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10.0
  • 50대 8.0

포토/동영상 (5)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당신이 만일 이런 일을 겪고, 커다란 피해를 당했다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아들이 공원을 지나는데 그를 살해한 다른 소년. 당신의 여동생을 살해하고 20년후에 붙잡힌 살해범. 믿었던 스승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후 그 충격으로 오랫동안 대인을 기피하게 한 교사.   길을 지나는 유색인 여성을 괴롭히는 걸 말리려다가 공격을 받아서 큰 부상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당신이 만일 이런 일을 겪고, 커다란 피해를 당했다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아들이 공원을 지나는데 그를 살해한 다른 소년.

당신의 여동생을 살해하고 20년후에 붙잡힌 살해범.

믿었던 스승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후 그 충격으로 오랫동안 대인을 기피하게 한 교사.

 

길을 지나는 유색인 여성을 괴롭히는 걸 말리려다가 공격을 받아서 큰 부상을 입힌 인종차별주의자.

 

딸을 납치해 살해하고 붙잡히지 않다가 22년후에 잡혀서 25년형을 선고받은 살해범.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동포라고 친밀하게 다가와서는 오히려 납치해서 감금한 지인.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도끼로 무참히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한 조현병 환자 범죄자.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생체실험한 독일 의사.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청사에 폭탄을 설치해서 자신의 스무세살 딸을 죽게한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

르완다 내전에서 아버지를 무참히 죽인, 한 때 절친이었던 후투족 이웃.

      

20117월 노르웨이 우퇴위아 섬에서 자신에게 총격을 겨누어 죽을 뻔하게 한 총기난사범 브레이비크.

20057월 런던 지하철의 폭탄테러로 두 다리를 잃게 한 자살 테러리스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이와 같은 용서의 이야기를 포함한 48건의 실화들을 담았다.

연쇄살인범에 가족이 희생된 이야기나, 해외 뉴스에서 본 내전과 테러, 전쟁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하나같이 사건들이어서 읽는 것이 어려울 줄만 알았다.

처음에는 조금은 그랬지만 나는 읽으면서 계속 놀라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을 잃는 사람들, 자신이 죽을 뻔 하거나 납치되고, 성폭행당한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상대방을 용서했는지. 하나같이 그러한 내밀한 사연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짧게는 5페이지 정도로만 등장하지만 담담하게 사실과 진실,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길게는 30여년에 걸친 용서의 과정들의 이야기는 어느 소설과 영화 못지 않게 생생하고 감동적이었다. 하나같이 실화였기에 더욱 실감이 났다.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무척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평범한, 이웃에 저런 사람이 살았나도 몰랐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무자비한 범죄자의 타겟이 되어 자신이 죽을 뻔 하는 일을 당하고, 가족이 살해되는 일을 당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너무도 진실되서 정말 한 편 한 편 되도록 천천히 읽고 싶었지만 우선은 서평을 목적으로 했기에 한번 다 읽었다.

담담한 듯이 자신이 겪은 일, 가족을 비참하게 잃은 일을 고백하는 글들은 너무도 호소력이 있었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범죄자를 용서했다는 게 아니라 그 전까지의 과정들이 세세하고 진실되다. 그렇기에 결국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한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 채프터의 몇 명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해를 한 사람들이, 용서를 받은 이야기이다. 진정으로 용서를 받은 이후 자신이 어떻게 완전히 변화되었나를 이야기하는 스토리들이 인상깊었다. 잔인한 범죄자의 시점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들이 타인에게 용서를 받음으로써 완전히 구원받는 이야기는 무척 놀랍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끔찍한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날로 범죄의 수법도 잔혹하고 패륜적이어서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사건을 보도하고 범죄자가 형벌을 받는 것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들이 감옥에 간 이후에,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는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영국과 캐나다, 미국 등에서는 회복적 사법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음을 알았다. 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어 수감된 사람들에게 진정한 회복을 일으키도록 다방면으로 돕는 제도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피해자나 그 가족이 원할 경우에 범죄자와 대면할 수 있게 하고 서로 대화하게 하는 과정이 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속의 여러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범죄를 가한 상대를 용서하는 일을 경험하고, 직접 수감자를 만나서 용서한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책 속에서 용서를 베푼 사람들 중에 서맨사 롤러의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용서란 그 행동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내재한 불완전성을 용서하는 것이다.

