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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라는 일본 배우가 출연한다는 영화 '마이 웨이'로 나온다는걸 먼저 접했다. D-DAY 란 단어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의 역할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지 싶다. <이책은> 북카페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마이 웨이' 시사회를 당첨되고도 못간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나 싶었는데, 기실은 내용이 수정되었단다. 원작을 보고 추진하다가 외국에서 취소를 알려왔고 개정하여 강제규 감독의 영화가 탄생되었다는데, 원작 그대로를 만난 시간이 소중했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시사회 응모를 했던건 장동건이라는 미남 배우의 인지도와 강제규 감독 때문이었다. 그렇게 당첨이 되었건만 하필 가게 오픈날. 무려 6년여를 재택근무만 하다가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날 저녁 불시에 한국지사의 교육이사 님과 또...일본을 어지간히도 싫어하지만 -그네들이 죽을죄를 지었소. 선조들이 저지른 그 야만과 악행을 백배 사죄하오. 유구무언이오-이런 읍소하는 자세라면 어쩌겠는가...교과서에 독도는 지네들 땅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채택을 한다나...그네들이 우리보다 많은 면에서 앞선 선진국임은 부인하기 힘들다만 일단 그런 민족감정이 있어선지 일본제품을 선호하기 싫은데, 이 무슨 운명인지 사업장에서 일제품을 사용한다는 아이러니함이여 ㅠㅠ.
오다기리 조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면서 기사를 보니 그 배우는 짜여진 틀을 못견뎌하는 것 같더라. 이게 바로 지옥이지 싶어서 지옥경험을 하려고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 여동생이 영화를 보고나선 하는 말이 '세상에나, 별의별 방법으로 죽이는건 다 나오더라. 끔찍하고 살벌해서 차마 눈을 감은게 한두 번이 아니고...' 전쟁의 참상을 다룬 영화라 일단은 깔고 간다해도 원작을 읽어보니 어느 정도 감은 잡혔다. 오다기리 조가 자청한 요이치 역은 오만하기가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건 내편(조선인)에서의 감정이지 자국인이 볼때는 이런 충성스런 황국시민이 어딨겠는가...오다기리 조는 일본인의 그 피를 표현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라는 곱지않은 시선이 내내 지속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가서야 철저하게 변하는 요이치처럼 작금의 일본이 부리는 갖은 억지와 왜곡에 큰 일침이 되었으면...
목차는 달랑 세 줄이다. 대식과 요이치, 사점(死點)을 향해서, 작가의 말. 대식의 일지와 요이치의 일지가 그 간의 행로이자 여정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자 엄연히 다른 정서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나는 조선인의 후예라서 요이치 그 녀석이 분명 매력적이긴 했지만 이쁘게 보이지 않았다. '선민의식=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 갖는 의식이라는 뜻'을 가진 요이치는 천황 폐하의 백성임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일본은 아시아 민족들을 지배하도록 신으로부터 선택된 우월한 민족이라고 학교 샘들이 말씀하시며 자랑스런 황국민이 되려면...열 네 살인 요이치에게 남작당이라 불리는 집의 외동아들이 방을 정리한다. 하기싫은 일을 하려니 입이 나왔다. 조선인들을 위해 내 방을 내어주라니...
아비를 잃은 대식이와 여동생, 대식모가 식모를 하기로 하면서 남작당의 생활이 시작된다. 거리에 나앉지 않은것만도 감사한 일이건만 어린 대식의 마음은 편칠 않다. 아버지가 의로운 일을 하시다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자애로운 일본사람의 도움으로 연명한다는게 참...게다가 요이치는 까칠하고 곁을 주질 않는다. 외동이의 기질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인 기질이었으니, 대식과 사사건건 비교당하는 상처가 있다. 나약하게 크길 바라지 않는 아버지의 입장서는 대식이 딱하기도 하고 요이치가 대식의 당찬 면을 좀 닮았으면 하는 바램도 자리하였을터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광채가 밝고 큰 구슬을 주면서 한 집안에서의 의리로, 그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으로 대식이 먼저 손을 내미나 요이치의 친구들에 의해 벌써 조선인의 설움은 시작된다. 모질지는 않은 요이치는 친구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도 생각하여 주저하나, 조선인이자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대식을 야멸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의 속내에 자못 놀란다.
