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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뷰어다. 이벤트에 참여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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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환희에 가까운 기쁨이었다. 달라진 세상의 편리함은 생각만 해도 좋았고, 온갖 현대적 시설이 구비된 곳을 마음 껏 뛰노는 내 모습은 상상만이라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고보니, 다가올 미래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미래를 환상적으로 그리기엔 내가 산 세월이 있었고, 인간의 본성 또한 그럭저럭 알게 됐기에 유토피아는 그릴래야 그릴 수 없는 먼 그대가 되어버렸다. 크게 거슬러 갈 것도 없이 20세기 유럽의 역사만 봐도 미래는 환상적으로 그릴 수 없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19세기 유럽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20세기가 어떤 식으로 다가왔는지 우리는 이미 세계사를 통해 배웠다. 유럽의 역사야말로 미래는 행복이 아닌 절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했다. 그러니 미래를 어찌 알고 싶겠으며 왜 꿈꾸겠는가. 지혜의 임금 솔로몬도 아는 것이 많아지면 고민도 많다고 했다. 나는 미래가 딱히 알고 싶지 않았고 이 정도의 세상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러나 때때로 미래가 궁금하긴 했는데, 바로 그 미래가 내 미래와 연결돼 있고 내 딸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미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여러 통로 중, 영화의 힘을 빌려보았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미래는 대개의 경우 현실로 구현됐다. 영화 뿐 아니다. 영화의 모체가 되는 SF 소설의 경우 미래를 꽤 구체적으로 예언했다. 십 여년전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톰 크루즈가 투명한 플라스틱 판 같은 화면에 각종 자료들을 손으로 터치해 끌어오는 장면은 무척 신기하고도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가벼운 터치 하나로 자료가 화면에서 이리저리 움직여지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했다. 그런데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영화 상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내 삶에서 이뤄졌다. 터치폰의 등장이야말로 미래가 내 삶으로 내려온 날이었다.
'마음의 아이들'은 앞으로 로봇이 우리의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이종교배나 인간복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하물며 로봇이 우리의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결코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미래가 어찌 될런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방향을 조금만 부정적으로 틀면 인간이 로봇에게 종속되어 사는 모습도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에 의해 창조된 로봇에게 노예처럼 봉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한스 모라벡은 생각이 다른가보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로봇이 아닌 로보 사피엔스를 말한다. 그는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를 넘어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로봇이 2050년 경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때가 되면 호모 사피엔스의 자리는 로보 사피엔스에게 넘어가게 될 거라는 거다. 즉 지구의 주인이 인류가 아닌 로봇이 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덧붙여 한스 모라벡은 이 로봇이 인류의 정신적 자신이 담긴 소프트웨어를 송두리째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자식이라 불릴 수 있다며 '마음의 아이'라 명명했다.
'조만간 기계가 아무런 도움 없이 자신의 유지, 생식, 개선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유식해 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새로운 유전적 인계가 완성된다. 그 때가 되면 우리 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이 지니는 한계에서 벗어나 현재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아닌, 더 유능한 지능형 기계가 전달의 책임을 맡는국면으로 진화할 것이다.' 21p 서문
인류가 자신의 문화적 변화에 의해 사라지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자손, 즉 로봇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세계를 한스 모라벡은 인류의 미래로 그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두뇌에서 컴퓨터로 옮겨지는 '마음 이전'을 그는 해방이라 표현하며, 마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으로부터 구출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영원한 삶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새로운 몸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부딪치는 반론에 대해 패턴-동일성이라는 입장을 제시한다.