(p.31)

     

 

나는 이 책의 용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용서야 말로 가장 숭고한 인간성의 가치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획기적인 이론을 만들어 노벨상을 타거나 새로운 기술로 삶을 편리하게 한 사람들 못지 않게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한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용서야 말로 사랑의 최종 도착지였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 용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를 시행하고 스스로 자유로와졌으며,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다른 이를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주인공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그들이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겸허했다.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수많은 용서의 실화들을 모아서 아카이빙한 작가 마리나 칸타구지노.

그저 실제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만으로도 용서가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녀는 용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녀의 신념과 행동은 정말 옳았다.

 

50명 남짓의,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은 사람들 이야기.

숫자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너무도 크고 깊다.

그래서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여운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한동안 둘러싸이게 했다.

 

내가 감히 이 이야기들을 한편의 짧은 서평으로 갈무리 할 수 있을까 벅찼다.

그럼에도 올해에 꼭 읽어야 할 한권의 책으로 권하고 싶다.

 

 

나는 그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살면서 겪었던 무언가가 그날 그런 끔찍한 행동으로 나타났을 터였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인간다움을 상실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자아와 인간성을 회복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비록 그 과정을 겪어 내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분명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p.52)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마약을 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정신 질환을 앓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탐욕과 절박함에 내몰린 인간이었을 뿐이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가 교도소에서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삶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p.70)

 

나는 그들에게 용서는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믿지만 반드시 여러 겹의 감정을 겪어 내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분노, 그 다음엔 눈물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눈물의 단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에 접어들 수 있다.’

(p.146)

 

용서는 고정된 것으로 보는 순간 즉시 현실에서 멀어지고 만다.

용서는 항상 변화하고, 지속적인 도전이어야 한다.

(p.177)

 

용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가장 숭고한 인간다움의 표현이다.

내가 한때 증오했던 사람들이 내게 베푼 무조건적인 용서가 과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밝혀 주었기 때문이다.’

(p.255)

YES마니아 : 로얄 b********5 2018.03.04.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세상 모든 아픔을 내려놓길 바란다
"세상 모든 아픔을 내려놓길 바란다" 내용보기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으면서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진실을 깨닫는 순간 증오심이 일었다. 평생 그를 용서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내 안에 섰다. 나에게 되돌리기 힘든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이 일었다. 그 때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과는 달리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내 인생은 망가졌다. 상
"세상 모든 아픔을 내려놓길 바란다" 내용보기

소중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으면서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진실을 깨닫는 순간 증오심이 일었다. 평생 그를 용서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내 안에 섰다. 나에게 되돌리기 힘든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이 일었다. 그 때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과는 달리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내 인생은 망가졌다. 상대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길 기도했다. 왜 피해자는 작아지는 가해자는 떵떵거리면서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울먹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근데 사람들은 이른바 금기를 곳곳에서 자행한다. 경험이 끔찍할수록 이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겪은 후로 뒤틀린 삶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 용서라는 것을 행한 이들이 있었다. 머리로는 쉬울 수도 있는 게 용서이지만 가슴으로는 아니다. 피상적으로 용서는 좋은 것이니까 받아들인 건 결코 아니었다. 영혼 없이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한 문장을 내뱉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가해자를 걱정했으며, 더 나아가 가해자와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원만히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어찌 그와 같은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일들을 실제로 행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울컥했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삶을 망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벌어진 일에 화를 내고, 그 일 자체를 부정하는 등의 단계를 그들 역시도 지나쳤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술이나 마약 등에 찌들어 보내기도 했다. 괴로움을 그렇게라도 표출하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직시하면서부터 그들은 분노의 감정이 자신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앗아갔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자신이야말로 폭력이 원하던 바였다. 무기력에 빠져 신음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여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슬퍼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껏 슬퍼하되 오로지 슬픔 하나의 감정에만 빠져들어서 일상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번 일이 결코 자신을 무너뜨릴 수는 없으며, 그리해서도 안 되다는 생각에 힘입어 그들은 다시 일어섰다.

죄와 사람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들의 용서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지 싶다. 용서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 용서가 고정적인 것은 아님을 고백했다. 오늘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내일이 되면 상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멱살이라도 잡고 어찌 사람에게 그와 같은 짓을 할 수가 있느냐며 실컷 따져 묻고 싶은 것이다. 용서라는 원대함을 제 안에 품은 사람도 그러하다. 혹자는 자신이 용서한 것은 부정한 행동이 아닌 우리 안에 내재한 불완전성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게 여기에 해당하려나. 내게 부족함이 존재하는 것처럼 상대도 그러하다고. 상대의 부족함이, 상대가 처한 상황이 이와 같은 끔찍한 상황을 빚어냈고, 만약 내가 저와 같은 입장에 놓여 있다면 나 또한 같은 선택을 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용서는 시작됐다.

