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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 경제성장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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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죽은 전직 대통령의 유령과 싸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 지도자의 그늘이 짙게 명암을 드리우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이다. 1971년, 40대의 나이로 전직 대통령과 맞붙었던 김대중 당시 후보는 한 세대가 지나 치러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前) 라이벌의 이미지와 말투를 똑같이 가져간 이인제 후보를 상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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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죽은 전직 대통령의 유령과 싸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 지도자의 그늘이 짙게 명암을 드리우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이다. 1971년, 40대의 나이로 전직 대통령과 맞붙었던 김대중 당시 후보는 한 세대가 지나 치러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前) 라이벌의 이미지와 말투를 똑같이 가져간 이인제 후보를 상대해야 했다. 10년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과거 경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제살리기 드라이브를 펼치면서 경제개발의 향수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년이 세월이 흘러 2012년 치러지는 대선에서는 죽은 박정희의 유령이 딸의 모습을 빌어 빙의(憑依)되어 나타나려 하고 있다. 독재자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와는 달리 아무런 안티(anti) 도 달고 다니지 않았던 또 다른 비운의 주인공인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을 살짝살짝 변화시키면서 등장한 박근혜 후보를 통해 마침내 죽은 대통령은 세상에 남긴 혈육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꿈, 나의 꿈” 을 말하면서 또다시 대한민국 땅에 되돌아 오려 하고 있다.

우리가 박정희의 유령을 이 땅에서 몰아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개발에 대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당대를 살아내었던 부모님과 그 비슷한 연배의 친척들은 “그래도 박통 때는…” 식의 회고담을 이야기한다.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의 삶의 수준에 오르는 과정에서 누구나 하나씩 간직하고 있을 드라마 같은 스토리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지만, 그러한 삶의 실제 주인공들에게는 언제나 새롭기만 하다. 이들의 회상 속에서 존재하는 박정희는 이미 알싸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노스탤지어의 영역에서 신화(神話)가 된지 오래다. 반세기 만에 남들한테 빌어먹던 못 사는 나라에서 이젠 못 사는 남들에게 나눠주는 나라로 올라간 단 하나의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이를 지도한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 보수 또는 근대화 세력은 이걸 갖고 재탕, 삼탕에 그치지 않고 우려먹기를 계속하고 있고, 진보 또는 민주화 세력은 독재자 박정희가 희생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각을 세우면서도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슬쩍 인정하자고 하는 분위기다. 언제까지 제 2, 제 3의 박정희의 미니미(mini-me)를 만날 각오를 하고 선거 팜플렛을 뜯어볼 준비를 해야 하는가 ?

“박정희의 맨 얼굴” 은 이러한 박정희 경제성장의 신화의 거품을 쫙 빼주는 책이다. 시사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 정책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학교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역임하면서 재벌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등 경제 분야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필진 8명이 모여 박정희 경제 성장에 관한 신화에 잔뜩 범벅된 화장(化粧)을 지우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인기 있는 걸그룹 멤버들의 과도한 메이크업을 화장 전후로 비교하는 사진이 꽤나 올라오고 있는데, TV를 통해 보는, 방송 준비를 다 끝낸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 잡힌 ‘쌩얼’ 과의 괴리가 너무나 큰 나머지, 이게 진짜 같은 사람이 맞을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도 하는데, 박정희 경제 신화의 쌩얼 역시 그간 알려진 뽀사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저자들은 박정희 집권 시절의 경제성장은 서구 선진국이 200년 넘게 걸린 경과를 압축하고 단축하여 반세기 만에 이뤄낸 결과는 인정하지만, 비정상적인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은 이후 대한민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질병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명분이 없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이를 경제성장을 통해 극복하고 인정받으려 했다. 당시 지도자가 맞이해야 했던 대한민국 국가발전의 방향은 민주화와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였다. 박정희의 선택은 우선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화는 뒤로 미뤄두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제 2공화국 시절의 난잡한 혼란과 동일시 했고, 무엇보다 일사분란하게 조직이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던 군인 출신 지도자다운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특징 짓는 국가주도의 개발독재가 진행되었다.

