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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냐 고흐냐 ("간절하지,돌고래처럼" vs. '잡문집')
"하루키냐 고흐냐 ("간절하지,돌고래처럼" vs. '잡문집')" 내용보기
1.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이 나왔다. 벌써 지난가을의 일이다.(2011.10) 2012년 새해가 되어서야 이 시집을 집어들었으니 좀 늦게 알게 된 셈이다. 그런데 막상 표지를 까보니 여태 초판 2쇄다. 뭐랄까, 사람들이 참 바쁘게 사는구나 싶다. 명색이 문지시인선 특별판인데 여태 2쇄밖에 안 찍을 정도로 판매가 저조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글쎄, 뭐, 나만의 시대착오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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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이 나왔다. 벌써 지난가을의 일이다.(2011.10) 2012년 새해가 되어서야 이 시집을 집어들었으니 좀 늦게 알게 된 셈이다. 그런데 막상 표지를 까보니 여태 초판 2쇄다. 뭐랄까, 사람들이 참 바쁘게 사는구나 싶다. 명색이 문지시인선 특별판인데 여태 2쇄밖에 안 찍을 정도로 판매가 저조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글쎄, 뭐, 나만의 시대착오일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문지시인선 400권째라는 이유만으로는 책을 집어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마침 이 특별판 표지에 있는 엮은이 둘의 이름 중 하나가 낯익었기 때문에 집어들었던 것이다. 그이가 아직 풋풋한 문학도였을 때, 그러니까 아직 평단에 데뷔하기 직전 시절에 알았던 것인데, 사실 그때 이미 이 사람의 글은 무섭도록 천재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어쩌면 그때는 그이가 막 평단에 데뷔하기 직전이었으니, 오히려 문학적 기개랄까 감각이랄까 할 만한 것들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여튼, 그때 그이의 글은 매우(너무나도) 예리하고 정확하고, 그래서 매서웠고 두려웠다.

그로부터 바야흐로 10년쯤 지난 오늘 다시 읽은 그이의 글은 여전히 깊고 아름답고 재밌었다. 이 정도의 깊이라니, 한국말의 위력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고갱과의 결별을 견디지 못해 귀를 베어내고, 격렬한 자학의 흔적을 그림으로 옮기려 거울 앞에 선 고흐는 어떠했을까? 붕대에 감긴 한쪽 귀를 보며 모멸감에 휩싸였거나 수치심에 괴로웠을 것이고, 광인으로 돌변했던 찰나를 되짚으며 스스로가 무서웠을지 모른다. 혹은 자기 꼴이 한심하고 우스워 과장하기 좋아하는 광대처럼 웃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오가며, 거센 내면의 파고를 바라보는 자신의 눈을 초점이 어긋난 불안한 녹색으로 칠하는 고흐를 떠올리면, 자기 내부에 도사린 광기를 하나의 객관체로 응시하는 또 다른 냉정한 '화가-고흐'가 어느덧 자화상 앞에 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딘가 소스라치게 놀랍고 섬뜩한 데가 있다. 미친 자가 미쳐버린 자신을 미치지 않은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상한 비범함은 정상의 범주를 이탈한 만큼 낯설고 기이한 것일 수밖에 없다. ... 자신의 증후를 똑바로 응시하려는 초인적 의지에, 자기 본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치열한 대결 의식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화상의 진정한 놀라움은 다른 데 있다.) ... (177~178쪽)

 

 

저 10년 전쯤에라면 나는 고흐 같은 캐릭터들에 대하여 '자의식 과잉'이라고 조롱했을 것이다. 아니, 실은 아직도 여전히 어떤 사람이 동시에 자기를 관찰자도로 놓고 대상자로도 놓는 모습을 보일라치면 곧장 '도플갱어'니 '정신불열'이니 해가며 비웃곤 한다. 그게 TV드라마의 가상의 인물이건 영화의 주인공이건 소설의 등장인물이건, 혹여 현실에서도 이를테면 신문지상의 정치인이건 내 이웃이건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다. 최근에는 '나꼼수'에 나온 유시민의 '자아비판'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런 말을 내밷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절절했더라도 여튼 유시민이 자신을 '딱하기 짝이 없는 먹물로 놓고 까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최소한 '초인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2.

하루키 역시 이런 식의 자의식 과잉이랄까, 자기 내면 들여다보기에 대해 넌더리를 내는 사람 중 하나다. 연전에 <문학동네>에 실린 그의 2박3일짜리 인터뷰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도 예의 그 과감한 발언이 눈에 띤다.