대식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요이치의 어머니는 집안일 모두와 요리를 손대지 않았다. 요이치의 기억에 메모리 음식은 없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식어머니의 잣죽이 기억나는데 그와 똑같은 맛을 낸 대식 여동생의 잣죽을 먹고는 온몸이 풀리고 경직된 마음이 완화되는 경지를 경험하며 평생에 간직한 따스한 기억이 된다. 평소 대식의 여동생에게 은근 끌리는 면도 있었으나 애써 조선인이라는 감정을 부각시켜 내리눌렀던 감정인데 전쟁터에서의 그리움으로 자리하며 점점 커져가는 삶의 애착중 하나의 절실한 풍경이 된다. 물론 전쟁에 자원하여 자신이 툭 내뱉듯 부탁한 수예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물건에서 고마움을 느꼈던 터지만, 그녀가 자신이 가장 외롭다 느껴서 커튼 내린 방안에서 두문불출하자 잣죽을 쑤워, 양해도 안 구하고 커튼을 접히며 먹으라 놓고 간 그 순간에서, 주위가 밝아지는 행복감을 난생 처음 느꼈으니...
대식과 요이치는 장거리 달리기에 출전한다. 둘다 운동에는 어느 정도 탁월할만치 막상막하였는데 속내가 달라도 너무 달랐을뿐. 대식은 타고난 선천적인 달리기에 딱맞는 체격조건이었고 요이치는 단련에 의해 건장한 몸. 손기정 선수처럼 되고픈 마음에는 허영이 가득한 영웅심리라기보다는 요이치의 집에서 나갈 방편이었던 것이다. 요이치의 부모님이 감사한거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일본인이라는 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고, 조선인들에게 손기정 선수가 희망을 주었듯 자신도 조선인의 저력을 다시금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컸다. 코치와 혼을 담은 노력을 주고받아 드뎌 1등을 했다. 요이치의 부모님께서 술까지 내주셔서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하고...음식을 싸주신 어머니 마음도 전할겸 코치를 찾아가나, 이미 코치는 해직된 상태. 이게 대식의 불길을 지르고...교장 샘의 야욕을 알기에 덤비고...대식은 교도소에 수감이 되니 달리기의 요원은 물건너 갔다고 체념했을 즈음, 교장 샘은 제의를 해온다. 자원입대하면 없던 일로 해주고 다시 돌아와 올림픽 출전을 할 수 있다고...그 길 밖에 없음을 아는 대식에게 요이치 아버지는 부탁을 하는데...
선민의식을 갖은 요이치는 아버지의 역정과 없는 자식친다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자원입대를 한다. 하필, 빌어먹을 대식과 한 부대라니...이럴 수는 없었다. 그건 요이치 아버지의 손씀에 의한 자리배치였으니 자신의 자식을 옆에서 꼭 지켜달라는 애타는 부정이었다. 대식으로서는 달리 거절할 명목도 없었고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 그나마 요이치 부모님의 부탁을 받아들임이 남겨진 노모와 여동생을 잘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이므로 수락하고 만다. 사정을 모르는 요이치만이 참으로 기이한 일도 있다고 생각할뿐. 다만 그들은 어릴때 한 집서 살면서도 소 닭 보듯했듯이 역시나 그렇게 지낸다. 오히려 많은 일본인 병사 속에 대식만이 껄끄러운 존재로 비치나, 대식 입장서는 우리네 전쟁도 아닌데 기막힐 뿐이다. 뛰다 죽어도 모를 일이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몸도 튼튼...어쨌튼 살아남아야 한다.
중략.
뼛속까지 철저히 일본인인 요이치와 뼛속까지 철저히 조선인인 두 병사. 어린 시절을 같은 집에서 지냈다해도 그건 도저히 좁혀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민족의 정기이자 혼, 나아가 정서이기에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는 없다. 더구나 크는 아이들에게 학교서 샘들이 주지시키는 정신교육이자 인성교육은 철저한 선민의식을 더 부채질하는 입장서 어찌 조선인을 우호적으로 보겠는가. 여기에 두 소년의 애환이 있었고 나아가 두 병사의 기막힌 현실이 있었다. 그저 하나의 공통된 바램은 죽지않고 살아야 한다는 본성. 그 본성이 그나마 이복형제같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자리한다. 아비규환의 생지옥인 전쟁터는 은연중 둘의 결속을 다지게 한다.
'사람이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169 페이지). 얼마나 평범한 듯 지극이 사실인 말인지 모른다. 모두가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온전한 시신일 수 없음을 봐야하는 상황. 정신줄을 놓지 않음이 죄악이고 자책이다. 정신이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고...어제의 친구와 오늘의 동료가 눈앞에서 산산조각남을 볼 때 온전히 제 정신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라크 파병되었던 미군들이 말도 안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도 트라우마라는 기사를 봤는데...미치지 않고 정신을 챙기며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 대식은 복장이 터지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암담한데, 그건 요이치도 마찬가지였으니...자신이 신으로까지 생각한 천황은 신이 아니라는 걸 실감해가는 그 심적인 고통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정신적 지주가 무너져내리는 고통은 더 참담하다. 지탱해줄 그 무엇이 없을때 삶의 애착도 없는법이니...