국가가 금융기관과 사기업을 통제하고, 시장이 국가 정책에 맞추어 따라가는 개발 독재형 성장방식은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이고, 비록 두 자리 수의 성장을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그 엔진이 멈출 수 밖에 없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국가 주도 성장방식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소수의 기업에 대한 특혜로 이어졌고, 특혜를 받은 기업들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정치권력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상납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생성하였다. 박정희 정권 초기의 경제개발 계획 때 이에 협조한 기업들은 곧 대기업, 재벌로 성장하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대한민국 경제를 주무르는 큰 손으로 자리잡게 된다. 재벌이 잘 돼야 국가경제, 서민경제가 따라서 잘 풀린다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외치면서,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공식을 주입시키면서 경제 독재자로 군림하는 소수 재벌들의 존재는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 경제개발이 낳은 가장 큰 폐해이다.

국가와 재벌 기업이 손을 잡고 경제를 주도하면서 여기서 소외된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은 외형만으로는 쑥쑥 커가는 대한민국 경제 호황 속에서 날선 군사 독재의 사회분위기 속에 조용히 숨 죽여 지내며 고통을 감내하는 세월이 이어졌다. 박정희 시절 경제개발을 말하는 이들은 전태일은 말하지 않는다. 삼성과 포항제철을 말하는 이들은 YH 무역 여공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 참여 정부 들어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소리가 있지만, 진정한 양극화의 뿌리는 박정희 시대에 이미 그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 또한 30년 넘게 지속된 군사정권 하에서 모든 사회 조직이 군대처럼 돌아가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권위주의와 상명하달식 운영은 정보화 시대로 접어든 IT 혁명의 시대에 말 뿐인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낳는 주 원인이 되어 왔다.

박정희 개발 독재는 성장만능주의라는 괴물을 국민 의식 속에 심어 넣었다. 전투적인 속도전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힘과 에너지를 모조리 경제 성장에 쥐어짜면서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되는 박정희식 모델은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이 절대 될 수 없었다. 유례없는 속도전을 치르면서 압축 성장한 대한민국 경제는 1945년부터 1973년까지 이어진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경제의 호황에 힘입은 바가 크며,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 신흥공업국의 동반성장 속에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를 등에 업은 근대화 세력과 지금의 보수 세력은 아직도 경제 성장만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선전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1,000 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부터 외쳐온 선성장 후분배의 패러다임은 20,000 달러를 찍은 오늘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분배를 이야기하면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과연 그 놈의 파이는 언제까지 만들기만 하다 굶어죽으란 소린가 ? 성장만능주의에 대한 맹신 역시 박정희 개발 독재가 낳은 산물이다.

1945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분단과 내전과 이승만 독재를 겪으면서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자생적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닦는 듯 했으나 민주주의를 이식 한데서 오는 혼란을 우려한 군사 쿠데타를 맞아 1961년부터 군사독재, 개발독재 국가체제로 접어든다. 이러한 독재 국가체제는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무너졌지만,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합의한 87년 체제는 이후 한 세대 동안 지속되어왔다. 민주화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2012년을 맞아 87년 이후 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안이 시작될 것이고, 2013년 대한민국 지도자 자리는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잇는, 새로운 2013년 패러다임을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데 성공한 인물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13년 체제는 개발 독재 체제 아래 희생되었던 중소기업,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 동안의 압축성장을 위해 노력한 대가를 정직하게 돌려주는 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며, 국가의 지원과 정권과의 유착을 무기로 덩치를 키워 온 공룡 재벌 기업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시키는 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는 자신이 있었기에 국가 근대화가 몇 십 년은 앞당겨졌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할지도 모르지만, 과연 우리가 그토록 압축성장과 단기간 성장주의 논리에 함몰될 필요가 있었던가? 박정희가 불법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지만 않았다면, 민주적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국가발전 계획이 추진되었을 것이다.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했다면서 빵빠레를 터트리고 있지만, 대한민국 구성원 어느 누구도 이 나라가 선진국가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 놈의 선진국 문턱을 언제쯤 넘어가느냐 이 말이다. 박정희가 18년 집권하면서 이룩해 낸 수준의 성장이 민주정부 36년 동안 시간의 여유를 갖고,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동의 아래 이뤄졌더라면 지금 우리네 삶은 완전히 다른 평행 우주 속 세상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박정희 경제성장의 신화에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구성하는 대다수 민중의 삶과 인격이라는, 경제성장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빠져 있다. 개발 독재자의 유령이 출몰하는 굿판을 집어치울 때도 됐다. 

