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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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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페이지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는 역사학자로보다 공학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유명인사가 된 사람이란 것이었다. 나는 짧지만 내 삶의 반을 과학에 몰두해왔기 때문에 책의 첫인상이 좋았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다 배웠다.이 책은 그 중 확실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서이다. 저자는 공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과학발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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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첫 페이지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는 역사학자로보다 공학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유명인사가 된 사람이란 것이었다. 나는 짧지만 내 삶의 반을 과학에 몰두해왔기 때문에 책의 첫인상이 좋았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다 배웠다.

이 책은 그 중 확실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서이다. 저자는 공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과학발전의 더딤과 그 회의감을 역사에 비추어 연구해 왔다. 수많은 역사 속 예시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세자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숭명배청을 고수하던 조신들에게는 배신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조신들은 세자를 중상모략(中傷謀略)했다.

---중략---

아담 샬은 귀국하게 된 세자에게 서양과학과 천문에 관한 서적, 여지구(輿地球), 천주상(天主像)을 기증했다. 인조 232월 세자는 이 가운데 천주상과 서교에 관한 서적은 돌려주고 서학에 관한 자료만 가지고 귀국했다. 그런데 인조는 서인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청나라 황실과 친하게 지내던 세자를 몹시 미워했다. 귀국 후 부왕인 인조로부터 미움을 받던 세자는 급기야 3개월 만에 온몸이 새까맣게 변하고 모든 구멍에서 출혈하는 괴질로 사망했다.

    

- < 2. 소현세자의 죽음 P42 > 에서

 

 


 

 

    

 

 

   역사 속 집권세력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학문과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더딘 성장을 이룬 것이었다. 이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교과서로 배운 사건들을 예시를 통해 깊이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선조들이 상대주의적으로 학문을 바라보았다면 좀 더 굳건한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성장에 급급했던 정세를 보았을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해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세계정세와 접목시키면서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나처럼 한국사 및 세계사 기초 지식이 부족한 독자 입장에서도 독자의 시대배경에 대한 설명 덕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내 역사수준에 대한 정보를 뒷받침 하자면 나는 7차 교육과정을 밟은 세대이다.

 , 이과가 정확히 나누어지면서 과학을 택한 나는 역사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열기 직전 나는 다시 역사의 기초부터 밟던 차였다.

 (너무 창피하지만 내가 요즘 공부하던 책은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응가역사라는 중학생용 역사 내신시험용 문제집이었다.)

 

   무엇보다 일관된 생각을 뒷받침하는 많은 예시들이 저자의 저의를 속 시원히 알 수 있어 만족스럽다.

 극히 단순한 사고와 급한 성격 탓에 복잡한 구조의 책은 도통 읽을 맛이 안 나는데 말이다.

 다만 간간히 삽입된 어려운 사료이름들이 있어서 되짚어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주석을 읽으면 곧바로 이해가 되도록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은 여러 분야직종의 독자들의 관심을 끌 요소가 많다.

  선교와 학문전파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한 부분들은 종교인들에게는 역사와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끔 할 것이고, 나처럼 과학을 연구하는 직종의 독자라면,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황성신문은 강압적인 조약체결의 진상을 즉각 특종으로 취급해 널리 보도하고 이 날이야말로 방송대곡해야 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사장 장지연은 체포돼 경찰에 구금되고 신문사는 폐쇄됐다. 해가 지고 황혼이 깃들어 모든 것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16. 신문이 걸어온 발자취 P361 > 에서

    

 


 

 

 

 

