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충적세 문명의 저자 김유동입니다.
"충적세 문명의 저자 김유동입니다." 내용보기
충적세 문명의 저자 김유동입니다. 그간 '충적세 문명'에 대해 나온 리뷰나 서평을 올립니다.       중병 앓고 있는 문명… 구원은 어디에 (오미환 선임기자) 한국일보 생활/문화 23면 2011.10.28 (금) 오후 10:33     15세기 인도양 지배하던 중국, 해외진출 금지한 까닭(최원형 기자) 한겨레 생활/문화 12면 2011.10.28 (금) 오후 9:16   인류 1만년 문명사 풀이(
"충적세 문명의 저자 김유동입니다." 내용보기
충적세 문명의 저자 김유동입니다.
그간 '충적세 문명'에 대해 나온 리뷰나 서평을 올립니다.
 
 
 

한국일보 생활/문화 23면 TOP 2011.10.28 (금) 오후 10:33

 
 
한겨레 생활/문화 12면 TOP 2011.10.28 (금) 오후 9:16
 
인류 1만년 문명사 풀이(이석우 편집위원)
서울신문 생활/문화 19면1단 2011.11.12 (토) 오전 3:06
 
 편집국장) 2011년 11월 14일 교수신문
                            기사 내용중 아도르노와 현대사상(문학과지성사 1997)은 아도르노
                                   사상(문예출판사 1993)으로 정정함.
                               '제3의눈'; 낯익은 주제 그러나 독특한 접근 …
                                               '빔의 문명 전환' 제안
                               교수신문 생활/문화 2012.01.05 (목) 오전 10:24
 
 
(서평)  '문명에 대한 비극적 사유, 그 너머에는'(아직 인터넷 문서는 없음)
창작과비평  2012년 봄호 안재원 교수(서울대)
 
(서평)  원시사회는 암반 위에 있고, 문명 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
황해문화 2012년 봄호 2012.02.24  박 설 호 교수(한신대)
 
오늘의 문예비평 2012년 봄호 윤인로 2012.02.10
 
 
  2011년 12월 31일   
 
 
인문학자의 눈으로 읽어낸 인류문명사 1만년(임홍배, 서울대 교수; 책 뒷표지)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명'은 한국 근대학문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작이자 대작이다. 우선 인류문명의 기원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사의 궤적을 한눈으로 꿰뚫는 혜안이 돋보인다. 아울러 문명의 발생동인과 주요 문화권의 내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조감하는 한편, 각 문화권의 고유한 가치관을 문명사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나아가서 엄정한 역사의식과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동서양 문화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지 문명사의 백과전서적 재구성에 머물지 않고, 근대 이래 섣부른 발전사관의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인류문명사 1만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이 지적 모험은 요컨대 소유와 지배의 전일적 체제가 ‘악마의 맷돌’처럼 작동하는 자본의 시대를 과연 어떻게 견디고 넘어설 것인가 하는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유동 교수가 십수년 동안 지리산 자락에서 유폐에 가까운 은거생활을 하며 반야심경과 '도덕경'에서부터 '백년의 고독'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 최량의 지적 자산을 섭렵하여 일구어낸 이 풍성한 결실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문명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일찍이 플라톤이 최고의 사유형식으로 실천했던 대화적 해석학의 전범을 보여주며, 문학?역사?철학?정치경제학?인문지리?자연지리를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는 현대학문의 기능적 분화 속에서 좌표를 상실한 총체적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충적세 문명>에 붙이는 저자의 글
 
 
목차
*<충적세 문명>에 대한 리뷰와 서평을 써주신 분들에 대한 짧은 감사말과 블로그 글을 쓰게 된 경위
* 안재원 교수의 <문명에 대한 비극적 사유, 그 너머에는>애 대한 저자의 자기변명
* 박설호 교수의 서평에 대한 저자의 자기변명
* 윤인로의 <구원의 관점이 아니다>에 대한 저자의 반론
* 비교문화구조학적 방법에 대한 여론(餘論)
* 간주곡 선택과 구성 원리
 
참고를 위해 실은 저자의 지난 논문(벤야민, 하버마스, 니체, 루카치를 다룬 <아도르노와 현대사상>, 문학과지성사 1997에 실려 있음) 알라딘에는 논문들 원문이 게제되어 있음.
* <루카치 문학관의 총체적 이해와 올바른 수용을 위하여>
* <루카치냐 아도르노냐>
* <벤야민과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
 
 
 
