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100원 짜리 자판기 밀크 커피 한 잔에 팔팔 멘솔 한 개피.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인데도 저 멀리서 하는 얘기인 마냥 이따금씩 영어를 섞어 말하면서 즐거워 보이는 두 사람과 나란히 앉은 채로 멍하니. 또박또박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에 올려다본 천장은 아득하니.빛과 어둠이 적절히 섞인 묘한 표정. 눈앞에는 싸락눈. 화장실 물이 내려간 후와 같은 고요함.누군가. 모둔가의 부재. 어렸을 적.비누방울의 알록달록 영롱함을 지긋이 쳐다보던 그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언젠가는 터져 버리고 말 안타까운 아름다움에 숨막히게 쳐다보던 그때와 일치된 긴장감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소나무도. 지붕도. 고양이도. 굴뚝도. 잔디도.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마냥 붕 뜬 느낌.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허상. 비춰지지만 실재하지 않는 신비로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어떤 시스템. 그 시스템의 설계도까지도 꿰뚫는 듯한.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 보인 듯한. 가슴 두근거리는 광경. 영원에 가까운. 꿈속과도 같은. 질퍽하니 고인 물을 밟고 그 물이 바지 끝을 적시고. 흙탕물이 튀고. 눈인지 비인지 모를 그것들이 얼굴을 적시고. 형광 주황색 우산을 든 여자가 지나가고. 그제서야. 아. 나는 여기에 있구나. 비누방울이란 참 금방 터져 버리는 게다. 터져 버리고 나면 텅 빈 무(無). 공허함. 어느새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 거울 저 편에 있을 것만 같았던 세상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가는.또 금새 사라져 버리는 게다. 뜻하지 않게 보게 된 그것은 놀랍고 경이롭고.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리고 툭. 하고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지는. 무너져내리는 그광경은. 아직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게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세실리의 세계를 읽은 후 나를 스쳐간 광경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살짝 나를 누르는.무언가 엄숙함.장엄함. 인간으로서. 그 어떤 알 수 없는 영원한 존재에 비해 찰나를 사는 존재로서. 나도 누군가가 불어놓은 비누방울처럼 언젠가는 터지고. 자취를 감춰 내가 어디에서 온것인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누군가들의 기억에서조차도 사라져간다. 단지. 시작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쳇바퀴가 끊임 없이 돌아가는 멈추지 않는 이 세상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그에게 나도 한 순간의 아름다운 광경이고 싶다. 짧은 글이지만. 잠시나마 세상이 달라보일 정도로. 여러가지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빙빙돌 정도로. 강렬하고도. 쉽고 편안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책이다. 눈오는 날 창가에 앉아서 이 책을 읽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