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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권 ethnosphere 을 아십니까? 인간도 보호되어야 한다.
"인종권 ethnosphere 을 아십니까? 인간도 보호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우리가 생명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간이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아서인지? 세상의 생명체에 관심이 참 많다. 멸종할 동물들에 대한 기사는 환경과 함께 꼭 등장하는 주요 이슈이다. 이런 동물이 멸종위기인데 어쩌고, 북극의 곰들이 위험하고, 한반도에 멸종 위기종이 무엇이고 등등, 무분별한 개발과 지구온난화 등이 불러 일으킨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사라져 가는 사람들에
"인종권 ethnosphere 을 아십니까? 인간도 보호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우리가 생명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간이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아서인지? 세상의 생명체에 관심이 참 많다. 멸종할 동물들에 대한 기사는 환경과 함께 꼭 등장하는 주요 이슈이다. 이런 동물이 멸종위기인데 어쩌고, 북극의 곰들이 위험하고, 한반도에 멸종 위기종이 무엇이고 등등, 무분별한 개발과 지구온난화 등이 불러 일으킨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사라져 가는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보통 원주민이나 원시인이라 부르면서 그들의 터전에서 잘 살아가던 사람들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쫓아낸다. 그리고 이들을 개화시켜야 할 미개인들로 인식하고, 현대의 문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여기기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왜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지 못하는가? 그들은 오랜 세월 살아남아있는 현재의 주인공들인데, 무시되고, 차별 받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아무 대책이나 보상 없이 쫓겨 나서, 다수 속에 흡수되어 사라져 간다.

 

산 위 오두막의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스는 하나의 온전한 인간문화는 동물 종 하나나 몇 개의 멸종보다 우선합니다. 다만, 그 문화와 다른 문화들의 차이가 충분히 클 때만 그렇습니다. 말한다. 물론 생물의 멸종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지구에 너무 빨리 많은 문화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문화도 진정한 인류의 유산이다. 이런 다양하고 특이한 문화는 사라지면 복원할 길이 없다. 세계적으로 고유 문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을까  세계의 인구만큼 다양한 얼굴이 존재할 것 이다. 하지만, 여기서 얼굴은 다양한 인종들의, 다양한 모습인 종권 ethnosphere, 그 속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인종권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의 소멸되고 있다. 지구에는 3억명 정도 고유한 문화(자체 역사와 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지금은 언어의 사망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의 많은 언어들은 사라지고 있다. 또 세상의 많은 언어들이 고사위기에 처해있다. 그 하나의 언어는 수많은 개념과 직관적 통찰로 어우러진 온전한 생태계요, 생각의 분수령이요, 정신의 원시림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자민족중심주의적이라 현실에 대한 자체의 해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 네 문화가 최고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폄하하면서, 무시한다. 사라지는 언어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문화에는 우월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진정한 유산인 것이다.

 

숲과 별들,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점점 사라져 가는 숲, 점점 보이지 않는 별들. 점점 그 의미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인간의 멸망이 가까워질 것 같다. 인간에게서 자연은 곧 삶인데. 신앙과 믿음의 영역은 친구처럼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와로오족 Warao(카누를 가진 사람)의 일상은 강과 더불어 흘러간다. 바나라사족 사람들에게 수로들은 대지의 핏줄이요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요 태초에 조상들이 여행한 길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보통 축제는 상호호혜성과 나눔의 정신을 고취는 일이다. 각 문화권과 인종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샤먼은 약초를 사용하기 전 영혼을 재정렬하고, 신체의 고통을 감내하는 살짝 돈 사람들, 이들은 보통 사제 역할과 의사역할까지 수행한다. 이것은 영혼의 상태가 육신의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치유하는 이들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간다. 그들이 가진 지식들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아이티하면 무엇이 생각날까요  아마 좀비와 부두교, 저자는 사망상태 비슷한 것을 유발할 수 있는 약을 조사하기 위해 아이티로 향했다. 그들은 사원에서 춤을 추면서 신이 된다고 말한다. 종교는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믿음이나 관념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보둔교 Vodoun은 폰 fon어로 혼령이나 신을 뜻한다. 하지만, 이 종교의 기이한 이미지는 흑인차별주의에 근거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인정하고, 죽음을 인간의 영적 요소와 육체적 요소가 분리되는 더 없이 중요한 순간이자 취약한 순간으로 여긴다. 과학적으로 복어의 데트로도톡신은 인체 대사율을 아주 현격하게 떨어뜨려 좀비 비슷한 상황에 이런 게 된다. 이들은 자연스러운 죽음과 마법사가 개입한 부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나누고, 좀비가 되는 것을 죽음보다 더 고약한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라 믿는다. 보둔교는 하나의 영적인 개념을 구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을 규정해 주는 것이다.