<충적세 문명>에 대한 리뷰와 서평을 써주신 분들에 대한 짧은 감사말과 블로그 글을 쓰게 된 경위
 
인터넷 매체에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충적세 문명>에 대해 ‘총체적 부정’의 판결을 내리는 파(破)님의 글을 알라딘에서 발견하게 되면서 저자로서 반론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는 결단이었다. <구원적 관점이 아니다>에 대한 저자의 반론을 올리기에 앞서, 그동안 <충적세 문명>에 대한 리뷰와 서평을 써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 인사와 짧은 코멘트를 하는 것이 예의라 여겨진다.
2011년 10월 하순 신간 소개를 하는 주말판에 대부분의 신문이 주목할 신간으로 <충적세 문명>을 선정하고, 특히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 서울신문은 리뷰기사를 실어주었다. 일주일에 수백권씩 쏟아져 들어오는 신간들과 그에 대한 보도자료를 살핀 후 신문에 소개할 책들을 골라내어 촌평을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분량의 업무로 여겨지는데, 기껏 며칠밖에 주어지지 않는 짧은 시간에 부피와 밀도를 지닌 책을 소화한 후 리뷰까지 써준 오미환 선임기자(한국), 최원형 기자(한겨례), 이석우 편집위원(서울)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책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저자의 답변서를 바탕으로 인터뷰 기사를 실어준 최익현 편집국장(교수신문에서 가끔 탁월한 통찰력과 필력을 보여주는 서평들을 발견했지만 정보에 어두운 나로서 그 사람 이름이 최익현인 것은 처음 알았다)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사한다. “책의 구상과 탈고, 그리고 출간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최익현 국장의 질문에 대해, “글쓰기는 자기 삶의 방편이었지만, 노출기피적인 은둔 생활이 ‘노출’될 때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죠”라고 답변했는데. 그 두려움은 인터뷰에 대한 부담보다도 지금 상황에 대한 불안이었나 보다.
신문사의 리뷰가 책과 독자를 연결시켜 주는 선별작업과 클로즈업 기능이라면, 학계의 서평은 다를 것이다. 학자의 서평은 편한 마음으로 남의 글을 구경한 후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서평자의 명예를 걸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며, 그 평가에는 부담이 따른다. 서평자의 평가는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주체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책을 내놓은 이 주체는 얌전히 해부대 위에 올려져 분석되고 평가를 받지만, 해부대에서 내려오면 그 진단서를 살피게 된다. 저자도 내려진 진단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서평자의 진단은 서평자 자신도 드러나는 부담스런 일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꼼꼼히 읽고 서평을 해준 세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학자의 서평에 대해 저자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은 예의며 의무로 여겨져 자기변명의 글을 쓰게 되었다.
 
 
 
안재원 교수의 <문명에 대한 비극적 사유, 그 너머에는>에 대한 저자의 자기변명
 
<창작과 비평>의 서평을, 서양 고전 문헌학을 전공한 안재원 서울대 교수가 쓴다는 얘기를 들은 후, 문명 전체를 연구의 카테고리로 설정한 저자로서 서양 고대와 중세도 당연히 건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관련 전공자가 어떻게 평가할지 긴장된 기대를 했다. 다른 글들은 인터넷 문서로 올라와 있어 링크가 가능하나 안재원 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아 발췌 소개한다. 서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을 읽는 내내 후회했다. 제목만 보고 덜컥 서평을 맡겠다고 한 것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책은 일단 양적인 면에서도 큰 산이었고, 내용면에서도 큰 바다였다. 허나 약속은 약속인지라 책을 항해하던 중에 들었던 몇 단상으로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저자 김유동(金裕東) 교수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적도, 그의 책을 읽은 적도 없다. <충적세문명;1만년 인간문화의 비교문화구조학적 성찰>이 나에겐 처음이다. 그의 한없는 독서와 끝없는 사유에 경의를 표한다. 우선 ‘한없는 독서에’에 대해 말하자. 분과학문의 고유성과 전문성이라는 틀에 갇혀 ‘전공 폐쇄장애’를 앓고 있는 요즘의 인문학자들이 걸었던 길과는 다른 노정에서 찾아낸 새로운 이야기들이, 그의 글 읽기가 어떠했고,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도대체 어떤 담대한 도전의식을 가졌기에 동양과 서양의 고전은 물론 심지어 아메리카 인디언의 이야기까지 한곳에 모아 삭히고 있을까? 저 뚝심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게 무언지 자못 궁금했다.
궁금함은 자연스럽게 저자의 ‘끝없는 사유’로 옮겨갔다. [...]
서사구조는 복잡하나 논지는 간명한 편이다. 가끔은 그들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우며 따라가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말이다. 따라서 책은, 이야기가 넘치지만 메시지는 간결한 편이다. 문명이란 지배와 소유의 구조를 연장하고 확장하기 위한 장치(apparatus)고, 이 장치는 자연(natura)에 어긋난 인위에 불과하다는 게 그 요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 물음이 명쾌한 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혁명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애당초 정치혁명이 일어난다 해서 자연과의 어긋남에서 탄생한 문명의 비극적 구조 자체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기에. 저자가 책의 바탕에 깔려있는 비극적 사유를, 아니 더 나아가 묵시적인(apocalyptic) 세계관을 더 끝까지 밀고나가 인류문명에 원래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는 비극적 구조를 예리하게 해부해주기를 나는 기대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그러니까 한국어로 저술된 서적들에는 묵시적인 세계관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삶과 세상 전체를 묵직한 필체로 그려낸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는 딱 거기에서 사유를 멈춰버리고 말았다. ‘거기’란 저자가 마지막에 소개하는 카프카(F. Kafka)의 <법 앞에서>다. [...]
 
‘법 앞에서 멈춘다’고 하면서 전개한 안재원 교수의 ‘법’ 이야기는 감(感)이 잘 안 잡히는데, 내가 쓴 ‘법’은 제도로서의 실정법이 아니라 법도나 법칙의 ‘법’(마누법전의 ‘법’도 여기에 더 가깝다고 본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법’이란 ‘전체’나 진리 같은 것을 표시하는 또 다른 기호였다는 변명은 하고 싶다.
동양문명에 대한 서평자의 얘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은 동양문명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교수가 “사실, 책은 문명에 대한 ‘묵시’적인 비판서는 아니고, 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촉구하는 교양서에 가깝다”고 지적한 바로 그대로 근대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서구중심주의’를 뒤엎는 척도로서 동양을 사용한 것뿐이다. 사실 나는 ‘대안’이라는 용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무수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학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대안이나 ‘실천’의 문제에 대해 굳이 발언한다면, ‘인식은 총체적이지만 실천은 확실한 것부터 한발 한발’이다. 근본주의자(래디칼리스트의 어원은 뿌리root이다. 실천을 전제로 한 경우 뿌리부터 구조적으로 바꾸자는 입장에서 래디칼리스트는 보통 급진주의로 번역되지만, 인위적인 실천 자체를 뿌리부터 성찰하려들 경우 래디칼리즘은 근본주의가 될 것이다)에게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박설호 교수의 서평에 대한 저자의 자기변명
 
