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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의 진수 관중과 공자의 실패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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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였다. 그런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치열하게 맞선 제자백가의 철학사는 공자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저자 강신주는 관중을 제자백가의 철학으로 편입시킨 것이 약간 독특하다. 동양고전 독법인 <강의>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관중의 철학을 제자백가의 철학의 시작으로 꼽은 것은 공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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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였다. 그런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치열하게 맞선 제자백가의 철학사는 공자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저자 강신주는 관중을 제자백가의 철학으로 편입시킨 것이 약간 독특하다. 동양고전 독법인 <강의>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관중의 철학을 제자백가의 철학의 시작으로 꼽은 것은 공자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관중은 순수한 철학가의 이미지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고 공자는 철학자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길을 잃고 있던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려던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려는 다양한 시도라는 것이 제자백가의 사상이라고 본다면 관중이 나름대로 현실을 잘 진단했고 동시에 그로부터 새로운 길을 제안했다면, 당연히 공자와 마찬가지로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국가로 만든 주역이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출중한 정치가였다. 관중은 급변하는 당시의 정국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생에 대한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관중을 부각시켜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관중과 공자가 각각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대표적 사유 경향, 즉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라는 것이다. 관중이 동시대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그 자체의 논리로 통찰하려고 했다면 공자는 과거 서주 시대의 찬란했던 전통을 매개로 춘추시대를 사유하려고 했다.사실 관중의 정치학적 현실주의와 공자의 철학적 보수주의는 이 시대를 관통한 두 가지 극단의 사유 경향이었다. 다른 제자백가들은 관중과 공자가 열어놓은 두 극단 사이에 갇히거나, 혹은 두 극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이런 이유로 제자백가에 대한 긴 이야기는 관중과 공자를 함께  아우르면서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포숙의 우정으로 제나라 환공의 재상이 된 관중은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가난하여 상인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고 관료의 길에 나서게 된 것도 가난때문이며 결국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곤궁한 삶으로 인해 관중은 어느 경우에든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현실주의를 배우게 된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서의 변혁의 힘이 충돌했던 시대, 과도기의 핵심이자 전통과 변화의 교차점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과거의 삶속에서 배운 지혜인 현실주의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환궁을 패자로 만드는 관중의 전략은 전체 사회를 일종의 군사 조직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관중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란 먼저 주어야 얻는 것! 이다. 서주 시대 이래로 유지되어온 정치질서와 사회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군사조직을 양성한 제나라는  주변국을 자발적 복종의 논리에 빼지게 만드는데 자발적 논리란 약자 스스로 강자가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동시에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 라는 심리적 안도와 착각의 메커니즘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므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퍼주어야만 한다.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만 한다. 제거하려면 반드시 먼저 높여야만 한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음미한 밝음'이라고 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노자백서 80장

 

이런 자발적 복종의 논리에 입각한 관중의 철학은 결국 국가나 군주의 편에서 최대한 ' 민중'이 지닌 잠재력을 모색했던 한 국가의 철학자이다. 따라서 관중 정치철학의 핵심이 '민중'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공자의 철학과는 반대되는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관중은 첫째, 민중이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고 보았고 둘째 그들을 국가 구조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사유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자는 민중의 경제적 토대는 무시하고 예禮라는 이데올로기적 통치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민중이 가지고 있는 폭발적 잠재력을 무시한채 통치자의 통치 방식에 따라 수종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결국 민중을 무시한 공자의 유학을 수용한 제후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유학사상은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자기 정당화로만 소비되는 사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골자는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으로서 인을, 더 나아가 그런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윤리 원칙으로서 서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예라는 최종 범주에 의해서만 그 의미와 내용을 같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이 '시대착오적'이고 가치 전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그의 사유 세계속에는 애초부터 민중과 여자들의 자리가 없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이것은 제나라를 패권 국가로 만들었던 관중의 현실감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공자에게 있어 정치사상은 단지 귀족지배층에 대한 배려였고 민중은 그저 생산농동자로서 귀족들을 봉양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공자의 철학은 관중의 성공에 대한 선망과 정치적 좌절로부터 승화된 것이고, 당시 격동하던 정치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관중의 국가개념을 수렵과 목축생활로 설명되어져 있는데 우리사회가 목축이라는 것에 길들여지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알게 모르게 침해되는 자유에 대한 사유가 있다. 관중이 살았던 2500년 여 전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여 보면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민중은 알게 모르게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이 목축의 상상력을 붕괴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이유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관중과 공자가 흥미로운 사실은 공자를 제작백가의 시작으로 보지 않고 관중으로부터 보는 타당한 이유와 공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당시에는 귀족, 즉 권력층을 위한 사상에 불과하였다는 점과 공자의 그런 시대착오적인 사상이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지금의 위상을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이다. 혼란과 갈등의 시대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마운 시대이기도 하다. 관중의 시대를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은 결국 제나라 환공을 패자로 만들어주었음을 볼 때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정치에서는 가장 중요한 성패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관중의 국가를 정비하기 위해서 군사조직을 정비하는 정치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하여 3권 순자와 오자에서는 병법을 논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속한 국가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끄는 것을 보여주지만 순자와 오자의 병법 또한 극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3권을 기다리며 ...