  수많은 블로거와 대중매체 관련 종사자들은 독자들은 집권층의 권력 다툼과 그로인해 새로운 학문이 배척되었던 시대.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바라보면서 현재 우리는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집권층에 대한 비판으로 시끄러워진 현 시점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저자의 바람과 같이 나 또한 대중매체의 더 나은 성장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l******a 2018.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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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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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현실을 빗대어 꼬집는 듯한 저자의 정세판단력과 통찰력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15세기말의 대항해 시대부터 포루투갈과 스페인의 동양 진출,서양의 문물 중 사학의 전파와 그 문물의 역서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된다. 세계지도와 수학의 기본서를 접하면서 그리고 예수회와 전례서를 접하면서 중국의 수학과 역법, 음악과 과학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들을 곁에 두고 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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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현실을 빗대어 꼬집는 듯한 저자의 정세
판단력과 통찰력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15세기말의 대항해 시대부터 포루투갈과 스페인의 동양 진출,서양의 문물 중 사학의 전파와 그 문물의 역서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된다. 세계지도와 수학의 기본서를 접하면서 그리고 예수회와 전례서를 접하면서 중국의 수학과 역법, 음악과 과학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들을 곁에 두고 서학사적의 편찬이 주를 이루게 된다. 특히 1623년 당시 세계 지리학의 2대 명서가 지어진다.
조선도 최초의 포루투갈 신부와 이태리 신부를 맞이한다. 그중 효종 4년에는 하멜이라는 네델란드 일행의 난파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을 이용한 서양문물의 접점의 계기가 있었음에도 일본에 그 일행을 빼앗김으로 역법, 의방. 성력, 조총,대포에 대한 기술을 일본만 차지한다
일본은 하멜일행의 기술을 받아들여 개국의 기초문물을 교묘히 받아들이고 발전시킴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랑캐라 비웃으며 ..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사상적 기반과 외교문물의 자유스런 받아들임이 없었던 정세가들의
처세가 개탄스러우며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저자의 시각은 뚜렷했다
인조때의 소현세자의 죽음, 선조의 우유부단함, 광해와 인조의 변변치 못한 능력부족으로 번번히 세계화의 문물에 뒤쳐진다.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겪으며 위정척사, 쇄국양이의 혼란으로 서양문물의 도입지연은 계속된다.
청나라 볼모시에 이미 유수의 학문에 접해 있는 소현세자를 유능인으로 보고 있는 저자. 그를 독살하고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잃은 인조의 집권층을 꾸짖고 있다
사상체계의 다변화는 주자학, 실학사상의 승계로 발전할 수 있었고, 유교와 천주교, 북학파와의 교류와 저서로 인해 개혁할 수 있었음에도 계속 그 기회를 상실한다.
조선은 사서삼경에만 몰입되어 있어 서양법률에 눈뜨지 못했다
관세없는 조약,특허징수의 불이행,전문적인 외교사절단의 부재,국제법에 대한 문외함을 들고 있고인종19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첫 관세 인정으로 일본에게도 징수가 가능해져 역사상 첫 관세징수가 이루어진다.그러나 이후 청의 압박으로 미공사의 추방과 선교 , 학교의 허용등을 조약했다 번복하고 추방하는 등 열악한 태도를 갖는다. 이후 김홍집의 열강처사와 일본의 수교단 파견등의 활동에도 선박, 조약, 기관차등의 교류로 식문화, 음악.건축,예절에 이르기까지 빠른 문물의 흡수와 발전을 이루는 일본인들에 비해 배타적인 사고를 계속한다.
사진기술과 지폐의 사용, 기름을 이용한 불의 사용등의 발전을 보여주는 일본을 그냥 스치듯 지나치는 파견사 일행들. ..그들의 열악한 처사는 지금의 집권층의 불성실한 과오책들과 견줄만하다는 작가의 입장에 동감한다.
'조선책략'과 '이어'같은 통상관계를 위한 서책이 있음에도 , 그로 인한 청과 일본과 미국등의 서양통상무역의 발전이 있을 수 있었음에도 번번히 유생들의 상소로 인해 무산되고 경멸시 된다. 이후 보빙사와 유길준의 서유견문으로 한층 나아가긴 한다. 선교사 알랜과 미국 견문사절단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의 그들과 달라 놀랍다.
애국가와 국기는 알던바와 같다. 윤치호와 안창호의 작사 ,안익태의 작곡 그리고 중국사상이 곁든 국기이야기.
많은 의미와 각별한 국가만의 정서가 담겨야 할 국가와 국기여야함에도...그러나..
개혁파와 온건개혁파의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은 치밀한 계획이 없는 정권당략의 욕심에서 비롯된 구데타로 ,진정한 개화를 늦추는 사건이었다고 .
이후 한일합방까지 수많은 정치관료들을 외국인으로 들였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고 결국 그 반대인 일본의 치밀한 계획아래 차관정치로 내닫는다.
교육적인 면에서 1720년 이미 서역서가 수입개방 된 일본의 교육은 매우 빠르게 발전되어1877년에 첫 대학교 설립을 이루는것에 반해 우리나라는 서당과 성균관이 있었고 매우 열악했다.이후 핼리팩스학교, 동문학, 육영학원, 소학교, 광혜원,이화학당, 배재학당.정신여학교등이 설립된다.그러나 1930년 문맹률은 거의 77.7%였다.
고종집권이 이익만 챙기고 모르스 미국공사에게 경인철도권을 넘기나 일본은 270여만엔으로 권리를 사들였고. 경의선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에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권리를 가져갔다. 광산도 권리름만 챙기고 미국에, 강원도 광산은 독일에,은산광구권은 영국에,이어 이태리, 프랑스까지.. 어업권마저 빼앗는 일본...
이익금은 비밀에 부치고
생산량 또한 비밀에 부친 후 마구 퍼갔을 우리의 금광산 보물들.
위정척사와 쇄국양이는 결국 개화의 걸림돌로 지대한 역사적 과오를 남기는 오만한 사상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신문 또한 세계적 역사를 더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성순보','한성주보''독립신문''제국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만세보'에 이어 '조선일보''동아일보'에 이르는 흥미진진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마지막장에 13개의 참고문헌을 소개하며 이 책의 객관적 자료를 적어 둔 작가의 섬세함에 감사한다.
일련의 사건 주제를 갖는 전문적인 역사책 같았으나 ,결코 지루하지 않은 스마트한 전개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n********2 2018.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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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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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시리즈 4번재.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이 발달하고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당시의 집권층들이 어떻게 정세를 판단했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조선은 성리학이 주를 이룬 나라였다.군자의 나라라는 이름 아래에 중국을 향한 사대주의가 극에 달하였으며,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의 외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취하였다.그리고 그 결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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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시리즈 4번재.