박교수는 “<충적세 문명>에 담긴 근본적 입장을 명징하게 밝히고 그리고 이로써 파생되는 여러 가지 견해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는데, 공부가 직업인 학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많은 지적 축적을 가지고 있고, 세상과의 관계나 세상에 대한 실천적 자세도 편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견해 차이는 필연적이라고 받아들인다.
나의 맹점에 대한 박교수의 지적, “미래의 전망 내지 희망의 차원에서 언급될 수 있는 미래 사회 내지 목표, 최전선에 관한 논의는 거의 생략되어 있다”에 대해서는 나의 비관주의나,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래에 대해 함부로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아도르노의 ‘우상금지Bilderverbot’를 넘지 않으려는 자세가 그렇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 책이 목표로 한 것은 통상적인 이론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론 공부를 주로 하고 이론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지만 - 나 자신 철학이나 이론서 읽기가 피곤해지면서 - 이 책의 기획은 이론서를 쓰려한 것이 아니라 서구중심주의나 진보사관에서 벗어나 과거 성현이나 고전들의 입장에서 ‘전체’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려는 것이었으며 그런 면에서 안재원이 ‘교양서에 가깝다’는 말은 맞다. 통상적인 이론서도, 그렇다고 주제의식이 박약한 보통의 역사서도 벗어나 ‘플롯이 있는 전체의 그림’을 그려보려 한 것이 비교문화구조학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충적세 문명?은 문명 전체 속에서 ‘근대성’을 조망하려는, 아니면 ‘근대성’의 편견을 벗겨내려는 일종의 ‘거꾸로 쓴 인류문명’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본서의 기획에서, 안 그래도 긴 서론 속에 그런 논의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으며, ‘현대’ 부분에서 이론적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책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논의의 장은 책이라는 ‘갇힌 마당’에서 빠져나온 ‘열린 마당’ - 박교수의 서평이나 나의 자기변명이 만드는 지금의 대화처럼 - 일 것이다.
나의 헤겔 언급에 대한 박교수의 비평에 대해서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헤겔 비판을 쉽게 끌어들였다는 경솔함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해체’ 너머에서 ‘현실’이나 ‘전체’의 인식을 구하기 위한 논의 전개를 위해 포스트주의와 대결하는 문맥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헤겔에 대해 상론할 자리는 없었지만, 최익현 기자가 “선생님의 ‘전체에 대한 인식’ 욕망은 어딘가 헤겔적인 냄새가 납니다. 학자의 고유한 학문전통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아도르노 전공자로서 독일적 정신의 흔적이겠죠”라고 평가했듯 독일의 변증법적 전통은 나의 지적 기반일 것이다. 아도르노도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한 적이 없었고 - 20세기 혼돈시대의 절망이 헤겔을 뒤집기는 하지만 그것은 헤겔의 체계에 묶여있는 반(反) 체계, 헤겔의 동일성 철학에 묶여있는 비동일성철학으로서 아도르노에게 헤겔은 확실한 스승으로 살아 있으며 그가 헤겔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 포스트구조주의의 위세가 한풀 꺾이는 지금의 시대분위기에서 지젝이 헤겔을 부활시키는 것은 지젝의 가장 큰 공로로 본다.
‘정신사적 역사 기술의 방식’이라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다. 경험적·과학적 방법보다는 사변적·해석학적·정신사적 방법이 <충적세 문명>이 기대고 있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실험이다. 그런 방법은 과학주의적 입장에서 행하는 비판으로부터는 그저 ‘사유의 놀이’였다는 겸허한 자기한계의 인정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연장선에서 “징후 읽기의 방법론이 엄밀히 따지면 학문의 방식으로 개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방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명 전체’가 연구의 카테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충적세 문명>을 쓴 모험이다.
문학에 관한 나의 소견은, ‘사실’(역사학), 개념적 인식(철학), 과학의 절대적 권위(?)와 훨씬 가변성과 상대성에 노출된 문학적 상상력을 대비시키는 문맥 속에서 나왔음을, 이 권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짐을 인정하는 ‘겸손의 제스처’ 정도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나도 문학도로서 문학적 상상력의 가치는 여타 학문보다 크다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간주곡을 중심고리로 끼워 넣었다. 사실 <충적세 문명> 자체가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다만 대상 범위를 ‘작품이라는 텍스트’에서 ‘세상이라는 텍스트’로 확장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교수는 ‘도피주의’, ‘퇴행’, ‘보수주의’의 의혹을 던지는데, <충적세 문명>은 최종적인 결론뿐 아니라 구체적인 논의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입장이나 색깔(음양의 근원적인 모순과 조화나, 소유와 지배가 만든 상하·좌우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글의 골격으로 만들지만)을 드러내지도, 개별 사안에 대한 결정적인 규정이나 주장, 판단도 보류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논리가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놓지 않아 어떻게 자리매김해 줄 지 당혹스럽게 할 것이다. 그러한 보류나 차연이 실천에서는 회색주의로 비판되겠지만, 이론에서는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 환원되거나 밖으로부터 재단되지도 않으면서 모순 속의 긴장을 유지하며 사실과 본질로 파고드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지적 편력과 실존적 인생여정에서 나온 입장이고 이런 입장이 세상이라는 격투장에서 점점 빠져나오게 했는데, 그 격투장의 좌우 스펙트럼 속에서 각자 서있는 위치에 따라 보수적으로도 급진적으로도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윤인로의 <구원의 관점이 아니다>에 대한 저자의 반론
 