YES마니아 : 로얄 k********2 2011.12.29. 신고 공감 13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유학사상의 원류, 공자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본다.
"유학사상의 원류, 공자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본다." 내용보기
강신주의 인문학시리즈 [제자백가의 귀환]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1권인 [철학의 시대]를 읽고서 곧바로 2권을 읽으려 하였으나, 2권에서 소개되는 관중과 공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많은 책을 통해 접해서인지 선뜻 손이가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렵게 읽기 시작한 [관중과 공자]는, 첫 장부터 책속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강신주의 관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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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인문학시리즈 [제자백가의 귀환]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1권인 [철학의 시대]를 읽고서 곧바로 2권을 읽으려 하였으나, 2권에서 소개되는 관중과 공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많은 책을 통해 접해서인지 선뜻 손이가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렵게 읽기 시작한 [관중과 공자], 첫 장부터 책속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에 대한 평가가 지금까지 읽고, 알아온 두 사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관중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전국시대 첫번째 패자로 만든 재상이다. 반면 공자는 동시대 정치적, 사상적으로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 실패한 사상가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관중을 정치가로, 그리고 공자를 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공자로부터 제자백가의 시작을 간주하지만, 사실은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자의 철학이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제자백가의 시작을 저자는 공자가 아닌 관중에서 찾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을 비교하면서, 관중은 현실주의적 사유경향의, 그리고 공자는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로 보고 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 관중계열의 법가사상가들과 공자계열의 유가사상가들은 격렬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관중하면 우리는 먼저 우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관포지교를 떠 올린다. 그만큼 관중에게 있어 포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관중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포숙은, 제환공에게 적극적으로 관중을 천거하고, 제환공은 한때 원수였던 관중을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으면서 패자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다. 이후 포숙은 혼란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하니, 아마 관중과 제환공의 관계에서 포숙이 가장 많은 실리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관포지교의 고사에서 보듯 관중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이러한 좌절 속에서 관중의 현실 감각은 다듬어졌을 것이다. , 관중은 장사를 하면서 어느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현실주의를 터득했으리라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현실주의는 제환공을 도와 정치를 시작하면서 빛을 발한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춘추시대 초기로, 서주시대 읍제국가 형태로 유지되던 국가체제가 영토국가 형태로 이행되던 시기였다. 관념은 서주시대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현실은 이미 전국시대로 움직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과도기의 핵심, 전통과 변화의 교차점을 정확히 진단한 정치가가 바로 관중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춘추시대의 패자는 존왕양이의 슬로건 아래, 실질적인 중국의 지배자이었다. 관중은 제환공이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하고, 그것은 경제적 토대를 확고히 해야 가능함을 간파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경제적 삶을 안전하게 보호함과 동시에, 귀족들을 무마해야만 했다. 그는 행정조직과 군대편제를 통일시킴으로써, 민중들이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기반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는 한편, 유화책으로 제후국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냈다. 강압과 강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강자만이 약자에게 먼저 시혜를 베풀 수 있으며, 이런 시혜는 강압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것을 관중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후대 진나라 상앙의 변법과 노자의 정치이상으로 상징되는 소국과민과도 일맥 상통한다. 즉 상앙이나 노자의 사상이 관중의 정치철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환공은 마침내 BC667년 규규회맹에서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그렇지만 제나라가 패자가 된 것은 오로지 관중의 현실주의에서 기인했다. 저자는 관중의 통찰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민중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한다. , 관중은 민중들이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실질적인 토대임을 인식하고, 그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했던 것이다. 그가 민중이 요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이끌어낸 것은, 민중은 지배층의 도덕적 행실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한 공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관중의 정치철학은 민중에게 먼저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주고, 이데올로기는 그 다음이었지만, 공자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무시하고, 이데올로기적 통치만을 강조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관중의 목민정책도 수탈과 재분배가 반복되면서, 피지배층은 지배층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아니 그렇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오늘날 국가주의 논리와 같았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춘추시대 각 제후국들은 많은 인재를 필요로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관중과 같은 지식인 이었다. 공자의 많은 제자들 또한 공자로부터 관중과 같은 식견을 배우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배운 것은 예()와 시()뿐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전통과 소통하는 매뉴얼로 주례, 즉 예를 강조했고, 많은 제후국과 소통하는 매뉴얼로 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무질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예라는 전통적인 행위규범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주시대를 이상향으로 생각하였으며, 주나라의 두가지 질서유지 수단인 예와 형벌 중, 예만을 선택하고 강조하였다. 주나라의 가부장적 종법제도에 함몰되어 있던 그는, 가족질서와 국가질서가 양립될수 있다고 보았고, 심지어 국가질서는 가족질서의 토대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지배층 내부의 행위규범이었던 예는 전체사회의 행위규범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관중이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이끌어낼수 있다고 본 자발적 복종을, 공자는 통치자가 예를 실천함으로써 피통치자의 마음을 움직여 이끌어낼수 있다고 봄으로써, 훗날 군주와 민중사이의 기득권 계층들이 군주의 권력을 제약하는데 효과적인 명분으로 사용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또 공자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일깨운다. 예와 함께 공자사상을 대표하는 인()이 보편적인 사랑을 뜻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 선교사들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포교할 때, 성경의 해석에 논어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와 소인, 즉 통치계급과 피통치계급 사이의 위계를 당연시 했던 사람이며, 공자가 말한 인()은 당시 통치계급을 나타내던 용어이었음을 상기 시킨다. 인과 예로 춘추시대의 혼란을 해소하겠다는 공자의 실천적 신념은, 당시 군주들로부터 외면을 받자, 현실과 삶으로부터의 초연함을 얘기하면서 근본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철학이 아닌 일종의 종교로 승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철학자는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인간들이 가진 생각과 믿음의 정당성을 반성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렇게 볼 때, 서양철학의 시작으로 소크라테스를 지목할 수 있고, 동양철학의 시작으로는 공자를 지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자기반성은 예라는 최종적 잣대에 의해서 평가되고, 재단됨으로써, 자신이 믿는 행위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타인에게는 폭력과 억압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공자의 사유세계 속에는 민중과 여자들, 즉 피통치계급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관중이 비록 민중을 국가발전의 목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민중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공자에게 있어 정치의 관건은 단지 귀족계층에 대한 배려가 있었을 뿐이었다. 민중은 그저 생산활동에 종사해서 귀족들을 봉양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군주들은 기존의 세습귀족보다는 민중을 국가의 원동력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국가의 힘을 부강하게 할 수 있는 관료들이 필요했지, 공자의 사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여러 제후국들로부터 버림을 받자 공자는 예를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숭고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현실로부터 외면당한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배타적인 학파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이어 종교적인 외양을 갖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자가 내세우는 이념, 예치는 구귀족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보수적인 이념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말하는 관중과 공자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관중과 공자가 아니었다. 강신주가 말하는 공자사상을 재음미 함으로써, 우리는 조선시대 성리학이 왜 그렇게 예를 강조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민중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수탈했는지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것 같다. 지금도 유학은 가장 보수적인 이념으로 존재한다.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접하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알려주는 것 같다. 그것이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제3권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k*****1 2012.05.21. 신고 공감 12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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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그 뒷담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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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221)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秦始皇帝)의 통일까지를 말한다. 춘추 전국 시대는 선진 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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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221)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秦始皇帝)의 통일까지를 말한다. 춘추 전국 시대는 선진 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이 책은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12권중 제 2권으로서 제자백가의 시작의 원류를 흔히 알고 있는 공자로부터 시작 하는 게 아니라,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으로 부터 시작하고 있다. 제자백가의 개화가 결과라면, 그 제자백가의 태동의 계기가 관중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에 대한 통념은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 나아가 중국철학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 관중의 정치철학적 통찰을 높이 평가하고 공자의 철학은 관중으로부터의 영향과 관중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또 관중과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양분한 두 가지 사유 경향, 법가 계열의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유가 계열의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로 평가된다. 

