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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김정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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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모든 장과 문장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화자가 서술하는 모든 대상은 화자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묘사하는 상황조차도 딴 사람의 일인 것 마냥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책의 모든 부분에서 화자가 느끼고 있는 엷지만 분명한 감정이, 밝게 타오르진 않지만 타다 남은 불과도 같다고 묘사된 그 감정이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   바람의 옷의 화자는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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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모든 장과 문장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화자가 서술하는 모든 대상은 화자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묘사하는 상황조차도 딴 사람의 일인 것 마냥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책의 모든 부분에서 화자가 느끼고 있는 엷지만 분명한 감정이,

 밝게 타오르진 않지만 타다 남은 불과도 같다고 묘사된 그 감정이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

 

 

 

바람의 옷의 화자는 극단적이다.

한국의 전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으로, 아일랜드로, 프랑스로, 영국으로 세상을 떠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가계를 타고 흐르는 분위기, 풍비박산이 난 가정에서 아이였던 그녀가 느꼈을 존재의

무제, 여러 남자들을 거쳐 보내면서 고민해보았을 외로움과 상실의 문제를

어떤 사람들이 동시에 다루어야만 했을까.

물론 이 땅에 그런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극단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은 때때로 극단적이고

공감하기 어려운 경험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의 마음 안에 공통적인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모든 소설가들은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혹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를테면, 용과 싸우는 기사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당함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는 것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허망하고, 꿈 속의 일, 소설이나 연극 속의 일과 같은 가운데,

그녀에게 분명한 것은 갈망이다.

 

도무지 어느 땅에서, 혹은 어떤 사람과 연을 잇고,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자식과 그녀의 관계는 참담할 따름이다.

마땅히 다른 소설에서는 중심이야깃거리로 사용될법한 아이의 존재는

 아주 지나치듯이 짧게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더더욱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실존하고 있을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다.

 소설 속에서 인용하고 있는 루카복음에서는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그녀의 보물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은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 독자, 모두의 질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발붙이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곳이 단단한 현실임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이면,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서나

, 달이 창에 비치는 방 안에서, 아무와도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인가, ‘바람의 옷에 등장하는 그녀와 그가 매일매일을 분투해야 했던 대상인

 허무함과 외로움을, 그리고 갈망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도 문제가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 문제를 더욱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j*****u 2018.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람의 옷 - 김정 신작 장편소설
"바람의 옷 - 김정 신작 장편소설" 내용보기
<바람의 옷>은 김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로, 주인공인 ‘나’가 1940년대 후반 이 땅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살아온 장면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한 여성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책 가장 앞부분의 소설 <바람의 옷>을 쓴 김정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살면서 알게 된 수수께끼가 있다.세상 모든 존재는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면모를 갖고 있었다.어떤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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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은 김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로, 주인공인 ‘나’가 1940년대 후반 이 땅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살아온 장면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한 여성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책 가장 앞부분의 소설 <바람의 옷>을 쓴 김정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살면서 알게 된 수수께끼가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면모를 갖고 있었다.
어떤 것도 같지 않았고 아무것도 다르지 않았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책도 그랬다.
올해 겨울은 지난겨울과 같으면서 달랐고 내 속에 있는 나 또한 내게 낯설었다.
시대와 사람 모두 같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며
서 있는 공간에서 시간의 흔적을 받아안는다.
그리고 그 흔적을 껴안은 채 조금씩 다른 기억의 그늘을,
어둠과 빛 사이의 수천, 수만 가지 그늘을 만든다.
그것이 내게는 때로 환희이고 구원이면서 쓰라림이기도 했다.
옮겨 다닌 공간에서 스쳐 가며 본 서로 다른 겹의 그늘이 공백 끝에 글을 쓰게 한 동력이었다.
그 겹이 책 속에서 전해졌으면 한다."

