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류머티즘과 함께 한 내 몸을 관찰하며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다.(파블 14기 4-6)
"류머티즘과 함께 한 내 몸을 관찰하며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다.(파블 14기 4-6)" 내용보기
미세먼지를 집어삼킬 기세로 흩뿌리던 빗줄기가 그친 자리 연두 빛깔의 잎들은 진초록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 5월이 올 것이다. 산천을 청아함으로 물들이는 봄의 절정을 채 느끼기도 전에 잰 걸음으로 달음박질할까 조바심 내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마음이 커진다. 시험을 앞두고 교과서와 문제지를 파고드는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다 눈물을 훔쳤다. 순차적으로 구성된 한 개인의
"류머티즘과 함께 한 내 몸을 관찰하며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다.(파블 14기 4-6)" 내용보기

  미세먼지를 집어삼킬 기세로 흩뿌리던 빗줄기가 그친 자리 연두 빛깔의 잎들은 진초록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 5월이 올 것이다. 산천을 청아함으로 물들이는 봄의 절정을 채 느끼기도 전에 잰 걸음으로 달음박질할까 조바심 내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마음이 커진다. 시험을 앞두고 교과서와 문제지를 파고드는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다 눈물을 훔쳤다. 순차적으로 구성된 한 개인의 투병 일기에 융해된 가족의 유대는 혈연 공동체의 붕괴가 흔한 시대에 감동의 파문을 일으켜 심장을 뜨겁게 한다. 어머니 나이 마흔에 얻은 막내 동생의 건강 회복을 위해 혈육들이 함께 하는 모습에서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동생들에 대한 회한이 깊어진다.


  <<아파서 살았다>>는 역설적인 제목 속에는 스물한 살부터 앓기 시작한 류머티즘과 함께 한 저자의 40년 역사가 자리한다. 관절에서 소리가 나고 통증을 느끼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들이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류머티즘으로 밝혀지고 지난한 투병은 시작되었다. 백방으로 명약을 찾아 복용하고, 항류마티스제에 의존하며 지냈지만 병세의 차도는 없어 일말의 희망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전락하였다.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반복하는 동안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병세는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아 휴학한 학교에 복학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남들은 하지도 않을 고민을 떠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터라 복학해서도 오빠 내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투병 중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관찰하여 일기에 소회를 털어놓으며 막힌 숨통을 틔웠다.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하는 통증 등으로 마음을 놓지 못한 채 지내야 했던 시간 일기 쓰기는 투병하는 현실 아래 류머티즘과 동행하는 법을 일깨워 주었다. 조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던 시간과 노래를 함께 부르며 시간을 보냈던 일은 울울함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다.


  병을 오래 앓다 보면 건강 회복을 바라며 여러 방법을 찾아 나서다 뜻하지 않은 일로 치환할 수 있는 게기를 찾기도 한다.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견디며 자신이 스스로 행하는 활원 운동으로 일상에 변화를 이끌었다. 퇴직한 아버지에게 의존하며 계속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일할 준비를 해나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독서지도사로 일하며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여갔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온천 여행에서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는 공허함을 더했고 상실의 고통을 깊게 드리웠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인생사에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모으는 일은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전제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찾으며 살 수 있는 인간적 성숙을 니체의 사상에서 발견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였다. 30여 년을 치료해왔지만 내 몸을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지내왔음을 간파한 저자는 하나의 유기체인 몸에 대한 탐구를 위해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섭생과 수면에 중점을 두고 1년간은 동의보감을 공부하며 식상 과다형의 생활방식을 알아차리고 가치관을 돌아보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금 기운이 치성한데다 대운이 시작되는 20세에 밀려드는 금 기운이 쌓여 류머티즘은 발병하였 음을 자각하였다. 고정된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만나면서 몸에서 일어난 변화, 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보는 공부를 병행하여 갔다. 약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다 약을 끊었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해 약을 재복용하다 종국에는 약을 끊고 자가 면역력을 길러갔다.

  ‘몸은 너무 안양(安養)하면 점점 약해진다.’

