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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각 나라 사람들과 접촉했을 때 처음하는 질문은? 이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우스개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 사람은 돈 되는 거 없냐고 물어보고 우리나라 사람은 외계에선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본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삐딱하게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지만 더 삐딱하게 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보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경쟁력이다. 요즘 어딜가도 비슷한 제품을 쓴다. 아프리카에도 삼성 tv를 보고 북극에서도 아이폰을 쓴다. 러시아에서도 초코파이를 먹고 미국에서도 신라면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다르다는 것은 유일하다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얼마전 뉴욕 한 복판에서 비빔밥 광고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다를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다. 문화가 배경으로 작용했을 때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의 강대국은 모두 문화적 힘이 막강한 나라다. 문화의 힘이 약한 나라는 이미 다른 나라의 문화에 젖어들어 이미 민족도 나라도 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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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의 석유와 사막이 대표적인 이미지로 부각되는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장기 독재정권에 핍박을 받으며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아랍 국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조에 이르면서, 향후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튀니지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에 대한 열풍은, 이른바 '아랍의 봄'이 가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도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아랍 민주화 시위를 두고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민들이 행여 그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1997년 국가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국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32년간 군부 독재를 자랑하던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았지만, 당시 반 수하르토 노선을 택했던 대부분의 군부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적 영향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메가와티 정부는 여전히 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되는 무자비한 불법연행, 납치, 고문은 물론 심지어 살해 등의 초법적인 만행에 대해 묵인하는 모습을 취해왔다. 결국 지금의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전 정권이 행해왔던 것과 별다를 바 없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부정부패의 만연과 점차 늘어나는 실업률과 물가압박으로 건전하지 못한 불안한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독재정권을 걷어내고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화로의 성공을 지금껏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과연 어떤 연유에서 기안한 것인지 그 내용을 잠깐이나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이며 역사학자 그리고 한때 언론인으로까지 활동했던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가, 말년에 자신이 태어나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식민지배에서 이후 독재정권 시절 고통스럽고 암울했던 지나온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경험한 여러 사실들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해 보고자 했던 대담집이다. 그는 네덜란드에 의한 식민통치에 대한 투쟁과 이후 수하르토의 군사독재체제에 반대하여 온몸으로 저항하며 맞서다가 결국 체포되어, 강제수용소 생활과 가택연금과 같은 가혹한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자신에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했던 저항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작가와 사상가로서 알려져 왔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철저한 언론통제와 물리적인 압력으로 정작 자국 내의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그의 문학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부르 4부작은, 어느 자바 지식인이 식민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민족주의 운동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면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잔혹함을 나타내어 세계 각국으로 출판되어 호응을 받았고, 그 외의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1995년 언론 문학 창작 분야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될 만큼 해외 문학계와 언론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2006년 내적 망명객이 되어 쓸쓸히 그의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국의 국민들이 한때 민주화의 열망을 가지고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기는 했지만, 오늘날 과거와 비슷한 전철을 또다시 되밟고 있는 것은, 식민 지배체제하에서 일시적으로 불었던 사회 구조적인 개혁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한편 식민 정권에 일조했던 일부 엘리트들이 권력을 쟁취하면서 당시 새로운 사회 문화로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이후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가 조장하는 소비문화에 심취되어 개혁적인 동력이 점차 소멸되었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1940년 후반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있었을 때, 새롭게 들어선 수카르노 정부가 친 식민주의에 앞장섰던 세력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것에, 오늘날 문제의 핵심에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 세부적인 문제를 두고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논란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는 당시만 해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자신의 문학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듯하다. 