소설 <바람의 옷>의 1장 '바람을 머리에 이고'에는 화자이자 여성 주인공이 불운한 어린 시절부터 자아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젊은 날, 그리고 고독한 현재 상태까지를 담담히 독백한다. 이 책에서 화자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을 단 하나도 제대로 갚지 못한 채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남자를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어떤 소리를 듣고 또 어떤 장면을 보고 또 어떤 냄새를 맡고 우리가 떠올리는 건 아픔 자체보다 아픔의 기억으로 남은 것, 슬픔 자체보다 슬픔의 기억으로 남은 건지도 모른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는 아픔이고 슬픔이었고 이제 나이가 든 나에게 그는 아픔의 기억이자 슬픔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억된 아픔은 그때의 아픔보다 더 둔중하게 아프고 기억된 슬픔은 그때의 슬픔보다 더 한스럽게 슬프다. 아마도 그 아픔이나 슬픔의 기억이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소생을 두려워하던 자신의 이기심을 혐오하며 자신의 나라를 어서 뜨고 싶다고 핑계를 대던 이 소설의 화자는 결국 아버지처럼 집과 나라를 떠났다. 그러고는 그 성급한 결정이 베푼 후유증을 안은 채 어머니처럼 자식보다 자신의 인생을 택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십수 년 전의 아버지의 죽음을 새삼 떠올리며 나는 늘 내가 어머니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어머니에게는 온전한 대접을 해 주지 않고 가혹한 잣대만을 갖다 대었다. 사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오늘'을 산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즉흥적이고 즉물적인 사고와 행동에 나는 늘 제동을 걸고 책을 잡는 역할만을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런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보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다. 앞뒤에 놓인 근심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냥 눈앞의 것만 보려는 어머니의 무심한 유아적 태도가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6.25 동란을 겪으면서 어머니 스스로 아무리 개인적인 삶에만 매몰돼 살았다고 해도 사회적 변동이라는 역사의 고리를 비껴갈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이 느꼈던 모든 사랑이 따뜻하고 푸근하기보다 저리고 아프고 서러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찬란한 색깔의 사랑도, 어두운 색깔의 사랑도 사랑은 사랑인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의 화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일찍 가 버린 '경경'과의 관계도 고든과의 열정 없는 결혼도 지나고 보니 모두 내가 했던 사랑의 형태였다. 더 되짚어 보니 신부님에 대한 나의 감동도 어머니에 대한 분노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다 내 나름의 사랑의 형태로 그 시기에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스스로가 정해지지 않은 길을 찾아가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지 않았나 싶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길, 새로운 도시를 찾는 시도는 늘 과감하고 자유로웠다고 생각했으나 그 길고, 그 도시로 들어서면 늘 그곳을 익숙한 방식으로 익숙하게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담기지 않은 이 집은 집인가? 집이 아닌가? 내 나라를 떠나 이렇게 헤매며 만든 이 집이 나에게, 또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편안함과 그리움의 장소가 되길 바라며 나는 그 안에 내가 아끼는 것들과 그들이 좋아할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채우며 살았다. 그러나 채워진 것은 내 갈망의 무게에 짓눌린, 그래서 윤기를 잃고 만 물건들뿐이고 정작 집 안을 그득 채워야 할 그들의 숨결은 없는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이제 아이가 왔다가 떠나간 그 집은 그 집의 존재만으로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집은 이전의 그 집이 아니었다. 이제 그 집은 내게 빈집같이 느껴졌다. 사람이 담기지 않은 그 집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이 방, 저 방, 부엌, 거실을 뭔가에 씐 사람처럼 왔다 갔다 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집은 마치 한 군데가 떨어져 나가 휑하게 찬 바람이 도는 듯했다. 그것이 집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에 뚫린 구멍 때문인지 나는 그날 밤새 잠들지 못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집 안을 맴돌았다."

이 소설의 2장 '펜티멘토'는 화자가 우연히 찾게 된 서울의 한 골동품점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보수하며 살아가는 젊은 남성의 이야기가 3인칭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2장의 제목인 '펜티멘토'는 화가가 처음 그런 구도와 형태를 후회하며 그 위에 덧그린 새 그림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벗겨져 나가고 밑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밑그림이 안고 이는 옛 시간과 공간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을 의미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녀는 그를 시험한 것이었고 그 역시 그녀의 그림과 그 요구의 기이함에 휘말려 당치도 않게 그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는 전문가가 아니면서 그런 척 할 수가 없어 그날부터 열심히 물감과 그 재질에 대한 공부를 했고 그런 현상이 '펜티멘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종종 오래된 그림에서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일종의 시간의 마술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그녀가 위의 정물화를 걷어 내고 싶어 하는가 보다는 그녀가 왜 그런 그림을 갖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집을 나왔다. 어머니는 그것이 혹시 밥을 보장해 주는 준비가 아닐까 하는 기대로 동의했고 그는 우선 밥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밥은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 오로지 매달 같은 날, 같은 액수로 어머니가 넣어 주는 온라인 송금이 그의 밥이었다. 그 밥값으로 피나게 밥을 찾으러 다니는 대신 괜히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이렇게 떠돌면서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병을 얻었다. 한 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도 안주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의 그런 모습이 젊었을 적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많이 힘들었던지 서둘러 독일로 떠나게 했던 것이다. 독일에서도 그는 그곳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듣는 거 말고는 기차를 타고 유럽의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골동품점에서 일하는 젊은 남성은 이 소설의 화자를 시장 좌판에서 마주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여성과 아주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의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자신의 지난날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자꾸 변형하고 각색시켜 기억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현실의 허구화가 갖는 모순과 혼란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느 순간 그녀는 속이 꽉 찬 내실 있는 사람이 되었다가 얼마 뒤 그녀는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로 다가왔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건지 그로서는 불가해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위장'과 '변신'은 우리 인간의 오래된 생존 기술이기도 해서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날 그는 메모 철에 읽고 있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 중 한 구절을 번역해 적어 놓았다.