 

제자백가의 시작

 

수많은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권 국가로 만든 관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이자 출중한 정치가로 기억 된다. 우리에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를 통해 포숙과의 도타운 우정으로만 알려진 관중은 상인, 관료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실패한 삶의 연속이었지만 그 실패한 삶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체득된 지식으로 제나라의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다. 입신양명을 꿈꾸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관중의 성공을 선망했고 관중을 롤 모델로 삼았다. 이러한 관중의 입신양명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던 수많은 사인들에게도 확실한 성공 모델을 제공해 주었다. 부국강병을 도모하던 모든 제후국은 관중과 같은 지식인을 기다렸고, 또한 당시의 모든 사인들은 관중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내심 열망했다. 어떤 사상가들은 자신을 고용한 제후를 패자로 만들기 위해서 관중을 공부했다면, 다른 일부 사상가들은 제후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의 속내를 폭로하고 민중을 자발적 복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관중을 숙고했다. 이러한 서로간의 이해타산에 의해 인간적인 모든 사유를 고민하던 제자백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관중의 국가주의적 철학

 

그의 정치철학은 한마디로 주는 것이 취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라는 말로 요약 할 수 있다. 관중은 국가의 발전에서 민중의 중요성을 최초로 통찰한 사상가였다. 관중이 출현하기 이전에 위민(爲民), 보민(保民)등의 주장은 새롭게 분봉된 제후들의 권력을 정당화 하는 일종의 수사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관중에 이르러서 고대 중국인들은 명실 공히 국가 조직에서 민중이 지닌 무서운 잠재력을 직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관중은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급변하는 당시 정국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국가와 민생에 대한 냉철한 현실주의 철학을 보여준 정치철학자로서의 위상을 부여한다. 상인과 군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의 비밀을 꿰뚫고,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국가의 역량으로 조직해나갔다는 점에서 관중 정치철학의 힘이 평가된다. 패업을 꿈꾸던 제자백가 지식인들에게 관중의 정치철학은 숙고하고 넘어서야 할 필수 과목이었다.

