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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였던가,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어느 나라 전래 동화에 있는 이야기다. 그 때는 소가 인간과 신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인간이 신께 질문이 있으면 소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고, 신이 내린 답은 소가 받아서 인간에게 전달을 했다고 한다. 하루는 인간이 '식사는 언제, 몇 번이나 먹어야 하는지' 신께 물었고, 소가 그 질문은 전달하자 신은 말씀하셨다. '사흘에 한 번 먹도록 하라.' 그런데 신의 답을 들은 소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동안 그만 헷깔리고 말았다. 그래서 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라십니다.' 그래서 그 이후 하루 세 번 식사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신의 뜻을 전하는 자가 그 뜻을 오해하거나 왜곡하여 잘못 알려준 일들이 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식사만 해도 그렇다. 만일 이 이야기에서 소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였더라면, 인간이 사흘에 한 번만 먹고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하루 삼시 세끼를 차려내고 먹는 수고로움은 덜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나도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먹는 즐거움을 잘 알 뿐 아니라 절대 포기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사흘에 한 번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으면 그도 나쁘진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단식은 이러한 식사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제한하는 행위다. 물론, 현대에는 간헐적 단식이라든지 디톡스 프로그램이라든지 건강을 위해서 단식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원래 단식은 종교행위다.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반성, 용서를 구하고,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의식적인 활동이다. 물론 천주교인으로서 나도 교리로서의 단식에 대해 아주 무지하지만은 않다. 영성체 전 일정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공심제라던가, 매주 금요일 육식을 금하는 금육일, 그리고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의 금식재 같은 것들은 나도 지키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천주교 신자로서 알아야 할 단식의 의미와 방법들에 대해 성경과 여러 교부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종교서적이다.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에서는 단식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2장부터는 7장까지는 구약과 신약 시대의 단식, 2세기, 3세기, 4세기, 수도원 시대 등 시대에 따라 단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역사적 자취를 찾아본다. 8장은 단식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을 짚어보고, 마지막 9장에서는 현대 우리 삶에서 단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단식의 의미는 욕망을 절제하고 탐욕을 멀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신과 가까워지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개개인의 욕망의 추구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매체들이 그 욕망을 부추긴다. 사라, 먹어라, 입어라, 이래도 안 즐길 테냐? 이런 메시지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절제를 알고 실천하다는 건 매우 필요한 일이면서도 매우 고통스러운 극기의 다름 아니다.
어쩌면 단식은 이런 세상에 과하게 난무하는 어지러운 메시지들의 요란한 치장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현대인에게 필요한 의식이 아닐가 싶다. 육체적으로 적정수준을 넘어서는 몸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적정 수준을 넘어선 상념과 번민을 덜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