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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이 서류들을 작성하느냐고? 누구를 위해서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스스로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드러나기 전에 말을 자르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며 끝까지 말하도록 기다리는 어떤 존재, 어떤 사람에 대한 깊은 욕구에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서류들이 서류 양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가치가 손상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과 에밀리 브론테의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킨다는 문구에 끌려 선택한 책이었다. 초월적 자아를 추구하는 몽환적인 인물 데미안과 광기어린 사랑으로 끝장보는 히스클리프를 떠올린다니 비범한 주인공일 것이라 여겨졌다. 읽어보니 무언가 초탈한듯 소유을 벗어던지는 모습이나 아웃사이더 기질에선 데미안이, 헬레네를 위해 자신을 던져버리는 모습에선 열정어린 히스클리프가 떠오르기도 한다. 서류를 작성하는 필자의 목소리로 소설은 이어지는데, 대내외적으로 성공한 칼'의 어린 시절 친구 펠텐의 부고로 부터 시작되어지는 담담한 어조는 친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같다. 친구인 펠텐의 기록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 고향, 가족에 이르기까지 총망라 되어진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기도 고향 포겔장의 역사를 기록한 문건이 되기도 한다.
포겔장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세 남녀의 삶의 궤도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접어든다. 아버지의 열망대로 법대를 진학한 칼은 모범적인 코스를 밟아나가 단란한 가정과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는다. 그에 반해 의사인 아버지가 죽고 편모슬하에서 컸던 펠텐은 묘한 매력과 분위기로 사람들에게 주목받지만 괴이한 언행으로 배타시된다. 그럼에도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선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착하고 사회적인 성격인 칼과 매력적이지만 일탈을 꿈꾸는 몽상가였던 펠텐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끈은 놓치 못한다. 그 안에서 함께 성장한 헬레네는 미국에서 성공해서 돌아온다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유년 시절에는 함께 였던 그들이 성장하며 - 시대의 변혁을 함께 동반하면서 - 제 갈 길을 걷게된다. 세 명 중에 칼과 헬레네는 보편 타당한 길을 걷는다. 아버지의 바램대로 혹은 자신의 욕망대로 사회적 신분을 쌓아가는 칼과 미국에서 아버지의 성공으로 부자집 아가씨가 되는 헬레네나 자본주의의 이익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유년시절이나 성인이 되고나서도 사회적인 이익에 눈도 돌리지 않는 펠텐. 주변 모든이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어 한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부유한 베를린 양복점 아들인 레온과 그의 누나 레오니 - 펠텐 안드레스가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 말하지 않은 것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레온과 레오니 드 보보다 더 주의를 기울인 이들은 없었다. 나는 펠텐이 이를 나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후 그의 인생 여정은 그에 역행하기 때문이다.....그의 방식이 우리의 방식과 일치한 적은 거의 없었다. - 자기 방식대로 모든 사람과 사람들을 판단하고 자기 안에서 모든 것들이 결론 맺어진다. 완전 몰아적 자아를 가진 인물이었던거같다. 이 펠텐'이라는 인물은. 특히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주고 도움을 배풀 수 있는 사람들을 가졌지만, 그것조차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어떻게 느끼느냐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럼으로 해서 자유를 누리려 했던 펠텐은 모든것을 가진 이들에게 도리어 자신들이 가진 것들에 대한 무의미한 공허함을 남긴다. 묘한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모든이들이 소유하려고 발버둥칠 때, 그는 자신의 가진 모든것들을 불태워 버리기까지 한다. - 기인같기도 진정한 자유인같기도하다. 어차피 인생은 소유물들의 무게만큼 무거워진다고 한다. 본인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서류를 작성해가는 칼의 목소리는 자조적이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글이 쓰여지는 것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무렇치 않게 버렸던 모든것들, 잊고 지낸 사람들, 추억들, 그런것들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이 지내온 세월들에 대한 비애와 후회가 깊다. 특히나 펠텐으로 인해 자신이 잘 살아가고 있는건지, 되묻고 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부모님의 고향도 쉽게 져버리지만, 펠텐은 자신을 위해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인생의 시간을 할애하고 기다려준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을 내준다는 건 누구가 되었든 배려이고 사랑인듯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바치는 것. 아마도 칼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 터이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고 헬레네가 있는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어떻게보면 무모하기 이를때없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는다고해도 그가 쓸쓸하게 죽지 않았다는것과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한 그의 삶이 실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이 소설은 죽음이 세 번이나 나온다. 성공한 칼의 아버지의 장례식, 아들을 기다리며 포겔장의 집을 지켰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펠텐의 죽음까지. 많은 이들이 참석한 장례도 가까운 사람들만 온 장례도 아는 이만 온 죽음도 모두 같은 죽음이었지만 의미는 다 다를 것이다.
