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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을 전공했고 고소설을 비평하시는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 비법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자성어로 제목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글쓰기 관련 책 몇 권을 생각해 보면 모두, 대단히 현대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논 (論) 과 해 (解)로 나누었는데 논은 서술부분이고 해는 풀이부분이다. 목차에서 보면 같은 글자가 두 번이나 반복되어 있으면서 다시 되짚어 보게 했듯이, 이 책은 논 부분을 읽고 다시 해 부분을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사자성어의 뜻도 헤아릴 겸 풀이 부분인 해 부분을 먼저 읽고 논 부분으로 다시 돌아와 읽었다.
논은 짤막한 편이지만 해는 당연히 그 몇 배를 차지한다. 우선은 마음갖기, 사물 보기, 책 읽기, 생각하기, 내 글쓰기로 나누었는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글쓰기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꼼꼼하게 거쳐 나가는 것을 권하고 있다. 글쓰기는 역시 행동이자 활동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마음을 세우고, 그 사물에 대한 관심과 제대로 보는 것을 거치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경험과 다각도로 거쳐온 생각이 모여서 손끝에서 글로써 나오는 것이다.
논만 펼쳐 보면 눈으로 읽는 속도와 맞추어서 금방 읽기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바로 해 부분에서 드러난다. 글쓰기 기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님을 역력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저자의, 독자를 위한 깊이있는 배려도 느껴지게 한다. 순서를 예로 들자면, 미자권징, 사이비사, 문장여화, 시비지중, 진절정리와 같은 익숙하지 못한 사자성어와 맞딱뜨리게 되어있다. 흰바탕이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산수를 제대로 본 후에 그림을 글로써 읽은 후 옳고 그른 한 가운데를 꿰뚫는 생각에 미치면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 이런 방식의 글쓰기 대화는 지금까지 자주 접해 보지 못했었기에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낯설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생각을 더 여유롭게 느리게 갖게 하기도 한다. 후루룩 국수 가락 말아 올리듯이 입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소화 작용을 하게 하는 인스턴트식 압박은 결코 가지지 않게 한다. 슬로우 푸드를 만들때 시간을 필요로 하듯이 익어가고 여물도록 기다리게 하는 맛이 유별나다. 문화 체육 관광부 우수 교양 도서 임에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이랴 싶다.
37계로써 나뉜 본 글에 진입하면 결코 빠른 속도로 읽어내지 못하는 내용들이 빼곡하게 넘친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다산과 연암 선생만을 꼭 집어서 그들의 작품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필두로 하여 글쓰기의 대가들이라면 다산과 연암 외의 분들, 그들의 글까지도 알 수가 있도록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부분을 끝에 두고 "글읽기 10계명" 과 12계명까지 자세하게 남겨두어서 글쓰기 자세를 다시 한 번 더 가다듬게 한다. 특히, 글쓰기에 도움되는 관련 서적 소개도 유익하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같은 오래된 참고 도서 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에 나왔던 대통령의 글쓰기 까지도 목록에 올라와 있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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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 작가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저술 목적) 연암과 다산으로부터 진정한 읽기와 쓰기를 배우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WHAT : 작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핵심적인 내용) 심론, 관로, 독론, 사론, 서론 등 다섯 개의 장으로 책을 구성하였는데 심론에서는 글쓰기 마음자세를, 관론에서는 심론을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독론 에서는 관론을 바탕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사론에서는 독론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서론에서는 사론을 바탕으로 제대로 붓 잡는 방법, 즉 글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HOW :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실천 사항) 독서를 할 때는 저자와 한 판 겨루기 하듯 탐구하며, 글을 쓸 때는 스스로 깨닫고 나다운 글을 써야겠다. ♥ 나의 주장/평가 독서는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요 저자의 의도를 읽는 것이며, 쓰기는 남의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닌 바로 나의 생각을 써야 한다. ♥ 나의 주장/평가에 대한 이유 3가지 첫째,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나를 진보시키지 못하고 저자의 생각만 받아들일 뿐이며, 둘째, 지식이 지혜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릴뿐만아니라, 셋째, 지혜가 부족하고 내 생각이 없는 글은 나의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 결론 독서는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물을 마시듯 행해야 하며, 쓰기는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나의 마음과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 내 마음속에 남은 한 문장 영혼 없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 듯, 영혼 없는 글은 글자는 있되 글은 없다. 마음 있는 글쓰기, 양심있는 글쓰기는 정녕 자기 영혼을 걸어야 한다. 이 양심 살아있는 글쓰기가 바로 생명의 글쓰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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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시중에는 다양한 글쓰기 방법에 관한 여러 서적들이 출간되어있지만, 이 책에 유독 눈길이 갔던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쓰기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문장가로 알려진 선조들은 어떻게 글쓰는 방법을 알려줄지 궁금했다. 이 책은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책의 구성은 크게 “마음 갖기(심론), 사물보기(관론), 책읽기(독론), 생각하기(사론), 내 글쓰기(서론)”의 다섯 장이며 총 37계다. 