망발이 아직도 버젓이 통용되는 현실. 일본인들의 무례함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구세대가 자연의 섭리로 떠나면 자연 그 감정들을 안고 가려니 했으나, 후대들에게 세뇌시키는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선대가 우월함을 선민의식으로 미화시키는 교활함이란...자신들의 잘못을 누누이 인정하며 사죄하는 홀로코스트를 보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데 놀라움을 갖는다. 왜곡된 역사를 가르침으로 받는 자국민들도 문제겠지만 그런 역사를 가진 우리네의 의식이 자꾸만 희미해지고 한일감정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세대도 심히 염려스럽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역사만 붙들고 씨름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거청산을 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아직도 사죄함이 옳다는걸 조속히 깨닫길 바랄뿐이다. 요이치가 마지막에 극과 극으로 변했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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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점차 '사점(死點)'을 향해가고 있었다. 사점이란 운동 초반에 육체가 말 그대로 죽을 듯한 고통을 느끼는 시점이다. 갑작스런 산소 소모의 증가로 산소 부족 현상이 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점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리면 육체가 상황에 적응하면서 고통이 사라지고 몸에 활력이 돌게 된다. 그 상태를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부른다. 왜 서양인들이 '바람(Wind)'이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겪어보면 느낌상으로는 납득이 간다. 마치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받는 기분인 것이다. 마라톤 주자들은 모두 이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숨이 곧 멎어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러고는 '세컨드 윈드'가 오면 순풍을 한가득 돛에 담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리를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매번 사점이 다가올 때마다 내 인생의 사점을 떠올린다. 그날은 세상 사람들이 'D-Day'라고 부르는 날이다.
1930년 일제의 식민지 대한민국 부산, 요이치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작당'을 인정많은 부친의 명령으로 조선인 대식의 가족에게 내주었다. 대식은 가족에게 남작당을 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신비로운 흑구슬을 요이치에게 전하지만 요이치는 대식과 대립하고, 함께 있던 요이치의 친구들은 대식을 때려죽이려 달려들지만 대식은 그곳을 박차고 뛰어나온다. 열 살의 대식은 그때 아무도 자신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달리기 앞에서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하늘이 내린 육체를 가진 동등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는다. 그의 부친은 조선인에겐 항일의병이었고, 일본인에겐 악질 불령선인이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그런 대식의 가족을 부산에서 무역을 하는 거물 후지와라 상이 어머니를 식모로 고용하고, 딸린 식솔인 대식과 그의 누이동생 수희를 자기 집안으로 거두었다.
1936년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조선인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준 금메달은, 대식에게 민족의 사명감을 갖게 한다. 열여덟 살의 대식은 육상경기에서 요이치의 기록을 깼지만, 조선의 육상을 통제하려는 교장의 야심으로 대식의 코치는 해고된다. 이에 울분한 대식은 야수로 돌변하여 선도부 타이라 선생을 때려눕히고 교장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구치소로 연행된다. 구치소로 면회온 교장은, 대일본 제국을 위해 육군에 지원하면 학생 자격을 복구시켜주고, 타이라 선생도 고소를 취하할 것이며, 군대 제대 후에 육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선민의식과 제국주의에 팽배해 있던 요이치 역시 대식의 누이 수희로부터 받은 센닌바리를 몸에 지니고 입대한다. 후지와라 상은 대식에게, 요이치와 같은 소대로 배치되도록 하여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대식 역시 자신의 모친과 누이를 부탁했다. 관동군 내무반에서 서로는 치고박고 싸움도 하고, 함께 기합도 받고, 몽골 측 노몬한 평원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화염병으로 탱크를 불태우고, 사령부에 명령을 수령하기 위해 함께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굴라크 노동수용소에서 죽도록 일을 했고, 조선인인 대식을 조장으로 두어 일본인들을 통치하게 했고 그 가운데 요이치는 탈영을 계획한다. 작업량을 달성한 조장 대식은 호숫가 정착촌으로 보내지지만, 탈출을 시도한 일본군은 모두 죽고 요이치만이 2주 동안 독방에 감금된다. 대식은 유목민인 다니아르 노인을 통해 조선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알아내고, 굴라크 소장을 설득하여 요이치를 자신의 거처로 끌어낸 뒤, 둘은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소련 군복을 입고 독일군에게 투항하기 위해 요이치는 대식을 설득해 함께 스탈린그라드에 지원병으로 나선다. 그리고 독일군 앞에 선 요이치는,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공부했던 독일어로 '독일의 친구 일본인'이라 항복하고, 대식은 다리 부상을 입은 뒤 달리기를 포기하고 흡연을 시작한다. 귀국할 수 있는 길이 전면 차단된 요이치는 베를린 식당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하면서 남은 음식으로 대식과 끼니를 해결하던 중 또다시 그들은 귀환을 위해 독일군에 지원한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 미군 함포사격으로 대식은 부상을 입고 총탄을 퍼붓는 미군에 항복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요이치에게 자신의 군번줄을 '바통터치'한 뒤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요이치는 '요이치 후지와라'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대식이라는 이름으로 런던 올림픽을 빛낸다. 이 소설, 재밌게 단숨에 읽은 몇 안되는 작품 중에 하나다. 이재익 작가의 <아버지의 길>을 읽은지 얼마되지 않은터라, <디데이> 본문에 실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두 작품의 극명한 차이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에 있다. 아버지의 길은 그 증오심을 더욱 부채질한 작품이었고, 디데이는 그것을 단숨에 걷어낸 작품이었다. 아쉬운 점은, 전자는 실화에 충실했고, 후자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허구라는 점이다. 반일 감정이 품은 우리들의 정서는 일본 소수의 극우세력을 보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어혈과 같다. 일본의 만행과 잔인성은 우리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지만, 양국 대중들에게 인간적인 유대감과 우정을 싹트게 한다는 감동과 염원은 정말이지 글로벌하다. 