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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음악가는 예술인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 궁정이나 교회 소속으로 주인에 속한 하인 계급이었다. 음악가 자신의 개인적인 예술성을 발휘하기보다 귀족이라는 지배계급의 취향과 요구 사항에 맞춰 작품을 만드는 수공업 예술 생산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천재로 인정받고 유럽을 다니며 자신의 인기와 비범함을 실감했던 그는 좁은 잘츠부르크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데 제한을 두기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하려는 꿈을 키웠다. 더욱이 잘츠부르크 주교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며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차르트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분에 따른 종속관계가 유지되던 사회에서 다른 곳에 직장을 구하는 것도, 그렇다고 자율 예술가로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현혹되었기에 그의 천재성에 대한 인기도 금방 시들해졌고, 젊은 나이로 인해 높은 자리의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또한, 모차르트의 가벼운 품행은 귀족들의 사회에 용인될 수 없었기에 아무리 음악적으로 뛰어날지라도 모차르트는 귀족들의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 수 없었다.
모차르트의 비극은 결국 그의 음악적 환상과 양심이 아직 그 사회의 전통적 취향에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나 창조적 작업에 있어서 순전히 혼자 힘으로 사회 권력 구조의 벽을 부수려 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전래의 권력 관계가 온전했던 사회적 발전 단계에서 말이다. (p.27)
모차르트가 너무나 쉽게 그 시대 사회의 음악 규칙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자연적 또는 천부적 에너지 자체의 표현이 아니라 승화된 에너지의 변형의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생물학적 소질이 그의 특별한 재능에 관여했다면 그것은 현재 표현 할 만한 적당한 개념조차 없는 극히 일반적인 소질일 것이다. (p.85)
환상의 즉흥성과 창의력이 재료의 고유성에 대한 지식 및 예술가적 양심의 판단력과 하나로 녹아내릴 때 그렇게 하여 혁신적인 환상의 물결 이 예술가의 작업에서 마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재료에 할당하고 예술적 양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창작은 그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유형의 승화 과정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p.93)
모차르트의 사회적 존재의 이중성은 그의 인격 구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음악 활동, 명연주가로서 또 작곡가로서 그가 받은 모든 교육은 유럽의 주도적 긍정 사회의 음악 규범에 의해 각인되어 있었다. 그의 창작물의 특징은 그것이 대부분 궁정-귀족 계층에 맞춰져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의 음악이 의도적으로 황제나 왕을 비롯하여 높은 신분을 지닌 의뢰인들의 기호를 따르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까닭은 그의 음악적 양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음악 전통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속박되어 있던 그의 음악적 양심은 긍정적 규범의 틀을 깨지 않고 궁정 전통을 개인적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 공간을 그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는 자신의 개인적 환상의 힘을 빌려 이 전통을 긍정-귀족적 청중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서는 단계로까지 몰고 간다. (p.163)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언급할 때 대부분 그가 오롯이 타고난 재능만을 독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음악에 대한 그릇된 이해이다. 물론 누구보다 뛰어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철저한 관리하에 이루어진 음악교육, 귀족적인 음악을 만들면서도 계급사회를 향한 반항심 등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 또한 그가 천재적인 음악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면서 끊임없이 음악을 만들었던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몰입의 시간이자 살기 위한 몸부림이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타인에게 사랑을 확인받고자 했고, 음악적인 성공과 경제적 안정을 원했고, 계급사회를 넘어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음악 작업을 한 것이다.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었지만, 내면에 다 자라지 못했던 아이를 지닌 채로 아버지에게서도 계급사회의 틀에서도 완전한 독립체가 될 수 없었던 모차르트의 좌절은 매우 컸을 거라 짐작해본다. 천재이지만 그가 누린 삶이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간의 가진 개개인의 장점이 삶의 모든 것을 판가름하지 못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위대한 작품이 그 또한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과 고뇌 속에서 더 갈고 닦아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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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차르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얼마나 될까? 살아서 이름을 알렸고 죽어서는 더 유명해진 천재 작곡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신동으로 알려졌던 어린 시절의 연주 여행,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이른 죽음, 말년의 경제적 쪼들림,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 아내 콘스탄체, 누이 난네를, 살리에리,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떠올린다면 그나마 좀 아는 것일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개인사다. 잘못하면 누군가의 삶을 가십의 연속으로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삶을 그가 살았던 사회의 상과 연결해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은 그 자신과 그가 살았던 시대/사회의 틀과 상호 작용에 의해 형성됨을 나타내고자 한다. 