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이 발달하고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

당시의 집권층들이 어떻게 정세를 판단했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조선은 성리학이 주를 이룬 나라였다.

군자의 나라라는 이름 아래에 중국을 향한 사대주의가 극에 달하였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의 외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

그리고 그 때 당시에 집권층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었는지 이 책은 하나하나 짚어가며 다루고 있다.


그것도

"어설픈" 정세판단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어떻게 어설프게 정세를 판단했는지 기록하고 있다.


물론 사관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집권층이 어설펐다, 어설프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에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하는지

고민하고,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한다.


그래서 역사를 바탕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책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정답이 이것이다라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통해 답을 찾아가기 위한.

과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s*****h 2018.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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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PI-TOUCH]-유영준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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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PI-TOUCH   유영준 지음         - 강약이 모두 같지 아니하니 후금의 환심을 잃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 후금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진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도원수 김시양은 의주에서 상소했다가 멀리 귀양보내어 쫒아 낻다. 그결과는 병자호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로 혼타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손현세자와 처 강빈,봉림대군등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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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의

어설픈 정세판단

PI-TOUCH

 

유영준 지음

 

 

 

 

- 강약이 모두 같지 아니하니 후금의 환심을 잃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

후금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진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도원수 김시양은 의주에서

상소했다가 멀리 귀양보내어 쫒아 낻다. 그결과는

병자호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로 혼타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손현세자와 처 강빈,봉림대군등 300명에 달하는 인질은

심양에서 8년 동안 청나라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당시 서인 조정은 세자가 청나라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 오랑캐 무리와 사냥을 하거나 장사하는것이 왕위 계승자로서 있을 수 없다는 행위라고 중상모략을 한다.

세자의 모습은 숭명배청을 고수 하던 조신들에게는 배신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세자는 예수회 선교사들과 친분과 서학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인조는 서인을 의식해서 인지 청나라 황실과 친하게 지내던 세자를 몹시 미워했다.

그리고 3개월만에 괴질로 사망한다. 세자와 아담샬의 관계,서학을 수용할 수 있는 통로가 끊기고 만다. 조선 조정으로서 가장 필요한 조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을 제거하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일이다. 이 시기에 과감히 개혁과 개방의 길을 택한 선구자가 바로 소현세자였다.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은 송시열과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삼전도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한 중추적 인물로 부각한다.

