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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 얘는 또 뭐야, 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중국 청조 시대의 흥망을 이끈 이 황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우리 조선 사람과는 의외로 인연이 있다. 단순히, 우리 조상들이 이 황제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관계는 아니다. 바로, 연암 박지원이 6개월간 여정 끝에 북경에 당도했더니, 정작 황제는 여름 휴양지인 열하에 가 있어, 또 다시 2주인가 한 달인가를 밤낮으로 달려가 만났다는 그 황제다. 그래, 참 대단한 관계라고? ㅋ 그렇다. 나도 그런 단순한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지루하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그 흥미는 이 지겹게 오래동안 자리를 꽤 차고 앉은 황제를 통해 중국의 이면과 권력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 황제는 참 다재다능했다. 오늘날 중국 영토의 기틀을 다졌고, 문화쪽으로도 다재다능했으며, 영민했고, 게다가 건강했다. 한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다만, 이 책은 그 다재다능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주, 평범한 사실, 즉 사람은 두 가지 모순되는 결과를 가져 오는 일을 동시에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고전서'라는 수천만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통대 중국의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했지만, 동시에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책은 없애 버렸다. 인구를 증가시켰지만, 그 증가된 인구를 먹여살릴 만한 제도는 미쳐 정비하지 못 했다. 하긴, 한 세기만에 몇 억의 인구가 늘어나는 데 어찌 그 대비가 가능하겠느냐마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괴팍했고 고집이 셌다. 레임덕은 누구나 겪는다지만, 그 레임덕이 20년이나 지속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희롱을 넘어서서 그 국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뛰어난 측근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 측근들의 부패는 모르고 있었고, 알고 있어도 제어할 능력이 안 되었다.
이 뛰어나지만 모순된 황제를 통해 현재의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먼저, 적어도 내가 다 해 봤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만약 건륭제가 중국 역사에서 조금 특별한 경우지만, 자신의 힘이 다 했다는 것을 알고, 이미 장성한 아들에게 권력을 빨리 물려 줬으면 어땠을까. 4년간이나 노쇠한 몸을 이끌고 섭정 아닌 섭정을 할 이유가, 그래서 국정을 혼란에 빠트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 측근 비리를 조심해야 한다. 건륭 연간 특히 마지막 20년간의 혼란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측근 비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 했다는 가장 큰 원인이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건륭제는 절대 자신의 측근들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측근들의 비리를 비리로 보는 능력까지는 가지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적어도 건륭제가 국가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실행하지 않은 것 만은 분명한데도, 결국, 그 뛰어난 황제와 그가 운영하는 광대한 제국은 쇠락의 길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물며, 왕이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국가의 일을 한다면. 이 책은 어찌보면 아주 건조한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처럼 드라마틱하지 않다. 다만, 그 건조함 속에서, 단호함 속에서,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태도 속에서, 역사와 권력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티벳 문제, 사행단, 불교 문제 등 틈틈히 소소하게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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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크 엘리엇은 미국내에서도 자신의 자료에 만주어로 기록된 자료를 사용할 만큼 청과 관련하여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번 책 건륭제는 기존의 나와 있었던 건륭제를 사용하여 건륭제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종합적인 평가를 하는데, 역사학자의 저술의 좋은 예를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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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는 강건성세의 마지막 구간을 통치한, 어찌보면 중화제국을 통치한 군주 중 명군으로 꼽히는 마지막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즉위한 청의 황제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대단히 불운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국내 최초의 건륭제 평전"이라고 합니다. 국내 저자에 의해 쓰이거나, 번역 소개된 건륭제 평전이 이 책 전에는 없었다는 뜻이겠습니다. 둥예쥔이라는 사람이 쓴 <평천하>라는 책이 있긴 했는데 분량도 많고 건륭제 한 사람에 초점을 두어 쓰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계서 성격이 강한 탓에 아마 평전 취급은 못 받는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건륭제 역시 개인적으로 자질이 빼어난 인물이었고, 그 부황 옹정제가 강희제에 의해 후계자로 골라진 것도 손자였던 이 건륭제의 자질이 어려서부터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여튼 그처럼 좋은 기반을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였고, 본인도 소양이 출중하고 통치를 성공적으로 행한 군주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붕어 후에 제국은 그저 내리막길을 탑니다. 조선도 비슷한 시기에 영정조의 부흥기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다스린 군주들 역시 조부와 손자 관계입니다. 정조가 죽은 후 이상하게도 왕권은 급히 쇠약해지고 급기야 세도가의 손에 맡겨지며, 청나라 역시 서태후라는 변칙적 권력가의 손에 넘어가 부패상을 겪게 됩니다.