한 독자가 취업시험장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쓰시오!'라는 따위의 문제를 받고 낙심한 이야기를 보내오자, 하루키는 그에 대해 정색을 하고 비난/조롱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자체가 쓸모 없고 해악한 것이며 차라리 굴요리에 대해 그만한 길이의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정도에서 멈췄다면 나는 하루키의 폭력성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론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즉, "'자기란 무엇인가?' 따위에 진지하게 골똘히 고민하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소설가가 아니다",란다. 그리고 이어서, 소설가란 끊임없이 "고양이와도 같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글들을 써나가는 것이며, 결국 그 설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서 굴러가게 마련이라고 한다.

 

 

글쎄, 한편으론, 하루키 씨가 참 어지간히도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한테 시달렸나보다는 측은함이 들기도 한다. 막연한 짐작으로도, 왠지 일본의 문단이라면 그런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만연해있을 것 같기는 하다. 오죽하면 하루키가 고향을 떠나 연고도 없는 그리스의 섬으로 날아가 버렸겠는가, 싶은 면이 있는 것이다.(비록 지금은 지중해건 미국이건 다 정리하시고 교토로 돌아와 정착했다고 하시지만.) 그러나 우리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들에 대하여 그렇게 어리석고 한심하다고만 여겨도 되는 것일까?

 

3.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초입은 선조 육조 혜능을 상징하는 육조촌장이 오조촌장을 돌로 까죽이는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오조촌장은 조그만 연못가에 앉아 항상 마음수련을 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가 읊는 선시는 이런 것이다:

 

몸이 보리수이니

마음은 밝은 거울틀과 같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며 티끌 못 앉게 하세

 

(41쪽)

 

이에 대하여 장차 육조촌장이 될 '나'는 저 가소로운 존자의 곡조와 시형을 빌어 이렇게 읊어주고 있다:

 

보리에 본디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닌데,

본래 한 물건도 없는 터에

어디에 먼지며 티끌 앉을까

 

(48쪽)

 

그러니까 만약 스님이나 목자가 신도들을 앉혀놓고 저 오조촌장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헌금을 강탈한다거나, 화가가 콜렉터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저런 비몽사몽한 그림이나 글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는 뭔가 재고가 필요해보이긴 하다. 육조촌장이 그런 것처럼 돌로 까죽일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건강한 정신'이랄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끊임 없이 자기 내면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되도록 남에게 큰 영향을 주는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게 할 일인 듯도 싶다. 그러나 오히려, 찬찬히 돌아보면, 근대 이후의 직업세계에서 유독 저러한 병적인 자기 집착 증세를 갖고 있는 자들이 보란듯이 대거 예술가나 종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싶다. 

 

생각이 이 정도쯤 오니 뭔가 고무줄 끊어지듯 조절계(?)가 튕겨나나고 만다. 술이라도 마신듯 생각이 대기권만큼 높고 커지면서, 이른바 근대의 이성이랄까 합리성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개인주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화가가 제 얼굴을 작품으로 그리고,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목사와 중이 세상이 아니라 자기 구원에 골몰하게 되었던 사정의 진실은 또 무엇이었을까? 나가서 클럽 좀 휘두르다 돌아와야겠다. 끙.

r******a 2012.01.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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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11월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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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지성 시인선 400권째 시집이 엮어져 나왔다기에 살펴볼 것도 없이 구입하다.   시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아, 난 소질이 참 부족하구나.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일도 있구나. 제대로 주제를 파악하고는. 이후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주로, 창작과 비평사, 민음사, 문학동네, 실천문학사, 그리고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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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지성 시인선 400권째 시집이 엮어져 나왔다기에 살펴볼 것도 없이 구입하다.

 

시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아, 난 소질이 참 부족하구나.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일도 있구나.

제대로 주제를 파악하고는.

이후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주로,

창작과 비평사, 민음사, 문학동네, 실천문학사, 그리고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이

시부분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다. 고작 300권쯤 될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손에 들고 다녔던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그리고 400권째 시집.

의미있겠다 싶어 구입했고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와 더 구매욕구를 돋구었다.

 

인생의 중반쯤에 서 있는 나.

내 생의 중력은 어느만큼일까...

새털만큼이나 가볍고 덧없이 느껴지는 요즘,

내 생의 중력에 가중치를 실어야 할 것 같은데.

답을 찾기가 어렵다.