<충적세 문명>에 대한 파(破)님의 서평을 보면서 책은 사라지고 서평자의 판결이 만든 이미지만 유통될 것 같은 우려에서 자기변론의 글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파(破)님의 서평에서 재단비평의 전형을 본다. 재단비평과 반대되는 것인 내재적 비판은, 대상내부로 들어가 그 연결고리와 맥락을 살피면서 내적 일관성이 있는가, 아니면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글인가를 들추어내고, 그 글이 열어준 인식의 지평을 추적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맹점과 한계를 비판하는 것일 것이다. 내재적 비판이 바람직한 비평의 방법이라면 재단비평은 외부로부터 비판의 척도를 가져와 그 칼로 대상을 난도질한 후 판결을 내리는 검열행위이다. 좋은 내재적 비판은 대상을 잘 들여다보면서 결점을 들추어주는 조언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재단비평은 다르다. 재단비평은, 언론이나 검찰의 편집권이 종종 행하듯, 대상을 해체해 자의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칼을 맞은 측은 그것에 의해 자신의 내부가 어떻게 왜곡되는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고, 그러고는 그 칼이 어떤 칼인가 파악하면서 방어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파(破)님은 이 책에 대해 “비교문화구조학은 단련 없는 개념”이라면서 “저자의 방법적 실패”, “역사철학적 사고의 부재”로 낙인찍고는, 루카치가 정통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난 아도르노 같은 사상가를 “비타협의 가면을 쓴 타협주의”, “좌파적 윤리와 우파적 인식론”의 결합이라 규정한 후 붙여준 딱지인 “심연이란 초호화 호텔”의 투숙자로 나도 자리매김해준다.
파(破)님이 나를 판결하기 위해 빌려온 보도(寶刀)는 루카치인 것 같다. 그리스와 독일 고전주의를 과거의 이상(理想)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미래의 이상으로 설정한 후 당대 지성에 대해 데카당스라고 휘두른 칼이 긴긴 세월을 넘으면서도 녹슬지 않은 채 나에게 날아옴을 본다.
파(破)님에게는 루카치의 긍정적 총체성이 ‘총체성의 파괴’나 ‘부정적 총체성’을 재단하는 척도로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종언과 죽음을 선고받은 총체성에 다시금 숨결을 불어 넣으리라 기대했다. 다시 말해, 아도르노 연구자가 구축한 총체성의 질(質)이다.
전후 아도르노를 향한 루카치의 비판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그 비판을 어떻게든 넘어가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기대는 배반되었다.
 
루카치적인 긍정적 총체성을 이상·규범·척도로 갖고 있는 파(破)님이 나약한 리얼리스트가 쓴 <충적세 문명>을 “역사철학의 부재”로 단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파(破)님은 내가 심연에서 나와, <소설의 이론?에 깔려있는 비관주의를 떨쳐내고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루카치처럼, 실천이론가로의 극적인 전향을 기대했었나 보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면서 ‘판결’의 실마리를 끄집어내기 위한 구실을 토로했을 것이다. 원시 문화구조에 하나됨(하나됨은 사실 ‘구원’이다. 정신과 육체,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면 고통 대신 희열만이 있을 것이고,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된다면 죽음도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타자가 아닐 것이다)의 원리를 설정하고, 하나됨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소유와 지배’ 위에 서 있는 ‘문명’에 대해 ‘슬픈 관조’를 한 것이 <충적세 문명>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과 세상에서, 미래에 ‘구원된 세상’, ‘이성이 완전히 실현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세상’, ‘소유와 지배가 철폐된 무계급사회’ 같은 긍정적 ‘전망’과 ‘총체적 대안’을 설정할 수는 없었다. ‘긍정적 총체성’은 인류의 꿈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에 뿌리를 내린 이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뛰어난 인문학자로서 루카치가, 그야말로 종말론적 지평 위에서 계급투쟁이 일어나던 20세기 초반 동쪽에 몸을 실은 헝가리 학자로서 바람직한 이상을 미래에 설정하고 서구의 지식인을 비판한 것은 재미도 있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지만, 아도르노가 루카치를 유치한 관념론으로 일축한 것은 옳다고 본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선취하는 것은 ‘유령’(현재를 쫓는 알 수 없는 미래)이다. 마르크스도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용어를 썼듯, ‘유령은 유령’이다.
<충적세 문명>이 ‘지배’와 ‘지배적 정신’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만, 지배가 살아 움직이는 무엇으로 변신하는 것인 ‘권력(기존의 권력을 뒤엎는 권력도 포함하여)’에 대한 판단이나 문명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유보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유보한 나의 자세는 정적(靜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정적 칩거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책읽기와 글쓰기, 즉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하면서 어쨌든 진리 비슷한 것을 모색이라도 해보려는 시도는 그래도 모더니티의 분업 속에서 학자에게 할당된 ‘실천’이라고 자위하면서 버티는데 그런 자세가 치열한 세상의 현장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실천적 지식인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파(破)님은 저자가, ‘부분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문명이라는 ‘전체’가 연구의 카테고리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방법’에 대해 “방법적 실패”라는 선고를 한다. ‘전체’나 진리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피력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앎’의 열망을 살아있는 한 포기할 수 없는 ‘지식인의 원죄’가 ‘전체’를 지칭하는 온갖 용어들 - 자연, 법, 도, 문명, 정신, 문화, 구조, 과학·철학·문학, 시대정신·생산양식·에피스테메·패러다임, 자본(현대로 오면) 등 - 이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같은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 “호환성” 얘기였다. 굳이 ‘문화구조’나 ‘비교문화구조학’이라는 용어를 고안한 것은 기존의 용어를 선택할 경우 ‘전체’와 연결된 본래의 끈은 느슨해진 채 지적 조류들의 한 아류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파(破)님이 지적한 언어의 인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긍정적 총체성의 ‘전망’보다는, 아도르노적인 ‘반성’과, ‘사물을 장악하려는 말과 개념의 제국주의적 속성’이 충분히 내재화된 나에게 파(破)님이 말하는 “실패”는 출발부터 전제된 것이다. 사물을 장악하려는 ‘개념’이라는 것 자체의 폭력성을 자각한 글쓰기, 계기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별자리를 만들어보는 것 정도가 ‘인식’ 자체의 한계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글쓰기는 그것을 넘어서려는 인식이란 곧장 도그마로 전락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글쓰기이다.
파(破)님은 이성의 실현이나 무계급사회 같은 미래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타락의 역사’로 역사를 구성해보는 것은 “역사철학적 사고의 부재”로 단죄하지만, 이 단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성’은 누구이고 그 내용은 무엇일까는, ‘최후의 심판’ 같은 궁극적 판단의 영역일 것이다. 에필로그로 카프카를 빌어 얘기한 것도 그것이었다. 문명이 만든 상처들, 살아있는 한 미래나 저 너머(Jenseitz)는 수수께끼이고, 죽지 않고는 문명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는 원숭이의 고백은 충적세 문명을 사는 인간 인식과 실존의 한계라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판단 유보’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면 서평자는 여기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인다.
 