 

책에 수록된 모든 사례가 피해자의 목소리로 기술된 건 아니었다. 몇몇 이들은 가해자로 누군가에게 몹쓸 행동을 했는데, 용기 내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도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잘못을 했다며 용서를 구하는 것은 힘들다. 피해자는 자신을 드러냈을 적에 동정 받을 수 있지만 가해자는 아예 존재 자체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 믿었던 세상을 부정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그로 인하여 이제껏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이들과의 관계가 끊어질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기도 했다. 그들의 용서를 구하는 행동은 타인을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도 했다. 아마 그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면서 깨달은 치유의 감정에 눈뜰 수 있었을 것이다.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없이 여린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 또한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용서는 혹시 복수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난 이따금 정말 삶이 버겁지만, 꺾인 두 날개를 사용해 겨우겨우 날갯짓을 행하다가 우연히 가해자를 만났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말로 복수하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상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를 용서한다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라는 상상 말이다. 그와 같은 용서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나에게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건 진정한 의미의 용서는 아닐 것이다. 허나 내 마음에 평온이 싹틀 수만 있다면 비록 거짓 용서일지라도 행하고 싶다. 나는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너로부터, 과거의 나로부터. 나에게 아픔을 선사하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이달의 사락 q*****2 2018.08.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그리 밝지 않았다. 부모님 품에서 떨어져 학교라는곳을 다녀야한다는 공포감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또래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답게 빨리 친해졌고 집에도 놀러가며 매일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그리 밝지 않았다. 부모님 품에서 떨어져 학교라는곳을 다녀야한다는 공포감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또래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답게 빨리 친해졌고 집에도 놀러가며 매일 붙어다닐정도로 친해진 친구들도 생기면서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적대감을 표현하는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를 노골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날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빛에서 적대감을 느꼈고, 그 아이가 옆을 지나가거나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순간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반이 되어도 급식소에서 운동장에서 그 아이를 마주칠때마다 불안했다. 날 싫어하는 그 아이가 무서웠다.

 

한번은 졸업식에서 조용히 다가가 물어본적이 있다. 앞으로 보지 않을 수 있기에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날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처음에는 당황하는듯 싶더니 '그냥.. 그냥 싫었다' 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이란 시간이 너 때문에 힘들고 불안했는데 고작 이유라는게 그냥이였다니.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순간 순간 떠오르는 기억들때문에 화가나고 분해서 기분이 들쭉날쭉 해지다가 우울해진다. 어릴적 일들이 아직도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이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것도, 마음을 주기 쉽지 않은것도,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야하는 나에겐 분노,슬픔,고통과 같은 부정적 마음들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나는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까?

 

 

' 주변사람들이 비난한다. 내가 그를 용서했다고해서 그가 한 핸동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그 일을 저질러도 좋다는것이 아니다. '

 

' 용서란 암을 치료하기 위한 화학요법만큼이나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두 나 스스로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

 

 

우연히 '용서'와 관련된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라는 책인데 성폭행부터 시작해서 살인, 테러등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 용서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쉽게 용서한것은 아닌지 화가났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되면 나도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만을 꿈꿀 수 있지않을까하는 희망에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시작부터 충격이었다. 아들이 칼이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부터 무술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 13살에 10대 미국인 두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 조현병을 앓던 이웃으로부터 도끼로 16번을 가격당하고 죽은 아버지,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딸.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뉴스에서만 보던 끔찍한 일들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다면 매일 매일 버티는것만으로도 힘겹고 숨쉬는것도 어려울거 같은데, 이 사람들은 가해자를 용서하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느꼈던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고 용서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그가 저지른 사악한 범죄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는 커다란 잠재력을 지녔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고 만 사람이었다. '

 

' 내가 아무리 그들을 증오해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고,

결국 고통받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용서하는 이유들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들은 내 미래를 방해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용서이며 나를 위한 해방이고 앞으로 나아가기위한 용서라고 말한다. 이 책을 중반부쯤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처음에 나는 가해자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선과 악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가해자를 악마라고만 생각했다. 당신들은 악마이기때문에 저지른 범죄라고, 다른사람들은 할 수 없는 범죄를 당신이기때문에 저지른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을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혼란스럽다.