이후 그는 수카르노 정권을 옹호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지만, 1965년 수하르토를 주축으로 군부의 쿠데타에 의한 집권을 시작으로,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 좌절되는 불행과 아울러 유배와 강제노동, 그리고 가택 연금에 시달리는 혹독한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서구 열강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새로운 군부정권이, 당시 2백만 명에 가까운 공산주의자와 급진주의자, 그리고 개혁 운동가 등 수카르노를 지지했던 세력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벌인 것을 두고, 그러한 공포, 탄압정치가 결국 자국의 문화 기반이 거의 없는 오늘의 허약한 인도네시아를 존재케 했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국제단체의 도움으로 마침내 구금에서 풀려나온 후,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에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결론적으로 젊은 청년들이 이제라도 하루빨리 낡은 소비문화에서 탈피해 생산적이고 주체적인 인도네시아만의 새로운 문화 창조와 사회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이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대담을 통해 자신의 조국에 현재 발을 내디디고는 있지만, 내적으로는 스스로 망명 상태에 놓여있음을 아쉬워하면서, 다시는 자신과 같은 똑같은 전철을 밟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래왔던 듯하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하며 비판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단지 이를 반대한다고 해서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외톨이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짧은 대담집에 불과하지만 이 책에서 그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의 처지에서 주목하고 일깨워야 할 점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그동안 많은 피를 흘리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까지도 과거 잔재에 대한 청산의 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법의 집행에 있어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난 일들이 여전이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등의 사회 불안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치 불신과 혐오를 안겨주었던 기성세대들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정치적인 행태들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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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무댜 아난타 투르, 수카르노, 수하르토... 모두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의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생소한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된 인도네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수식어보다 누구보다도 인도네시아를 사랑한 한 할아버지의 따끔한 충고가 담긴 대담집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억압적인 체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수하르토의 군사독재 뒤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이권다툼이 있어 그들을 사무치게 증오하지만 잘못된 원칙에 기반을 둔 통합으로 인도네시아 곳곳에 만연한 소비 중심의 문화, 사신의 고유한 문화보다는 외국의 것을 더욱 선호하는 세태에 대한 경각심의 일환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국 작가가 아닌 미국에서 온 작가와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절박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이 지나어야 통합된 국가를 비로소 세우게 된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는 쿠테타로 인한 군부독재로 다시금 얼룩지게 되는데, 풍부한 자원으로 인하여 열강들이 낀 독재가 장기화 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비교하는 능력이 사라져 창의성은 불신되고 붕괴되며, 다양성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사회에서 감옥과 수용소, 가택연금으로 수많은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언제나 옳지 않다. 자기 동포를 약탈해 자신의 부를 늘리는 엘리트들은 비도덕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p. 47)"는 주제의 글은 ‘내적 망명’의 상태에서 써왔다고 합니다. 비록 그의 많은 책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그의 글은 아직 접해보진 못했지만 대담 곳곳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프라무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저 서류상으로만 교육을 받아 “창고과학자(창의적으로 뭔가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창고에 물건을 쌓거나 분류하듯 기존 이론이나 주어진 틀에 사례를 대입하기에 급급한 세태를 비판한 것)”라는 종을 만들어 낸다(p. 109)며 현 교육체재의 비판은 비단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도 돌아보게 만든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는 사실상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대이며,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 조정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윗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는 이른바 자바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면서 자신이 젊은 시절 그랬듯이 젊은 세대들이 원가를 생산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했다며 집필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세상을 뜨기 3년 전의 대담이어서 프라무댜의 진면목을 보기에는 조금 짧은 감도 없진 않으나, 가깝지만 관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와 그 길을 꿋꿋이 걸아 간 한 거장의 이야기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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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망명/안드레 블첵, 로시 인디라/여운경/후마니타스 동양은 열등하다는 서양인들의 오만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면서도 주로 읽는 문학이나 철학의 대부분이 그 우월성의 증거로 내세웠던 것들임을 발견할 때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논리에 동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런 반성의 기초 위에서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을 조금 알게 해준 책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네델란드 식민지를 시작으로 일본을 거쳐 2차 대전 종결 후 독립하였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다양한 정치, 종교 세력을 통합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꿈꿨다. 그는 비동맹 국가운동의 핵심으로 활동하며 서방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1965년 공산주의의 쿠테타 기도를 분쇄한다는 명목 하에 수하르토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은 2백만 명이 넘는 국민을 학살하는 공포정치를 기조로 한 ‘신질서’ 체제를 출범시킨다. 수하르토 정권은 미국의 무기와 달러를 정권의 기반으로 삼아 광산을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을 댓가로 넘겨주었다. 오랜 독재는 엘리트들의 부정부패로 귀결되었으며 결국 정권 퇴진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대문호인 프라뮤다 아난타 투르(일반적으로 ‘프람’으로 칭한다)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 겪었던 아픔을 회상하면서 인도네시아 현재에 대한 격정적인 웅변이다. 프람은 1965녀 수하르토 정권 아래서 부루 섬에 유배되고 원고는 모두 폐기된다. 감옥 안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는 것으로 항거했다. 대표작 ‘부루 4부작’이 바로 그것이다. 1979년 석방된 후로도 연금 상태로 침묵을 강요받았고 그의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그는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 후 비로소 해금되었다. 프람은 그 후 가슴이 답답해 올만큼 안타까운 현실에 절망하여 글 쓰는 것도 중단하고 스스로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규정한 채 은둔생활을 한다. 그가 이처럼 절망을 하게 된 것은 젊은이들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젊은이들이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생산적인 꿈도 없이 그저 오젝을 운전해서 돈을 벌거나 고등실업자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 때문이었다. 그가 본 인도네시아의 현실은 더 암울하였다. 