자신의 소유로 소유의 짐을 후손에게 남기는 사람보다는 한 사람의 오롯한 기억으로만 남는 삶이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소유에의 욕망을 놓는다는 건 쉽지 않겠지만, 많은 물질을 가지고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면 그건 또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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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펠텐 안드레스이다. 일인칭 서술자 칼 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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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개에 "헤세의 데미안, 브론테의 히스클리프가 교묘하게 섞인 개성적 인물의 창조 "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보고 등장인물에 대한 흥미와 두려움이 동시에 생겼다. 데미안과 히스클리프는 둘 다 광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이며 악마적 매혹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흥미를 느꼈지만, 동시에 그 인물들의 이러한 특성은 나에게 있어서는 매혹적인 인물이지만 그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브론테 자매의 캐릭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두 인물이 교묘하게 섞인 개성적 인물이라고 하니....
이런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내 눈 앞에 놓은 책은 하얀 표지에 약간은 어스무레한 풍경 사진이 책의 오른 편에 위치한 깔끔한 디자인의 책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소설의 표지로는 정갈함이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사진 속의 풍경에는 세 그루 정도의 나무인 듯하나 마치 한 그루인 듯 보이는 나무에서 새떼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황동규의 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사진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후에 보니 이 책의 인간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진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칼 크룸하르트라는 인물이 포겔장에서 펠텐 안드레스의 부음을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펠텐의 부음을 전한 것은 헬레네 트로첸도르프인데 이 셋은 유년시절의 친구이다. 친구에게 전해들은 다른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칼)'는 서류를 정리하며 이들의 얽혀 있는 삶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작업 앞에서 펠텐이라는 인물이 조명된다.
어린 시절 이웃이었던 펠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아버지가 후견인으로 지정된 펠텐은 어릴 적에 끔찍한 놀이를 즐겨 하는 괴짜였다. 나는 이런 펠텐의 놀이에 동참하곤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헬레네를 갈망하지만 헬레네는 미국의 백만장자를 선택한다.(후에 헬레네는 억만장자 미망인이 된다.) 소망이 좌절된 펠텐은 타인이 보기에는 광기어린 행동들을 일삼는다. 이런 펠텐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외부 충격이 되어 준다. 이래서 이 둘의 관계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연상되는데 이는 작가의 의도였었던 듯 하다.
세 인물의 모습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잡는 헬레네의 모습,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유지하는 '나'의 모습에 비해 펠텐의 능력이 있어도 안정이 아닌 일탈을 통한 자아의 획득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소설에서 살아남은 것은 펠텐이 아니다. 펠텐의 죽음을 헬레네와 '나'는 '세계 정복자의 길을 가고,그로부터 승리한 후에' 죽었다고 평가했지만, 결국 펠텐의 사회 속에서 좌절된 인물이다. 이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자아 실현를 꿈꾸지만 안정적인 삶을 영유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주변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좌절과 자기 파괴를 겪게 되는 현실을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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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원마을 포겔장에서 꿈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친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