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한번 가보았던 그 장소는 소설 속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 후로 그 장소를 너댓번쯤 다녀왔다. 작년 연말에도 한번 다녀올 정도로 좋아하는 장소. 때로는 이처럼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인물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실제 장소에서 판타지 속 장소를 찾는달까.
이런 감정을 갖는 이들은 나 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이자 미술 칼럼을 주로 쓴 작가 곽아람이 찾아 떠난 여행지가 바로 문학 속 장소였다.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는 문학 작품 속 장소를 실제 찾아본다는 것은 큰 감동이다. 문학 작품 속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깊이 들어오는 감정일 것이므로.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던 작가는 이처럼 문학 기행을 떠났다. 아메리카 문학 속으로.
어쩐지 문학 작품 속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작가의 여행이 부러웠다. 우리가 읽어왔던 소설 속 장면을 찾아다니는 여행. 여행지에서 작품을 생각하고 몇 문장을 읽으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는 일. 이런 여행 한 번쯤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처음 떠났던 문학 여행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찰스턴, 존즈버러다. 다시금 소설의 내용과 함께 영화 속 화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뒤늦게야 깨달았던 사랑, 그 사랑이 떠나가도 내일이 있다며 자신을 달래는 스칼렛의 대사가 부유한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들을 직접 그 장소에서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스칼렛을 샅샅이 알고 싶었다. 그녀가 어떻게 그런 여성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어머니 엘런을 통해서도 알고 싶었다. (80페이지)
행복한 아이는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홀로 책 읽는 아이들은 대개 외로움과 슬픔이 많은 이들이다. 어린 날 책벌레였던 내게는 현실 세계 이외에 책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어진 마음속 세계가 하나 더 있었다. 당시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국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그 세계의 많은 부분은 미국을 모델로 했다. (12페이지)
![]()
오랫동안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처럼 그다지 예쁘지는 않으나 지적인 여성이 결국은 멋진 남자의 사랑을 얻게 되리라 믿어왔다. 여류 소설가들이 대개 아름답다기보다는 지적인 여자라 자신의 판타지를 작품에 녹여냈다는 걸 깨달은 건 최근에서였다. (116페이지)
작가가 떠났던 아메리카 문학 여행은 헨리 워스워드 롱펠로의 〈에반젤린〉의 아카디아 국립공원, 《작은 아씨들》의 조와 에이미를 찾아 떠난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영 굿맨 브라운》과 《주홍글씨》의 장소 마녀사냥의 근원지 세일럼, 《빨강머리 앤》의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에밀리를 위한 장미》의 뉴올리언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있거라》의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쿠바 아바나, 《톰 소여의 모험》의 소녀 베키의 숨결이 있는 미주리주 해니벌, 《마지막 잎새》의 뉴욕. 《위대한 개츠비》의 뉴에이븐.
이렇듯 작품 속 장소는 우리가 읽어왔던 문학 작품을 다시 읽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읽고, 나이가 들어서도 읽는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은 이처럼 소설을 써왔던 그 장소에서 살아 움직인다. 아마 소녀적 감성이 풍부한 《빨강머리 앤》을 읽었던 사람은 가장 가고 싶은 장소가 아마 프린스에드워드 섬일 것이다. '연인의 오솔길' 이나 '유령의 숲'을 직접 걸었다는 문장에 나도 몰래 부러움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다. 그린게이블스의 내부 사진들은 얼마전에 《빨강머리 앤》을 읽었던 터라 소설 속 내부와 똑같이 닮은 모습에 슬며시 미소짓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멋진 일이다. 이제 나는 어린 날 좋아하지 않았던 부류의 소녀들. 그러니까 여성스럽고 얌전한 소녀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들의 새침함, 그녀들의 내숭, 그녀들의 연약함. 사실 내 안에도 있었지만 '배운 여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내가 꺼내 보이길 꺼렸던 여성성과 동의어였다. 특정 성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남자다움'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어떤 전형이 있듯이, '여자다움'에 기대하는 어떤 전형도, 어느 정도는 진화와 번식을 위한 생물학적인 특성에 근거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274페이지)
책 속에 수록된 문학 작품들을 거의 읽었던 터라 저자가 영어 문장과 함께 해석한 작품 속 문장들을 다시 되새겼다. 이 글을 쓴 작가처럼 좋아하는 책을 들고 작품 속 장소를 따라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작품 속 장소가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 그 공간에서 탄생한 작품들이기에 그 의미가 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