판단은 이해의 한계의 노출이므로 ‘유보’되어야 하는가. 진정 그러한가. 이해의 한계를 ‘무릅쓰고’ 내려진 판단의 ‘의지’가 늘 문제였던 것은 아닌가. 그런 의지의 힘과 방향이 서로 충돌하고 대화하는 현장이야말로 개념이 운동하는 자리이며 에세이가 거하는 자리이고 예술이 응답하는 자리인 것은 아닌가.
판단의 의지, 그 비판적이고 구성적인 삶의 활력을 감옥 속에 감금하고 유폐하는 한, 저자가 말하는 고통의 심연은 끝내 권력에 눈감는다.
 
파(破)님은 ‘권력에 눈감는다’고 하는데, ‘지배’나 ‘지배적 정신’에 대한 비판적 거리는 책 전면에 깔려있는 전제이다. 그렇지만 ‘정신의 저항’은 있지만 ‘판단의 의지’나 ‘권력에의 의지’가 없는 ‘슬픈 관조’가 독전관(제1의 자연에는 순응하지만 잘못된 현실이나 권력과 타협을 거부하는 ‘정신의 저항’을 타협주의자로 규정한다면 그렇게 규정하고 판결하는 ‘관점’은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고는 ‘투사로서의 글쓰기’를 명령하는 독전관의 ‘관점’을 가정하게 되었는데)의 눈에는 못마땅했으리라.
“판단의 의지”란, 끝없이 의기투합하고 이합집산하면서 ‘타자’(다른 진영)에 대해 ‘판단’을 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지성이 고대-중세-현대로 이어지는 지배적 정신의 변주곡 속에서 중심축을 이루는가는 책 안에 명시되지 않은 나의 입장일 것이다)이 되뇌는 끝없는 주문(呪文)과 연도(聯禱; Litanei)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라벨의 볼레로처럼 음양·좌우 등 모순이 만드는 문명의 소음이 점점 커져가는 세상에서 나의 염원이 있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같은 것일 것이다. 염원은 있지만 미래의 긍정적 전망을 펼치지 못한 것 - 카프카가 <실종자;아메리카>에서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를 그린<<인디언이 되는 꿈>을 끼어 넣지 못했듯(‘카프카’ 에필로그에서 언급) - 이 안재원의 서평으로 하여금 내 책에서 ‘묵시록적 시각’을 읽어내게 했고, 오미환 한국일보 기자로 하여금 <암울한 문명, 구원은 어디에?>를 제자(題者)로 뽑아 감명 깊은 글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입장’과 ‘전망’과 믿음을 지니고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투사의 세계관은, 만들어갈 미래를 위한 ‘주체의 의지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그런 의지가 결여된 약한 지성을 몰아세운다.
 
자본은 스스로를 지양하지 않는다. 자본은 자살하지 않는다.‘미래’는 번뇌의 원천이 아니다. ‘희망’은 말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희망은 날카롭게 재정의된 무기여야 한다. 희망은 ‘입장’이어야 한다.
저자는 충돌과 갈등을 기피하고 거절한다.
 
파(破)님은 “저자는 1만 년 인류의 삶이 처한 고통의 심연과 깊게 패인 상처의 흔적에 대해 말한다”고 하더니 “<충적세 문명>의 그 어디에서도 절망에 직면한 철학의 과제가 끈질기게 수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구원의 관점이 아니다’는 제목을 뽑는다.
문명사회에서 구원은 무엇일까? ‘하나됨’이 구원이라면 <충적세 문명>에서 ‘타자’ 의식은 ‘소유와 지배’에 기초한 ‘문명’을 기술하는 추동력일 것이다. 사실 나는 ‘구원의 관점’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지만, 벤야민의 ‘구원적 비평’이나 아도르노의 ‘구원의 관점’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는데, 이것들은 ‘미래에 대한 총체적 구원의 전망’을 가질 수 없는 “절망에 직면한 철학”이 과거를 인식하고 감싸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나도 그 비슷한 것을 시도해보려 한다는 입장이었다. 파(破)님이 '구원의 관점이 아니다'라고 단죄한다면 파(破)님은 미래에 대한 구원의 관점과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문명사회 속에서 진정한 하나됨이 어떻게 가능할지 나는 모른다. ‘유령’이 아니라 ‘좌파적 인식론과 존재론’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나의 지식과 경험지평 속에서는 해결 못할 ‘타자’일 것 같다.
<충적세 문명>의 기본단초는 지금 시대 최고의 사상가들에게서도 현실인식(‘이론’은 현실인식이고 진정한 실천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릅쓰고 감행하는 판단의 의지’와 그로부터 나온 실천이란, 시장에서 길 잃은 아이가 자기 생각에서 나온 엄마의 방향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듯, 주관적 파토스, 즉 관념론에 머물 것이다)에 관한 한 아도르노를 넘어설 이론은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충적세 문명>을 집필하는 데 있어 아도르노를 써먹는 것은 극도로 자제했지만), “이번 신작에서 전체를 사유하려는 독일 정신의 흔적, 특히 아도르노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라는 최익현 기자의 말처럼 아도르노 정신은 내게 살아있을 것이다. 90년대 나의 지적 편력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 여러 ‘이론’들을 살피는 것이었지만,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적어도 더 나은 ‘이론’을 찾을 수 없었다.
총체적 대안이나 긍정적 총체성이 가능성과 희망의 범주가 아니라 ‘존재’의 범주로 등극한다면 '구원이 아니다'라는 판결은 재단비평이 아니라 ‘몽매’를 깨우는 계몽이 될 것이다. 파(破)님은 ‘계몽의 계몽’을 넘어설 어떤 이론 - 루카치가 쓴 <역사와 계급의식>(그 자신 나중에 쓴 서문에서 그 근본을 부정하고 잊혀진 것이라고 부정했지만)에 버금갈 ‘이론’ - 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은 체질적으로도 나와 어울리지 않고, 계몽의 한계가 골수에까지 각인된 사람에게는 경험과 인식 능력 바깥이다.
 