g******a 2012.01.15. 신고 공감 1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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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결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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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있는가? 아니면 결과만 존재하는가?   전자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이 책이 그럴싸하게 보일지 몰라도 후자를 인정하게 되면 정말 허접이다.   역사는 결과일 뿐이다. 가정은 없다.   왜 가정을 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단점은 현실을 너무 모르고 이론적으로 정합성을 가지는 것들을 대입하는 식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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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있는가? 아니면 결과만 존재하는가?

 

전자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이 책이 그럴싸하게 보일지 몰라도 후자를 인정하게 되면 정말 허접이다.

 

역사는 결과일 뿐이다. 가정은 없다.

 

왜 가정을 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단점은 현실을 너무 모르고 이론적으로 정합성을 가지는 것들을 대입하는 식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박정희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전제를 가져보자. 지구상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했던..다른 나라에서 많이 배워갔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던..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 다 된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더 나은 나라가 반드시 존재해야 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에 이런 것이 지금 문제가 된다.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 시대를 살지 않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자신들은 양심을 가진 지식인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 존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왜 모르나.

 

나는 저런 지식인들을 정말 싫어한다. 솔직히 장하준 교수처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답이 나온다.

 

솔직해지자.

 

당신들이 그 시대에 이나라를 이끌었다고 가정을 하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왜 개발독재란 말이 생겼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h*******5 2012.10.01. 신고 공감 9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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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잘 속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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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못한 이런 정치적 편향서적은 이미 수도 없이 많습니다. 차라리 그나마 읽을만한 책이라면 그 시절 그 순간에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 수년간 박근혜가 정치지도자로 부상하면서 박정희 죽이기는 영화로, 소설로, 만화로, 이런 경제서적으로도 유포되고 있지만 그 것들의 특성은 하나같이 미리 답을 내놓고 거기에 억지로 짜맞춰간 것에 불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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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못한 이런 정치적 편향서적은 이미 수도 없이 많습니다. 차라리 그나마 읽을만한 책이라면 그 시절 그 순간에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 수년간 박근혜가 정치지도자로 부상하면서 박정희 죽이기는 영화로, 소설로, 만화로, 이런 경제서적으로도 유포되고 있지만 그 것들의 특성은 하나같이 미리 답을 내놓고 거기에 억지로 짜맞춰간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 책의 저자들 역시 세간에서는 소위 노빠로 불리는 부류들의 잔당이라고 보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힘들 겁니다. 싸구려 같은 해외 경력만 슬적 올리면 권위가 부여될까요? 객관적으로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박정희 시절의 국가발전방식을 배우러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영웅을 헐뜯는 자들은 고향 사람들 밖에 없다고 하는데 스스로들은 나라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저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n*****n 2012.10.25.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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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시킨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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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속아왔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켰다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독재자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것이지. 아니 그런 경우도 있다. 히틀러가 2차대전 일으키기 전까지 독일의 경제를 성장시킨 수치를 보면 놀라고 놀란다. 히틀러의 인기가 당시에 국민 80%가 넘었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당시 육칠년만에 유럽 최고의 강대국을 만들었다. 그러기에 전쟁을 선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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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속아왔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켰다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독재자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것이지. 아니 그런 경우도 있다. 히틀러가 2차대전 일으키기 전까지 독일의 경제를

성장시킨 수치를 보면 놀라고 놀란다. 히틀러의 인기가 당시에 국민 80%가 넘었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당시 육칠년만에 유럽 최고의 강대국을 만들었다. 그러기에 전쟁을 선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누구도 독일에서 히틀러를 찬양하는 자는 없다.

 

박정희 18년 간 경제성장율은 9%정도였다. 그러나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이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한 모든 국가가 그 정도의 발전을 했다. 대만은 10%가 넘는다. 패전국임에도 가장 지원을 많이 받은 일본은 급성장하는데 일본의 식민국가였던 한국은 일본을 올려다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평균 8%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박정희 때

한국의 발전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일본은 빼고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받은 한국이

그정도 발전밖에 못했다는 것은 박정희가 무능했음을 말해준다. 18년 동안 지디피  성장 순위가

세계에서 71위로 똑같다. 61년에 71위, 총 맞아죽을 79년에 71위 똑같다는 말이다.