내세울 수 있는 문화도 없고 오직 외국의 것이면 무조건 숭배하는 현상은 자칫 영어에 빠져 자신들의 언어를 버릴 가능성마저 배제하지 않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은 엘리트들의 부패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러한 근원적인 이유는 수하르토 독재 정권의 ‘자바주의’ 잔재와 우민화를 기본으로 한 교육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포감에 사로잡혀 권력 앞에서 무조건 충성하고 복종하는 국민들의 의식이 수하르토 정권의 신질서가 만든 ‘자바주의’의 본질이며 폐해는 지금도 전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다. 독재정권들이 펼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재판과 사죄가 선행되어야만 화해가 가능하다고 말하던 프람은 조국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발견하지 못한 채 2006년 사망하였다. 국가는 젊은이들이 희망이다. 그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이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생기 잃은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이 비치지 않길 바란다. 노 학자의 절망이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국가들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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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에 위치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식민지로 보내고 독립을 하였지만 자신들의 의지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시간을 별로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오랜 시간을 독재자의 밑에서 고생을 하였던 나라인 인도네시아를 대표를 하는 저항문학가 이자 사상가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 저자들이 인도네시아가 간직을 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서 대담을 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을 하였는데 읽으면서 느끼는 점들은 자신의 조국의 문제점들을 파악을 하면서도 그러한 부분들을 개혁을 못하고 오랜 시간을 일종의 이방인으로 감옥에서 생활을 하였던 문호의 생각과 자신이 바라보는 미래의 인도네시아를 그리는 마음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문호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출판이 된 문헌들이 거의 없는 문호의 이야기를 갑자기 읽는다는 것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입장에 빠져드는것 같다는 느낌을 계속하여서 주고 있는것 같다. 동남아의 섬들로 이루어진 인구대국이자 이슬람을 거의 국교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의 국가이고 수하르토라는 독재자가 있었고 그가 국민들의 시위로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많은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자리에 임명이 되었지만 국가의 경제는 갈수록 악화만 되었고 최근에 와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룩을 하고 있다는 개념만을 가지고 책을 읽어도 많은 부분들이 우리나라의 과거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서 이해를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적지만 문호의 생각이 들어나는 작품들을 한번쯤 읽고 이책을 읽었다면 더욱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듣다. 1. 독립전 각섬을 지배를 하는 족장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역을 자신들의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국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되는 향료들을 구하기 위하여서 들어온 침략자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지배를 넓혀서 만들어진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인데 식민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하여서 많은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간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배를 인정을 하고 많은 부를 유지를 할수가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지배계급들이 공유를 하면서 안정적인 시기를 보냈지만 2차대전으로 인하여서 지배를 하고 있던 네델란드가 물러나고 일본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어서 독립을 할수가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할수있다. 문호의 생각은 식민지배를 받을 당시에는 그들의 문화와 법으로 인하여서 차별은 받았지만 법치는 있었는데 독립을 하면서 그러한 법을 존중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갈수록 혼란만이 지배를 하는 나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것을 보여준다. = 나라를 지배를 하는 엘리트가문들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인 시민들과는 괴리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존재를 생각을 하면서 자신만의 이익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생활을 하는 하부 관리층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생활을 할것인지는 당연한 모습인데 식민지배를 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위하여서 더욱 조장한 엘리트주의가 이상한 모습으로 고착이 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일상적인 모습인 부패와 족벌정치가 사라지지 않고 완전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떠한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모든것을 포기를 하고 현재의 모습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무기력한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를 하는 문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독립후 전쟁이 끝난후에 다시 지배를 위하여서 들어온 네델란들의 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지휘한 수카르노가 대통령이 되면서 독립을 하였지만 자신을 지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고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탄압을 하였던 모습을 보여준다. 문호는 당시의 수카르노가 계속하여서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유지를 하였다면 새로운 인도네시아를 만들었을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한국가의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만이 아닌 주변국들의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그러한 생각을 국민들에게 인식을 하여야 되는데 그러한 국제정세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칠수가 있는 기회를 얻지를 못하고 미국에 의하여서 군부의 압력으로 하야를 하고 많은 지지자들이 억압을 받게 되는데 그러한 억압을 받은 당사자중의 한명이 바로 문호가 될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리지를 못하고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노년에 세상으로 나온 문호가 바라보는 현실은 자신의 이상과는 괴리가된 족벌주의자들의 정치와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의 힘이 강력한 과거의 모습으로 고착이 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역경을 해치고 나가는 독립성을 상실을 하고 모든것을 소비만을 위하여서 생각을 하고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는 마음을 버리고 외국의 문물만을 최상으로 생각을 하는 일종의 사대주의의 모습에 분노를 하는 마음들을 잘나타내고 있는것 같다. 문호가 말하는 인도네시아를 망국으로 이끌고 있는 자바주의란 ?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할수가 있는데 지배층의 말에 모든것을 맡기고 밑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배를 하는 사람의 명령에만 복종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살을 하고 있는 노예근성을 말한다. 