'몸-동일성은 한 인격체가 인간의 몸으로 구성된 물질에 의해 규정된다고 가정한다. 오직 신체 구성 물질의 연속성을 유지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나의 개별적 인격을 보존할 수 있다. 역으로 패턴-동일성은 한 인격, 예컨대 나 자신의 본질을 내 머리와 몸 안에 일어나는 패턴과 과정으로 정의하고, 그 과정을 지지해주는 기계로 정의하지 않는다. 만일 그 과정이 보존된다면, 나는 보존된다. 나머지는 젤리에 불과하다.' 203p
그의 진화론적 생사관이 드러난다. 그는 우리 몸의 보존과 신체의 상실이 일상 생활의 정상적인 일부로 보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로봇으로 이전돼도 인류가 지속된다는 견해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몇 년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1998년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고 로봇공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진지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려주는 인류의 미래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고 두렵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따라가면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고 그 방향으로의 연구가 얼마나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당신은 한스 모라벡이 제시하는 미래가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싶은가? 책을 덮고 나니 한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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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아이들’은 ‘과학동아’ 11월호에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페이지에 ‘머리에 인공지능, 가슴엔 분자엔진’이란 제목으로 '창조의 엔진‘이란 도서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마음의 아이들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보고 읽어봐야지 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과학동아 소개글을 읽고나니 더욱 읽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읽을 수 있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요즘들어 고전 읽기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읽고 있지만, 아직도 과학 고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과학 고전은 읽고 싶어도 구입할 수 없는 경우도 많고, 번역이 이상해서 먼저 읽어본 친구들이 비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마음의 아이들‘을 통해 김영사의 과학 고전 시리즈물을 알게되어 다행이란 생각이든다. 제목만 들어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있던데, 앞으로 과학 고전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과학동아의 소개글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사가 뇌의 전기 신호를 컴퓨터에 재현하고, 세밀한 조절이 끝나면 육체는 버려진다. 의식은 기계 두뇌와 몸속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여느 과학소설이나 영화보다 세밀한 묘사다. 더구나 인간의 신경망이나 망막 구조를 응용해 생체 컴퓨터를 구성하려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인지공학이나 뇌과학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를 한참 앞서가고 있다.’<과학동아 p164>부분이었다. 과학동아의 소개글처럼 생생한 묘사에 실제처럼 느껴졌다. 과거에 로봇과 인간이라 생각하면 정말 그냥 막연한 꿈이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며, 그 과정보다는 결과에 주목했었는데, 이것은 로봇에 인간의 마음이 옮겨진 후의 결과도 물론 말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어 막연한 꿈이나 상상력을 더욱 또렷하게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시험 1순위 눈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될것이고, 그 밖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생물 파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비전공자라면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나 정보처리기사 자격증등의 컴퓨터 자격증 필기 시험에 나와 지겹게 암기했던 컴퓨터 1세대 2세대...등과 관련된 것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로봇에 문외한인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몇 년전에 동생이 수능을 망치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수 없게되자 절망에 빠졌었다. 어느 곳에 원서를 낼까 고민할 때 수능 다시 볼거 아니면 그냥 무조건 전자공학과에 지원하라고 했다. 그리고 동아리도 로봇동아리에 가입하라고 부추겼다. 동생은 전자공학과 로봇에 문외한인 내 말을 듣고 전자공학에 지원했고 현재 그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동아리도 로봇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다. 새내기 시절 동생은 나에게 자주 고민 상담을 했었다. 그러나 나도 로봇이나 전자공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하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엔 동생이 흥미가 생겼는지 상도 타오고, 무뚝뚝하던 동생이 전공이나 로봇에 대해 말할때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내가 잘 알아 듣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설명해준다. 지금도 동생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해졌다. 동생이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 책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읽어보라고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도 이런 책을 추천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비 전공자인 내가 동물의 망막을 최고의 신경망 컴퓨터 모델로 보는 대목이 흥미로웠는데, 그 부분이 동생 눈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과거에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만약 내 머리가 하나의 컴퓨터가 된다면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노력하지 않고도 로봇을 지배하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어린아이 같은 막연한 상상에서 조금 더 발전해서 로봇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되었고,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로봇으로 마음이 옮겨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기술이 아직은 실현 가능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실현 가능한 미래가 온다면, 로봇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가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했다. 