 

공자의 맨얼굴

 

공자사상 은 예(藝)를 초자아로 내면화하면서 발생하는 귀족적 고상함으로서의 인(仁)을 주장한데 있다. 공자 철학의 핵심인 ‘예’는 과거 서주 시대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복고적인 시도였고, 입신양명을 기대하고 공자의 문하에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은 공자의 관념 철학에 빠져들게 된다. 쉰 다섯살부터 예순여덟 살까지 14년 동안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펼칠 수 있게 해줄 제후들을 찾아 나선 ‘주유천하(周遊天下)에 나선 공자. 하지만 당시 대세가 법치이념으로 기울어 어떤 제후국도 공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다시 살려낸 유학을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인 국가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공자의 유학사상이 군주들의 기대와는 다른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공자가 춘추시대에 아무런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에 이르러서야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공자의 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동원되면서 지금의 위상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공자의 철학은 관중의 성공에 대한 선망과 정치적 좌절로부터 승화된 것이고, 당시 격동하던 정치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완성되었다. 저자는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인 ‘예(藝)’와 ‘인(仁)’의 핵심적 내용과 사상사적 맥락을 짚어내며 공자 철학의 보편성과 한계를 설명한다. 또 공자 철학의 자기 재판의 이미지, 타자를 배제하는 유아론적인 사유를 비판하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던 철학적 의도가 수양론 이라는 현실 초월의 논리로 왜곡되어 발전하는 것을 지적하며 페로소나를 벗어버린 공자와 유학 사상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관중과 공자의 재평가

 

저자는 이 책에서 관중이 보여준 국가주의 철학을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목민의 논리로 비판하며 관중의 반대편에서 자유를 옹호하며 반국가주의 철학을 펼친 양주와 장자 등 아나키즘 계열의 철학자들을 부각시킨다. 공자에 대한 저자의 평은 더 날카롭다. '신으로 까지 추앙되는 공자,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존경받던 공자는 자신이 평생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던 순진한 사상가였던 셈이다'.라는 평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관중과 공자에 대해 역사적인 사료를 들어 새로운 해석 및 시각을 갖게 한 이 저술은 흥미와 당혹감을 갖게 한다. 읽는 내내 철학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잘 써진 역사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요즘 인기있는 “해품달”보다 더 재미있고, 일부분에서는 공자의 뒷 담화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정치가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관중의 부각, 그리고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역사적인 포장과 필요에 의한 왜곡을 벗고서 나체로 서있는 듯 한 공자와의 극심한 대조를 통해 저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자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대한 현시대의 반발일까? 아님 그 잔재로 인해 공자에 대한 정확한 평가없이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義自見)”이란 말에 의지하여 사색 없는 철학교육을 주도하는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한 공격일까? 그도 아니면 춘추전국시대와 다름없는 세계의 패권주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위해 공자를 버려야 함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그의 연이은 연작을 기다리게 한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12.02.23. 신고 공감 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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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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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철학의 시대'를 읽을 때에는 동서남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책인 '관중과 공자'를 읽고나서는 보다 저자의 의도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처음 책보다는 읽기가 편하고 몰입을 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의 가설에 의존하여 설명을 하니 읽기가 쉬운 반면, 저자는 이 판단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약간의 지루하다는 느낌과 오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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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철학의 시대'를 읽을 때에는 동서남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책인 '관중과 공자'를 읽고나서는 보다 저자의 의도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처음 책보다는 읽기가 편하고 몰입을 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의 가설에 의존하여 설명을 하니 읽기가 쉬운 반면, 저자는 이 판단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약간의 지루하다는 느낌과 오바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전반의 관주에 대한 서술과 후반의 공자에 대한 서술 2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의 관중에 대하여 저자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서술하고 있다. 재미있으면서 흥미로운 해설을 다루어 상당한 흡인력이 있엇다.

그러나, 저자는 관중이 추구하고자 했던 사회 정치경제 군사  체제에 대한 해석으로 '클라스트르'의 이론을 내새우면서 국가에 한없이 뜯끼는 불상한 백성과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관중의 뒤어난 책략으로만 설명을하고 있다.

아주 간단한 이론이고, 관중이 행한 다양한 업적에 대한 쉽게 설명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을 하면 단지 관중에게만 해당이 되는 설명이 아니고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마법의 방망이와도 같은 해석이다. 이외의 다른 설명은 하지 못하고 오직 이 판단에만 의존하여 관중을 다그치고 있다.