망각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류학적인 근거가 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전기를 다시 쓰고, 과거를 바꾸고, 다른 이와 자신의 궤적을 지워 버리려는 욕망을 간직해 왔다. 망각하려는 의지는 기만을 하려는 단순한 유혹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여자 주인공은 골동품점에서 일하는 젊은 남성에게 자신에게 집은 '꿈'과 '돈'이 늘 어긋나게 물리는 엇박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그녀가 쌓아 놓았던 모든 것들은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린다.

"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개별적인 감성을 중시하는 방과는 달리 집은 누군가와의 공감력을 되살리게 해 주지요. 방이 주는 단독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에 앞서 단란함이나 따뜻함으로 연결되는 정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요? 호텔에 아무리 좋은 방이 많아도 우리는 그걸 집이라 부르지 않지요. 어디선가 솔솔 익숙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귀에 익은 소리들이 두런거리는 곳이 바로 집이니까요. 그렇게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특별한 유대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공감대가 자리하지요. 그러나 그 유대와 공감대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집도 변하고 나도 변해간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안간힘을 쓰며 잡고 있던 줄을 놓으리라 생각하자, 차라리 시원하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꿈'과 '돈'이 행복한 조우를 한 시기는 불과 몇 년이 못가 끝나고 말았어요. 내 꿈의 한 방편이었던 집이 모래와 안개의 집이 되어서가 아니라 내 몸이, 내 정신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그 누군가와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인 거겠지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길을 잃게 만드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어요. 시대와 역사가 준 환난이었지요. 그런데 나는 왜 길을 잃었는지, 왜 집 없는 아이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집을 소유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을 들일 수 있는 집이 돼야 하는 거죠. 집에는 살아 있는 생명이 깃들어야 좋은 집이에요. 이곳으로 돌아와 내가 만든 집에 들인 것들은 모두 죽은 영혼들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죽은 영혼이 깃든 물건들에 집착했나 봐요. 그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기에는 이제 힘이 부치네요. 내 집에는 누군가가 쓰던 것, 누군가가 깃들었다 사라져 버린, 그런 것만 가득하지요. 이즈막에 와서 너무 격하게 공감하는 쓸데없는 공감력이 생겼는지 이제 그 물건들에 깃든 죽은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제 그만 그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 있는 것들을 모두 빼내 줄 때가 됐지 싶어요."

이 소설의 3장에서는 화자와 젊은 남성의 삶이 겹쳐지며, 화자는 그 둘 사이에 있을지도 모를 여인을 떠올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삶이 무언가에 실려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누구일까? 이제 나는 아무것도 간직할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까운 게 없었다. "불에 다 타버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발목을 휘감던 진한 핏물이 사라진 듯 그냥 가벼워졌다. 홀가분했다. 나는 나의 모든 어지러움의 시작이자 근원이었던, 지나간 것들, 손때가 탄 것, 기억이 묻어 있는 것들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트렁크 하나를 채우는 소지품 몇 가지가 전부였다. 나는 호텔을 나와 오래전 파리에 드나들며 묵었던 마레의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나는 한동안 화재 현장에서 나를 차단시키고 싶었다. 그곳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마레로 향하며 그곳에 묶여 있는 규와 그의 부인의 얼굴도 지우기로 했다. 그들 역시 내게서 사라지게 했다."

"내가 나고 자라지 않은 외국의 어떤 도시나 공간에서 내가 받는 느낌은 생경함이었다. 나는 그곳을 모르고 그곳 역시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그 아무것도 모르는 속에서 아주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나라의 곳곳에서 겪고 느끼며 묶어 놓았던 매듭들이 낯선 이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닿지 않는 줄무늬로 스르르 풀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쪽이 나를 우호적으로 받아 주지 않아도 나 혼자 좋아하다 나 혼자 싫어지면 그냥 떠나면 그만이었다. 내가 떠난 그곳에는 나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나 혼자 그곳의 흔적을 기억 속에 새기거나 묻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어떤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 장소의 실제 정체성과는 상관이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인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공간에 대한 내 기억은 외사랑의 무덤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혜주라는 인물을 떠올리며 골동품점에서 보았던 젊은 남자가 혜주의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화자가 파리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혜주를 보며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혜주의 과거가 이 소설의 화자의 현재와 뒤섞이고 결국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미래로 줄달음치고 있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혜주를 자신이 잘 아는 혜주라고 생각하기로 헀다.