 

박정희 때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잘 나서가 아니라 미국의 전푹적 지원에 힘입은 것이며, 오히려 박정희가

발전을 저해하는 계획을 세워 영 성과가 안 나오자 미국이 경제팀을 직접 파견해서 전체 계획까지

세워주고 갔다. 그래서 그 뒤로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박정희는 지 능력으로 해놓은 것처럼

공장에 가서 사진 찍고 지랄해서 국민에게 지 선전만 잔득 해댄 것이다.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런 줄 알고 40년 이상을 속아 왔다. 지금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그런 줄 알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자 200명 이상을 농락한 독재자가 아직도 찬양의 대상이라니. 마지막으로 농락당한 여자가

심수봉 신재순 이었던가. 신재순이 그날 동침 대상이었는데 김재규에게 총맞는 바람에.....

김기춘 같은 개를 시켜서 수많은 간첩을 조작해서 죽이고 태극기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지금도

노인들이 그거 들고 설치게 만든 악질 독재자가.... 그런 악마의 딸이 다시 집권해서 저 지랄하고...

 

이제 현대사를 다시 정확하게 평가할 때가 되었다. 아니 지났다. 역사학자 분들 많이 연구해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b*******n 2017.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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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이고 구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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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증거를 뛰어넘는 객관적 진실을 제시 할 수 있어야하겠다객관을 호도하는 자들에겐 그저 우겨대는 뜻없는 비난만이 있을뿐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증거를 뛰어넘는 객관적 진실을 제시 할 수 있어야하겠다객관을 호도하는 자들에겐 그저 우겨대는 뜻없는 비난만이 있을뿐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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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증거를 뛰어넘는 객관적 진실을 제시 할 수 있어야하겠다
객관을 호도하는 자들에겐 그저 우겨대는 뜻없는 비난만이 있을뿐

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증거를 뛰어넘는 객관적 진실을 제시 할 수 있어야하겠다
객관을 호도하는 자들에겐 그저 우겨대는 뜻없는 비난만이 있을뿐

이 책을 반박하기위해선 이책에서 나온 논리와 증거를 뛰어넘는 객관적 진실을 제시 할 수 있어야하겠다
객관을 호도하는 자들에겐 그저 우겨대는 뜻없는 비난만이 있을뿐
p***n 2017.03.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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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까막눈이 쓴 박정희의 맨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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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문용형을 비롯한 80%국민이 창씨개명했고 김두한이 여운형선생 암살하라고 지시한 인물이지만 박정희의 창씨개명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경제학자가  함부로 감정만 가지고 역사를 이야기해선 안된다.왜냐하면 자기전공분야 이외에는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증거를 대겠다.한국어는신라어일본어는백제어 국운풍수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헌혈 사랑을 만나다 p54욕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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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문용형을 비롯한 80%국민이 창씨개명했고 김두한이 여운형선생 암살하라고

 지시한 인물이지만 박정희의 창씨개명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함부로 감정만 가지고 역사를 이야기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자기전공분야 이외에는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증거를 대겠다.

한국어는신라어일본어는백제어 
국운풍수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헌혈 사랑을 만나다 p54
욕망하는 지도  ㅡㅡㅡㅡ 읽어보십시오 ♡♡






동국여지승람에서 동국은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식민지란 뜻이다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제목을 '한국경제의 맨얼굴' 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공과과가 박정희대통령이 반 민주정부가 반이다 별내용 없다.

박정희대통령이 원인제공을 한건 맞지만 이후 민주정부들도 그많은 시간에 제도개선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보단 재벌에 기대어 그들이 던져주는 과실을 얻어먹는데만

정신을 쏟은것도 인정해야한다.-☆☆





풍수지리와 역사지식은 초등학교 수준이다.

이토와 안중근은 모두 백제인의 후손이고 10.26은 누가 김재규 아버지묘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것이다란 대안제시는 하나도 없고 욕만한다.

쓸말이 없으면 그만쓰지 뒤로갈수록 주마간산식이다.