어쩌면 우리의 의식 밑바닥 그득히 괴어있던 감춰진 소망은 아니었을까? 곧 영화로 개봉될 이 작품에 기대를 걸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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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와 드라마는 단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2005년 12월 SBS 스페셜에서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도 있다고 한다. 상당히 유명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영화 <마이 웨이>가 개봉되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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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웨이는 바로 사진 속에 나오는 한 동양인 남자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전혀 특색없이 보이는 보통의 평범한 동양인 남자가 왜 서양인들 틈에 끼어서 적군이나 다름없는 나라의 군복을 입고 있어야 했을까? 바로 그 의문점이 이 소설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디데이 D-DAY>는 소설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쓰여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두번 다시 전쟁영화는 찍지 않겠다는 장동건씨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바로 그 영화의 원작이다.
사진 속 그는 왠지 모든 걸 체념한 듯도 한 표정이다. 그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에겐 지워버리고 싶도록 치욕적이고 아픈 과거의 역사가 바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의한 국권피탈일것이다. 그 시대 우리 국민들 중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많은 아픔과 서러움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은 각각의 명목으로 일본에게 핍박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대식이란 한 조선인 남자의 인생 역시도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갈 수 없는 운명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양국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슴 저편에선 한국과 일본을 라이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소설 속에서는 바로 대식과 요이치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배경에 따른 두 동갑내기의 신분적-사회적 상황을 통해서 어쩌면 저자는 그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구한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책속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작가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적나라한 시대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지만 동시에 둘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면서 나름의 대등한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같은 시대의 너무나 다른 삶을 살던 두 남자가 하나의 길에 엮이면서 겪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한 모습을 저자는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으로 만나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의 화염 속에서도 그들에겐 살아남아야 했던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을 갖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양국의 자존심을 어깨에 짊어지고 달리던 때는 이미 그들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앞에서 그들은 함께 살기 위해 두 손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발견된 단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그때의 아픔을 전부 헤아릴 수 없는 세대에겐 그저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한편의 영화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진짜 삶이였던 한국 역사의 한 단편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그때의 삶을 견뎌냈던 많은 분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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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의 원작으로 알려진 소설이지만 실제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보지 않았지만 영상미로 보이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일반 소설과는 달리 두 주인공의 일기 교차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좀 어수선한 느낌도 들지만 좀 읽다보면 금새 그 형식에 동화되어 읽는데는 큰 불편이 없다.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본인 상인집에 얹혀 살게 된 대식과 주인집의 아들인 요이치라는 두 소년이다. 대식은 열살이 되던해 거상인 후지와라 상의 집 문간방에 얹혀살게 된다 아버지가 항일운동을 하다 잡혀 총살을 당하게 되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상황에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았지만 후지와라 상이 대식의 어머니를 식모로 들이고 문간방에 살게 해준다는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놀던 요이치는 순식간에 비밀장소를 빼앗긴 상황이라 처음부터 대식을 싫어한다. 더군다나 둘은 달리기를 잘해서 서로 경쟁자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일등이라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조선인이지만 달리기를 통해서 일본인을 꺽을수 있다는 희망을 대식은 가지게 되고 그로인해 더더욱 열심히 요이치의 기록을 깨기 위해 달리게 된다. 자신의 달리기에 동생 수희와 어머니의 생활이 달려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 였기에 일본의 식민지로 인해 당하는 업신여김과 피해를 보면서도 가급적 자신이 할수 있고 할수밖에 없는 것이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이치도 대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일본인이면서 식민지인인 대식에게 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식의 여동생인 수희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러던 중 소련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전쟁에 요이치는 자원입대를 하게 되고 후지와라 상이 요이치를 꼭 부탁한다는 말에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대식도 입대를 하게 된다.