 

확실한것이 있다면 용서를 선택한 이들은 스스로를 위해 용서했다는 점이고, 매순간 용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용서라는 단어를 품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사소하다 말할 수 있는 고통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떠올리고싶지 않은 상처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달라진게 있다. 지금까지는 그 아이가 악마고 괴물이며 악한 모습만 있는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어린마음에 저질러버린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조금의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것이라면 너 또한 불완전성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며 과거에 받았던 고통과 슬픔을 지금은 조금씩 벗어버릴 수 있을거 같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라는 글 처럼 날 위해, 내가 행복해지기위해 과거에서 벗어나 용서에 대해 생각해보고싶다.

 

 

 

h*******e 2018.03.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저)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저)" 내용보기
살면서 가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도, 그리고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입에 올려봤을 단어인 ‘용서’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건에 의한 내상이 깊을수록, 사건이 끔찍할수록 ‘용서’라는 단어보다는 ‘미움, 증오, 복수’가 더 쉽고 가까운 단어겠지요.  <나는 너를 용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저)" 내용보기

살면서 가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도, 그리고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입에 올려봤을 단어인 용서, 사실 세상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건에 의한 내상이 깊을수록, 사건이 끔찍할수록 용서라는 단어보다는 미움, 증오, 복수가 더 쉽고 가까운 단어겠지요.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에는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탄식이 나오는 끔찍한 사건을 겪고도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테러와 가족의 피살, 물리적, 성적 폭행을 겪은 이들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저 역시 오랜 시간 용서의 문제를 고민해왔고 또 주변에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터라 이들은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었을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구요. 

그리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한 가지는,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용서의 당위성을 주장하거나,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면서 도리어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할 때 하던 말이어서 참 싫어했던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책 속에는 '진정한 용서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과 용서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람, 그럼에도 '여전히 용서가 쉽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이나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사건 이후 자신의 삶을 망치도록 허락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거나, 사건의 되풀이를 막는 활동을 하기도 하고, 용서, 관용, 화해를 전하며 독려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등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미움과 증오, 원망과 복수를 마음에 두고 사는 이들이 사건과 가해자에게 갇혀산다면, 용서를 택한 이들에게는 자유와 성숙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책 속 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용서를 선택했다는 말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용서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자신의 삶을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남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힘을 낸 사람, 자신이 당했던 일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폭력이라는 고리를 끊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경우, ‘용서자는 가해자나 그 가족에게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가해자 자녀를 둔 부모는 자신처럼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부모'로서의 공감, 또는 가해자들 역시 누군가의 폭력과 차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 심지어 상대방과 같은 환경에서 그의 삶을 살았더라면 나 역시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해자를 용서하면서도 나는 용서를 해준 사람이라는 우월감조차 가지지 않을 수 있게 해준 이유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숭고함 마저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사실 저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보다, 가해자로부터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것은 라는 사실도 그 어느 때보다 와닿았습니다. 

책 속의 많은 이들의 이야기처럼, 용서의 과정은 길고 또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용서를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은 나 자신과 앞으로 남은 내 삶을 위해서요. 언젠가는 이들처럼 용서에 닿을 수 있길 바래봅니다.

i****i 2018.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교양인문도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는 불완전하니까
"교양인문도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는 불완전하니까" 내용보기
쉽지 않은 일인것만 같은데, 그 일을 한 사람들.<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용서'를 택한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입니다.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직접 받거나,혹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던 고통받은 사람들.분노와 미움보다는 '용서'의 길을 택한 뜻에는분명, 그 모진 행동에 대한 용인이 아님을 밝히며나 자신을 위한 시작이었다고 메세지를 전해옵니다.미움과 분노, 슬픔
"교양인문도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는 불완전하니까" 내용보기


쉽지 않은 일인것만 같은데, 그 일을 한 사람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용서'를 택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직접 받거나,
혹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던 고통받은 사람들.
분노와 미움보다는 '용서'의 길을 택한 뜻에는
분명, 그 모진 행동에 대한 용인이 아님을 밝히며
나 자신을 위한 시작이었다고 메세지를 전해옵니다.

미움과 분노, 슬픔에 빠져있다는 건
가해자들이 뜻하는대로 망가트리게 되는 것이라서요.