실질적인거는 안쓰고 욕만썼네 예를들자면 국제금융국 해체. 태국 바트화

중복투자금지 해제등 그냥 (한국경제 아직 멀었다)나 읽어보세요 -○○





김형욱안기부장이 쓴 (혁명과우상)이 훨씬 낫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잘썼다.

하지만 구의역 김군이나 인천국제공항 예에서 보듯이 몇번의 민주정부를 거쳐도

바뀐게 없다 귀찮으니까 박정희식대로하자 이거다.

북한산 노적사만 가보자 노적사까지 도로낸다고 밀어버렸다

여기 국립공원이다 민주정부하는 일이 다그렇다.♡♡





문재인대통령은 한술 더뜬다 누구나 살면서 적은 있다.

숭례문현판글씨 만일 쓴 사람의 적이 정권잡은후 현판을 내던져버렸다면 

우린 무얼보며 그 시대를 느낄 수 있을까 문대통령은 개인적 감정풀이로 광화문현판을 떼버렸다.

그건 독재자의 글씨가 아니라 역사의 발자취다.(부동산 생활풍수)

공부도 많이 하신분들이 다 생각은 이모양일까

조선이 대통령제였고 앞에대통령들 밉다고 전직대통령들이 들어놓은거

다부수면 우린 무얼보며 그 시대를 느낄 수 있을까요 600년 역사의 종로 피맛골을 밀때

여기 글쓰신 경제학자분들 조용합니다.-☆☆





박정희정권때는 새마을운동이라도 하면서 하는 시늉이라도했지요 그후 민주정권에서는

손놓고있다가 지금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지금 남한의 식량자급률은 북한보다 못합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서울집중화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더욱 심화되었다.

어떻게 고치려고 노력한번 안하신분들이 이런 글을 쓰실수 있을까 한심하다.

했던이야기 또하고 했던이야기 또하고 소제목만 다르다.

다읽고나니 박정희 찬양책인지 비난책인지 잘모르겠다.

소설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 
ㅡㅡ세권만 읽어보세요 ○○

봄에 자미원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5.03.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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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 내용보기
제목: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시절이 있었다.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알아서 주십니다.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 내용보기
제목: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의 탄생지인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버는 일만했다.



돈에 눈먼 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물양식이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 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축양식이며 남북한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때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할까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1989년판)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빈곤의 연대기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자미원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5.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괴뢰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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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괴뢰정부였다.고려 우왕은 요동(랴오닝성)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낸다.이성계장군은 왕이 될 욕심에 군대를 돌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뒤 왕위에 오른다.(욕망하는 지도)여기까지는 역모세력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쳐들어오는 명나라 군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싸우러 나가자니 고려 잔존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냥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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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괴뢰정부였다.


고려 우왕은 요동(랴오닝성)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낸다.

이성계장군은 왕이 될 욕심에 군대를 돌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뒤 왕위에 오른다.(욕망하는 지도)

여기까지는 역모세력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쳐들어오는 명나라 군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




싸우러 나가자니 고려 잔존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냥 있자니 먹힐것이고

결론은 명나라가 흡족해할 선물을 주어야한다.

왕과왕비의 책봉권과 세자와 세자빈의 책봉권도 넘겨주고 요동의 영유권도 포기하고

공녀부활,환관상납,조공시작. 국호도 명나라에서 하사한 이름을 사용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식민지란 뜻이다.(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소인이 뭉치면 군자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고려 왕씨들을 모두 수장시키고 이성계장군의

손발이 되어 이 모든 일을 처리한게 정도전인데 그는 대한민국에서 

위인의 반열에 올라있다.♡♡





한확의 누이는 영락제가 죽었을때 순장까지 당하고 공녀는 세종과 세조때에도

계속 보냈고 연산군때도 갔다.