모차르트는 궁정 사회가 힘을 잃는 조짐을 드러내고 시민 계급의 힘이 부상하기 시작하는 시점의 유럽 사회에서 살았다. 그는 궁정 사회의 주역이 아니라 시민 계급의 영역에 속했다. 궁정 사회의 특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궁정 사회가 자신에게 지시하는 일만을 하기에는 자신의 자유 의지가 허락하지 않았고 사회 변화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적은 급여를 받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작곡가, 연주가로서 독립하여 성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사회는 서서히 그런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주교와 결별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성격이 사회가 그에게 허락한다고 이해한 범위 안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 그린다. 자신은 이해받는다고, 자신의 능력이 높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성공하기를 갈망했던 빈 사회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모차르트를 받아들인다. 아직 도전하는 하층 계급을 완전히 수용하기에는 이른 시기였나보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시절 그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9번과 그후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20번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다. 그보다 늦게 태어난 베토벤의 성공을 보자면 모차르트가 조금 더 늦게 그 사회를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모차르트는 자신이 바라던 현세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엘리아스의 사후 ― 1990년에 93세의 나이로 사망 ― 그의 유고를 정리해서 펴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3부로 나뉜 각각의 부분이 다소 거칠게 연결된다고 이해된다. 그렇다고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이상한 논지가 펼쳐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의 발간 이후 엘리아스의 방법처럼 예술가의 삶을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모습에 투영해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접근이 늘었다고 들은 바 있다. 그만큼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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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음악가 볼프강
모차르트는 1781년 5월.
그의 고용주이자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 백작과의 불화 끝에 궁정과의 관계를 끊는다. 형식은
해고였지만, 그가 박차고 나온 거나 다름 없었다. 인정 받는
음악가가 먹고 살 걱정은 없겠다고 여겼겠지만, 그는 그로부터 10년
후 1791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행려병자와
같이 처리되어 아무데나 묻혔고, 지금은 묻힌 곳을 찾을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천재 음악가의 인생은 그렇게 허무했다.
모차르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이다. 거기서 주경철 교수는 모차르트를 단순한 음악적 천재로만 소개하고 있지 않았다.
<혁명을 예감한 천재 예술가>라는 제목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지만,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세계에서 베토벤의 세계로 넘어가는 도중, 근대의
모순을 한껏 머금은 시대적 불화의 표상이었다. 그를 좀더 알고 싶었고,
이후 짚이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였다. 『문명화 과정』이라는 명저의 주인공이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목가적인 과거와 타락한
현재라는 고정 관념을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말하자면
그는 사회학자다. 그런 사회학자가 모차르트에 대해서 모차르트에 대해서 왜 썼을까?
엘리아스가 모차르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시대와의 불화다. 궁정에 소속되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게 당시 음악가의 처지였다. 시민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음악은 그 흐름에 가장 뒤쳐졌던 예술 분야였다. 궁정에 소속된 음악가라는 것은 궁정 하인과 거의 비슷한 신분임을 의미했다. 궁정
주인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혹은 다른
시중까지 드는… 볼프강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그런 신분을 받아들였지만, 또한 자식까지 그런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아니 그런
신분이더라도 더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그 굴레를 벗어던지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정연한 논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궁정과
아버지에 대해 투쟁했고, 그것은 또한 시대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은 아버지가 복종했던 그 시대의 지배 질서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이된다.” (148쪽)
또 하나는 천재라는
표상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차르트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의 음악과 그의 인생을 분리하기도 한다. 그의 놀랄 만큼 훌륭한 음악에 비해서 미성숙한 성격을 이갸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단호하게 그것을 부인한다. 천재란 단순한 개인적 능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그 사람의 인격적인 면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를 인격적으로 미성숙했다고 보는 것은, 시대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며, 또한 천재의 사회적 성격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 서랍에는 예술가적 특성을, 다른 서랍에는 인간적 면모를 넣어 두고 있지 않다.” (130쪽)
이 책은 엘리아스가
생전에 펴낸 책이 아니다. 미발표 원고를 추려 정리해서 엮은 책이다.
그래서 마무리가 허술하다. 그래도 모차르트라는 천재 음악가를 그냥 음악가가 아니라 ‘사회적 표상’, ‘시대적 표상’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