추론(追論)
논쟁의 글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원의 관점이 아니다>에 대한 저자의 반론은 글의 완결성을 나름대로 유지하려는 글쟁이의 속성에서 한 편의 글을 만든 것이지만, 거기에 들어갈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단편(斷片)과 이론적 부연설명이 필요해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 파(破)님은 “벤야민의 ‘성좌’는 놀이가 아니다. 물거품이나 뜬 구름이 아니다. 무(無)가 아니며, 공(空)이 아니고, 심연이 아니다”고 말하는데, 벤야민 얘기가 갑자기 나오는 것이 문맥상 엉뚱한 것도 문제고 ‘벤야민의 ‘성좌’는 놀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이해라도 덧붙여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종말론적 지평 위에서 구원의 신호를 애타게 찾던 중기(中期)의 벤야민에게는 이렇게 말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초기의 벤야민이나 역사철학테제를 쓰던 말기의 벤야민은 다를 것이다.
이를 위해 94년에 쓴 나의 벤야민 논문을 별첨으로 올린다.
 
*** “심연이라는 초호화 호텔에서 살고 있다.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 시간이나 예술품 사이에서 매일처럼 바라보는 심연의 광경은 이러한 세련된 안락시설에 대한 쾌감을 단지 증가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는 루카치의 규정은 19세기의 낙관적 시대분위기에 철저히 등을 돌린 채 독특한 고립주의적 삶을 살고 허무주의적 철학을 펼친 쇼펜하우어에게는 일단 어울린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20세기 전반 치열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동시대 지식인들 - 험한 세상 속에서 인생여정이나 글의 톤이 서로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텐데 - 을 지나가는 길에 슬쩍 도매금으로 자리매김해 그 딱지를 붙이는 것은 비열한 방법이다. ‘심연 호텔’ 딱지는 그 선정성에 힘입어 지금까지도 유통되는 루카치의 대표상품이 되었지만, 내가 볼 때는 우선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낙관적 전망을 포기한 지식인들을 싸잡아 비판하기 위한 것이며(‘전망’에 대한 루카치의 집착에 대해 나의 루카치 논문에서 “루카치는 과거와 미래에 척도를 두고 현재를 조명한다. 과거의 이상적 모델이 현재를 규정하는 데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면 미래의 척도는 루카치가 애용하는 ‘퍼스팩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퍼스팩티브는 후기에 와서 낙관적인 전망을 유보했을 때도 미래에 존재해야 할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루카치가 알키메데스의 점인 일정한 관점에서 세계를 체계적으로 전망하려들면서 그 퍼스팩티브가 틀렸다고 생각할 때는 또 다른 퍼스팩티브를 찾아다니다가 <전위주의의 세계관적 기반>에서 보듯 종국에는 퍼스팩티브라는 개념 자체를 신격화하려 들었다면, 아도르노는 앞에서 논한 개념적 사고의 형성과정에서 보듯 퍼스팩티브에 의해 대상세계를 체계화하려는 사고에서 지배의 계기를 보면서 기존의 가능한 모든 철학적 입각점들의 일면성을 상대화하고 상호교정시킨다. 루카치의 퍼스팩티브에 대응하는 아도르노의 개념은 ‘입각점 없음Standpunktlosigkeit’으로 아도르노는 어떤 고정된 위치에 서려는 노력을 포기한다. 흐르는 것을 고정시킬 때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다른 한편 실존적인 면에서는, 드라마틱한 삶을 산 노학자가 자기방어를 위해 자기일관성을 지닌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촌철살인적인 글쓰기가 진지한 성찰을 압도하는 디지털 문자 시대에, 저 옛날 상형문자의 신성한 문자가 문자의 끝없는 인플레 속에서 닳아빠진 동전으로 변해가는 소비의 시대에(문화구조라는 용어는 그런 인플레를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기도 한데 “자본의 논리라는 용어 또한 앞서 말한 ‘문화구조’라는 용어만큼이나 인플레가 심한 말이다”라고 할 때, 인플레를 주도하는 첨단 지식인의 모습을 본다) 새로움의 선정성은 ‘반성이나 성찰’을 낡아빠진 것으로 폐기하고는 앞으로 앞으로 치닫겠지만, 그런 시대에 대한 현기증이 <충적세 문명>을 쓰게 한 기본 정조일 것이다(루카치는 나에게도 낯선 사상가가 아니다. 루카치의 ?아방가르드의 세계관적 기반?과 그에 대한 비판인 아도르노의 ?억지화해?를 강의하면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기 쇠사슬을 잡아당기고는 거기서 나는 덜그렁 소리를 세계정신의 행진곡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아도르노의 비아냥거림이 온몸으로 이해되면서 아도르노로 공부 방향을 돌리게 되었었다. 루카치는 강렬하고 매력 있는 - 명쾌하고 힘 있는 그의 글은 세상과 문학·예술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척도를 제공하므로 젊은 문학도가 거쳐야할 관문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한계도 알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 1990년 즈음 썼던 <루카치 문학관의 총체적 이해와 올바른 수용을 위하여>와 <루카치냐 아도르노냐>이다. 이 논문들을 참고가 되도록 말미에 가필 없이 그대로 올려놓겠다).
 