  아흔 일곱에 이승을 뜬 어머니는 스스로 움직이며 몸을 보살피는 일이 소중함을 딸에게 일깨워주었다. 병석에 누워 움직이기 힘든 때에도 자력으로 움직여야 경직과 강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고단한 몸으로 잠들지 않은 채 일할 때면 어머니는 몸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몸까지 해치면서 할 일은 없다는 말이 지당함을 알면서도 일에 매몰되어 사는 경우가 많다. 쉼을 잊고 딸이 자립하기까지 평생을 함께 한 어머니는 훗날 홀로 남을 딸의 건강을 염려하며 몸이 보내는 크고 작은 신호들을 알아차리며 살아가길 바랐다.


  학교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신학문을 배운 아버지에 소박당할까 염려하며 틈틈이 한자를 익혀 편지를 쓰고 가사를 적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드러나는 법화경을 읽으며 정화하는 시간을 보낸 어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투병 중인 딸을 돌보았다. 아흔 일곱을 일기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는 이승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촌촌이 이어지는 내면적 가치를 가슴에 심어주었다.


  생로병사의 자연적 순환 고리에 매어 지내는 인간임을 일깨워준 어머니의 부재는 몸을 움직이며 마음의 찌꺼기를 정화하며 살아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한다. 생전에 어머니는 시조를 외면서 외로움·그리움·막막함을 풀어내고 다시 힘을 얻은 것처럼 막내딸은 대중지성 학습과 강론으로 생활의 리듬을 조율하며 공동체적 삶의 질서를 이뤄갔다. 감이당에서 학인으로 만난 이들은 공동 규범을 지키며 함께 책을 읽고 암송하며 세미나에 참여하는 공부는 뉴욕에서도 지속되었다

n*****9 2018.04.25. 신고 공감 9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아파서 살았다라는 제목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아파서 살았다라는 제목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을 독서 모임에서 읽자고 했을때 약간 거부감이 올라왔다.그렇지 않아도 지금도 벌써 삐그덕거리며 이곳저곳이 아픈데 굳이 아파서 괴로와하는 모습이 오롯이 담겼을 책을 찾아 읽어야될 이유가 뭔지 싶었다.그런데 책을 손에 들자 놓을 수가 없었다.현대의학으로는 완치 가망이 없는 병을 대하는 지은이의 갖가지 경험과 순간적인 깨달음이 그 당시에 쓴 일기장 속에서 생생
"아파서 살았다라는 제목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을 독서 모임에서 읽자고 했을때 약간 거부감이 올라왔다.그렇지 않아도 지금도 벌써 삐그덕거리며 이곳저곳이 아픈데 굳이 아파서 괴로와하는 모습이 오롯이 담겼을 책을 찾아 읽어야될 이유가 뭔지 싶었다.
그런데 책을 손에 들자 놓을 수가 없었다.현대의학으로는 완치 가망이 없는 병을 대하는 지은이의 갖가지 경험과 순간적인 깨달음이 그 당시에 쓴 일기장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었다. 후에 자신의 몸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사회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스스로 알고자 감이당이라는 곳을 찾아가 공부하면서 만난 고전들을 자신의 경험으로 해석해서 쓰여진 글들은 그냥 한번에 읽어버리기에는 너무 미안하다.
지은이가 말했듯이 쉴새없이 찾아드는 통증 속에서도 그것을 버티게 해주는 소소한 즐거움의 순간들이 분명히 있고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잡아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어 평범함에 뭍혀사는 사람들이 흘려 버리고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슴을 일깨워준다.
또한 아버지와의 한판 승부,
지은이를 위해 온갖 명약?들을 구해오시며 재가 수행자로서 살다가신 지혜로운 어머니, 형제자매들의 우애도 가슴훈훈하고 애잔하다.
정말 병이라는 것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어떤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그 병을 피하려,벗어나려 애쓰기보다는 관찰하고 함께 벗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르는,암,치매...등 여러 병들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지은이를 통해 맛본다.
오랜 만에 독후감을 쓰고싶은 좋은 책을 만났다^^
0*****k 2021.05.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파서 살았다-오창희저
"아파서 살았다-오창희저" 내용보기
이 책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찰하고 빛을 찾는 모습이, 인간적 성숙에 대한 깊은 공감을 준다. 훌륭한 부모 형제들로부터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인간적 교류를 하며 한 평생을 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삶의 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국문
"아파서 살았다-오창희저" 내용보기