책의 중간마다 고사, 비유 등이 나오지만 저자의 설명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첫 부분에 나오는 마음 갖기의 1계를 보면 연암의 글 중에 ‘소단적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뜻은 ‘글자는 병사요, 뜻은 장수이고, 제목은 적국’이란 뜻이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숨은 뜻은 연암이 글쓰기를 전쟁에 비유한 것이고, 그에게 글쓰기가 생명이란 뜻이다. 또한 연암은 평소 글을 쓸 때 ‘천 근 쇠뇌를 당기듯’이 신중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여러 가지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현실에서 글쓰기를 생명같이 여기고,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한 좋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글쓰기는 글짓기가 아니라 글 쓰려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은 글짓기 같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쓴 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밖에도 글읽기 10계명, 글쓰기 세 걸음, 글쓰기 12계명도 글을 읽고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우리 선조들의 고전에서 배우는 읽고 쓰는 37계의 내용들이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는 마음 자세로부터 시작된다는 선조들의 말씀을 다시금 새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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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한 입장에서, 막상 역사를 전공하기 전에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달랐던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어렸을 적 위인전 혹은 교과서에 적혀있던 사실과 실제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였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에도 흠 하나 찾기 어려운 인물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다산과 연암이 아닐까. 어렸을 적 읽었던 위인전과 실제 역사적 사실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위인전이야말로 이들의 업적과 실제 모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게 아닌가. 되려 너무 흠이 없기 때문에 실제 인물들이라기보다 마치 '위인전'에나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니, 우리는 실제 사료에 기록된 이들의 진짜 역량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다산과 연암의 철학을 논하고 있는 책이다. 평소 그의 언행과 그가 남긴 책들을 통해 그가 독서와 글쓰기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러 글들에서 누차 언급한 바 있는 바, '글을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나 개인의 견해로 비추어 봤을 때, 우리는 다산과 연암의 글들을 통해 그들의 삶 전반과 삶에 대한 철학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논(論)과 해(解)로 나뉘어지며 그 아래에 각 계(計)를 두어 주제를 분류하고 있다. 자못 거창할지 몰라도 결국은 작가가 본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이라는 커다란 틀로 설정한 뒤, 그 틀 안에 각 계별로 이야기를 자그마한 단위로 쪼개어 나누었다고 보면 된딘. 해 역시 작가가 논에서 지나칠 수 있는 세세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친절히 일러주는 장이다. 도입부분부터, 또는 각 계마다, 아니 논과 해 전부를 통털어 이 책은 좋은 단어, 훌륭한 문장들의 향연이다. 낯설지만 뜻을 음미하면 그 모양과 함께 호감이 가는 단어들을 작가가 책 도처에 사용한 덕분에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러한 단어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문장들인만큼, 필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 역시 그 재미를 의도한 듯, 낯설지 모를 그 글자들에 주석을 달아 친절히 그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마주한 사람은 알겠지만, 책을 한번에 읽기에 그 두께가 결코 얇지 않다. 단번에 독파함이 바람직하겠지만, 하루 하루 혹은 그때 그때의 발췌독을 통해 습득한다해도 이 또한 바람직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각 계는 그 발췌독을 위한 요긴한 구성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책을 다 완독한 후 몇번이고 다시금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단순히 책읽기, 혹은 글쓰기를 위한 작가의 제언을 읽으려함보다 독서에 대한 나의 마음 자세를 재정비하기 위함이다. 다산이, 그리고 연암이 독자에게 건네는 조언이 결국 독서와 글쓰기 이전에 그 마음부터 가다듬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부터가 먼저 바로서지 못한다면 독서는 그저 무의미한 노동이 될뿐, 책 속에 담긴 가치를 꿰뚫어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흰 바탕이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미자권징(美刺勸懲)과 창구멍을 뚫어야 비로소 그 안이 보인다는 혈유규지(穴牖窺之). 연암과 다산의 철학을 통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보자면 기가 막히게 다이나믹한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님에도 글에 펄떡이는 생동감이 전해진다. 곧, 일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학창시절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을 꼽자면 난 데미안이었노라 이야기할 수 있다. 스무살 넘은 대학시절엔 상실의 시대의 하루키 문학을, 또 박민규 작가의 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어느덧 서른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책과 조우한 듯한 마음이 든다. 차곡차곡 독서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이 책이 또 다른 변곡점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또 한가지, 흠 하나 없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이미 멸종하다시피 한 요즘이지만 이처럼 과거에 우리에겐 티끌 하나 없는 자랑스러운 정치인들이 분명 존재했음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때문에 몇 안되는 요즘 인물들에게서 쥐어짜듯 이상향을 찾기보다 우리네 역사 속 인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것이 되려 더 수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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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저 글자만을 쫓는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다른 사람의 글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읽어내야 하고, 자신의 내면에 담긴 깊은 생각을 써내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려운 읽기와 쓰기의 표본이 될 만한 인물을 찾는다면 어떤 분들이 있을까?