소련과의 전쟁에서 갖은 고비를 모두 넘기고 요이치와 대식은 살아남고 그 후 결국 소련의 수용소에 갖히게 된다. 그속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대식은 올림픽의 꿈을 버리지 못하게 되지만 나중엔 달리기의 꿈보다는 오로지 살아남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소련과 미국 독일군을 거쳐 돌아돌아 정말 죽을것같은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요이치와 함께 살아남겠다는 목적때문에 서로 대치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죽을 뻔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구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과 일본, 그 증오심을 버려야 한다는 문구가 책겉면에 있지만 그 증오심을 누가 버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전쟁속에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양인이라는 그 공통점때문에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때문에 서로를 구할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이 너무 가슴아프다. 그 수없는 상황을 거치면서 결국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자신을 부탁하게 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찍힌 한장의 사진속에서 독일 군복을 입은채 미군에게 생포되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고 그 사진 한장 때문에 이 소설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사진 한장으로 인한 의문때문에 그 머나먼 이국땅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독일 군복을 입은채 잡히게 되었는지 긴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처음엔 살짝 형식때문에 그냥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면 더 읽기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술술 읽혀 오래 걸리지 않아 읽어버렸다. 세계대전과 일본의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실제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그 시대 전쟁속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고 그 아픈 역사속에서 사과받아야 할것은 사과받고 잘못한 쪽에서도 잘못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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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저자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책이 저자의 첫 작품이며 소설이 아닌 영화의 대본으로 씌어졌고 한,일 양국의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었다는 점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내 흥미를 자극한 것은 이도저도 아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책을 읽다 독인군복을 입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미군에게 생포되는 사진 한 장에 대한 의문으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지면을 통해 알게된 사실 때문이였다. 세계대전과 일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한 사내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현듯 떠오른 오래 전 신문에 실렸던 네덜란드의 거장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를 보고 <배니스의 개성상인>이란 장편 소설을 쓰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를 그 사내의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던 중 대식을 트렉을 달릴 때만큼은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음을 느끼게 되고, 달리기 선수로 올림픽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에 매진한다. 그의 유일한 라이벌이 요이치라는 사실에 요이치의 기록을 깨고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고자 모든 것을 걸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대표팀 선발대회에서 우승하지만 출전자격을 박탈 당하게 된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는 길뿐인 대식은 가족을 부탁하는 대신 요이치를 곁에서 도와주길 바라는 그의 아버지 부탁으로 요이치와 한부대에 배치되고 서로 다른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요이치와 대식은 그렇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운명처럼 둘은 함께 러시아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가게 되고, 함께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인 프랑스 노르망디의 격전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대식에게는 그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가족들과 올림픽 출전의 꿈이 있지만, 요이치에게는 천황의 이름으로 명예롭은 죽음을 선택하는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였다. 하지만 전쟁의 와중에 그의 신이며 목숨 받쳐 섬겨야할 대상인 천왕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고 목숨의 중함과 삶과 자유의 가치를 깨닫게 된 요이치는 나름의 살아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전세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과 원수에서 점차 가장 전쟁중에 동지로,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로 변화하는 두 사람의 감정의 변화를 작가의 첫 번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세하고도 따스하게 그리고 있다. 여전히 한국인에게 일본은 '적대감'이 먼저 들고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좋게 봐질 수 없는 존재다. 일본 역시 이런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적개심을 정확히 이해 하지는 못해도 한국이 껄끄러운 존재임에 분명하다. 대식과 요이치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화해하였듯 한,일 관계의 개선과 화해를 통해 불행했던 역사로 인한 해묵은 감정을 앞세워 동반 성장의 기회를 포기하지는 말자는 편견을 배재한 젊은 작가의 의도가 읽혀진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음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없이 관계개선이 어려울 뿐더러 그들에게 관계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아직도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은 한,일관계는 가까운 길을 두고도 먼길을 에둘러 가야하는 사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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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폭격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독일군 포대 참호 속에 조선인 대식과 일본인 요이치가 있었다. 경쟁상대이면서 적이기도 했고 동시에 동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길고도 험난한 인생 여정,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전쟁포로가 되기도하며 살아남기 위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처절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서웠다. 이 세상이 화난 물살처럼 쿵쾅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마구 소용돌이치며 흘러가고 있고, 난 그 위에 떨어져버린 작은 낙엽처럼 느껴졌다.-128