 

***끌리던 시 몇 편, 옮겨두다.

 

알 수 없어요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보니

내 좁은 방.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341)에서

 

모순1

 

삶의 갈래

그 갈래 속의 수렁

무수하다

 

손과 발은 열 길을 달려가고

정수리로 치솟은 검은 덤불은

수만 길로 뻗는다

끝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지 못한 진창에서는

바글바글 애벌레가 기어오른다

 

봄꽃들 탈골한 길로

단풍 길 쏟아진다

 

손가락마다 지문을 새겨 살아도

내 몫이 아닌 흙이여

  -조 은, 『생의 빛살』(374)에서

 

자미원 간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

오늘 하루 이 시간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저 바위가 서 있는 것과 나무 의자가 놓여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를 태운 기차는 청령포 영월 탄부 연하 예미를 지나

자미원으로 간다

그 큰 별에 다다라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무한의 너머를 향해 증산 사북 고한 추전으로 또 달린다

명왕성 너머에까지 가려 한다

 

검은 탄광 지대에 펼쳐진 하늘,

태백선을 타면 원상결 같은 작자와 시대 미상의 천문서를 탐하지 않아도

자미원(紫薇垣)에 닿을 수 있다

탄광 속에는 백일흔 개의 별이 깊숙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 별에 이르는 길은 송학 연당 청령포 영월 예미......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북두칠성과 자미원의 운행을 짚어보는 것은

저 엄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과 새털구름이 지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조용미,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338)에서

 

오리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이윤학, 『그림자를 마신다』에서

 

빈 화분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 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묻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 모르지만

생각하면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김정용, 『메롱메롱 은주』에서

YES마니아 : 로얄 c*******7 2011.11.3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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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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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는 것인데.    표지의 '엮음'이란 말의 뜻을 깨닫고는 먼저 든 생각이다. 30여년간 매해 10여권의 시집을 내온 '문학과 지성사'의 400호 기념 시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 400호 시집은 301호부터 399호의 시집 들 중 시인 83명의 시를 골라 수록하였다. 사실 100호, 200호, 300호 때도 이랬었다고 하나 - 시집 읽는 일이 영 둔하디 둔한 내가 어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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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는 것인데.

 

 표지의 '엮음'이란 말의 뜻을 깨닫고는 먼저 든 생각이다. 30여년간 매해 10여권의 시집을 내온 '문학과 지성사'의 400호 기념 시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 400호 시집은 301호부터 399호의 시집 들 중 시인 83명의 시를 골라 수록하였다. 사실 100호, 200호, 300호 때도 이랬었다고 하나 - 시집 읽는 일이 영 둔하디 둔한 내가 어찌 알아, 그걸. 때문에 교과서 한번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본 준비없이 요약본을 먼저 본 것 같아 영 찝찝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처럼 시 못 읽어 본 나도 핑계를 댄다. 내가 아직 시선집 모아읽을 레벨이 안되는데 벌써부터 읽어서 아쉽다고. 감상만 잘한다면야 이리 읽든 저리 읽든 뭐 어쩌겠냐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모르면 이렇게 손해다.

 

 그래도 몇 몇 시인들 이름이 눈에 들어와서 그래도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도' 읽자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내가,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낯설지 않게. 다만 시인들의 시집에서 꼽힌 시들이 영 생소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내게 무언가를 남긴 시가 꼭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중 하나로 여기에 꼽혀 올라올 정도면 나도 좀 주의깊게 읽었어야 했는데 대부분 무심결에 지나쳐버린 시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시들도 있었고 또 아직 읽어보지 않는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꼽아볼 수도 있었다.

 

 [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 신대철 "바이칼 키스"

 

모래폭풍이 땅을 뒤집는 순간 황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푸른 하늘, 붉은 흙먼지, 야생의 숨결을 받은 것들을 숨 돌릴 새 없이 몸부림쳤다. 무엇에 쫓겨 가는지 짐승들이 미친듯이 달렸다. 밤새 살아남은 발자국들은 거대한 먼지 굴 속에서 굴러 나와 먼지를 끌고 달렸다. 황야에 들어갈수록 긴 꼬리가 생기고 몸이 팽창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평선은 둥글고 향긋해도

 그 중심은 깊고 황막한 곳

 

다시 황야로 들어간다면 모래폭풍 넘어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

 

 신대철 시인의 "바이칼 키스"라는 시집은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읽었는가 헷갈릴 정도로 또렷하게 제목이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서 본문을 사진으로 찍어두기까지 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도록. 같은 시공간 안에 무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의식은 끊임없는 신호로 보내질 수도, 존재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을 수도, 어느 지점에서 존재하고 부재하는지도 모를 그런 모든 차원을 포함하고 또 넘어선 면을 그려낸 듯 했다. 황야와 사막을 말하는데도 우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점도 좋았다. 꼭 읽어야지.