책에서는 만주족 성공의 딜레마를 분석하는데, 3백 년 전의 몽골은 한족의 영토 전부를 최초로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채 백 년도 영유하지 못하고 도로 북방으로 쫓겨갔습니다. 그에 비해 청조는 성질 사나운 내몽골 정통파 제 부족을 모조리 복속시키고, 수십 년에 걸쳐 중국 전토도 손에 넣은 후 대단히 효과적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 최고위직에서 만주족은 언제나 다수를 유지했으니, 정복 왕조 중 가장 온전한 의미로 중국을 "정복"하고 "통치"한 왕조는 바로 청조라 하겠으며,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전근대 체제 중에서는 청나라 때가 가장 윤택했습니다. 독자인 저 개인적으로는 심지어 마오 통치 하에서도 청조의 수준을 과연 넘었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 강건성세 기준이라면 말입니다.
청나라는 그 다스린 영토 역시 역대 중화제국 중 최대였습니다(원나라는 기타 한국들은 제외해야 하니). 이렇게 된 건 이른바 신장 지역을, 이 건륭제 대에 와서야 완전히 손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확보한 강역이라고 해서 이름이 신강이며, 지금도 이 지역의 이름이 신장인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최근 아프간 정부가 망하고 탈레반이 최종 승자로 부상하면서 신장이 주목 받는 건 그 분리주의 운동이 과연 아프간 정세에 의해 영향을 받겠는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이 탈레반 지도자를 불러 아프간 영토 안에서 반(反) 중국 동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일대일로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죠.
아무튼 신강, 신장이 중국에 편입된 건 건륭제가 티벳 일부와 결탁한 중가르 제국의 무서운 발흥을 제압한 공이 무척 큽니다. 이미 북방 유목 민족은 2대 황제 홍타이지가 다 포섭하거나 평정했겠으나, 이들은 내몽골 족이고 서부의 오이라트, 외몽골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게 150년이 지나서 드디어 세를 모아 커다란 제국을 형성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중가르 혹은 준가르라는 말의 뜻은, 미야와키 준코, 혹은 카미무라 아키라의 연구를, 한국어 위키피디아가 인용, 정리한 바에 의하면, "두르베트 정권에 있어 좌익(=동쪽)을 담당하던 진영의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오이라트는 전통적으로 서부에 웅거해 왔는데 왜 준가르가 "동쪽"인지 의아하다면 이 부분을 참조하면 되겠습니다. 책에는 "준가르" 어원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독자인 제가 외부 전거를 따로 살펴 보았습니다.
중화 제국은 건륭제 대에 와서 비로소 북방 유목 민족에 대한 근심을 완전히 떨칠 수 있었으나(이로부터 수십 년 후 다시 야콥 벡의 도전이 있긴 했지만요) 불과 다음 세기에는 양이(洋夷)의 침노 때문에 제국이 완전히 끝장나기에 이른 건 아이러니입니다. 과연 習皇帝의 통치 연간에 설욕이 가능할지요?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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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건륭제의 일대기를 외국인이 쓴 책이다. 그런데 나의 짐작과는 다르게 서술 방식이 시간 배열대로가 아니고, 작가의 입장도 칭찬도 아니고, 비판도 아닌, 그래서 객관적이라고 하는가 싶은데 실제로는 객관적 서술도 아닌 책이었다.
보통의 위인전, 또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책들은 그들의 생애를 시간배열로 설명하거나 보여주면서 행간에 칭송이나 존경, 비판의 의미를 가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조금 가미하면서 작가의 평가를 더 많이 포함한 서술 방식이 많았다. 작가의 추측성 서술도 간간히 자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런 황제의 행동, 사고방식 등이 청나라 운영과 청 이라는 제국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거시적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이사이 왜 건륭제가 후세에 다시 보아야 할 황제임을 인식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조금 밋밋한 인물평전이었다. 칭찬도 비판도 아닌, 그렇다고 역사적 흔적을 확실히 남기지도 못한, 그러나 간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 왜 작가가 건륭제를 소재로 글을 쓸려고 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다.
청나라는 조선과의 관계로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접해본 나라다. 또한 건륭제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우리나라 실학자들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열심히 들락거리던 나라다. 건륭제의 쇄국적 조치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열악한 문화의 소양을 가진 소수의 만주족이 문화적으로 유서깊은 다수의 한족을 다스림에 성공한 청나라의 저력을 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말기 부정부패로 인한 쇠퇴의 길을 피할 수는 없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외세의 흐름을 오판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지, 비지배민족의 반란 때문에 청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청나라의 지배 철학이나 다수 백성을 다스림의 운영 방식에 대한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서술은 그 것을 알려주기에는 많이 부족한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