고려복원 세력에 대한 학살도 세조때까지 있었다고한다.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의미의 독립문도 1895년 중국은 은혜를 뜻하는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일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인데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3.1운동때 옷을 입혀놓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시키고 있다.-☆☆




이제 중국은 백두산정계비로 요동이 한국땅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했고 박정희대통령은

때가되면 찾으려고 자료를 모았고 김영삼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모든 자료를 폐기처분했고

노무현대통령은 간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했고(동아시아 영토분쟁의 패러다임)

아우슈비츠등에서 6백만명이 학살되거와 같이 시진핑주석의 주도하에 2백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수용소에서 생활하고(위구르 디스토피아)♡♡





티베트와 신장을 강제병합해 식민지로 삼은 모택동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본받아야한다고

이영희교수는 말하고 있고(自有人)

입바른 논객 유시민씨는 이성계가 역성혁명을했다고 추앙하고 있고(어떻게 살 것인가)

시진핑주석은 한국땅은 중국땅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중국의 조용한 침공)☆☆





칭기즈칸,을지문덕은 중국인 몽고와 고구려도 중국역사라 교과서에서 (동북공정 고구려사)

가르치고 있는 나라의 대사관에 이재명대표는 찾아가서 잘봐달라고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날에도 내몽고,신장,티벳의 독립투사들을 잡아다 신체검사후

신장,각막등을 적출해 외국에 팔아먹고 있다.(국가가장기를 약탈한다)♡♡




문무왕,금나라시조 아골타,누루하치와 같은 성씨인 경주김씨 김연아선수는

문재인대통령이 중국가서 두들겨 맞고와도 아무말이 없고(대쥬신을 찾아서 1,2)

최재천교수님은 터키인의 조상이고 수나라 당나라를 만든 돌궐족이 만든 종이를

중국거라 주장하고 있다.(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反중국역사)

정치와 관계없는 분들까지 이성계 괴뢰정부가 만든 중화사대모화사상에 뿌리깊이

세뇌되어 있으니 답답하다.-☆☆

에 자미원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5.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닭도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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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에서 닭도리탕은 일본식말이니 닭볶음탕으로 하자고해 닭도리탕이란 말이점차 안쓰이는 추세다.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인은 몽골.흉노계통으로 북방의 고향을 그리워하는마음에서 솟대를 세웠고 그 위에 겨울철새인 독수리,큰기러기,청둥오리,두루미황새,논병아리를 올려놓았다.철새는 텃새와 달리 돌아다닌다. 여기서 돌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리가 된것이다.결국은 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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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에서 닭도리탕은 일본식말이니 닭볶음탕으로 하자고해 닭도리탕이란 말이

점차 안쓰이는 추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인은 몽골.흉노계통으로 북방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솟대를 세웠고 그 위에 겨울철새인 독수리,큰기러기,청둥오리,두루미

황새,논병아리를 올려놓았다.

철새는 텃새와 달리 돌아다닌다. 여기서 돌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리가 된것이다.

결국은 도리는 고대한국어인 것이다.○○





요즘도 일제잔재를 청산하자는 목소리를 가끔 듣는다.

무얼까 청와대,광주,신의주,송년회,신년회,덕수궁,수학여행,졸업여행

베이커리,주번,당번,고시,국민학교,운동회,새마을운동,태백산맥,만세삼창등 우리주변의 

모든게 식민지 잔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말 그럴까☆☆




6.25때 흥남에서 철수작전이 있었고 공산당이 쳐들어오기전까지 흥남일대는

민주지대였고 여기서 피난한 사람들은 민주지대인 거제도에 정착한다.

1,400년전 백강전투때 백제가 패했지만 전라남도 해안지대는 아직까지는 백제땅이다.

이곳 사람들은 백제땅인 북큐슈와 야마구치로 피난한다.

고대일본의 백제흔적을보자 국보1호인 반가사유상 2호인 인물화상경,칠지도

천왕가,호류지,백제사란 사찰만도 다섯개다 백제마을인 난고손 오사카에도 백제역이 있으며 

나라시대도 역시 한국말이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합을 주도한 인물은 모두 야마구치 출신이다 예를들자면 

이토 히로부미,아베총리,사상가 요시다 쇼인 모두 야마구치 출신이다.

천왕을 갈아치울 정도의 힘이 있었던 오우치가문도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를

시조로 모실 정도고 임진왜란

다시말해 고대 일본을 지배했던 백제문화가 여러번 단장하고 변신한후

책(한국어는신라어일본어는백제어)읽어보세요.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의 근대문화를 만든것이고 그 중심에 닭도리탕이 있었던 것이다.○☆♡

봄에 자미원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5.03.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