전공이 아니라서 반박은 못하지만 아마존의 부족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클라스트르'의 이론이 보다 큰 영토와 인구, 경제력이 있었던 지역에서도 통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후반부의 공자에 대한 저자의 서술, 역시 매우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전반부와 같이 하니의 이론으로 일관된 서술이다 보니 공자에 대한 서술 끝부분으로 가면 읽지 않아도 저자의 서술 내용을 훤히 알 정도가 된다.

공자편에서는 저자는 자기의 판단을 강조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오바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조차 든다.

예를 들면 "이렇게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폭력적으로 다가갈수 밖에 없다.(p251)" 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공자가 독선적이라고는 판단되도, 남에게 폭력적이라고는 기억되지 않는 인물이다. 저자가 너무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공자의 이름을 빌어 다른 사람이 행하는 행위조차 공자에게 책임을 묻는 느낌이 든다. 공자에 대한 서술은 아주 편협한, 과거 지향적인 인물로 그려 놓는데 그 정도가 지나지는 것 같고,  공자의 사상이 현실적인 사상에서 철학적인 사상으로 넘어 가는 부분은 짧게 설명을 하여 그 느낌을 더 느끼게 한다.

 

아뭏든 '철학의 시대', 일편보다는 읽기가 편하고 흥미롭지만, 그만큼 거북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보다 폭넓은 지식이 요구된다.

m******1 2011.12.08. 신고 공감 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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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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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이 안나오기에 계속 책읽기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읽게 된 책입니다. 연작일 경우 어느 정도 책들이 나와 준 다음에 읽어야 후속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편하게 독서를 하는데 너무 오래도록 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제자백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관중을 필수요소로 놓고 있습니다. 모시던 군주를 패자로 만들었던 관중은 유교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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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이 안나오기에 계속 책읽기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읽게 된 책입니다. 연작일 경우 어느 정도 책들이 나와 준 다음에 읽어야 후속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편하게 독서를 하는데 너무 오래도록 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제자백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관중을 필수요소로 놓고 있습니다. 모시던 군주를 패자로 만들었던 관중은 유교적인 면에서 보면 양면성을 보여주는 위인입니다. 관포지교를 칭송하다가도 관중이 옳았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다가 때로는 자신의 군주를 패자로 만든 관중에 대해 찬탄과 시기 비슷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형국입니다.

 

그런 관중에 대해 공자 또한 모순적인 태도를 가끔 취합니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공자가 성인의 반열에 올라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열 살이 되던 무렵(초등학교 3학년)에 저는 아버지께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받았습니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신 경험이 있는 아버지께서는 여자아이라도 천자문과 명심보감 정도는 그 정도 나이에서는 떼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는 점입니다. 명심보감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어느 경전의 구절이었을까요? 제가 왜 라는 질문을 달았을 때 아버지께서 이 책 서문에 있는 것과 동일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저절로 체득하니 백 번을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외에도 상당히 확고한 사고 체계 덕에 토론의 언쟁은 거의 대부분 언성이 올라가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습니다.

 

이 책은 공자를 다른 면에서 봅니다. 현실에서 입신양명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유교가 어떻게 보수적인 기득권 士계급에게 환호를 받게 되는 지에 대해, 또 실용적인 학문이 어떻게 철학으로 변해가는 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보수적인 독자들에게는 일종의 거부감과 반감까지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공자에 대한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경전 외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자의 시선 또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고부동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제자 백가에서 유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싶으신 분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논어를 읽을 때 읽는 독자들은 모두 자신이 士라고 생각하고 읽지만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소인의 입장이나 民의 입장이라 가정하고 읽는다면 아마 등골에 전율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책 이후 논어를 꺼내들기가 꺼려지고 있긴 합니다. 왜냐면 저는 民이면서 女이기 때문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2.12.12.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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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철학의 양대산맥: 관중의 현실주의와 공자의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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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인문주의를 대변하는 것이 르네상스라면 동양의 대표로는 제자백가 사상을 들 수 있겠다. 제자백가들은 국가주의에서부터 아나키즘까지, 우주의 광대한 비밀에서부터 인간의 깊숙한 내면까지, 논리학에서 수사학에까지 그들의 사유의 폭과 울부짖음은 한계가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이러한 사상들이 사변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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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인문주의를 대변하는 것이 르네상스라면 동양의 대표로는 제자백가 사상을 들 수 있겠다. 제자백가들은 국가주의에서부터 아나키즘까지, 우주의 광대한 비밀에서부터 인간의 깊숙한 내면까지, 논리학에서 수사학에까지 그들의 사유의 폭과 울부짖음은 한계가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이러한 사상들이 사변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참된 방법(道)을 모색함으로써 삶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현실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제자백가와 동양철학에 대한 통념은 공자의 유학을 제자백가의 시작, 중국철학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이런 일반적 통념을 깨고 최초로 중국의 패권국가를 이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관중으로부터 제자백가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관중이야말로 당시 지식인들의 롤모델이자 이상향이었던 반면 공자는 춘추전국 시대 당시 아무런 정치적, 사상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실패한 사상가였다는 것이다. 또한 공자는 관중으로부터 심오한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공자의 철학은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어떻게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크게 다른 이러한 결론에 도착했을까?  관중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로 만든 재상이다. 관포지교의 고사성어에서도 집작할 수 있다시피 관중의 삶은 제나라 재상이 되기전까지 성공한 삶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장사에서 실패했고 장수로서도 패했으며 정치적으로도 줄을 잘못 서 제나라 환공의 원수가 되어 죽음을 목전에 두었으나 관중의 능력을 알아본 포숙의 배려로 재상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이다.