일제강점기. 주인집 아들과 식모의 아들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두 소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동갑내기인 대식과 요이치의 강렬하고 운명적인 첫 만남. 서로 모른척 외면하면서 지내고 있었지만 대식은 항일 의병 활동을 하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요이치의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달리기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특히 요이치-도 지고 싶지 않았던 대식 이었는데 정작 자신을 위험한 전장터로 이끈 것이 바로 달리기에서 우승이었다.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러시아의 포로수용소에서 혹독한 생활을 견뎌야했고, 소련군으로도 참전을 하고 마침내는 독일군이 되어야했던 두사람. 언제 죽을지도모를 격전 속, 죽음의 고비마다 서로의 두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부축하고 의지하면서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아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매불망 그들이 살아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보고싶은 따뚯한 가족의 품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또하나 끝까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꿈, 달리기를 하기위해서 머나먼 길을 돌아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야했던 것이다. 이미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함께 출연하는 영화 '마이 웨이'로 제작되었다는 소식만으로도 커다란 이슈가 된 작품이기에 어떤 이야기일지 정말 궁금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독일 군복을 입은 채 미군에게 생포되어 실린 빛바랜 사진 한 장. 이 단 한 장의 낡은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오랜시간에 걸쳐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걸 생각하면 단 한걸음도 떼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장에서 날아다니는 총알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목숨을 운명의 손에 내맡긴 채 냉정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것, 그것이 용기다.-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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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가 언제부턴가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런 것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 책 표지에 두 젊은 남자가 뛰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한 사람은 태극기를 한 사람은 일장기를 가슴에 품은 모습니다. 디데이는 곧 개봉될 영화 마이웨이의 원작시나리오이다.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잡힌 독일군 포로 중에 한국인이 4명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군, 소련군을 거쳐 독일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야기는 1930년 대식과 요이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식의 아버지가 항일운동을 하다 사형을 당하자 살던 집에서 쫓겨나 갈곳이 없어진 가족들을 요이치의 아버지가 살 곳을 마련해 준다. 요이치와 친구들이 놀던 오두막을 대식이 가족이 살게 된 것이다. 둘의 만남은 처음 부터 어긋나고 시간은 흘러 한 집에 살면서도 유령처럼 서로를 대하며 지낸다. 대식과 요이치는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식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올림픽에 참가해서 꼭 메달을 따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대식과 요이치의 대결에서 대식이 승리를 하게 되지만, 대식의 코치는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일로 대식은 구치소에 갇히게 되고, 교장은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퇴학조치를 면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대식은 전쟁터로 가게 된다. 그리고 요이치는 일본천황이 신이며 그것을 위해서 아버지가 바라는 독일의 대학에 입학해서 법률 공부를 하는 것 보다 지금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자신의 할일이라며 아버지를 거부하고 입대를 하게 된다. 요이치 아버지의 부탁으로 한 부대에 배속된 대식과 요이치. 둘의 인연은 질기도록 연결된다. 어린 시절의 일로 인해 서로를 유령 보듯 모른체하며 지내왔는데, 요이치는 그런 대식을 군에서 만나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은 몰랐다. 대식과 요이치는 소련군과의 전투 도중 포로가 되고, 6,500킬로가 넘는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어딘지도 모르는 수용소에서 금을 캐는 작업을 하게 되고, 대식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군들을 통제하는 조장이 된다. 대식은 1년동안 할당량을 앞서는 성과로 수용소 밖 정착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대식의 희망은 다시 육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요이치와 부대원들은 요이치가 그린 탈출지도로 수용소를 탈출하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외부와 연결이 되는 곳을 발견했는데 그 날 밤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누구의 밀고였는지 요이치의 지도가 발각이 되고 모든 대원들은 사살되었고, 요이치만 살아서 독방에 갇히게 된다. 요이치는 독방에서 이주일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생활하면서도 지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대식은 그런 요이치를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페트로프소장을 만나 자신이 설득을 하겠다면 일주일의 시간을 허락 받는다. 그렇지만 모든것이 소장의 계략이었고, 다시 잡혀간 요이치는 독방의 두려움에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만다. 그리고 소련군이 전황이 어려워지자 수감자들 중에서도 지원병을 찾게 되고 요이치는 지원하게 된다. 이렇게 소련군이 된 대식과 요이치는 소련군에 들어가자 마자 독일군에 투항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요이치의 생각대로 독일군에 투항하게 되고 살아남았지만 대식은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된다. 다리 부상때문에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생각했던 육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대식은 그 동안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피우게 되고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모습이다. 요이치는 작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살아가다가 베를린시내에도 폭격이 심해지자 독일군에 지원하게 된다. 