이 책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찰하고 빛을 찾는 모습이, 인간적 성숙에 대한 깊은 공감을 준다. 훌륭한 부모 형제들로부터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인간적 교류를 하며 한 평생을 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삶의 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국문학 전공자 답게, 저자의 글은 소박하지만 수려하다. 해질 무렵 중학교정에서 핸드볼 놀이를 좋아하던 소녀가 대학시절 관절염으로 대구 앞산 벚꽃길을 걷기조차 어렵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찾아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희망을 품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되는 극한 상황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저자의 삶의 태도야말로 삶의 높은 경지가 아닌가 싶다. 찬찬히 읽어볼 만한 귀한 책이다.    

c******g 2021.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류머티즘과 함께 산다
"나는 류머티즘과 함께 산다" 내용보기
처음 류머티즘을 앓기 시작하고 전투 모드로 살았던 십 년간 내 욕망에 맞춤형으로 등장한 귀신은 '명약'이었다. 내 몸을 아프기 이전 상태로 온전하게 회복시켜 줄 명약. 어떤 치료를 해야, 어떤 약을 먹어야,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나을 수 있을까에 매달렸다. 다른 삶은 병이 나은 이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골몰하는 동안 시나브로 내 삶이 증발해 버렸다. 이걸 알
"나는 류머티즘과 함께 산다" 내용보기

처음 류머티즘을 앓기 시작하고 전투 모드로 살았던 십 년간 내 욕망에 맞춤형으로 등장한 귀신은 '명약'이었다. 내 몸을 아프기 이전 상태로 온전하게 회복시켜 줄 명약. 어떤 치료를 해야, 어떤 약을 먹어야,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나을 수 있을까에 매달렸다. 다른 삶은 병이 나은 이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골몰하는 동안 시나브로 내 삶이 증발해 버렸다. 이걸 알아차린 건, 두 무릎을 인공관절로 갈아 끼운 뒤였다. 그때서야 '명약'으로 포장한 '희망'이라는 귀신의 맨얼굴을 보았다. 그러면서 질문이 쏟아졌다. '꼭 나아야 되나?', '이대로 살면 안 되나?', '건강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나?' 등등. 그 이후 병과 함께 살기로 했고, 그러면서 "뭐하꼬?”(무엇을 하며 살까)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의 저자 오창희는 58년 생으로 대학 2학년인 스물한 살 봄, 류머티즘을 만났다. 누군가 먹고 나았다거나 조금이라도 효험이 있다는 건 다 먹으면서 십 년 동안 병과 싸웠다. 서른한 살, 결국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그때부터 병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걸음마를 하면서 뭘 하며 살까를 고민했다. 서른아홉에 독립을 하고 독서지도라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며 사십대를 보내다가 마흔여덟 살에 독서지도 전문가가 되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쉰이 되던 해, 대퇴부복합골절상을 입고 2년간 뼈가 붙기를 기다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중 내 몸을 내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쉰다섯이 되던 2012년, 독서지도 전문가의 꿈을 접고 감이당(坎以堂)에 왔다. 그때부터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선현들의 말씀을 믿고 공부 중이다. 지금은 불교, 주역, 니체, 양생(養生) 등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류머티즘을 만나다

 

저자는 경북 오지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빠와 언니는 일찌김치 대구로 서울로 유학을 가고, 그녀는 할머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어머니의 집안 대소사로 항상 바빴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힘께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성품의 할머니를 좋아했기에 그녀는 고3 때를 빼곤 늘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20년을 함께 지내던 할머니가 93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타계했다. 장례를 마치고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꼬리뼈 부위가 어긋난 듯 불편한 증상 때문에 경북대학교 병원을 찾아갔다. 진단 결과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이었다. 입원 후 처방받은 스테로이드와 진통소염제를 복용하고 매일 한 번씩 온찜질을 했음에도 아픈 부위는 점점 늘어만 갔다. 입원 때는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턱 관절 등 상체의 관절이 아팠는데, 점차 무릎과 발목에도 통증이 찾아왔던 것이다.