 
***
 방법의 문제. “‘비교문화구조학’이라는 새로운 방법”, 저자는 이 방법으로 1만 년 인류문명을 바라보는 총체적 시야를 얻으려 한다. 방법이 의지의 관철을 위해 고안된 것인 한, 방법은 드러난 의지이다.
사실 ‘비교문화구조학’이라는 방법에서 방법의 의지를 읽어낸 것은 파(破)님에게서 글을 투시하는 독수리눈의 예리함을 느끼게 한다.
방법의 의지는 있지만 그러한 의지가 루카치적인 ‘전망’을 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21세기에서, 진리니, 전체니, 현실이니, 의미니 하는 것들이 해체되고 기껏해야 ‘담론’이나 ‘맥락주의’만이 인정될 수 있는 세계에서, ‘전체’에 대해 징후를 읽어내고 별자리를 만들어보는 ‘놀이’(놀이라는 표현은 과감한 ‘주장’ 대신 이런 정도는 용인되지 않을까 하는 겸손의 제스처이다)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비교문화구조학’에 담긴 ‘방법의 의지’일 것이다. 이것은 분명 ‘전망’이나 ‘개념화’의 실패 위에 서 있는 ‘박약한 의지’이다.
‘비교문화구조학’이란 방법을 내놓은 것은 좌든 우든 근대성의 전제가 된 ‘진보’와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즉 이를 바탕으로 타자인 원시사회나 동양문명을 열등한 것으로 만든 근대성의 전제를 넘어, 개개 문화의 고유한 문화구조를 내재적 비판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문화구조들 간의 비교를 통해 의미를 살피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상투적으로 동서고금을 떠들지만 동과 서, 옛날과 지금은 따로 노는 데 대한 반성이 서양학을 하는 동양인의 정체성을 90년대 이후 흔들었었다. 그런 것이 문명 전체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한 기본 파토스일 것이다.
 
***
비교문화구조학은 규정하고 판단하면서 세계를 논리로 일괄 환원하는 학문과는 다르다고 한다. 비교문화구조학은 “해석작업”이다. “해석작업은 (…) 개념들을 사용하더라도 판단을 유보한 채(판단은 작품이나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전체의 구도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담론)가 되려 한다. 그래서 좋은 에세이는 예술작품을 닮는다고 한다.”(41쪽) 진정 그러한가. 이해의 한계를 ‘무릅쓰고’ 내려진 판단의 ‘의지’가 늘 문제였던 것은 아닌가. 그런 의지의 힘과 방향이 서로 충돌하고 대화하는 현장이야말로 개념이 운동하는 자리이며 에세이가 거하는 자리이고 예술이 응답하는 자리인 것은 아닌가.
 
이 부분에서 언급한 나의 에세이 개념에는 아도르노의 에세이론이 내재화되어 있었다.
 
에세이에서는 파악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조합과 시야가 만들어지고, 이는 다시 만화경처럼 붕괴되면서 새로운 형상의 결합을 만들어낸다. 에세이는 과학에서 거부되는 수사(修辭)적rhetorisch 능력을 갖는다. 에세이적인 건축구조는 자기완결적인 - 귀납적이든 연역적이든 - 구조가 아니라 구도 속의 구조이다. 모든 문장들이 구도나 상(像)엮기Konfiguration 속에서 중심의 주변에 포진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논리의 강압적인 성격과 상반되는 것이다. 체계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은 에세이에서 비동일적인 것의 구제에 상응한다. 에세이는 개념 속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것을 개념에 의해 열어 보이려 한다. “에세이는 비논리적이 아니다. 에세이는 문장 전체가 수미일관하게 짜여진다는 점에서 논리적인 판단의 기준에 따른다. [...] 그렇지만 논술적인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사유를 전개시킨다. [...] 에세이는 요소들을 종속관계 속에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병렬시킨다.” 에세이의 특이한 구성방식으로 말미암아 에세이의 내용은 논리적인 척도로 가늠할 수 있지만, 그 기술방식은 논리적인 척도로는 접근 불가능하다. 사실 아도르노의 글은 거의 에세이적이다.(김유동, <아도르노 사상>)
 
개념적 이해의 한계를 인정하는 에세이를 파(破)님이 단호히 부정하는 것은 그런 에세이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런 에세이 방식에 대한 ‘부정의 의지’ 자체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재단비평의 한 사례를 본다.
 
 
 
 
 
비교문화구조학적 방법에 대한 여론(餘論)
 