 

최후의 유목민, 그들은 언제 사라질까  문화적 상대주의는 인종권 보전위협, 지배의 원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외부와 독립된 생활을 해왔기에 외부의 영향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건강한 와오라니족에게는 암, 심장병 등이 없었으나, 외부와 접촉하면서 돌림병으로 고통 받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리알 사람들은 길에서 만날 때면 우선 소들이 잘 있는지부터 묻고 나서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 특이한 생활방식과 삶의 문화적 생존과 문화적 보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 동남아 마지막 유목민 프난족, 벌목과 다양성의 파괴, 숲의 파괴, 종족의 죽음, 숲은 그들의 고향이요, 그들의 전 역사는 바로 숲 속에 기록되어있다. 그들은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기른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일로 여긴다. 또 모든 재산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을 축적해야 할 동기나 필연성을 갖고 있지 않다. 부의 속성은 관계의 힘이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한 민족의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문화 말살은 아무 비난을 받지 않는다. 토착민이 대상일 때 오히려 온당한 정책이라고 칭송을 받는다. 국민국가는 이 세상의 큰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작은 게 되었고, 또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삶들에 너무 자주 참견하고 있다. 그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다 위험 요소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거의 모든 서구국가들이 이 의존과 종속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다. 교육이 고향을 등질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돌아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눈의 나라. 티베트, 지금의 그곳에는 중국의 만행이 저질러져 왔고, 지금도 계속된다.

포탈라궁 건축의 경이 등 고유한 건축물, 그들만의 특유의 라마교, 고지의 문화들은 점점 중국화 되어가고 있다. 중국이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 달라이 라마정부, 사원들 3대악으로 정의하고 계급투쟁과 혁파를 주장하면서 티베트를 부서 나갔다. 특히 사원들의 경제적 토대를 파괴한 것은 티베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회, 정치적 사건이다. 물론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은둔시대의 불평등과 착취를 혐오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티베트에서 지배 앨리트들은 백성들에게 기도용 바퀴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경제정책의 실수 탓으로 가난을 몰아내기는 고사하고 티베트인들을 오히려 더 비참한 처지로 몰아 넣었다. 또한 티베트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데 거의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티베트인의 힘은 고통은 오로지 현실이 허망한 것이요 덧없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우러나온다. 그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수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어떤 식의 삶이 정답일 수는 없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호주원주민들에게 드림타임은 현실 세계다. 꿈꾸는 일을 통해서 새롭게 탄생한다. 하지만, 그런 원주민들은 어떻게 변했는가? 싸게 공급되는 고기 등에 찌들어 살찌고, 서구의 부자병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다. 왜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가? 아메리카에서의 홀로코스트의 메아리는 아직까지도 지상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그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 특유의 문화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디언보호구역 속에 알코올에 찌던 모습으로 겨우 생존하면서, 인디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원주민들은 막강한 외부의 권력 실체들이 내린 일정한 정치, 경제적 결정 때문에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있고,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전혀 선택권이 없다. 사라지던지 통합되던지.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곧 적응하고 살 수 있겠는가? 물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갈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그들의 행복일까? 지켜야 할 것은 현대적인 것에 반대되는 전통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자기네 삶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 기록은 인종권이 지닌 모든 경이로움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작업은 망대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 삶과 자연이 느껴지는 사진들, 아마존에서 티베트까지 그가 보여준 세계와 사실들, 정말 아름답고, 존경할 만하다. 무엇보다 모든 문화에 대한 연구는 그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들 다른 척박한 자연의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노력한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여 있는 것이 그들의 삶이요 문화일 것이다. 단일 종의 현대 문화는 직업에 모든 걸 다 바치는 사회의 가치를 지고 산다. 이것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고유한 문화를 존중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그런 세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p*******t 2012.01.29.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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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내용보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가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로 변해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진보라고 주장해왔고 또 굳게 믿어왔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 너머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하는 경험에 휩싸인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은 소외당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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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가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로 변해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진보라고 주장해왔고 또 굳게 믿어왔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 너머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하는 경험에 휩싸인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은 소외당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고 심지어 강압적으로 우리의 것을 그들에게 도입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우린 그들의 주인인 양 이제껏 굴어왔다.