 

관중은 우리에게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그가 동시대의 현실과 정치상황을 그 자체의 논리로 통찰한 사상가적인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는 장사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웠으며 정치와 삶의 본질은 주고받는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제환공이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과 함께 민중의 경제적 토대를 확실히 해야한다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 개혁정치를 펼쳐나갔다. 행정조직과 군대조직을 통일시키고 민중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바탕위에서 통치 이데올르기를 세워감으로써 백성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는 관중을 현실주의적 사유경향을 보인 최초의 철학자인 반면에 공자를 보수주의적 사상의 원류로 평가한다. 공자에게는 과거 서주시대의 찬란한 전통을 매개로 춘추시대를 사유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춘추전국 시대 내내 관중계열에 선 법가사상과 공자계열에 따른 유가사상간의 격렬한 대립을 가져오게 만든 근본원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정치의 비밀을 꿰뚫어 현실세계에서 시대를 평정한 정치철학자 관중과 내면의 논리를 내세워간 이상주의 철학자 공자의 삶과 철학이 대비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결국 철학의 문제가 현실상황을 직시하고 거기에 알맞은 적절한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대적 특수성을 뛰어넘는 바람직한 모습과 불변의 가치관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한 극단적 입장의 대비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하겠다. 강신주의 새로운 눈으로 인문학 보기가 현대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시리즈의 시작부터 일반인의 관념과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보기가 기대된다.   


 

c******4 2012.06.01.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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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철학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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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신주는 이제는 대중과의 소통 측면에서 한 영역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 '관중과 공자'를 읽을때만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저만의 착각일줄 모르지만) 어쨋건 이책의 제목이 의도하고자하는 두 사람(관중과 공자)의 관련성이 처음엔 퍽 낯설었고 그것이 저에겐 굉장히 신선한 깨달음으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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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신주는 이제는 대중과의 소통 측면에서 한 영역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 '관중과 공자'를 읽을때만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저만의 착각일줄 모르지만) 어쨋건 이책의 제목이 의도하고자하는 두 사람(관중과 공자)의 관련성이 처음엔 퍽 낯설었고 그것이 저에겐 굉장히 신선한 깨달음으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두사람에게서 어떤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두 사람이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면 관중이 훨씬 대 선배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역사적인 몇가지 사실들을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대략 기원전 1000년을 전후로 주나라의 일족인 강족이 정치투쟁에서 패배한 후 동쪽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둥지를 트는데, 이곳이 제나라의 시초가 됩니다. 그 이후 기원전 7-8세기에 걸쳐 제도적인 성숙기에 이르면서 춘추시대의 패자로 자리잡게 되는 15대 군주 환공이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복잡한 뒷얘기가 있지만 관중은 그 과정에서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에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관중은 제나라의 행정 조직/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물리적인 힘을 굳건히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를 주도해 나가게 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관중의 철학의 핵심은 이런 전반적인 국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뜨고 이를 현실에 반영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직화해서 국가의 힘을 극대화시키는데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중의 주된 관점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주나라까지 고대 중국을 이어오던 국가관의 전통 즉 '국가=가족'이라는 등식을 깨부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즉 모든 구성원이 같은 지위에서 서로 의지하는 것이 아닌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현실 정치에서 유화된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자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공자는 포스트-관중(?)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주나라 종실의 위엄이 완전히 무너지며 춘추시대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 시점에 등장합니다. 그는 무너진 주나라 이전의 이상국가의 모습을 춘추시대에 다시 재현하고자 합니다. 국가=가족이라는 이념을 다시 현실화시키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 정치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결국 말년에 현실정치의 실패를 인정하고 후세를 양성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파해 나가려고 합니다.

저자는 논어의 다음 구절을 통해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압축해 냅니다.

공자가 말했다.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논어 '이인'편 -

아침에 도를 듣고 왜 바로 죽어도 좋지 않고 저녁에 죽어야 할까? 이 약간은 황당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공자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 주목합니다. 아침에 깨달았던 지혜를 낮시간동안 사람들과 나누고 현실화시키는 일,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의 세계이고 '도'의 세계이며 국가가 곧 가족인 공자의 사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국가=가족의 공식은 결국 주나라 또는 과거의 이상주의를 당시 현실에 복원하고자하는 굉장히 순수한 형태의 관념적 보수주의로 귀결됩니다.