다양한 인물들이 떠오른다. 최근 인물로는 유시민 작가(읽기와 쓰기에 관한 글이라 작가로 명명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에 작가로 칭하기로 한다)가 떠오른다. 그가 쓴 글들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한편 책 읽기에 관해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은 박웅현으로, 그의 저서 ‘책은 도끼다’는 읽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읽기와 쓰기의 역할모델로 어떤 인물이 떠오르는가? 이 책의 저자 간호윤은 읽기와 쓰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주저 없이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꼽는다. 저자는 연암과 다산 성생의 말만 발맘발맘(자국을 살펴가며 천천히 따라가는 모양/이 책에서 처음으로 접한 단어다) 쫓으면 글쓰기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연암과 다산을 통해 전하는 글쓰기는 심론-관론-독론-사론-서론이라는 다섯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 다섯 과정을 논(論)과 해(解)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논은 저자의 주장을 논술했다는 의미이고, 해는 계(논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에서 다루지 못한 용어나 내용을 자세히 풀어 설명한 글이다. 동일한 내용을 논과 해로 나누어 설명하기에 반복 학습의 효과도 상당하다. 또한 책의 마지막에 수록한 글읽기 10계명, 글쓰기 세 걸음, 글쓰기 12계명 등의 부록을 통해 간단하지만 꼭 지켜야 할 읽기와 쓰기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한다는 한 마디가 읽기와 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마음, 너무나 간단히 생각한 마음. 영혼 없는 대답이라는 표현처럼 마음 없은 글은 그저 글자의 조합일 뿐이다. 어찌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했는지.
‘글쓰기는 집짓기’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 놓으리라.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듯이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담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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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책을 만나면 완벽한 이해를 하기엔 부족한 지식을 탓해보기도 하고 더 많이, 더 열심히 읽다보면 지금 보다는 작가의 의도에 더 근접하는 이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재독을 다짐하는 책들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심각하게 자신에게 던져보기도 한다. 제대로 읽는 것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제대로 쓰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동서고금에서 찾고 있다. 저자 간호윤은 이 책에서 요구하는 대로 발맘발맘 따라오기만 하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래서 일단 차분히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심론, 관론, 독론, 사론, 서론 다섯 장으로 구분하고 그 다섯 장을 37계가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글 옆에 붙어 나오는 번호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근데 아이쿠야 그 번호가 바로 ‘해’, 즉 37계를 더 자세히 풀어 놓은 글들이었다. 그 ‘해’를 모아서 따로 편집한 양이 본 글인 ‘논’보다 많다. 왜 저자는 본 글인 ‘논’과 ‘해’를 따로 분리해 놓았을까? 찾아보는 맛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좀 귀찮다. 앞 뒤를 번갈아 책장을 넘기며 보아야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를 안 읽기엔 그 안을 채운 내용이 완전한 이해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이 점을 유념하고 급한 마음을 버리고 한 계씩 정성스럽게 읽어나가야 한다. 일단 이 책에선 제대로 읽기와 제대로 쓰기를 위해서는 먼저 마음 갖기가 우선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진실한 마음과 양심이 담긴 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한다. 특히 ‘사물에 이미 뜻이 스몄으니 소리 없는 글과 글자 아닌 글을 읽어야 한다.’는 문장을 보면서 ‘보는 것’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달았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3장 독론과 4장 사론이었다. 책을 쫓기 듯 읽어 본 경험이 있다. 다독과 속독에 대한 욕심이 불러온 참사다. 이 책에선 ‘선명고훈 독서’를 말한다. 한 글자라도 뜻이 불분명한 곳을 만나면 끝까지 이치를 파고들어 그 근원까지 도달하는 독서, 생각의 한계와 틀을 벗어난 생각 거듭하기 등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 37계 하나하나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가르침이다. 스스로의 독서법을 되돌아보고 자기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의 가치에 놀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의 독법과 서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더해 이 책속에 담긴 아름다운 순 우리말들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말과 잘 사용되지 않는 사자성어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담긴 글들이 참 좋다.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읽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