"어쩌면 우리는 불행한 느낌보다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를 더 참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서울의 화재 소식은 나를 아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돌아가 수습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계속 불안하고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그에 덧붙여 또 다른 그림자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혜주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에 어렴풋이 가려진 채 겹쳐진 모습은 바로 화방의 젊은이였다. 왜 나는 혜주를 떠올리며 화방의 젊은이를 같이 떠올리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나를 계속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와서 닿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을 걸며 다가온 이야기가 불러내는 애정과 연민이 그곳으로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의 힘이 뻗어 나간 상상력이라는 것이 보태지면 내가 바로 다른 누군가가 되어 그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고통까지 껴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하게 다가와 나를 다시 만들고 결국 나의 아주 깊은 곳을 건드려 나를 이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나는 왜 내가 자꾸 혜주를 떠올리며 이렇게 헤매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저 마음 밑바닥에 있던 어렴풋한 가능성이 현실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혜주는 내게 묻혀 있었던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는 지나간 시간이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처럼 비쳐 일렁이고 있었다. 혜주는 예전의 모습을 가진 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마레의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폐허가 주는 절망과 스러짐이 묻어났다. 시간이 우리에게 응답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는 스러짐과 사라짐이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사라진다. 기억은 망각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무엇을 원했는지, 어떻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피해 가며 내게 불편을 주지 않는 길을 찾아 헤맸는지, 자신은 죽을 만큼 세상이 권태롭지도 않았고 살아 있을 만큼 세상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의 몸이 어디에 있건 정신의 거처에는 늘 바람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여기저기에 축축한 누기가 차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의 화자의 삶은 밝게 타오르는 불꽃이 된 적이 없었다. 늘 조금씩 타는, 꺼질듯하면서도 꺼지지 않고 타는, 타다 남은 불 같은 것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나는 그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결국 그 두려움은 아무리 내가 있던 곳을 떠나고 장소를 바꾸어도 결코 내가 끌고 다니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그 밑그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느다란 두려움의 꼬리 끝에 어스름에 쌓인 그림자로 그렇게 나를 따라오는 것이 있다는 느낌은 아주 모호하면서도 이중적인, 안도가 함께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나타나지 않는 혜주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몰랐던 혜주를 자신이 아는 혜주로 바꾸기로 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혜주의 삶을 불어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원처럼 다가온 것이다.

"내가 파리로 떠나온 것이, 혜주라고 생각되는 동양 여자를 본 것이, 그리고 몇 날 며칠을 헤매고 흔들리며 붙잡은 줄이 바로 혜주를 글로, 이야기로 다시 살려 내는 것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계속 살아 있기 위해, 글로, 이야기로 튀어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내가 쓰는 이야기여야 했다.
내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내 이야기에 매몰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나에게 닿는 방법,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는 방법은 이야기로, 글로 닿는 것이었다. 내 말과 글이 직접 그 아이를 뚫고 들어갈 수 없게 태어나 자란 내 아이에게도,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화방 젊은이도 이야기로 가는 길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게 없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것,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 벗은 몸으로 이야기와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내게 남은 전부였다. 나는 어둠을 제치고 날개 위에 이야기를 얹기로 했다. 어디로 날아가든, 어딘가에 잘못 내려앉든 나는 우선 이야기를 날개 위해 얹어야 했다. 그것 말고 다른 명목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늘 뿌리가 어딘지도 모르는 기억을 좇아 그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상상의 날개 밑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을 제치고 혜주의 삶 속으로 넘어 들어갔다. 나는 혜주의 삶을 마치 내 것인 양 다시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잊고 나와 다른 삶을 주조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누상동의 '함' 화방을 떠올리고 화방의 옛 주인과 그 아들, 그리고 혜주와의 연결 고리를 찾고 있었다. 결국 나는 먼 시간의 강을 건너 혜주를 가능성에서 현실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혜주와 공유하지 못했던 시간을 재구성했다. 그러자 혜주는 내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내게로 왔다. 나와 가깝지 않았던 혜주는 나와 가까운 혜주가 되었다. 실제 세계는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혜주의 현실이 훨씬 실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혜주의 모습 위에 또다시 화방 젊은이의 모습을 겹치고 있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이 그린 혜주 이야기의 가능성이 화방 젊은이에게 닿아 어떤 현실로 증식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혜주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면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때서야 이 소설의 화자는 파리를 떠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현실이 되지 못한 가능성을 껴안고 비행기에 실린 채 날아가고 있었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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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김정장편소설,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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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게 화를 내거나 나를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귀를 기울이기로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짙은 핏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막막한 느낌이 차오르자 나는 늘 하던 방식대로 내가 있던 곳을 떠났다.내가 맺은 모든 관계에서 단일한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매듭이 있는채로 풀지 못한 숱한 갈등, 그리워해야할것을 그리워하지 않은 죄책감, 애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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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게 화를 내거나 나를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귀를 기울이기로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짙은 핏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막막한 느낌이 차오르자 나는 늘 하던 방식대로 내가 있던 곳을 떠났다.