일본에서 금괴를 실은 잠수함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 잠수함을 타게 되면 둘은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미군이 하루만 공격을 늦추었더라도 둘을 잠수함을 타고 일본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 미군의 공격으로 둘의 운명은 달라지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이웨이가 어떤 영화인지 찾아 보았다. 강제규 감독의 작품답게 대단한 스케일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원작을 읽은 느낌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폭풍속의 한 가운데에 살아야했던 두 남자의 삶이 연리지 처럼 얽혀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전쟁터에서도 마지막 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은 두 남자의 모습이 아름답게도 보였었다. 원작이 재미있기도 하고 영화는 어떻게 원작의 재미와 영화의 묘미를 잘 살리 수 있을지 기대도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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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성격의 전쟁이든, 전쟁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 아군, 적군을 막론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공포와 잔학성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은 공황 상태에 빠져든다. 아무 이유 없이 전장으로 끌려가 덧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어린 목숨들은 또 어떠한가. 그런데도 전쟁은 보잘것없는 명분을 내세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
전쟁의 아픔을 그리는 한 편의 전쟁영화가 개봉되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다. 전쟁영화를 다시 만들지 않겠다던 감독마저도 진한 감동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식민지 조선 시절, 조선과 일본의 두 청년이 보여준 반목과 화해를 통해 전쟁의 상처와 인간애를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본 이들은 벌써부터 재미와 감동이 뛰어나다는 평을 하고 있다.
실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 나는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소설을 읽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시나리오가 먼저 완성되었고, 이를 다시 소설화 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물론 소설까지 집필한 작가 김병인은 애초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로 제작되면서 상당 부분 각색된 듯하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기에 이 글에서는 소설에 대한 감상만 짧게 이야기하려 한다. 소설의 제목은 <디데이>(열림원, 2011)다.
소설은 노르망디 해변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르망디 해변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조선인과 일본인 청년. 둘은 왜 노르망디에서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가.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고 무대는 식민지 조선으로 바뀐다. 가족과 함께 조선으로 오게 된 요이치와 식모생활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대식. 일본과 조선의 두 청년은 라이벌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나라를 대표하는 달리기 선수들이다. 전쟁이 격해진 상황 속에서 우연히 두 사람은 전쟁터로 가게 되고 포로가 되어 러시아, 독일, 프랑스로 내몰린다.
전쟁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경쟁자이자 진정한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종속 관계는 애초 이런 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진정 실력으로 겨룰 수 있었던 달리기도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으로 출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조선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으로 인해). 전쟁으로 인한 식민 지배는 이렇게 대식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고 동시에 달리기를 통해 조선인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적 혼란은 이 작은 꿈마저도 마구 짓밟고 말았다. 대식과 요이치는 각기 다른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그 이유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다. 전쟁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 펼치려던 꿈들은 포로가 된 상황에서 이들을 지탱해준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노르망디로 이동하며 실제로 이들을 버티게 한 건 우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어처구니없는 전쟁의 참상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는 이렇게 두 사람이 우정을 만들어가고 결국 하나가 되는 눈물겨운 감동에 있다. 전쟁의 참혹한 장면보다도 왜 이 두 사람이 노르망디까지 가야 했고, 요이치가 대식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전쟁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by 꽃다지, 2011.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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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코리안(Normandy's Korean)"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Utah 해안에서"(네이버 지식in 인용)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다시 독일군으로, 결국 미군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어느 조선인 이야기를 올해 이재익 작가의 <아버지의 길>로 만났다. 소설 속 주인공이 신의주에서 노르망디까지 2만 km에 이르는 지옥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길을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견뎌낸다는 이야기에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 “노르망디 코리안”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만났다. 개봉 예정이라는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의 원작 대본을 소설화한 김병인 작가의 <디 데이(D-Day/열림원/2011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일제(日帝)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기 한 해 전인 1930년 식민지 조선의 부산, “남작당(男爵堂)”이라고 불리는 “요이치” 집 정원 한 구석에 있는 오두막에 홀어머니와 요이치와 같은 나이인 열살 남자 아이 “대식”,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세 명의 조선인 가족이 이사를 온다. 친구들과의 아지트를 낯선 조선인 가족에게 빼앗겨버려 심통이 난 요이치는 결국 자신을 찾아온 대식을 친구들과 함께 쥐어 패버리고 만다. 