이론서를 쓰기보다는 문명 전체를 항해하기 위해 배를 띄운 것인 ?충적세 문명?은,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 환원되거나 재단되는 것을 피하려는 감각을 유지하면서 하나됨과 타자, 일원성과 이원성, 성과 속, 조화와 모순 등의 긴장과 대립을 사실과 본질로 파고드는 추진력으로 삼았다. 개념화의 능력(개념을 통한 대상의 장악능력)과 테크닉이 발전하는 만큼 이론은 점점 어려워지지만 대상이나 ‘실재’를 완전히 요리할 척도나 보도(寶刀)는 찾지 못한 채 독자만 피곤하게 하는 상황에서, ‘이론’을 떠나 실제 세상으로 항해를 떠난 <충적세 문명>이 ‘서론’에서 방법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 부분이 미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이나 이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은 서론을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물의 의미란 - 기표들의 관계망이 ‘의미’라는 착시를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듯 - 계기들의 짜임관계나 문맥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임의성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계기들의 배치와 중점두기에 따라 의미가 만들어진다면, 인식의 범주(칸트가 말하듯 그 너머의 물 자체는 알 수 없다 할 때)를 문명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전문주의의 왜곡이나 부분성의 오류에 빠지는 것보다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자체가 무엇인지는 장님코끼리 만지기보다는 이쪽 저쪽의 관점과 이런 저런 거리에서 본 코끼리 전체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비교문화구조학이라는 방법을 구상하고 실천한 것인데, 어떤 결정적 주장이나 판단, 결론은 없지만 통념과 어긋나는 당돌한 해석은 수시로 만날 것이다.
부분을 ‘전체’의 징후로 해석하고, 개개 문화구조(부분으로서의 전체)를 문명 전체 속에서 재해석하고 문화구조들을 비교하는 방식은 글쓰기 과정에서 내가 읽었던 자료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재해석들을 - 사실은 스스로도 당돌하다고 느껴지는 - 하게 되었다. 사실 석학들로 이루어진 전문학계들의 반발이 두렵기도 하다. 특히 최원형 기자가 클로즈업시켰듯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나 조공무역에 대한 재평가(‘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넘지 않는 균형원리의 작용으로 해석하는 것), 그리스 신화나 그리스 문화의 이상화를 본래적 신화나 동양의 척도로 해체한 것, 승자의 전리품만 챙기는 주류 역사학이 암흑시대로 묻어버린 것(토인비마저)을 변증법적 부정정신의 발동으로 읽으면서 중세의 시대구분을 첫 밀레니엄으로 본 것(로마가 제국으로 넘어가고 내세종교가 태동하는 1세기 시작을 중세의 시작으로 보고, 11세기를 새로운 세속적 정신의 태동으로 보면서)은 비교문화구조학적 방법에서 도출된 센세이션인데 어떤 파문이 일어날지 내심 긴장하고 있다.
 
 
 
 
간주곡 선택과 구성 원리
 
이 책은 방법론을 다룬 서론 외에 큰 고개(10干)와 작은 고개(12支)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주곡은 구체적인 텍스트를 해석함으로써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기 쉬운 큰 고개의 담론을 구체화하고 읽는 재미도 만들려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구성의도는 문화구조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거나 한 문화구조의 심층에 숨어있는 ‘정신’을 클로즈업하기 위한 것이다.
<카시 파괴의 전설>은 원시문화구조 속에 있는 차별의 계기(낙원 안에 있는 선악과처럼)와 궁극적인 하나됨을 위한 타자와 희생의 계기가 원(原) 문명에서 어떻게 ‘왕의 희생’으로 제도화되는가 그러한 제도가 신성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불과한 것으로 탈마법화되면서 어떻게 제물만들기 게임이 펼쳐지는가를 다루는 것으로서, 원시문화와 문명을 잇는 매개고리이다.
<반야심경>은 - 가장 원시적인 것이 간직된 문명으로 인도의 문화구조를 다루었는데 - 인도와 중국의 매개고리면서 선(禪)이 온대의 농경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다룬 것이다.
<도덕경>은 온대의 농경문화에서 ‘도(道)’가 탈속적인 인도 정신과는 달리 좀더 두루뭉술한 ‘하나됨’의 원리를 구현하나를 보여주는 인도와 중국의 매개고리면서, 동양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이지만 ‘지배적인 정신’이 될 수 없는 비주류의 정신임을 드러내기 위해, ‘동양의 문화구조’를 다루기에 앞서 독립된 간주곡으로 클로즈업시킨 것이다.
<오시리스 신화>는 동양과 서양의 매개고리로 선택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동양적인, 아니면 동양보다도 더 원시적인 일원성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선악의 분명한 대비는 서양적인 것의 원류를 이룬다.
<길가메시>는 - 문화구조들이 갖고있는 모범적 가치나 인간형으로 성자와 군자, 영웅을 대비시켰는데 - 서양적인 영웅의 원조가 어떻게 탄생하나, 문화구조 전체가 영웅만들기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핌으로써 ‘영웅’이라는 서양적 주체를 구체적인 텍스트 읽기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안티고네>는 서양의 변증법적 역사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원리인 모순의 원리(동양적 상관성이나 조화·균형과 대비되는)가 어떻게 작품의 구성원칙이 되는가, 그것을 구현한 비극이 어떻게 최고의 고전으로 등극하는가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시대의 현실 속에서 또는 비교문화구조학적으로 탈마법화하고는 그 전의 그리고 그 후의 변증법적 과정을 그릴 결정체(結晶體)로 사용한 것이다.
<돈키호테>는 중세 판(版)과 모더니티 판이 충돌하는 매너리즘 시대의 그로테스크를 드러내기 위한 매개고리이다.
<파우스트>는 욕망(일차적 욕망뿐 아니라 신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최고의 욕망 - ‘이성’이란 것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적 욕망이 아닐까? - 을 포함하여)이라는 근대정신의 핵(욕망을 절제하거나 억압하는 전통사회와 달리)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발자크>는 초기자본주의의 정글이 어떻게 소설로 재현되나를 살핌으로써 초기자본주의의 시대풍경을 막간극으로 다룬 것이고, <뜻밖의 재회>는 발자크를 드러내기 위한 콘트라스트 기법이다,
<황야의 이리>는 동양적인 일원성의 정신에 정통한 헤세를 통해 동양과 서양을 매개시키고, 하리 할러가 자아탈출실험에서 보여준 미국적 정신에 대한 예감을 통해 전후 헤게모니를 잡게 되는 미국정신과의 매개고리로 선택한 것이다.
<백년의 고독>은 준(準) 에필로그인데 백년의 고독을 1만년 문명의 소외·고독으로 읽음으로써 원시와 문명의 대비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 것이다.
<카프카 에필로그>는 문명의 출구없음과 문명의 타자인 저편의 문제, 저편의 수수께끼적 성격, 구원의 문제, 결론이나 대안 제시가 아니라 열려있는 미래 자체가 결론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카프카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n*****1 2012.03.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