- 나라가 어지러운 형편에 북벌을 한다는 것은 무리 -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나 '북벌론'만을 주장할 뿐 아무대책도 없었다.

신하들 역시 주자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양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세한 사람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 조총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고도 서양학문이 뛰어난 것을 터득했음에더 불구하고 왜란이 끝나자 서학에 관심은 사라지고 다시 주자학과 담쟁에 빠져들었다.

 

 

 

 

 

 

1793 영국의 사절 매카트니가 청나라 황제 건륭제에게 중국과의 교역을 허락 해 줄 것을 요청

건륭제는 거절한다.

1843년 50년이 지나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 '남경조약'을 체결함,조공체제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1854년 10년이 지난  일본이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 하는 국제의 정세 속에서

이제는 '쇄국과 은둔의 나라'인 조선에도 외세가 밀어닥칠지 모르는 긴박한 사테에 몰렸으나

주자학이라는 독단에 무장한 조선은 그러한 절박한 살황을 절감하지 못한다.

1876운양호 사건으로 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청나라 북양대대신 이홍장은 이유원에게 은밀한 서한을 보낸다.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할 우려가 있으니 서구 열강들과 조약을 맺고 구나력을 강화하라고 권유했다. - 이홍장이 그 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일본이 유구왕국을 병합하고 러시아가 신강성 서북부에 있는 이리를 침범하자 조선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홍장이 서양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적을 적으로써 견제하는 책략 以敵制敵之策] 근거를 두고 판단한것이다.

'조선책략'과 정관응이 쓴 '이언'을 황준헌은 김홍집에게 선물로 주었다

조선책략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현실과 장래 어떠한 정책을 취해야 할지 암시한 책

이언은 서양문물과 제도를 종합적으로 소개한 책이었다.

 

황준원은 김홍집에게 새로운 이식을 심어준다. 미국과의 수교뿐만 아니라 서양 여러 나라와의 수교도 조선의 발전에  도운이 된다는 설명한다. 황준헌은 서양 여러 나라에 대한 문호개방의 불가피성과 조선이 처한 지정학적인 의미를 처음으로 조선 조정에게 알려준 사람이었다.

이홍장의 권유와 황준헌의 영향을 받아 조선 조정은 고립주의 에서 벗어나 문호를 개방하고

개화정책을 펴기로 했다. 고종은 모든 괸리에게 조선책략을 읽도록 하는 동시에 전국 유생들에게도 배포 했으나 오히려 전국의 유생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됐다.

그리고 주자학의 글귀에만 집착하던  조선과 달리 국제정세는 당시 러시아는 중국 동북부 흑룡강 동쪽을 장악하고 일본으로부터 사할린을 접수하는 등 지속적으로 남하정책 추진, 러시아가

동북아 요충지인 한반도를 그들 영향권 아래 두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조선의 집권층들은 국가의 안위보다는 일신상의 영달에 더 집착했다.

 

이로써 우리의 결말은 세계열강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게 돼 일본은 제2차 한일협정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접수하고 1910년 8월 우리나라는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을 맞게 됐다.

 

 우리의 아픈 과거를 만나는 것이 맘은 아프다. 그러나 꼭 알아 두어야하고 기억해야한다.

오늘날 최순실국정농단사태에서 우리는 상실감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는 이런 어두운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문장 중간중간에 좀 어려운 단어들로 표현한 것들이 조금은 불편하고 굳이 이 단어로 

사용하여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정신(廷臣) ,완유, 도그마 ...

역사적인 사실의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집권층들이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는

 <집권층의 어설픈정세판단>이다. 늘 나라에 큰 악영향을 주고 우리가 역사에서 만나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수모를 피할 수 없었던 굴욕의 역사와 마주한다. 국제정세에 맞지 않는 주자학이라는 학문을 선호하는 어리석은 기득권자들의 오만함과 자기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나라를 돌보지 않는 집권층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운에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집권층의 어설픈정세판단> 이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지식과감성'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t*****k 2018.0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