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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할 때면 길 위에 선다. 시간이 허락하는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보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이라는 제약에 발이 매인다. 한동안 걷기에 열을 올렸다. 세상의 걷기 열풍에 동조했던 것보다는 심경이 그만큼 복잡했다. 같은 길을 반복해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주객전도가 일어났다. 아직 걸어보지 못한 수많은 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몸이 따르지 못하니 그게 아쉬울 뿐이다. 신앙심 깊은 이들의 영혼은 평온할 줄로만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동떨어진 삶은 있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목사인 저자는 그렇게 길 위에 섰다. 380km 에 달하는 거리를 단 열하루 동안 걷는다고 했을 때 무모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단 거리는 엄청나게 긴데 반해 시간이 짧았다. 매일 30km 가 넘는 거리를 쉼 없이 걷는 강행군을 해야 달성이 가능했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만 한다. 식사는 어디서 할 것이며, 잠은 또 어디서 자야 한단 말인가! 유명 관광지라면 사정이 좀 낫겠지만, 저자가 택한 지역은 DMZ 였다. 분명 인적이 드물 것이었다. 하나의 마을을 지나친 후 또 다른 마을이 언제 등장할지 장담이 힘들다. 아무리 우리나라 통신망이 발달했다 하여도 이런 곳에서까지 숙소 예약은 어렵지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망설인다면 결코 출발하지 못할 것이다. 며칠 동안 가벼이 몸을 푼 이후로 저자는 걷기 시작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생각보다 걷는 일은 힘들었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급경사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게 글을 읽었을 뿐임에도 느껴졌다. 그런데 저자는 그보다 더 힘든 걸로 야트막한 경사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꼽았다. 처음에는 힘이 든 줄 모른다. 그런데 계속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체력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어느 순간부터는 걷고 있는 존재가 누군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야기할 상대라도 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루함도 달래고 지친 마음도 추스를 수 있다. 혼자 걷는 저자에겐 사치였다. 인도 없는 차도 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할 때도 있었으니, 그 땐 내가 다 신경이 곤두섰다. 인적이 드문 곳이므로 아마 차들도 무섭게 속도 내어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행여나 어두컴컴한 터널이라도 통과해야 할 때면 거의 목숨을 거는 기분이 들었으리라. 길은 인간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앞서 걱정했던 많은 것들은 현실이었다. 겨우 찾은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청하면 일행이 없다는 사실에 난감함을 표하는 곳들이 제법 됐다. 수많은 시선이 존재하는 도시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은 당사자를 위축시키지만 인적이 드문 시골 동네에서는 음식 준비를 번거롭게 만드는 불청객의 등장이었다. 숙소를 잡는 일도 쉽진 않았다. 미리 정보를 접하고 들른 곳도 있었지만, 일부는 계획이 틀어지면서 현장서 수소문이 필요했다. 아니 힘이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세상은 따스한 곳이었다. 비를 쫄딱 맞아 거지꼴에 가까워진 저자를 집에 들이자마자 보일러부터 틀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가 있었고, 준비 없이 걷다 갈증을 느끼고 물을 청하자 조건 없이 시원한 물을 내어준 이도 있었다. 먼 곳에서 시간 내어 저자에게 다가온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미리 연락을 해 저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았다. 저자가 걷고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 부근에서 그를 기다렸다. 때론 그와 하루를 함께 걷고 맛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힘이 들어도 완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은 생각보다 많았다.
스페인에는 전세계인을 부르는 순례길이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그 길을 걷는다. 그들의 얼굴은 볕에 검게 그을렸으며, 몇날 며칠을 씻지 못해 몸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만은 환히 빛난다. 걸음이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것이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모두가 실천하진 않는다. DMZ를 따라 혼자 걷는 일을 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종교를 떠나 걸음 하나하나가 부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