그러한 노예근성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식민지배를 받으면서도 독립을 위하여서 투쟁을 하지 않았고 독립후에도 그런 정신을 유지를 하는 사람들이 지배를 하는 체제를 마련을 하여서 모든 내정을 혼란으로 만들고 나라를 유지를 하는 정신과 문화를 파괴를 하는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바주의를 타파를 할것을 강력히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힘으로 많은것을 이룩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원하는 문호의 생각을 잘보여주고 있는 대목들인것 같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비를 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 ※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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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닮은꼴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웨이웨이의 아버지는 가장 훌륭한 현대 중국 시인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오늘날 중국 전역에서 그의 시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공산당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낙인찍혀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용된 적이 있으며 아이웨이웨이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의 인터뷰집『Ai Weiwei: 아이웨이웨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이것은 예술적 발언인 동시에 정치적 발언이다. 그럼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뭐라고 했나.「누구도 국가와 국민성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국민에게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글이나 써서는 안 된다.」이 인터뷰집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사실 정치적이지 않은 글이 어디 있겠나). 독재는 붕괴되었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그 문화 ㅡ 그는 진정한 인도네시아 문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ㅡ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작가의 망명』이 그의 실천의 기록임과 동시에 실패한 아픔의 기록이기도 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소위 ‘45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사회 현실을 드러내고 개혁을 고취하는 창작 활동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실천의 기쁨과 실패의 아픔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 현실과 대중의 삶에 눈감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사람. 고등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문학의 순수성과 미학을 내세우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 그런 사람의 말, 그리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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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시아 권에 속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의 역사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인도네시아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현재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TV나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스쳐지나가며 듣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접하기 전 까지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라는 작가를 전혀 알지도 못했고,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책에 완전히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에서 일정 부분은 현재 우리 사회와도 많이 닮아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책에 의하면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인도네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작가로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 그리고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맞선 지식인이자,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세계적인 대문호로 손꼽힌다고 한다. 대표작인 ‘부루 4부작’은 적어도 28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져 전 세계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고(한국에서는 1권이 번역 출간되었지만 후속작에 대한 번역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해외 주요 언론에서는 “세계 문학계의 큰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가 서구의 문학계와 학계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저술 활동을 하는 동안 망명․투옥․검열․억압 등의 비정상적 환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채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시종일관 “인도네시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니 속이 타는군요”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도네시아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생각하면 절망만을 느낄 뿐이라고 한다. 윗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는 자바주의 전통은 파시즘에 불과하다며 자바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혐오를 보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라는 사회가 가진 문제는 단순히 인도네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고통과 절망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닐까 한다. 최근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은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정부가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치인들은 기회주의자라고 단정짓는 그의 말이 단순히 인도네시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내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며 모든 국민들이 오직 사교육에만 매달리고 있고, 중산층은 자신의 이권에 관련된 경우에만 정의를 찾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외면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상을 보고 있으면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질서를 개혁해 봤자 발전된 형태의 신질서를 만들어 낼 뿐이겠죠. 이는 진정한 혁명과는 무관합니다(책 170쪽 참조)”, “혁명! 그게 유일한 처방이에요. 인도네시아가 썩어 간다는 사실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거기서 제일 중요한 두 개의 병증이 부패화 관료제입니다. 경제 영역을 보면 생산하는 건 거의 없으면서 소비에 대한 욕구만 가득해요. 가정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생산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빠졌으니, 혁명만이 인도네시아를 구할 수 있어요. 내 생각엔 인도네시아는 급진적 변화 없이 구제될 수 있는 상태를 넘은 것 같습니다. 이제 청년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합니다. 생각은 그만 하고, 실천해야 해요! 유일한 답은 혁명입니다. 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책 174쪽 참조).”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혁명을 강조한다. 더 이상의 방법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급진적 변화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면서 깊은 울림을 안겨다 주는 대목이다. 과연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해답은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있다. 기존의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