선과 악은 
우리 모두 안에 공존한다

책 속 사람들은 겪은 일들을 풀어내며
용서라는 방법을 택하게 된 가장 중심적 생각은
우리는 모두 불완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깨달음과
그리하여, 그 행동을 용서하기보다 사람을 용서한다는
이성적인 접근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용서는 참 쉽지 않은 일이겠다 싶었기는 합니다만,
분노, 복수에 대한 감정보다는
용서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동기는..



바로, 자신을 치유하고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는 과정으로서 택해졌겠다 싶습니다.
심지어 나치때문에 생체실험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쌍둥이 형제를 잃게 되는 아픈 과거가 있었음에도,
앞으로의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치유하고 힘을 얻고자 용서를 택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다.
증오는 그들이 시작한 일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






또한,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글만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던 이들의 글도 있습니다.
과거에 가해자였던 이들은 응분의 벌을 받았다 해도
본인 스스로를 미워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가해자들은 용서를 받거나 따뜻한 여유를 통해
스스로 반성이 있고, 스스로 용서를 하고
다음에는 어두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복역 중에 피해자 가족이 면회를 요청하여 만나던 중,
잃은 아들에 대한 슬픔보다 가해자 소년에게
"대체 네 인생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또한, 한 사연에는 백인우월주의 집단에 속해있던 이,
나치문신을 보고 "그보다 나은 사람 사람 같은데요.."
흑인 여성의 차분한 미소에 변화의 빛이 들게 됩니다.




흑도 백도 아닌 회색빛 용서』
강한 신념과 확신에 찬 용서가 아니라,
무던한 템포로써의 용서.

용서 프로젝트 이야기,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음을 실질적으로 용서모드로 세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낸 인문교양서였더랍니다.


j******9 2018.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해자를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로 남아야 한다_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책 내에는 트리거를 불러일으킬 생존자들의 피해묘사가 서술되어 있으니 독서 시 주의 바랍니다.<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책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 가해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용서프로젝트를 설립한 마리나 칸타쿠지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자신의 겪
"가해자를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로 남아야 한다
_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 책 내에는 트리거를 불러일으킬 생존자들의 피해묘사가 서술되어 있으니 독서 시 주의 바랍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책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 가해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용서프로젝트를 설립한 마리나 칸타쿠지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자신의 겪었던 사건에 대한 서술 뒤에 용서와 참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에는 종종 가해자의 배경과 속내를 과도하게 이해하는 생존자들의 기록이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
사람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누구나 그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상황과 행동을 미워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이 틀린 말이 아니다. 상황은 행동을 만든다. 

그것을 악인과 별개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선택만 존재한다. 


다만, 내가 아쉬운 것은 생존자는 지워지고 가해자에 대한 연민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용서로 인해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용서하기 위해 타인의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면 모든 과거가 생존자의 몫으로만 남게된다.
이는 생존자의 숨통을 조르는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그럴 만한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로 남아야한다.





용서는 신뢰와 다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신뢰할 필요는 없다.
P 66,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P 78, <상처 떠나보내기>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위의 구절과 닮아있다.

용서는 가해자를 신뢰하고, 가해자의 행위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겪어왔던 고통에서 벗어나 내 삶을 영유하는 방법을 되찾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이해로 고통을 생존자의의 것으로만 만들어선 안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 가에 대한 이해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에 힘을 써야한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증오해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고, 결국 고통받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P 47, <내 본질과 존재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힘은 위와 같은 깨달음으로부터 온다.

내가 오랜 시간 겪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무리 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한다고 한 들, 부정적인 생각 속에 빠져있는 건 나뿐이라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무한정 고개를 끄덕일 순 없지만, 이 책이 가이드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나 칸타쿠지노는 책에서 “용서라는 것은 개개인의 시선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용서에 대한 반응이나 그에 대한 정의가 다르더라도 모두 유효하고 타당하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라고 말한다.
‘옳고’, ‘그름’과 같은 흑백논리로써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탐색’과 ‘대화’로써 용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용서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가해자들을 행위와 분리시키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리고 가해자를 행위와 분리시킴으로써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다시 말하자면, 삶을 되찾기 위해 가해자를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괜찮은 용서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y******3 2018.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교양/용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교양/용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누군가를 혹은 진공의 무엇을 살포시 안은 듯한 표지 그림에 한참 머물렀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인생에서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회한에 대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저 스스로를 관용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하기 위한 '쇼'일지 모른다는 편견."내가 아무리 그들을 증오해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교양/용서]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누군가를 혹은 진공의 무엇을 살포시 안은 듯한 표지 그림에 한참 머물렀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인생에서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회한에 대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저 스스로를 관용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하기 위한 '쇼'일지 모른다는 편견.