그로부터 8년 후 손기정 선수처럼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서 가족을 남작당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결심한 대식은 달리기 연습에 여념이 없다. 대식은 라이벌인 요이치와의 시합에서 승리하지만 자신 때문에 코치직에서 쫓겨나게 된 선생님 때문에 격분한 나머지 교장실을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구치소에 수감되고 퇴학 당할 처지에 몰려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 그에게 교장 선생은 군대에 입대하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해오고 대식은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한편 대식과의 시합에 져서 실의(失意)에 빠진 요이치 또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 하고, 요이치의 아버지는 대식에게 요이치를 부탁하며 같은 부대에 배속될 수 있도록 힘을 써서 둘은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다. 소련과 몽골 국경 접경지역인 “노몬한” 지역 전투에 투입된 둘은 일본군이 대패하면서 소련군에게 붙잡히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용소 “굴라크”로 끌려가게 된다. 고국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생스러운 포로생활을 견뎌내던 둘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오자 일본의 우방국인 독일군에 항복하면 일본으로 귀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소련군에 자원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군에게 항복하고 베를린으로 건너온다.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보지만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지라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이 여의치 않게 되자 베를린에 머물던 둘은 독일군으로 노르망디 지역에 군복무를 하다가 일본 잠수함이 오게 되면 그 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본 대사의 제안으로 다시 한번 독일군복을 입게 된다. 드디어 일본 잠수함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귀환의 꿈에 가슴 설레이지만 이틀을 앞두고 그 유명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책의 제목인 “디 데이”가 바로 상륙 작전이 일어나는 날이다 - 이 시작되고 둘은 해안 포대에서 연합군을 저지하다가 다시 한번 탈출을 하기에 이른다. 책 표지처럼 두 손을 맞잡고 전장을 벗어나 달리는 두 남자, 그들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의 길>, 그리고 이 책, 두 작품 모두 작가가 공을 들여 쓴 작품이라 작품의 우열을 가름할 수 는 없겠지만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작품이라 설정과 이야기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혹 두 작품을 비교하는데 작가들이 불쾌하게 느낀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먼저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 “길수”가 일본 장교에 의해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데 비해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자의에 의해 입대를 한다는 점이 다를 수 있겠다. 두 책의 주인공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만큼은 다르지 않지만 올림픽에 출전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대식이나 대식의 여동생과의 사랑을 소망하는 요이치의 사연보다는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을 위해서인 길수의 부성애가 좀 더 절박하고 애절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버지의 길>에서는 정신대 문제와 양민 학살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울분과 분노를 느낄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반해, 이 책에서는 그런 문제들은 생략된 채 두 남자의 우정(友情)에 더 초점을 맞춘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과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과거사에서 가장 불운했던 사건인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침탈 때문에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자 타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온 일본과의 관계를 이제는 화해와 동반자적 관계로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길>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했던 일본의 만행들은 가급적 피한 채 두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한정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길>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온갖 고초에 울분과 분노를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애끓는 부정(父情)에 가슴이 아파오는 극적인 재미와 감동이 꽤나 강렬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강렬한 느낌은 없지만 대신 두 남자의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을 밝힐 수 는 없지만 마지막 약속인 “바통 터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기 힘든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슴 한 켠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한 책은 좀 더 절박하고 감성적으로, 다른 책은 다소 밋밋하지만 잔잔하게 풀어낸 점이 큰 차이라고 할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 - 작가의 말에는 영화화 과정에서의 사연들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소개를 생략한다 - 로 그려낼 영화 <마이 웨이>는 어떨 런지 궁금해진다. 다만 상업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애국심을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또는 <아버지의 길>의 부성애든, 아니면 <디데이>의 우정이든 어느 하나를 올곧이 그려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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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 작전(Invasion of Normandy)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으로 상륙한 전투이다. 본격적인 연합군의 유럽 진공의 시작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향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군에게 생포된 독일군의 포로 중에 네 명의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뒤 늦게 알려졌다. 미국의 전쟁문서 보관소에 보관된 사진 중에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사진이 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과정에서 생포된 많은 포로들의 사진 중에서 이 사진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사진 속의 인물이 조선인이라는 데 있다. 독일군 군복을 입고 있지만 생김새는 물론이고 사진에 기록된 포로 진술에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