동생 기말고사가 끝나면 창조의 엔진도 함께 읽어보고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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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아이들/한스 모라벡/이인식 해제, 박우석 옮김/김영사 로봇이 지구를 물려받을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의 자식일 것이다. -마빈 민스키. 지금까지 상상했던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환상을 넘어 인식을 수정하도록 강요한다. 저자가 펼치는 충격적인 주장이 쉽게 부정하진 못할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로봇공학의 고전으로 된 까닭은 21세기 후반에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로봇이 지배하는 ‘후기생물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대담하고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습을 갖춘 터미네이터와 같은 로봇이 인간의 마음까지 이식 받아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러 마침내 인류의 먼 후손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가설이다. “마음의 아이들”이란 그러한 과학적 진화론을 주창하는 저자가 창조해 낸 산물이다. 저자의 이론에 따른다면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에서 로봇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그 때의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자산, 곧 지식. 문화. 가치관을 송두리째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넘겨줄 것이므로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모라벡은 이러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인간의 마음을 로봇에게 이식하는 황당한 방법을 두 가지 제시하고 있다. 로봇과 인간의 뇌 사이에 통신선을 연결하여 인간의 마음을 로봇의 프로그램으로 전송시키는 방법과 팩시밀리로 문서를 전송시키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뇌 속의 모든 생각들을 복사해서 로봇의 소프트웨어 속으로 이전하는 방법이다. 기계 속에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능력을 하나씩 추가해 나가면서 로봇의 기능을 확대 발전시켜 가다 보면 종래에는 로봇이라는 기계에 마음의 이전까지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허무맹랑한 이론으로 일축해 버릴 수만 없는 것은,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로봇의 현재 발전 상황이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점을 떠올린다면 저자의 이론이 현실화 될 가능성을 쉽게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봇에 마음을 이식해서 육체적 노화나 죽음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을 바라는 인간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지의 하나로 작용할 수 있음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9세기의 문학작품부터 최근의 SF 영화에 이르기까지 로봇과 관련한 인간의 생각은 대부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공포와 충격적인 상상이었다. 로봇과 인류가 공생 공존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는 저자 역시도 그 불안을 온전하게 잠재우진 못했다. 인간은 로봇을 소유물로 생각할 것이고 모든 면에서 월등한 로봇은 인간에게 종속되기를 거부하게 됨으로써 필연적인 파국이 초래되어 이것은 인간이 로봇의 노예로 전락하고 지구가 기계 인간에 점령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저자는 로봇에게 “선한 마음”이라는 프로그램을 장착하여 그러한 혼란과 파국을 막고자 하지만 엄청난 재앙을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로봇에 이식된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미 악한 요소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숙제가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저자의 이론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일반적이거나 주류적인 흐름은 아니다. 컴퓨터와 로봇공학의 발전 방향을 짚어 보면서 관련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해 간다면 분명 인류의 미래에 대한 초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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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로봇삼원칙은 아이작 아시모프를 통해 탄생하였습니다. 제2원칙과 3원칙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로봇은 설계상 순종적이고 유능한 우리의 손과 발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기계는 아무런 도움 없이 자신의 유지, 생식, 개선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유식해질 것이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새로운 유전적 인계가 완성될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자산을 송두리째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마음의 아이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이 지니는 한계에서 벗어나 현재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아닌, 더 유능한 지능형 기계가 전달의 책임을 맡는 국면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들이 판치는 세상이 장미빛 세상이 될 것인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이 로봇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인지, 아니면 다른 영화인 <바이센테니얼맨>과 같이 로봇과 인류가 서로 공생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저자는 로봇과 인류가 영생불명의 존재로 공생할 것이라고 보고 사람보다 영리한 로보 사피엔스를 환영합니다. 비록 2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지금의 로봇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할만 합니다. 과연 미래의 우리들의 아이들과 마음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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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로봇 기업의 CEO가 되어 로봇의 잠재적 시장이 어느 정도일지 추정해보자. 틀림없이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도 경탄해 마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업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우선 로봇의 생산과 더불어 대여나 판매 그리고 고장난 로봇들을 고치고 수거하는 업체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국방과 의료 등 특정 산업유형에 따른 전문적인 로봇 연구소와 제작소가 설립될 것이고, 일반인을 위한 하우스 로봇 제작의 붐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보통 개인이 일반적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로봇은 가정용 로봇이지 특수한 목적의 산업용 로봇이 아닐 터. 대형 비즈니스 차원에서 산업용 로봇을 계발하는 것은 산업 유형에 따른 자체 제작이 더 적합할 것이다.