내가 맺은 모든 관계에서 단일한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매듭이 있는채로 풀지 못한 숱한 갈등, 그리워해야할것을 그리워하지 않은 죄책감, 애도하지 않은 채로 그냥 보내버린 죽음들, 그리고 이렇게 모든걸 어질러 놓은 자신을 만나게 되는 쓰라림이 기다리고있을뿐이었다. 나는 내 삶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삶의 밖에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어떤 소리를 듣고 또 어떤 장면을 보고 또 어떤 냄새를 맡고 우리가 더올리는건 아픔자체보다 아픔의 기억으로 남은것, 슬픔 자체보다 슬픔의 기억으로 남은건지도 모른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는 아픔이고 슬픔이었고 이제 나이가 든 나에게 그는 아픔의 기억이자 슬픔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억된 아픔은 그때의 아픔보다 더 둔중하게 아프고 기억된 슬픔은 그때의 슬픔보다 더 한스럽게 슬프다. 아마도 그 아픔이나 슬픔의 기억이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얹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내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아이가 낸 생채기를 안고 돌아온 내 나라에서 내 낸 생채기를 안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묻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나라를 떠나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나는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는 늘 내가 살아야 할 거처를 내 나라에 한정시키지 않게됐을까? 무엇이 나를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게 했을까?

내가 이렇게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헤매는 데는 어떤 모순도 아무렇지 않게 껴안는 어머니의 원칙없는 수용력을 직간접으로 물려받은점도 없지 않을것이다. 어머니는 보통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정신적 물리적 부조화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높은 구두에 타이트스커트를 입고도 손에 든 물건이 무거우면 머리에 이었고 다른사람들의 비행은 못참아하면서 자신은 더한 비행도 아무렇지 않게 저릴렀다. 항상 눈앞의 필요가 최우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두사람이 한국에 있는것이 아니라 국외자로 남의 땅에 살고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세금을 내고 이곳 시민으로 살아도 이곳 사람들에게 규와 나는 그들의 주목이나 지탄의 대상이 될 만큼의 관심도 받을수없는 국외자였다. 그러나 또 그 점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질문과 의심의 눈초리가 면제되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면 가만히 바라보거나 손을 잡아주고 무언가로 흥분해 마구 말을 쏟아내면 그냥 들으며 고개만 끄덕여 줄수 있었다. 수많은 일을 겪고 젊은 시절을 넘긴뒤,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 땅에서 규와는 그런 관계가 쉽게 유지 되었다. 이렇게 쉬운일이 그리도 어려워 여러변 뒤틀리고 꼬였던 것인지 참 알수없는 일이었다.

 

전에도 그랬던것처럼 아이도 규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내 사랑도 시간에 맡겨두자. 내가 먼저 건드려 피지도 않은채 떨어지는 꽃이 되게 해서는 안되겠지. 바람이든, 햇빛이든, 빗물이든 슷로 받고, 제가 나온 가지에서 제 마음대로 자라게 그냥 두는거지.

나는 해가 지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통증이 있는 것 같은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 뭐든 시간의 호주머니에 잘 넣어 두면 묵은 포도주처럼 익어 있겠지.'

 

우리네 인생은 큰길이 나 있는 신작로로도 지나가고 아주 소소한 우회로로도 통하지요. 그 소소하고 좁은 우회로에는 크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은 작은 비밀들이 꽃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답니다. 놀라운 일은 그 꽃잎들이 드러나 보일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많다는 거예요. 그 꽃잎 중 하나를 내가 주워 전해주었나 보군요. 그런게 우리 삶이 주는 우연의 선물이고 인연이라고도 하는 거겠지요.

 

아버지는 그에게 바람 같은 존재였다. 불어닥쳐 가까이 있으면 항상 그를 그 바람에 흔들리게 해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고 지나가고 나면 전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언제 불어와 언제 사라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늘 별말이 없었고 특별히 그를 데리고 어디로 가거나 같이 놀아 준 기억도 거의 없었다. 그는 어릴 적 그런 아버지가 어렵고 싫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그를 꽤 먼 놀이터에 데려가 놀게 하고는 한참 유심히 지켜보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낯선 놀이터에 버려진 그는 해 질 녘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이런 불확실한 태도는 그 또한 헤매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가 책을 읽듯 그녀를 읽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주 신기하게도 자신의 삶을 산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읽으려고만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삶에서 이상한게 읽히면 책을 읽으며 그렇게 하듯 밑줄을 그어 놓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쳐진 밑줄 긋기가 자신의 삶에 등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아직 모르는것 같았다. 대안 현실에서 현실감을 찾으며 헤매는 그에게 지금 그의 앞에 놓인 현실로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고싶었다. 제대로 살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위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마냥 허우적거릴게 아니라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다가 발로 바닥을 쳐야 하는것임을 일러 주어야 할것같았다.