"내가 아무리 그들을 증오해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고, 결국 고통받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47, 내 본질과 존재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 가족의 이야기. 영국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제도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내용은 놀랍다. 그러면서 잔혹성을 기반으로 한 종교 간의 갈등, 가학적 성폭력, 잔혹한 테러 등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용서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하게 되었을까라는 짐작을 감히 해본다. 어렵지만 확실히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용서는 뉘우침을 조건으로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만을 용서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용서는 가해자가 죄를 지었음에도 호의와 동정,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행위다." 81, 상처 떠나보내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잘 알려진 함무라이 법전은 말 그대로 똑같이 갚아주라는 '복수'로서 정의를 실현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이 이해하지만 실행할 수 없는 경계의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간으로서 이렇게 어려운 실천적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행동이라는 점을 주지 시켜준다. 하물며 "용서는 단순히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나는 용서야말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까지 용서가 가해자를 위함이 아닌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억압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 바로 용서이고 그 행동이 용기와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점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용서가 이기적 행동이지만 현명한 행동이라고 단언하면서 다양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 조언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이 진정 가능할까? 살다 보면 조금의 손해를 끼친 사람들에게조차 분노를 감추지 못하곤 하는데 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나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겨 준 이들을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페이지마다 한참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주목해봐야 할 점은 피해자 가족의 고통뿐 아니라 가해자 가족의 고통 역시 크다는 점이다. 폭탄 테러로 딸을 잃은 버드 웰치가 테러범의 집을 방문한 내용에 그의 아버지 빌이 "나는 울 수가 없어요. 울 일은 너무 많은데"라고 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용서는 용인이 아니다."
"용서는 항상 변화하고, 지속적인 도전이어야 한다. 내가 오늘 나를 용서한다고 해서 내일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177,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사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게 대부분 증언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짧은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겪었던 일에 비한다면 결코 짧은 이야기는 아니다.  한없이 아프고 끝없는 어둠이 그들의 인생을 뒤덮지 않음이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악랄한 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또 우리의 도덕성이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까 두려워한다." 303, 사랑만큼 신비로운

어쩌면 인간 본성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우린 타인이 저지른 처참한 일들 앞에 '나'도 같은 인간이 아닐까 싶은 두려움으로 더욱 분노하는 게 아닐까. 아프지만 따뜻한 책이다.




c********u 2018.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반은 피해자의 용서, 나머지 반은 가해자의 용서다. 피해자가 용서하는 마음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나아가기 위해서 용서를 한다고? 죽은 남편/아내/자식은 용서도 못하는 입장인데 가족이란 이유로 용서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아들은 죽었지만 가해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임을 생각하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용보기

반은 피해자의 용서, 나머지 반은 가해자의 용서다.
피해자가 용서하는 마음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나아가기 위해서 용서를 한다고? 죽은 남편/아내/자식은 용서도 못하는 입장인데 가족이란 이유로 용서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아들은 죽었지만 가해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임을 생각하니 증오심이 가라앉았다니.... 가해자의 부모도 또 다른 피해자이며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니....
전혀 이해를 하고 싶지 않은데.

가해자가 용서하는 내용은 솔직히 말해서 어이가 없고 기분이 상해서 끝까지 읽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적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게 면죄부라도 되는 양 전부 밝히는 것도 꼴보기 싫었다. 철없을 적, 젊었을 적, 아니면 객기에 취해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그때의 자신을 자신이 용서한다는 게 말이 되나? 본인 자신만 용서했지 자신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 혹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결국은 자신은 살아 숨 쉬고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지 아닌지는 궁금하지도 않지만 '살아가고'있지 않은가.

여러 사람들이 경험담은 읽는 내내 도대체 그놈의 '용서'를 꼭 해야 하나. 용서를 안 하면 '성인'이 아닌가? 내가 그러한 상황이라면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할 인간인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경험담만 죽 늘어놓고 책이 끝이 났다면 이 책은 내게 굉장히 별로인 책이 될 뻔했다. '용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자가 느꼈던 부분들을 읽으며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용서가 매우 강력한 치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용서는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이었다.