 

 이 시와 같이 [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 함성호 "키르티무카" ] 시도 같이 적어뒀다. 내 느낌 상으로는 마치 연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대철 시인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함성호 시인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 중에 [ 어머니 전 혼자에요 /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 공중을 혼자 떠도는 비눗방울처럼 / 무섭고 고독해요 /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 후략... ] 하는 부분이 있는데 왜 내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지 소멸되면서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존재로 남을 수 있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더불어서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꼽은 시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다음으로 적어둔 [ 책상 -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나온다. [ 책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어요 / 나는 책상에 강물을 올려놓고 그저 펼쳐 볼 뿐이에요 / 내 거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일 뿐 ... 후략... ] 여기서도 내가 존재하는 것이 어떤 확고한 지점에 확실한 존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 어쩌면 순간 혹은 중복되어 산재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다른 두 편의 시와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책상'이란 시가 좋았던 점은 그 외에도 [ 나는 어스름한 빛에 얼룩진 짧은 저녁을 좋아하고 / 책 모서리에 닿는 작은 바스락거림을 사랑하지요 ] 하는 부분의 정경이 애틋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지만.

 

 읽지 않는 것인데 하고 생각한 것치곤 꽤 흥미롭게 읽었다. 문지의 시집을 고집스럽게 읽고 있는데, 고집스러운 것 치곤 더디게 읽지만. 시집 중에서 뭔가 기본을 제시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기초영어 같기도 하고. 아직 안 읽은 100호, 200호, 300호도 곧 읽게 되기를. 이런 준비되지 않은 자세가 아니라 준비된 배경을 가지고.

 

이달의 사락 m******j 2015.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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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생만큼은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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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내 생의 중력』이란 시집을 봤고 뭔가에 끌린 사람처럼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오늘, 아니 어제 시집을 받았다. 어제와 오늘 경계에서 시집을 읽었다.   나는 왜 오랜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 있고 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 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 북해에 살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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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내 생의 중력』이란 시집을 봤고 뭔가에 끌린 사람처럼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오늘, 아니 어제 시집을 받았다. 어제와 오늘 경계에서 시집을 읽었다.

 

나는 왜 오랜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 있고

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

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

북해에 살던 그 풀들도 친척이 된다는 말,

얼마나 내 묵은 심사를 편하게 해주었던지.

 

                                
                            _ 마종기,「북해의 억새」부분

 

나 역시 같은 집착과 열등감을 갖고 있는 터라 이 시구에 마음이 머물렀다. 며칠 전 서울숲공원에서 억새를 만났는데 그 억새도 친척?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아주 멀리 있지 않는지도.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_ 김광규, 「춘추(春秋)」 부분

 

윤중호는 「영목에서」란 시에서 한때는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 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시는 아닐지라도 두 계절이 바뀌는 동안 덧붙인 시가 겨우 한 줄이라니. 그래도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등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으니 나쁘지 않은 계절을 보낸 것은 아닐까. 우리가 머무는 이 도시는 소리 보단 소음이 더 많이 들리는 곳이니 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다시 여름으로, 그리고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 삶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많이 쓸쓸했다. 그래도 한 달의 한 권 이상 시집을 읽었느니 나쁘지 않은 계절을 보낸 거라고 나를 위로하고 싶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_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부분

 

죽은 시간 위에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하는 사랑

나는 지금 그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_ 김윤배,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부분

 

이 눈사람은 커다란 거품이다

겨울 햇살이 눈사람을 핥으면

눈사람은 점점 가벼워진다

눈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눈사람은 조금씩 죽어간다

  
                
_ 이경임, 「거울 속의 눈사람」부분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라는 행이 자꾸 입에서 맴돈다. 혹독히 기다려야 할 사랑이 있다면 놓아주어야 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일도 놓아주는 일도 모두 어렵고 쓸쓸한 일. 그래서 사랑이 숭고한 것이겠지만. 이장욱의 「아프리카 식 인사법」을 읽으며 이별할 땐 아프리카 식으로 인사하라고 법으로 정하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이별은 내게 너무 어렵다.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황인숙의 「알 수 없어요」란 시에도 시선이 머문다. 그 다음의 실린 시는 장경린의 「퀵 서비스」인데 이 시 재밌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준단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서연은 기억을 놓지 않기 위해 외국작가들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시인에게 서연의 대사도 시가 된다. 박정대의 「천사가 지나간다」는 철학자, 소설가, 가수, 영화배우, 영화감독, 화가 등의 이름이 나열된 시이다. 성기완의 「테스트1-사랑하는 당신께」는 단어들의 순서를 바꿈으로 만든 시이다.

