥 쉽지는 않았다. (다른 고전 심리학 책을 읽어 보지 않아 비교할
순 없지만.)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더니, 정리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이 걸렸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돌려 생각해보는
시간을 지나오게 된 듯 하다. 책을 통해 나 자신으로부터의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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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선정 도서였기 때문에, 책 후기는 모임이 끝난후 적고 있습니다. 처음 혼자서 이책을 읽을때는, 문장들이 좋기는 한데, 좋은 말을 많이 이어서 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혼자'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동안 제가 자주 되뇌이고 마주했던 문장들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글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고독의 너무 다양한 형태속에서 나는 고독을 잘 만나고 있는것 맞나? 어느형태의 고독인것일까? 하는 약간의 울렁거림도 느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고독이 저를 해결해주지않고 모임속에서 타인들의 경험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더 애정하게 되곤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오랜과업으로 생각해온 내면에이르는길이 고독과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책을 읽고 저는 자기자신을 잘 아는것이 고독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거나, 더욱 경험해야한다고 느낀반면, 저희 독서모임원들은 고독한 시간을 즐겨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아마... 고독의 형태도 삶의 형태도 어느때나 자신에게 맞는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약간의 정답을 갈구하며 책을 읽어왔는데, 이책을 읽고 흐름을 즐기는 촉박하지 않은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고독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니 그저 흐름에 맞춰 고독할때 고독하고, 관계맺을때 관계맺는 유연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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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좋은 점을 말하라고 하면 저마다 할 말이 있을 듯하다. 또 거꾸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 역시 선택이다. 고독한 사람이 되는 것, 고독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 고독한 상태를 즐기는 것 등등. 고독을 좋아한다고 사는 내내 고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독한 시간이 아예 없다는 사람도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인간관계 때문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으로 보인다.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은 어쨌든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해야 하는 일인 줄 알지만 가끔은 잊고도 싶고 모른 척도 하고 싶은 것.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피곤하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 이런 불평 자체가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꽤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내 집중력은 떨어졌다. 위대한 창조자들의 고독한 생을 다루는 부분에서 흥미가 떨어졌다고 해야겠다. 예술가나 작가들의 경우, 고독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 지극히 당연하다 싶었으니 새로울 게 없었던 까닭이다. 고독이 지나쳐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람들의 일화도 있다. 에드워드 기번을 비롯하여 많은 사례를 들고 있는데 통 재미를 못 느끼고 말았다.
앞부분의 고독을 누려야 하는 이유와 혼자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에 많은 공감을 한다. 이 책의 말대로라면 나는 지금 꽤나 괜찮은 수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균형감 있게 보낼 수 있어야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텐데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 워낙 힘을 얻고 있는 시대라 고독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느냐 상처를 받느냐, 또 혼자 있을 때 회복이 되느냐 함께 있을 때 회복이 되느냐 하는 문제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일이다. 자신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하는 일, 내 행복과 다른 이의 행복이 부딪혀서 깨어지는 일은 없도록 미리 헤아려 보는 일, 쉽지는 않겠지만 두고두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175~176(크레마 세로형)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런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운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라 해도 분명 결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며,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불행해하고 서로를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충족감을 얻으려 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이미 보았듯,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립되어 살면서 자아실현과 자기 계발, 혹은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형태를 찾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창조 활동이 개인의 삶에서 어느 정도로 우선하느냐는 그 사람의 개성과 재능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도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와 지인이 있고 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해도 행복할 것이다. 466-467 나는 친밀한 인간관계만이 건강과 행복의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랑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미화되는 분위기는 위험하다. 정신 건강의 구성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프로이트는 사랑하고 일하는 능력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그 능력 가운데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일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여러 정신분석에서 오직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에 주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지 않을 때 개인의 정신 구조 안에서 나타나는 역학변화에 대한 연구도 소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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