 

내아버지와 어머니는 길을 잃게 만드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어요. 시대와 역사가 준 화난이었지요. 그런데 나는 왜 길을 잃었는지, 왜 집없는 아이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집을 소유하는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을 들일수있는 집이 돼야하는거죠. 집에는 살아있는 생명이 깃들어야 좋은 집이에요. 이곳으로 돌아와 내가 만든 집에 들인 것들은 모두 죽은 영혼들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죽은 영혼이 깃든 물건들에 집착했나 봐요. 그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기에는 이제 힘이 부치네요. 내 집에는 누군가가 쓰던것, 누군가가 깃들었다 사라져버린, 그런것만 가득하지요. 이즈막에 와서 너무 격하게 공감하는 쓸데없는 고감력이 생겼는지 이제 그 물건들에 깃든 죽은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제 그만 그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 있는 것들을 모두 빼내줄때가 됐지 싶어요.

 

공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와서 닿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을 걸며 다가온 이야기가 불러내는 애정과 연민이 그곳으로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시선의 힘이 뻗어 나간 상상력이라는 것이 보태지면 내가 바로 다른 누군가가 되어 그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고통까지 껴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아주 미묘하게 다가와 나를 다시 만들고 결국 나의 아주 깊은 곳을 건드려 나를 이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게도고 그것이 고리가 되어 또 다른 고리로 이어지는 인연이라는것은 알수없는 경로로 우리에게 닿는다.                             -본문 中

 

 

김정 이라는 소설가의 책은 처음인듯하다.

언젠가부터 베스트셀러중 끌리는 책을 읽거나, 한번 끌린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작품만 골라읽어, 낯선작가.

김정, 이 작가 참 독특하다.

무심코, 이책은 어떤책인가, 한두장 넘기다 이틀만에 다 읽어버린 책,

흡입력도, 내용도 좋다.

약간 몽환적이라고해야하나, 난 그랬다.

불운한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미국,프랑스와 독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주인공이야기와

우연히 찾은 서울의 골동품점에서 오래된 물건을 고치려 만난 젊은 남자에게서 학창시절 친구 혜주와 겹치는 이야기.

 

난생 처음본사람과 미국행을 결정하고, 방황하고,이별하고, 또다른 남자를 만나고 배신당하고, 다시 사랑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소설이지만, 난 이런 류의 소설이 좋다. 외롭고, 슬프지만, 차분해지는 책.

읽는내, 오롯 혼자인 주인공이 마음에 쓰여 그녀와 함께 하고싶었다.

조용히 그녀옆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김정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끌린다 이작가. 

y********3 2018.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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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며 흘러가는 삶, 김정 장편소설[바람의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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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어째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을 연이어 두권이나 읽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 데미안에 이어 이번 김정의 소설은 조만간 가게될 영국이나 남프랑스가 배경이 되기도 해서 어째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사실 요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면에 있어 참 절묘한 타이밍의 독서가 아닐 수 없다.김정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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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어째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을 연이어 두권이나 읽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 데미안에 이어 이번 김정의 소설은 조만간 가게될 영국이나 남프랑스가 배경이 되기도 해서 어째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사실 요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면에 있어 참 절묘한 타이밍의 독서가 아닐 수 없다.

김정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은 이 소설! 주인공은 바람의 옷을 걸친듯 이리저리 부표처럼 흔들리며 내내 방황하게 된다.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문드문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자라온 성장 과정을 마치 책을 읽는 독자가 돌이켜 보듯 추억하게 만드는 소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던 주인공이 한국을 떠나 더블린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아일랜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평온한 삶을 살아내는듯 하지만 어느순간 파국에 이르게 되고 걸국 남편과 아이를 떠나게 되고 만다.

'그래, 뭐든 시간의 호주머니에 잘 넣어 두면 묵은 포도주처럼 익어 있겠지'

자신의 삶이 어째서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하지 못한지를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의 삶에서 이유를 찾으려 하는듯 옛시절을 추억한다. 엄마의 재혼으로 잠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머물러야했던 일, 언니와도 잠시 이별했던 때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언니에 대한 생각, 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느날 찾아온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가 장례를 치뤘던 일등등 그녀의 오래묵은 옛이야기들이 현재의 삶이 평탄치 않은 이유라는 듯이 펼쳐지게 된다.

