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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우리의 일상 속에도 스며있다.
"인종주의는 우리의 일상 속에도 스며있다." 내용보기
#1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북방 이민족들과의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여진, 말갈, 읍루, 숙번 등, 우리가 오랑캐라 부르는 그들은 때로는 우리역사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었고, 때로는 우리와 끊임없는 대립을 이어왔다.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소중화(小中華)사상에 빠진 사대부들에게 그들은 무지하면서 미개한 부족에 불과했다. 전통시대 중국의 사관에서 보면 우리 역시
"인종주의는 우리의 일상 속에도 스며있다." 내용보기

#1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북방 이민족들과의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여진, 말갈, 읍루, 숙번 등, 우리가 오랑캐라 부르는 그들은 때로는 우리역사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었고, 때로는 우리와 끊임없는 대립을 이어왔다.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소중화(小中華)사상에 빠진 사대부들에게 그들은 무지하면서 미개한 부족에 불과했다. 전통시대 중국의 사관에서 보면 우리 역시 동이족 이라는 변방의 오랑캐로 취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째서 그들을 미개하고 무지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2 언제부터인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애당초부터 단일민족 이라는 것 자체가 민족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조금은 허구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작금에 이르러서 우리사회는 이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수와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고, 또한 다문화가정도 끊임없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서구 백인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 같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할까?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던 북방민족이나, 우리사회에 들어와 있는 이민족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혹시 그것이 인종주의의 한 형태는 아닐까? 영국의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저자는 최근 들어 더 부상하고 있는듯한 인종주의에 대해 역사적 기원과, 현대사회에서 인종주의가 갖는 담론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아니면 사회적, 정치적 목적에 의한 허구인지를 책을 읽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도록 인종과 인종주의와 인종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인종이라는 개념에는 피부색, 종교, 행동양식처럼 생물학적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 모두가 들어있다고 본다. 생물학적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가 어떤 비율로 배합되는지는 역사적 시기나 해당집단이 어떤 그룹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또한 그들의 인종적 지위는 정치적 협상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변화해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인종주의라는 말은 1930년대 독일 나치의 유덴라인(유대인 청소)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만들어졌으며, 인종주의라는 발상은 인종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두 개념을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혼란스러워 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인종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지만, 인종을 어떤 기준에 의해 구분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함을 현대의 유전과학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사회에서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알지못하는 사이 인종에 대한 구분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종주의라는 것이 고대에서부터 쭉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역사에 나타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또한 북방민족을 우리와 다른인종으로 보고 있다. 고대문명에서도 이집트인들은 비이집트인과의 차이를 구분 지었고, 그리스, 로마인들 또한 야만인들과 자신들을 구분 지었지만, 그것은 자신들과 이민족을 구분짓는데 불과했다고 한다. 흔히 인종주의의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진 반유대주의는 4세기경 비잔티움제국에서 신학적 형태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중세에서 근대유럽 초기까지 유대인들은 약탈당하고 폭력상태에 노출되었지만 생물학적 차별이 저질러졌다는 근거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이민족에 대한 차별은 우리나라는 물론 이슬람과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이민족과의 생리학적인 차이로 까지는 연관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민족이라 할지라도 귀화 혹은 전쟁포로등의 이유로 섞여 살게 되면서, 신분상의 차별은 있었지만 똑같은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유럽 야생인간에 대한 상상이 퍼지고. 봉건제가 무너지면서, 귀족들은 자신들의 태생적인 우월감을 민중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생겼다고 한다. 생물학과 문화의 융합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에서 인종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6세기로, 그 당시 인종이라는 말은 가족, 가계, 혈연 같은 것들과 관련된 것으로 자리잡았으며, 17세기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공고화 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세기 유럽은 계몽을 무기 삼아 현대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유럽인들은 자기들이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아메리카인디언이나 아프리카인들은 생물학적으로 야생원숭이와 가까운 존재들로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세기 들어 다양한 인종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의도했던 아니던 간에 인종간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편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인종주의의 발상은 유럽인들이 근대 초기, 비유럽인과 접촉하면서 나왔으나, 유럽내부의 불안감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민족주의와 함께 무너져가는 귀족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반동과 함께, 같은 민족내부에서도 노동계급과 같은 하위계층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계몽시대 모든 것을 분류하려던 과학자들은 과학적 인종주의를 탄생시켰다. 두개골과 뇌 크기를 측정하여 열등한 인종과 여성은 그 크기가 작다는 것을 증거로 삼기 시작한 그들은, 인종에 대한 분석을 의학과 결합시키기 시작하였다. 인종이라는 개념은 각 인종들의 특질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다.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의 과학적 인종주의와 양립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사회적 다윈주의자 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나타난 것이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를 휩쓴 우생학이라고 한다.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전통적인 반유대주의와 우생학이 결합을 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유전과학의 발달은 인종적 차이로 인한 집단들 간의 차이보다, 한 그룹 내부의 개인들의 차이가 더 크다는 것, 인종적 변이는 과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지만,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인간의 차이를 가지고 집단간의 차이를 이끌어냈으며, 또 계급과 인종을 뒤섞고 있었다. 과학적 인종주의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셈이다.

 

인종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오늘날에도 인종주의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예전의 인종주의를 반평등주의, 탈식민시대의 인종주의를 문화적 차별주의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있지만, 이런 형태의 신종 배타주의에도 생물학적 요인들은 다양하게 들어 있다고 한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새로운 인종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종주의를 말할 때, 인종의 정의가 중요하다. 그래서 영국의 생물학자인 스티븐 로스는 인종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종주의란 구분 가능한 어떤 인구집단, 그룹, 혹은 인종이 다른 집단에 비해 천성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적 인종주의는 언어와 그 밖의 과학적인 기술들을 이론적으로 동원해 특정한 그룹이나 인구집단이 지능, 문명, 그리고 기타 사회적으로 정의된 습성에서 열등성을 타고 난다는 주장을 입증하고자 하는 시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종주의는 이러한 정의에서 생물학적 차원을 희석시키고 문화적인 차이와 민족성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이슬람 혐오증도 이러한 시도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인종주의자들과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으로 뭉쳐서 동족과 영토를 지키려다 보면, 다른 집단에 맞서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따른 행동이라고 말한다. , 인종주의는 개인과 집단의 문화와 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 떠오른 개념이며, 같은 무리라는 것도 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인종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역사적, 정치적 특수성을 모두 배제한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종주의를 특징 짓는 것은 인종 구분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체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간의 위계질서가 있다는 특수한 믿음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또한 인종주의는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에서뿐만 아니고,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차별이나 조직문화 혹은 관행 같은 간접적인 것들을 통해서 일상화되고 공고해진다고 말한다.

 

인종이라는 개념이 지난 100년 동안 정당성을 잃고 대중의 머릿속에서 자리를 잃어온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 관행을 부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일탈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해 왔으며,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정치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종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근대 서구 인종주의가 보여주는 모든 차별적인 요소들은 지배, 피지배계급간의 모순구조나 성별 억압구조와 동일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인종주의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보다 우선 인종주의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흑인, 노동자, 여자들, 원주민들은 착취와 경멸의 대상이고, 백인, 가진 자, 남자들, 서양인들은 그들에 대비되는 지배자라는 일상 속의 프레임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모든 차별과 억압구조를 살펴보고, 그것들을 깨뜨리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k*****1 2011.11.08. 신고 공감 16 댓글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