 

관중의 정치적 현실주의와 대비된 공자의 관념적 보수주의. 우리 시대에 이 두사람의 사상은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까요? 복잡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풀어나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b******f 2014.04.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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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 공자를 들춰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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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관중과 공자라고 했을까? 공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노자가 아닌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이 그랬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많은 의문이 풀렸다. 공자가 닮고자 했던 사람, 관중.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백성의 힘을 빌려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길을 갔다는 것이 강신주의 주장이다. 공자는 예를 숭상했으며, 그가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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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관중과 공자라고 했을까?

공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노자가 아닌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이 그랬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많은 의문이 풀렸다.

공자가 닮고자 했던 사람, 관중.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백성의 힘을 빌려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길을 갔다는 것이 강신주의 주장이다.

공자는 예를 숭상했으며, 그가 말한 인은 사랑이 아니라 귀족적 정서라는 것이다.

귀족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면 백성도 올바라진다는 생각이 공자의 생각이라고 한다.

서에 대한 설명도, 조문도석사가의에 대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었다.

반논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민과 인의 구분도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공자를 귀족사회가 가고 법치를 요구하는 시대에 다시 귀족사회를 유지하겠다고 나선 인물로 그렸다. 그는 과연 그런 모습만을 가진 사람일까?

아직 강신주의 주장에 백퍼센트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에게 고맙다.

다른 면에서 공자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g 2015.09.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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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재발견, 공자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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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책장의 책을 다 읽고 읽어 도저히 읽을 책이 없어서 마지막 고른 책 '논어'   읽는 동안 참 여러번 감동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논어'를 중고등학교 필수 과정에 넣고 나서야 우리 교육은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핑크빛 개혁을 꿈꿨다. 전역을 하고 교양과목으로 공맹철학까지 듣고 난 후 현실에 사는 동안 논어를 잊었었다. 가끔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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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책장의 책을 다 읽고 읽어 도저히 읽을 책이 없어서 마지막 고른 책 '논어'

 

읽는 동안 참 여러번 감동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논어'를 중고등학교 필수 과정에 넣고 나서야 우리 교육은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핑크빛 개혁을 꿈꿨다. 전역을 하고 교양과목으로 공맹철학까지 듣고 난 후 현실에 사는 동안 논어를 잊었었다. 가끔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단 한권의 책을 추천하라면 뭘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 으레 답은 '논어'입니다 라는 말은 듣고 살았으니 전혀 잊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랫만에 공자 관련 책을 샀다. 더구나 요즘 한창 나의 과심사인 강신주 교수님 책이니 덮어놓고 우선 읽었는데 이거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다. 무작정 관중과 공자를 치켜세워 주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덤벼서일까 다소 반전스럽기까지 하다.

 

 

관중과 공자는 왜 한 책에 실리게 되었는가.

 

우선은 그 둘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제자백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한 명은 군주에게 중용 되고 한 명은 안 됐다는 점이고,  실질적으로는 사상에 있어서 미묘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관중은 장사로 인해서 다져진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후에 관중의 행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관중은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었고, 그들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제후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제나라 환공을 도와 처음으로 패권을 잡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은 많은 제자백가들에게 귀감을 줬다.

 

그 중에서도 공자는 특히나 더 고무되었다.

 

이유는 관중이 주나라의 '예'를 정치에 적용 시켜서 성공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다시 주나라의 예를 살려 부국강병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자에게 그런 선례가 있다는 것은 그 길이 옳다는 증거였으므로..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공자는 75개의 국가 어디에도 중용되지 못했고, 그의 유학을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인 나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그의 사상은 개혁 논리에 반감을 가진 기득권 세력의 자기 정당화 논리로만 통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런 결과를 가져온 데는 공자가 관중의 결과물에만 도취된 채 과정을 간과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길을 찾는 과정을 예로 드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산을 오르는 데는 여러 길이 있을 수 있다. 좁게 난 오솔길일 수도 있고, 많은 이가 지난 등산로 일수도 있고, 수풀이 우거진 거친 길을 수도 있다. 이를 선택함에 있어 관중은 시대가 변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에 따라 적절한 길을 선택했지만, 공자는 오직 한 길, 주나라 사람들이 다니던 '예'의 길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이미 주나라의 예만으로 혼란을 종식 시킬 수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결국 춘추시대의 혼란을 해소하겠다는 공자의 실천적 신념은, 현실과 삶으로부터의 초연함을 이야기하면서 근본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제 공자의 사상은 철학이 아닌 일종의 종교로 승화되고 만 것이다." (p.225)

 

세상이 뒤집혀도 예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우리는 현실 때문에 지키기 힘들다. 하지만 항상 우리는 그것이 옳은 것임을 안다. 지켜야 하지만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도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생활 뿐 아니라 의식에서까지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우리 개개인은 그런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상이 현실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한 데 있다.