타국에서 방황하던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주인공은 낯설지 않은 화방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장품을 수선하는 일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는 함화방을 꾸려나가는 남자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주인공은 그가 분명 누군가를 닮아 있어 그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남자는 어딘지 기이한 느낌을 주는 여자의 등장을 의아해하며 자신이 중단했던 글쓰기를 재개하게 된다. 어느새 서로를 읽어내고 있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두사람. 서로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었지만 점 점 멀어지고 만다. 또다시 파리에 머물게 된 주인공은 함화방의 그남자가 익숙했던 이유를 깨닫게 되는데 그를 존재하게 만든 친구를 떠올리게 되고 그녀의 삶을 대필하듯 써내려가게 된다.

김정의 장편소설 바람의 옷을 읽다보면 메모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김정의 소설속 나와 그, 그리고 그를 통해 기억해 낸 친구 혜주의 이야기는 모두 자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다. 나는 지금 어떤 바람의 옷을 입고 흔들리고 있는걸까? 백년도 못사는 우리네 삶, 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들이 시간의 호주머니에서 익어갈때쯤 어느순간 하나씩 꺼내어 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k*******7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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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바람의 옷_김정 장편소설
"[810]바람의 옷_김정 장편소설" 내용보기
표지만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큰아이는 38도 열감기에 둘째아이는 이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다 읽으려면 며칠 걸릴까 고민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덮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 둘째에게 딸기를 챙겨주고 태권도장 다녀온 첫째에겐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켜주고 이부자리를 봐주었다.작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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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만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큰아이는 38도 열감기에 둘째아이는 이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다 읽으려면 며칠 걸릴까 고민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덮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 둘째에게 딸기를 챙겨주고 태권도장 다녀온 첫째에겐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켜주고 이부자리를 봐주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인공 삶도 그렇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처 영국, 프랑스에서 마무리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싶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변 누군가의 삶을 재구성한건 아닐까 했다. 어떻든간에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덮고 나면,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한 장 한 장 저민듯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인물들 삶이 그랬다. 지금 내 눈 앞에 고민들은 정말 우주의 먼지 정도 되는구나 싶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6.25때 부산 피난 시절, 국제시장을 기억한다. 대여섯 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칠십중반 정도일 것이다. 딸 셋 집안 아버지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떨어져 살다 영영 같이 살기 힘들게 되었다. 엄마는 재혼했고, 자매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큰 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맏딸이 되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게 된다. 원래 유학 목적지는 더블린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각자 저장방식이 다르다. 더블린 세글자를 보는 순간, 난 TV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생각났다. (기존의 한국 가수들이 인지도 전무한 해외로 떠나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들은 버스킹을 했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은 풍경과 음악으로 저장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바람의 옷'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나은 공간이라는 기억이 추가될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더블린으로 왔다. 그 후 5년 동안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또 한 아이와 시부모님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남편과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의 첫 아이가 아니라는 걸. 사촌누이와 남편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동안 남편에게 얇은 막이 느껴졌던 건,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따뜻하지 않아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본문 중에 자신의 업보를 아이에게 물려주어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 떠올랐다.

170쪽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목격한 것을 자신의 나름으로 저장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각자가 목격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 역시 내가 맞닥뜨렸던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해 기억한다기보다 그것이 그때 내게 남긴 인상, 후유증, 아니면 그 여파를 기억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목격하고 무슨 일을 기억하건, 언젠가는 어딘가에 가서 닿고야 만다. 결국, 끝내, 누구나 같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행로로, 어떤 시간에 도달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말 그럴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너무 가볍게, 또는 너무 무겁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54쪽
사람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렇게 대단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속물들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소박한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많은 걸 빼앗긴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고 있었다. 왠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내용에 같이 정리해두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불현듯 휘몰아치는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 책은 가장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람의 옷> 속 주인공들은 외로웠다. 그들은 온전히 혼자임을 말하고 있다. 뒷 부분에 친구 혜주를 회상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상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그리고 화방의 그 젊은 남자에게 이야기가 와닿기를 바란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z********5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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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장편소설 바람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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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장편소설 바람의 옷>    처음 만나게 되는 작가의 작품은 늘 기대감에 넘쳐서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긴장감도 갖게 되는 것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갖는 긴장감과 기대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나게 된 김정 작가의 작품 <바람의 옷>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자아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내 경우는 청소년시기였던 거 같다. 정체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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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장편소설 바람의 옷>

 

 

처음 만나게 되는 작가의 작품은 늘 기대감에 넘쳐서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긴장감도 갖게 되는 것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갖는 긴장감과 기대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나게 된 김정 작가의 작품 <바람의 옷>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자아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내 경우는 청소년시기였던 거 같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 많은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대화를 했던 거 같다.  답이 없음에도 부룩하고 도돌이표를 되돌아옴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반드시 통과의례인 듯 거쳐갔던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과거의 그 고민이 풀렸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김정 장편소설 <바람의 옷>의 주인공은 바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여인이 홀연히 떠난 모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흔적을 찾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과거를 되돌아 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정서를 건드리게 되는데 주인공은 그 보다 더한 사연으로 자신의 과거를 더듬으며 자아를 찾고자 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찾고 싶은 것은 자아라고 하기 보다는 위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상처를 주고 살았던 인생, 특히나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 살았기에 더더욱 외로움과 자아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으리라 생각된다.