 

양약과 한약이라는 '허가된 명약' 순례의 영향을 받지 못하자 자연스레 치료법은 /허가받지 못한 명약' 순례로 방향을 틀렀다. 늙은 호박에 지네를 넣어 삶아 먹기도 하고, 개뼈다귀 삶은 물을 상시 음용하다가 부작용을 맛보기도 했다. 식물도 엄청 많이 먹었다. 바위에 낀 오래된 이끼도 먹고, 개두릅나무 삶은 물에 식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처럼 먹으면 약이 된다는 것은 뭐든 먹었다. 그러나 병세는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병은 한 가지, 약은 열두 가지'

 

양방에서 한방으로, 한방에서 민간요법으로, 기도에 굿까지. '명약'은 끝이 없었다. 차라리 약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신이 있어서 "넌 이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 그러니 낫겠다는 희망은 버려라"라는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택의 괴로움이 그만큼 컸다.

 

새 처방으로 바꾸자니 먹던 약을 조금 더 먹어 보면 효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하던 처방을 더 지속하자니 안 될 놈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이런 것들이 고통을 가중시켰다. 살면서 그때처럼 선택의 어려움을 절감했던 적이 없다. 선택 앞에 괴로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치료에 매달린 지 2년이 좀 지난 1981년 가을이었다. 추석을 쇠러 온 큰오빠와 올케가 경기도 광주에 '용한' 의사가 있다며 서울로 가자고 했다.

 

 

그래도 나는 사는 게 좋다

 

"니하고 내하고 같이 죽자"

 

1980년(아니면 81년) 봄, 며칠간 봄비가 제법 내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치료에 너무나도 힘든 탓인지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는 것보다 차리라 죽은 게 더 낫지 않겠느냐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이또한 저자를 위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어머니에게 모진 말로 응수했다.

 

"죽고 싶으면 엄마나 가서 죽어라. 나는 이래도 사는 게 좋다"

 

한참 뒤,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때 니 혼자 집에 두고 다니는 게 영 불안했다"고. 어머니는 그 시절 여기저기 약을 구하러 다니거나 볼일을 보러 다니느라 집을 비울 때, 혹시라도 내가 나쁜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속을 떠보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였는데, 내가 어머니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그 이후로는 안심하고 다니셨단다.

 

 

인간적 성숙

 

2001년 초, 수업을 파하고 귀가하는 길에 승용차 4중 추돌사고 현장을 경험했다. 그녀가 탄 차는 내리막길에서 앞뒤로 차를 두고 정가운데에 위치했다. 그래서 그녀의 차는 연달아 받혔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어서 별로 큰 충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녀는 어깨와 목 관절의 통증이 점점 심해짐을 느꼈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충천했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정도의 충격에도 견디지 못할 몸이라니. 살다 보면 이런 사고가 다시는 없으리라 어떻게 장담하나?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땐 어쩌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 두어야 불안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5억? 10억? 과연 많은 돈을 가지면 불안하지 않을까? 돈이 편안한 미래를 보장해 줄까?

 

그녀는 처음 독립을 할 때, 매월 50만 원만 벌면 족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그 액수보다 더 많이 벌고 있는데도 왜 불안하지?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벌면, 그땐 또 불안감 해소에 필요한 돈의 액수가 더 커지는 게 아닐까? 결국 경제력이 이 불안감을 씻어 주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 불안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함께사는 게 최선이다

 

류머티즘은 그 병세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아침에는 이런 상태였다가 저녁에는 또 달라지고, 금방 꼼짝도 할 수 없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리기도 하고, 여기서는 이랬다가 저기서는 또 다른 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컨디션이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물건을 자꾸 놓치거나 병뚜껑이 안 열리거나 책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힘들거나 할 때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올라오고 불안이 스친다. 그럴 때면 손가락이 다 펴졌으면, 팔꿈치가 잘 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류머티즘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달의 사락 5****0 2019.04.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