 

공자는 70여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이런 형이상학적 신념을 실현시킬 나라를 찾고 다녔지만 등용되지 못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고 그들도 이미 경험으로 그런 논리가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나라가 그런 예가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족 이라는 도식이 가능한 나라였기 때문이었지만, 전국시대는 이미 그런 규모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에 반해 관중은 우선 백성들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다음은 관중의 말이다.

 

"백성들은 곡식창고가 가득 차야만 예절을 알며, 의식이 풍족해야만 榮辱(영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준수하면 六親(육친)이 굳게 단결하게 되고, 四維(사유)가 해이해지면 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위에서 내린 명령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관중과 공자는 백성의 무서움을 알았고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관중은 그들의 경제를 충족시킨 후에 국가를 경영하려 했고, 공자는 위에서 예만 지킨다면 자연스레 백성들은 쫓아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혼란하던 당시 상황에서 공자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 하지만 왜 다시 논어로 돌아왔나 

 

진나라가 지방분권을 무시하고 중앙집권적으로  폭정을 하는 바람에 고통을 겪었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나라 또한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줘야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 논리의 시발점에 논어가 있었다.

 

논어를 읽을 때는 모르지만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면 논어는 미안스럽게 너무 가부장 적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문제는 모든 것들에 다 순위를 매겼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위에 아버지는 아들의 위에 왕은 백성 위에, 결론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를 지키면 아랫사람들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는 쉽게 말해 위에 있는 사람들, 즉 기득권 층에 매우 유리한 논리이다. 어디든 강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논어를 깊이 파고 들 수록 논어 안에서 기득권을 강화하고 민중과 여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와 소인은 관계하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 논어 ‘양화’-

 

"번지가 곡식 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다시 채소밭 가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 받자 공자가 말했다.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소인이구나 번수는!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민중은 공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만 되면 사방의 민중이 제 자식을 포대기를 싸업고 모여들 것인데, 곡식 기르는 법을 어디에 쓰겠느냐"

                                                                                                                    - 논어 '자로' -

 

공자 이론의 맹점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군자와 소인의 위계질서 자체의 인정에 있다. 공자가 이르는 인과 지의 개념도 동등한 존재로서의 민중이 아니라 지배계층의 귀족적 고상함이었다. 이는 결국 공자 이론이 귀족층의 정당화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또 공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피지배계층이 의를 찾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편적 결과만을 해석하면서 스스로 갇힌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회 지도층의 추천 도서 목록에 '논어'가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을 본다. 그것은 얼핏 보면 논어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논어의 내용은 다분이 가부장 적이고 권위적이다. 이는 어디에 유리할까. 당연히 기득권 층에 유리하다. 만약 내가 회사 내의 간부라면 논어를 적극 추천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이렇게 예로써 대하고 있으니 우리가 삐긋 거리는 것은 너네가 무지몽매한 것이므로. 




YES마니아 : 로얄 c****o 2012.04.20. 신고 공감 1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내용보기
저자인 강신주 라는 분을 잘알았던건 아니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동양철학의 진수랄수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본다는게 너무나 신기해   첫권을 구매해 철학교양서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더 없어~?"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신기한 경헙을 하게 해준 대단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시리즈의 두번쨰   관중과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내용보기

저자인 강신주 라는 분을 잘알았던건 아니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동양철학의 진수랄수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본다는게 너무나 신기해

 

첫권을 구매해 철학교양서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더 없어~?"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신기한 경헙을 하게 해준 대단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시리즈의 두번쨰

 

관중과 공자도 낼름 사서 읽어 버렸다. 와우~!! 어디서 이런 애기를 들을수 있을까?

 

책띠지의 광고글처럼 관중과 공자를 다시 읽는다 라는 말이 가슴에 콕콕 와닿는 책이었다.

 

얕은 나의 앎안에서 현실적인 입신양명을 위한 한 개인으로서의 관중과 공자를...

 

그들의 사상이 어찌 이루어졌는지를... 너나 재밌고 쉽게 이해시켜주는 이런 이야기는 정말 처음이다.

 

책은 먼저 관중이 나오게 되는 배경이 되는 이야기 역사적 사실들을 애기하고 차례로

 

관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현실적인 정치철학과 그것이 나올수 있었던 개인적인 이유들을 말이다.

 

그리고 공자가 과연 원한것은 무엇이며 공자의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이야기까지 짚어가며

 

그이 철학이 무엇이 배경이 되고 어떤 식으로 이용되어지는지 모든 진실과 오해 그리고 그 한계까지

 

이야기 해준다.. 그래서 공자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더욱더 추천이며~

 

끝으로 12권의 책으로 된 이 시리즈의 뒷 이야기들이 빨리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s***o 2012.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