조금은 낯선 모습들과의 만남이었다. 다르다 하여도 결국에는 수긍이 갈 법한 모양새들과만 만나온 나에게 이 책의 저자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미개하다’는 표현으로 수식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문화의 다름에 옳다/그르다의 가치판단 잣대를 드리우니 그랬다. 물론 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던 사례는 보르네오의 이야기였다. 아직도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사람이라니 상상이 가는가? 지금은 우주여행도 가능한 시대다. 하지만 달까지 여섯 차례나 기껏 가서는 한 일이 고작 돌덩어리 몇 개와 흙 376킬로그램을 퍼온 것뿐임을 납득시키기란 우리와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문명은 항상 옳고 또 훌륭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만약 충분히 발달치 않았더라면 으레 존재했을 아름다운 환경을 우리는 조금 더 편리한 삶을 위해 파괴했다. 이후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모토 하에 각종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환경운동이라 하는 것이 환경을 본디의 모습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른 결과치고 우리의 문명은 허술하고도 미약하다. 이는 지적인 분야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필리핀 민도로 섬 숲 속에 거주하는 하우누 족의 경우 450종이 넘는 동물을 알아보고 1천5백 종이나 되는 식물을 식별해낸다고 한다. 하지만 서구의 식물학자들의 경우 고작 4백 종의 식물을 분별할 따름이란다. 하우누 족의 예리함은 현대의 교육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우리는 우리의 것만 옳고 뛰어나다는 강고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것을 저들에게 이식해야만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부르짖는단 말인가!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아이티 인들에 관한 부분이었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폭삭 주저앉아버린 그 땅의 사람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인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오늘날 지배적인 종교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오늘날 아이티에 닥친 재앙은 신의 뜻을 거스른 결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만난 아이티 사람들은 보둔교라 하는 종교를 믿고 있었다. 불덩어리를 입에 물거나 밟고도 아무런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신내림을 받은 몇몇 무당들이 초인적인 힘을 보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도록 만든다. 물론 이를 철두철미하게 믿는 이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신’이라며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쏟진 않을 것이다. ‘미개함’이라는 단어 속에 담아 내기에 보둔교는 너무도 복잡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이 종교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힘을 발휘할 영역이 없다. 이 종교가 의학적으로까지 효과가 뛰어나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싶단 것은 아니다. 다만 생사를 철저히 나누고 죽음을 두렵고도 피해야 할 것이라 여기는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이 종교의 심오함까지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 들고, 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이해하려 드는 행위가 어찌 하찮은(?) ‘좀비’ 따위로 치부되어야 한단 말인가!

물질을 얻고자 정신을 버렸다. 현대 문명을 굳이 문자로 서술해야만 한다면 나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과거의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티베트의 사례를 살펴보니 지난날 티베트의 불평등 문제는 머지않아 사회에 크건 작건 소요사태를 일으킬 만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평등을 위하여 제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이다. 공산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이란 평을 받기 위하여 전통의상을 벗은 티베트 인들의 모습이 밝아보일 리는 없다. 그들이 벗어 던진 것은 단지 얇은 옷 한 벌인 듯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잃어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정체성’이다.

이 책은 한때 우리가 누렸던, 그렇지만 지금은 애써 찾아 헤매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들의 향연이었다. 해외에서 화가 난 듯 꾹 다문 입술을 한 동양인은 모두 한국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린 다른 듯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살펴보면 잃어버린 지난날의 우리 모습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우린 사랑밖에 모르는 우직한 바보 인간이었고, 바람 한 줌에도 가슴을 부여잡는 여린 인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나무였고, 흙이었고, 바람이었으며, 지금은 그저 어깨에 이고 있어야만 하는 하늘이기도 했다. ...


이달의 사락 q*****2 2012.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