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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로커 베이비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 특히 우리말로 동전보관함인 코인로커에 버려진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70~80년대 쯤 하나의 사회풍조로 여겨질 만큼 문란한 성문화와 함께 빈번히 발생했던 아이 유배였던 것 같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코인로커 베이비를 주인공으로 해서 또다른 상실감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상당히 옛날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난다. 만화 사이코 닥터 등에 나타난 비슷한 소재도 원조는 이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과 더불어 일본의 70~80년대 현대사가 어땠는지 궁금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단 교코를 접하고 나서 두번째로 접한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었다. 어느 정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를 접하고 나서 손에 집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는 것은 방지할 수 있었지만, 그의 소설에는 항상 SEX, 마약 등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에 대해서 조금씩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사회의 어두운 면, 그것도 밝은 면의 바로 뒤에 위치한 어두운 면이 바로 그의 소설의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기쿠와 하시는 코인로커 베이비로 보육원에서, 그리고 양부모에게서 자라난다. 그리고 끝내 사회에 적응하지 않은 채로 - 아니 어쩌면 잘못된 사회에 대한 유일한 제대로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 화학병기로 그들에게 하나의 상징으로 보이는 도쿄를 파괴한다. 이 정도 내용 공개는 상관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의 특징은 작가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와 독특한 에피소드의 진행에 있기 때문이다.
상/하권 중에서 하권에 대한 평가로서 폭발적인 소설이라는 제목을 썼다. 뭐랄까, 상권을 읽었을 때는 상당히 막연했다. 과연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가, 스토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단한번의 최면술 쇼 사고로 인해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하시, 그리고 친모살해의 죄를 범해버리는 바람에 수감되어 버리는 기쿠. 거기서 이미 난 정상적인 스토리 전개의 끝을 보았다.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상상이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기쿠와 동료들 그리고 기쿠의 애인이 끝내 다츄라를 발견해내는데에 묘한 희열을 느꼈고, 그 이후는 정말 순간이었다. 하시의 심리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좀 짜증나긴 했지만, 액션 영화를 보더라도 이런 폭발적이고 화끈한 전개를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밝은 소설은 아니었어도, 나는 이 소설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아이들은 자기들을 버린 사회에 대해 제대로 복수를 한다. 버림받은 이들이 선이고, 냉정한 사회는 악이 되어버렸다. 사회는 현실에 순응하는, 고개숙인 현대인들을 원할 뿐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위선적인 모습이 보여도 참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뒤엎을 수는 없다. 하나하나 고쳐나간다는 소극적인 자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코인로커 베이비스는 이를 거부했다. 어린애답게 순수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에게 사회는 쳐부셔야할 존재였고, 그랬기에 그렇게 했다. 현실성과는 거리가 있어도 이를 현실감있게 표현한 무라카미 류 작가께 경의를 표한다.(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왔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소설을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지금 계절이라면 산딸기가 맛있어, 과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을 때 였으니까 산딸기를 먹는 것이 즐거움이었지, 나는 장녀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가장 늦어, 빨갛게 익은 열매는 동생들이 모두 따먹어 버려서, 아직 새파란 산딸기를 따먹는 바람에 자주 배탈이 나곤했지, 한 번 한국에 가보고 싶어, 하시와 기쿠가 훌륭한 어른이 되면 함께 가보고 싶어." |
| 하시, 기쿠는 코인로커라는 사각의 공간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돈을 넣고 그 시간만큼 물품을 보관하는 코인로커라는 물질적인 공간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이들에게 삶은 "버림받음"의 시작이었다. "버림받은 상태"의 극한적 인물인 이들의 의식을 따라가는 소설은 하시의 부적응, 키쿠의 복수심이라는 두 가지 구도를 가지고 간다. 이 둘은 어찌보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음에도 이들 내부에 존재하는 "상실감"은 그들을 고통으로 이끈다. <코인로커 베이비즈="">는 표면적으로 버림받은 두 인물의 부적응과 모험을 보여주지만, 인간 존재 자체가 간직한 고통의 근원에서 시작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하시와 기쿠가 심장고동소리로 심리치료를 받는 부분에서 '고통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확인하는 부분이 그렇다. 소설은 무라카미 류 특유의 비현실적인 묘사로 시종일관 두 인물의 의식 속에서 머무른다. 이 소설에는 해결되야할 사건도, 해피엔딩의 전망도 없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그들의 내부에서 생겨난 "상실감"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기쿠는 생모를 죽이지만, 결국 붉은 핏덩어리 그 역시 개별의 인간일뿐이다. 결국 기쿠가 찾는 "다츄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이는 "파멸"의 다른 말이다. 류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듯 펑-하고 "다츄라"를 터트린다. 그것은 '그냥 이렇게 끝나버려도 좋아' 싶은 행복한 자살자의 마지막 같다.코인로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