하루는 전부 용서했다가도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또다시 증오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아닐까.
용서를 하게 되면 같은 범죄로 희생당한 유가족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
용서는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와 맞먹는 정도의 반감을 주기도 한다는 것!

용서가 화해의 의미를 지니지만 반드시 가해자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화해라고.

용서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다루는 일이 많아졌다. 용서 부추기기 혹은 용서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쉽게 용서하면 고통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굉장히 불편했던 범죄자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폭력에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시도의 진정한 목적은 그에 따르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폭력이 남긴 유산을 드러내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확실히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것보다는 용서가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예수님도 십자가에 목 박히셨다며 자신도 용서한다며 종교와 결부시켰을 때 굉장히 거부감이 든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해야 너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너를 위해 용서하라는 말이 도움이 될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공감 받고 나누고 싶어 읽는 독자가 이 책의 매우 극적인 상황들을 읽고 자신이 겪은 일은 용서고 나발이고 할 정도도 아니라고 느낄까 봐 괜한 걱정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의 크기는 다르고 용서의 크기도 다르다.

h*****k 2018.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용서란 무엇일까?
"용서란 무엇일까?" 내용보기
오래된 무협영화물 대부분은 어린 주인공의 부모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자 주인공이 절치부심 무술을 갈고 닦아서 무예의 고수가 되어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원수를 향해 “내 아버지의 원수!”라는 판에 박힌 대사를 부르짖으며 원수를 죽여 복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복수를 끝낸 주인공이 다시 어딘가로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어릴 땐 그런
"용서란 무엇일까?" 내용보기

  오래된 무협영화물 대부분은 어린 주인공의 부모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자 주인공이 절치부심 무술을 갈고 닦아서 무예의 고수가 되어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원수를 향해 내 아버지의 원수!”라는 판에 박힌 대사를 부르짖으며 원수를 죽여 복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복수를 끝낸 주인공이 다시 어딘가로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어릴 땐 그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크고 나서는  그 주인공은 그 다음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일생을 부모의 원수를 찾아내어 복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그의 인생은 그 후로 남은 삶을 무엇을 위해 살아가게 될까? 복수의 완성, 다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복수 대신 용서라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인 마리나 칸타쿠지노는 세계적인 자선단체인 용서프로젝트(The Forgiveness Project)’[The F Word]전시회를 통해 폭력과 불의를 경험했지만 용서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전시하였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처음에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용서라는 단어에 대해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용서는 상대의 행위를 인정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하지만 이 책에서 용서는 상대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대의 행위를 용인하는 것도 아니고 묵인하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용서란 무엇일까?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에겐 그런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용서는 뉘우침을 조건으로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만을 용서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용서는 가해자가 죄를 지었음에도 호의와 동정,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행위다. (P-81)’ 그때서야 깨달았다. 옛말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종교에서 용서의 행위는 믿음의 인도를 받아 용서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했다. 용서를 통해 피해자들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마음의 평온을 얻었으며 비로소 생의 앞날을 직시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궁금해졌다. 정말로 이들은 용서를 한 것일까? 아니면 용서라는 허울 속에 고통과 괴로움을 묻고 외면해버린 걸까? ‘“(전략)누군가가 반복적으로 당신을 아프게 한다면 그 관계를 개선하려 하기 보다는 놓아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용서가 화해의 의미를 지닌다고 해서 그 화해가 반드시 가해자와의 화해를 의미하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화해함으로써 우리는 상처와 아픔을 끌어안고도 계속 살아갈 힘을 잃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의 의문은 풀렸다. 용서라는 행위는 결국 가해자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를 위한 행위임을, 내가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19994, 미국 콜럼바인고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많은 학생과 교사를 죽고 다치게 했고 자신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으로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었다. 읽는 동안 참으로 마음과 몸이 아리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자녀도 죽었음에도 가해자의 엄마이기에 아픔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너무나도 큰 사건이라 피해자들에게 차마 용서를 빌지 못했던 그녀의 심정이 절절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있으면 반드시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며 그 가해자에게도 거의 대부분 가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에서도 피해자들이 만난 가해자들의 가족, 특히 가해자의 어머니는 모두 자신의 죄가 아님에도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피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을 안아준 사람은 바로 피해자들이었다. 용서는 그런 것이다. 과연 나도 어떤 피해를 입었을 때 가해자를 안아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책이었다.

g*****6 2018.0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