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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향기를 느낄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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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소설중 가장 장편이었고 책이 무거워서 (주로 책을 들고서 보기에) 끝까지 읽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은 선생님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문체도 왠지 낯설게 느겨졌다.  소재 특성의 반영이겠지만 서사적이며 관조적인 느낌이 들었고 왠지 관능적인 느낌도 있었다. 나에게는 처음 부터 쉽게 읽히지는 않는 문체였다. (1/3정도 읽고나니 적응이 되는 느낌
"선의 향기를 느낄수 있을까요?" 내용보기

최근에 읽은 소설중 가장 장편이었고 책이 무거워서 (주로 책을 들고서 보기에) 끝까지 읽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은 선생님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문체도 왠지 낯설게 느겨졌다. 

소재 특성의 반영이겠지만 서사적이며 관조적인 느낌이 들었고

왠지 관능적인 느낌도 있었다.

나에게는 처음 부터 쉽게 읽히지는 않는 문체였다.

(1/3정도 읽고나니 적응이 되는 느낌이 였다.)

 

처음 불교가 서양에 소개 되었을때 불교를 과연 종교라고 할수 있는지에 대해 학문적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종교"라는 한자는 영어 단어를 일본 학자들이

번역하며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불교가 있고, 도교가 있고, 기독교(경교)는

있어도 이들을 통합하는 보편적 개념으로의 종교라는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선불교는 하나의 수행체계인지 그 자체를 종교로 볼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을 정도로 독특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선의 유명한 가르침은

이런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전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은 때로는 너무 외롭게 느껴지기도한다. 의지할곳이 없는 것 같아서....)

 

소설이 주는 강점중 하나는 .....

예를들어 "증오"라는 개념을 설명할때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이라고 하는 것 보다 정말로 미워할 만한

사례나 인물을 묘사하는게 훨씬더 효과적이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 대한 서적들을 읽을 때 느낀것 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 많이 들고 

"선"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참외를 이해하는 가장좋은 방법은 먹어보는 거라고 하는데

(간혹읽는 책을 통해서는)

먹기는 커녕 언젠가 향기라도 맡아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m**********8 2011.11.3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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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6대조 선사들의 수행을 꿰뚫다
"선종 6대조 선사들의 수행을 꿰뚫다" 내용보기
가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에 수도승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수도승을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 또한 열심히 정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20대 팔팔한 나이에도 해인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아주 편안하게 지냈거니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내를 만나고 딸과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선종 6대조
"선종 6대조 선사들의 수행을 꿰뚫다" 내용보기

가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에 수도승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수도승을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 또한 열심히 정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20대 팔팔한 나이에도 해인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아주 편안하게 지냈거니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내를 만나고 딸과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선종 6대조 선사들의 수행을 읽으니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진을 하여 깨달음을 얻는 점수나 찰나에 깨치는 돈오는 나랑 한참 멀다.


초조 달마(達磨)에서부터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惠能)으로 이어지는 선불교 6대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마는 페르시아의 오아시스에서 태어나 전쟁고아로 떠돌다가 귀중한 호족의 양자가 되지만 출가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이 60대에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향한다. 인도의 법통을 떠난 달마는 바다에서 종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잃고, 밀림에서는 완전 벌거숭이로 다니는 마을을 지나기도 하며, 갖은 고생 끝에 중국에 다다른다. 달마가 도착한 중국의 남조는 양무제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양무제는 달마를 황제의 국빈으로 맞이하거니와 달마가 퉁명스레 말해도 거기에 노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달마는 부귀와 권력을 보장하는 양나라를 떠나 숭산 소림사에서 벽관 9년의 수행을 한다.


벽관壁觀 9년 동안 그는 잠이 오면 잠을 쫓아내기 위해서 그의 눈썹 하나를 뽑아 냈다. 그렇게 뽑혀서 버려진 눈썹들이 차나무로 자라나서 그 찻잎을 달여 먹으면 잠이 없게 된다는 전설 이전에 그는 잠과 싸워 이기는 일을 남인도 혹은 서역의 사막에서, 그리고 그 북위의 숭산에서 계속해 온 것이다.

하지만 달마의 이같은 절벽 아래의 수행이 없었던들 그는 남북조에 걸친, 그 당시의 인구로 보아 엄청난 5백만 이상의 불교승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중국에 와서 중국의 수행을 새로 펼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달마에 있어 중국은 목적지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수행의 모국母國이었다.(154쪽)


달마의 수행법은 당시 중국 불교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었다. 소승에서 대승으로, 교에서 선으로의 이행을 실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달마의 수행은 2조 혜가로 이어지거니와 달마는 그를 시기하는 부처의 무리에 의해 독살 당한다. 2조 혜가는 어렸을 때 그림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세에 향산사에서 수행을 하다가 달마를 찾았으나 상당한 기간 동안 제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남조의 양무제나 그 밖의 교학적인 환경을 부정한 것처럼 북조의 역경(譯經)과 교학의 연찬(硏鑽) 따위에 길들여진 혜가의 아상(我相)을 허용하지 않는 의미였다. 그러나 혜가는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르면서 달마의 제자로 받아들여진다. 한 사람씩 상단에 세워 대중으로부터 쏘아붙이는 질문을 받게 하는 대중거량(大衆擧場)의 방식을 채택하여 수행한다.


달마의 법통을 이어받은 혜가의 곁에는 총지와 도부가 있다. 총지 비구니는 달마가 자신의 살을 얻었다고 말한 제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색(美色)이 방랑수행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알고 40이 다 되어가는 무르익은 중년을 포기하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고사목이나 삭정이와 마른 잎새 따위에 부싯돌을 쳐 불을 붙인 다음 그 불붙은 것에 몇 번이고 그녀의 한쪽 볼을 지져대는 엄중한 고통을 지속한다. 한쪽 볼을 흉측하게 만들어 그토록 고상하고 아름다웠던 얼굴을 추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도부는 달마가 자신의 가죽을 얻었다고 말한 제자이다. 이들은 혜가가 달마의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혜가를 스승으로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렇지만 이들 셋은 서로를 스승으로 도반으로 여기며 동고동락하니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3조는 문둥병 환자인 승찬이다. 스승 덕분에 병을 고쳐 수행자의 길로 나서거니와 큰 나무 밑에서 스승 혜가의 한쪽 손 합장처럼 오른손만의 합장으로 입적한다. 4조는 도신이다. 도신은 누워 있는 것을 가장 불편한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암굴수행으로 정진한다. 죽을 때조차 대중들에 둘러싸여 일체법이 다 해탈이라는 말을 남기고 좌탈입망(坐脫入亡)한다. 5조는 홍인이다. 처음 동산에 들어와서 21일 동안 침식을 물리친 정진 끝에 도신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6조는 혜능으로 법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선사이다. 남만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전혀 문자 해독을 하지 못하는 무식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스물네 살에 출가한다. 절에서 방앗간 사노(寺奴)노릇을 하다 홍인의 상수제자 신수(神秀)의 게송에 대한 오도(悟道)의 노래로 법통을 이어받는다. 

YES마니아 : 로얄 g*******g 2013.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