'늘 그랬지만 발가벗은 나에게 아무도 옷을 입히려 하지 않았다. 내가 내 옷을 찾아 입어야  했다. 그것도 늘 누군가가 입던, 낡은, 오래된, 시간이 쌓인 옷을 입었다. 그런 옷들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 스스로도 나를 나로 보지 않게 했다. 그 옷을 입었던 원래의 주인이 된 듯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그 옷에 나를 맞춤으로써 그 옷의 원래 주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애매하고도 모호한 나로 만들었다'

 

외국에 살면서 동양인으로 느꼈던 외로움과 상실감이 많았겠지만 또한 누구나 갖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정 소설 <바람의 옷>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회고를 통해 우리도 지나친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바람의 옷, 누구나 벌거벗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자시느이 옷을 찾아입어가지만 간혹 누군가에 따뜻한 옷을 입었는지도 바라볼 마음의 여유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c******u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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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나는 누구인가, 실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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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을 입은 채 방황하는  세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소설 《바람의 옷》. 자극적인 소재와 화법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담담하게 걸어가는 듯한 클래식한 한국 소설입니다. 소용돌이치다 이내 잠잠해지는 그것이 매번 반복되는 내 안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혼란스럽습니다만. ​고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텍스트는 이리저리 흩날리는 꽃잎처럼 정처 없이, 하
"《바람의 옷》나는 누구인가, 실존을 찾아서.." 내용보기

 


바람의 옷을 입은 채 방황하는  세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소설 《바람의 옷》. 자극적인 소재와 화법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담담하게 걸어가는 듯한 클래식한 한국 소설입니다. 소용돌이치다 이내 잠잠해지는 그것이 매번 반복되는 내 안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혼란스럽습니다만.

고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텍스트는 이리저리 흩날리는 꽃잎처럼 정처 없이, 하지만 고혹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1940년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굴곡을 한 여인의 인생에 빚 대며 사무치게 외롭고 절망적인 자신을 찾는 과정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는데요. 어머니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원망, 신부님에 대한 감동, 일찍 가버린 경경과의 관계, 고든과의 열정 없는 결혼, 바람처럼 스친 규와의 인연, 그리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며 1장은 화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물 흐르듯 흘러 써냅니다.

A Posse ad Esse

가능에서 현실로


신부님에게 이끌려 더블린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시작, 화자는 바람의 옷에 휘감기어 서양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삶을 살 거란 어떤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미국, 더블린, 아비뇽, 에든버러, 런던,  파리, 피렌체를 지나 한국의 '함 화방'으로 이어집니다.


2장은 화자가 우연히 들린 골동품점이자 화방에 자신의 물건을 맡기면서 시작되는데요. 이 화방의  남성 또한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곳에 간신히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둘은 다른 듯 비슷한 이끌림으로 서로를 묘하게 탐미합니다. 주로 젊은 남성이 뜻밖의 장소에서 정신이 나간 듯한 여인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3인칭으로 쓰여 독자들도 함께 관찰하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3장은 여인과 젊은 남성의 삶이 오버랩되며 어릴 적 친구 '혜주'의 인생을 연결합니다. 집 없이 바람처럼 겉도는 여자와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지고 있어 한 번도 뺏겨 본 적 없는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아를 찾아 헤맬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여인이 상상한 혜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람만이 얼굴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장소나 공간 역시 나름의 얼굴을 가진다.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은 오랫동안 다른 종류의 얼굴로 기억 속에 저장된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그곳의 모습이, 그 얼굴이 바뀌어도 보통은 처음 본 그 얼굴로 그곳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

p. 111


​이렇게 정착지를 찾아 떠돌던 여인은 살아 숨 쉬는 집에 생명력을 넣고자 미친 듯이 물건을 수집하지만, 전소되어 파괴 된 집을 마주하게 되죠. 책은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반복한 '펜티멘토'적인 화법으로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옵니다. 죽음이 곁에 가까이 있음을 애써 모른척하는 인생의 굴레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비록 그 삶이 녹록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 인정하는 일. 우리 삶이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마치 시시포스 같아 서글퍼집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d*****9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