"대중 로봇의 가능한 조합은 다음과 같다. 히타치 디자인의 다섯 바퀴와 솔즈베리 손을 지닌 두 팔, 한 쌍의 컬러 TV 카메라를 장착하고, 카메라가 탐지하지 못하는 방향을 인식하는 민감한 음파탐지기 센서의 집합체. 운행에 도움이 될 저렴한 대형 자이로스코프가 부착되어 있고, 1초당 최소 10억 개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 컴퓨터 하드웨어에는 다중의 동시 처리 과정이 가능한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다. 내장된 프로그램은 세상의 물건을 묘사하고, 어지럽게 섞여 있는 안팎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선택하도록 돕는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주위 환경의 지도를 만들고, 저장하고, 개선하고, 비교하며 로봇을 구체적인 장소로 이동시키게 할 것이다."(7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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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robot)이란 단어는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돌아다니기, 즉 롤러가 달려 여기저기를 다니며 청소를 하는 정도에서, 지금은 영화《매트릭스》나《A.I.》에 이르기까지 ‘무섭게’ 변해왔다.『마음의 아이들』은 말한다.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에서 로봇으로 바뀌게 되며, 이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자산, 곧 지식 ․ 문화 ․ 가치관을 송두리째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넘겨줄 것이므로 자식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저자 모라벡은 이것을 ‘Mind Children' ㅡ ’마음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판명된 결정의 확률을 증가시키고 낭비된 활동이나 위험이 따랐던 것을 감소시키는 메커니즘, 이런 식으로 서서히 지능화된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마음이 로봇의 마음이 되고, 로봇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이 된다……. 인간은 매우 느릿느릿하게 진화되어 왔다. 그에 반해 로봇의 경우는 어떤가. 수십 년 사이에 인간의 진보와 맞먹을 정도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도 그 발전의 속도는 더욱 더 빨라질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인간은 저 뒤로 밀려나게 된다. 인간세상이란,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에 의해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 ㅡ 실제로 많은 곳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많이 경험해 왔다. 우리가 만든 로봇이 우리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고, 소통하고, 소프트웨어를 교환하며 그들 스스로 진화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말미에 모라벡은 그것에 긍정적인 시선을 부여하고 있으나, 우리의 후손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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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두 갈래로 나뉜다. 실제로 무한한 것과 매우 많지만 사실은 유한한 것. 순환소수의 숫자들은 실제로 무한하겠지만 서해안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 수는 정말 셀 수 없도록 많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셀 수는 있다. 같은 맥락으로 '미래' 역시 정말 올 것 같은 것과 사실 올 것 같지 않은 것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무한'이랑은 좀 달라서, 그러니까 '미래'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답이 다르고 그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없다. 대신에 그 타당함 정도는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미래의 로봇은 어떤 모습일까? 분명 발전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일반인들이 쓰기에는 '청소기' 이상의 용도를 발휘하지 못하는 신세이다. 하지만 이 로봇의 잠재력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기에, 저 옛날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든 체코의 SF작가로부터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A.I.>에 이르기까지 로봇의 미래를 그린 무수히 많은 대중 예술(문화) 창작물이 있어왔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회색빛 금속 마냥 차갑고 어두운 풍경을 그려 냈다.
실제로 로봇을 개발하고 연구해 온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한스 모라벡 교수는 이 책 <마음의 아이들>을 통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범용으로 쓸만하기 위해 필요한 로봇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정의하고(손익분기점으로 표현), 컴퓨터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의 발전 속도를 계산하여 로봇이 수치화된 인간의 감각 및 신경 능력과 비등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다.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공생에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 과정과 새로운 접근 방법의 예(마술 안경 등의 새로운 도구, 체화할 수 있는 과학 지식)를 제시한다. 그 뒤 인간의 지식(경험)을 로봇에 이식하여 새로운 '후기 생물적 세계'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특히나 주목을 끄는 것이 이 '후기생물적 세계'라는 존재이다. 마치 전생-현세-내세의 개념처럼 인간의 마음을 로봇의 소프트웨어에 옮겨 심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몸-동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죽음과 다를 바 없지만 '패턴-동일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삶의 연장의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있고, 여기에 인간의 지식(경험)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최적화된 하드웨어 덕분에 열역학 제 2법칙적에 의거,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우주의 멸망' 역시 늦출 수 있는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다. 정말 상상만으로 벅차다. 스케일도 벅차고, 논리의 전개를 쫓아가기도 벅차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끌어들인다. 지극히 공학적인 이야기부터, 인간의 진화 과정과 작동 기제를 설명하기 위한 생물학, 새로운 물질과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물리학에 윤리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철학까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그럴 듯하게 그려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 연구하고 고민해 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깊이만큼 벅차고 어렵다.
이 책이 어려운 것은 그만큼 깊이있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구와 고민 없이 이루어진 번역 탓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5장의 첫문장 '후기생물적 세계는 축적된 지식의 도서관으로부터 구성된 큰 범위의 개인으로 이루어진 숙주일 것이다'와 같은 지독한 직역의 남발로 읽는 사람의 의욕을 떨어뜨리게 하고, 분명 IC회로가 들어갈 자리에 '통합 회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혼란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과학책이라는 분류에 맞지 않게 지수/로그 계산을 잘못하여(부록 2) 실망감을 더하기도 한다. '해제'라는 말에 잔뜩 기대를 했건만 '해제'를 담당한 분은 읽기 쉬운 서론을 하나 더 쓴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다.
1989년, 무려 20년도 전에 쓰여졌지만 이 책은 상상력을 전개하는 합리적이고 참신한 방식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만일 인공지능 쪽에 관심이 있다면 인간의 행동과 생물학적 특징을 기계로 구현하는 논리(로직)를 익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나름 공학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깎아버리는 난해함과 그 보다도 더 절망적인 번역은 불행히도 책을 읽기 전에 꼭 다시 명심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