 

내 배후인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은 은색이야

나는 삼류도 못 되는 정치판 같은 트릭은 쓰지 않아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을

철가방에 넣고 나는 달려

불에 오그라든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짜장면을

랩으로 밀봉하고 달려

검은 짜장이 덮고 있는 흰 면발이

불어 터지지 않을 시간 안에 달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다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

  
                
_ 이원, 「영웅」부분

 

책 제목인 ‘내 생의 중력’이란 제목의 시를 찾았는데 없었다. 대신 이원의 「영웅」이란 시에서 제목을 발견했다. 영화 [도가니]에서 시민단체 간사였던 서유진은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보선은 「인중을 긁적거리며」에서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했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 쏠리지 않은 것 /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다’를 반복해서 외운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주어진 생만큼은 열심히 살자고.

 

『내 생의 중력』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호로 301호에서 399호에 실린 시인들의 시를 한 편씩 뽑아 실은 책이다. 시를 읽고 싶은데 어떤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이 시집을 권한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1.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 우리 모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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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빨리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계절은 다시 겨울을 데려왔다. 이사한 집에서 맞는 첫 번째 겨울인 셈이다. 첫눈도 내렸고 김치 냉장고엔 김장으로 채워졌고 베란다엔 쌀도 있다. 추위를 핑계로 게으름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겨울이다. 한데, 마음엔 바람이 분다. 또 한 해를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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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빨리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계절은 다시 겨울을 데려왔다. 이사한 집에서 맞는 첫 번째 겨울인 셈이다. 첫눈도 내렸고 김치 냉장고엔 김장으로 채워졌고 베란다엔 쌀도 있다. 추위를 핑계로 게으름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겨울이다. 한데, 마음엔 바람이 분다. 또 한 해를 살았고 다시 겨울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아이들의 기말 고사가 끝나자 허탈하다는 친구는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즈음 누구나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내 생의 중력>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내 생의 중력을 읽으면서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 시집은 301권부터 399권까지 99권의 시를 엮은 것이다.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적절하지 않지만 30대가 끝나고 40대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판사는 이 시집의 테마는 ‘시인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한 권의 시집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시가 시인과 가장 닮은 것이라 봐야할까. 내가 알고 있는 시는 많지 않았고, 내가 알고 있는 시인도 많지 않았다. 수록된 83편의 시, 어떤 시는 소리내어 읽었고 어떤 시는 두 번 세 번 읽었고, 어떤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본 시는 이런 시다.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p. 54~55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의 고래는 무엇일까. 그건 어떤 미련함인지도 모른다. 떠나간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는 때는 언제 올까. 생의 엔진을 모두 끌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등바등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는 그 무엇을 기다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 삶이란  여유가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작은 여유는 아닐까.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p. 108~109 이수명의 <창문에 비추고 있는 것>

 

 시를 읽고 시를 따라 창을 바라본다. 눈이 오고 있다. 같은 창이지만 바라볼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다르다. 같은 듯 다른 것들, 변화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생각들. 짐작컨대 시인이 창을 바라본 시각은 아침이 아닌 깊은 밤일 것이다. 생각이 커지고 깊어지는 밤, 누군가를 생각하는 밤 말이다.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시, 시를 통해 그들을 본다. 때로는 단 한 줄의 구절로, 때로는 아주 긴 문장으로, 자신을 그리는 그들이다. 내게는 이름으로, 시로 기억되는 시인들. 여느 시집에서 시를 보았다면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에서는 시인을 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이런 시에서 또 한 시인을 본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여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진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이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 ― 쓰기로 옮겨 쓴다. p. 121~122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이며>의 일부다. 시는 시인의 손가락으로 옮겨진 우리 모두의 삶이다. 그러니 시는 모두의 초상인 것이다. 붉은 피가 흐르는 고통이, 바라볼수록 눈부신, 외롭고 쓸쓸한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담아 내는 일이 힘겹겠지만 거짓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손가락의 삶으로 옮겨주길 바란다.

 

r*********s 2011.1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