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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텍스트에 중독되어 있던 내가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사진의 이면의 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 새로운 세계였다. 낯설어서 신기한 세계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롭게 눈을 뜨게 해주어서 감격스럽다는 뜻이다. 순간의 찰나를 기록한 사진이 왜 이렇게 새롭게 다가온 것일까. 그리고 그 이면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의 모습까지 투영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커다란 기쁨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이런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91쪽)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감정이입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그 다양성. 내가 맘껏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고 현실과 대조해보며 즐기는 과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윌리 로니스의 사진과 글이 그랬다. 꾸미지 않은 담백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거울 안의 세계를 투영해서 보는 듯한 착각이 인다. 내가 본 적 없는 풍경과 경험하지 않은 광경들이 낯섦 그대로 다가오면서도 꿈속을 헤매듯 기이한 느낌이다.
글이 있는 사진집은 사진만 볼 때와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다르다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사진만 봤을 때는 내 나름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그러다 저자가 어떻게 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상황을 알고 나면 갑자기 그 사진은 현실감이 묻어나는 존재한 상황이 되고 만다. 두 가지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각각의 매력에 빠질 수 있어 사진집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윌리 로니스는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하지만 사진이 아니면 남길 수 없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내가 일상 속에, 일상적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바로 그것이 나다. (중략) 그냥 존재하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관심을 끄는 것과 함께 있을 뿐이다. 가장 어려운 것을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다. (86쪽)
윌리 로니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적 현실 속에 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사진을 연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연출한 사진조차도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그의 사진은 일상의 한 조각을 그대로 떼어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상의 조각은 꼭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다가간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광산촌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한 광부를 찍은 사진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문장과 함께 사용한 것을 알게 된 후 기록사진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단다. 사진을 에이전시에 넘기면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점. 그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기에 그는 결국 에이전시를 떠나 15년간 프리랜서로 작업했다고 한다.
"나는 내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감을 느낀다." (134쪽)
때로는 사진을 보며 멋대로 상상하는 나 같은 독자도 있는 반면 어떠한 의도로 방향을 잡을 때 전혀 다른 효과를 드러낼 수 있고, 생각을 획일화 할 수 있으며, 메시지도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이었다.
나는 아직 사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사진의 의미,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의 메시지는 물론 기술적인 면은 더더욱 모른다. 사진 찍는 기술에 대해 윌리 로니스에게 묻는 청년에게 그는 "그냥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단다. 자유롭게. 그것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보는 사람이든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자유가 아닐까? 그 자유로움의 영역은 방대하고 무한하기에 맘껏 누려보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꿈틀거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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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태어나 2009년 9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평균보다 긴 삶을 산 윌리 로니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택한 직업은 사진가였다.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라는 평을 듣게끔 만든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아내는 게 사진이라고 했지만 왠지 그의 사진에는 일부러 따스한 기운이라도 첨가한 건 아닌가 싶어 보였다. 같은 기기를 같고 사진을 찍어도 어떠한 장면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몫이기에, 직접 만나본 적 없는 작가에게서 내가 느낀 것은 인간미였다. 그가 살다간 시대가 결코 희망으로만 가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진을 잔뜩 담은 책인 만큼 가벼운 독서를 예상하고 집어 들었다. 읽기 나름이겠지만 사진만을 대강 보며 페이지를 넘겼더라면 충분히 가볍게 한 권의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개의 사진집에는 사진마다 짧은 글이 달려 있는데 사진과 글을 함께 섭렵하더라도 책을 읽는 데엔 큰 시간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벼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매 사진마다 달린 글이 오히려 ‘주’인 듯했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그 글에는 깊이가 있었다. 자주 등장한, 매순간 자신은 카메라와 함께했다는 그 문장은 읽을 때마다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일종의 사명감이었고 가치관이었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라는 투철한 직업정신일 수도 있었고. 글을 통해 그는 사진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도 힘을 쓰고 있었다. 책의 표지로도 사용된 ‘어린 파리지앵’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사진일 것이다. 바게뜨를 든 채 속도 내어 달리고 있는 아이의 표정에서는 무언가를 향한 강렬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저자는 가게가 없어지지 않았다 말했지만 지금은 또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처를 거닐 때마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진 한 장이 많고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음을, 오늘날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카메라꾼(?)들은 알고 있을까?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인 ‘규소폐증에 걸린 광부’에서도 참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선 사진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심오한 의문들이 담겨 있었다. 왜 누군가는 제 삶을 의지와는 다르게 떠밀리듯 내려놓아야만 한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강원도 일대에 한때 광부로 일했던 이들이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을 고려하면 1951년에 찍힌 사진 속 이야기는 반세기 가량 전에 끝난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사진의 활용에 대한 의문도 제기 가능했으니, 찍힌 사진이 외국 출판사에 의해 ‘노동자 세계의 교화는 가능한가?’라는 주석이 달렸다는 저자의 이야기 덕분이다. 사진가의 의도를 사진 속에 100% 담아낸다 하여도 이를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자의 몫이다. 내 사진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해석의 자유라며 인정하면 될까 아니면 적극적인 해명 요구 등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건 바로 책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 남자가 여자 둘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사진만 놓고 본다면 흥겨운 한때를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구나 생각하고 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진에 내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직접 남긴 글 덕분이었다.
- 음악이 끝나고 그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얼이 빠졌다. 그는 외다리였다! 춤을 출 때는 전혀 그런 줄 몰랐는데.
사진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못한다는 거.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구 매체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마냥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가 괜한 것은 아닌 듯 기존의 매체들은 실제로도 과거보다 영향력이 줄어든다. 하지만 각 매체는 나름의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그렇기에 도태되고 사라질 수도야 있겠지만 오히려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일익을 담당할 수도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카메라가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고가의 제품이 아니다. 너도 나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우나 그 안에 의미를 담아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진지하게 사진을 대하기가 그만큼 쉽지가 않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진을 혼신의 힘을 다해 찍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다. 그러나 너무 쉽게 셔터를 누르는 요즘,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진들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기는지는 한 번 즈음 생각해볼 만하다. 지금 내가 찍은 사진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나는 이 사진을 찍었는지... delete 키를 누르기만 하면 삭제할 수 있는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고 또 인화하거나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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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로니스, 류재화 역, [그날들], 이봄, 2011. Willy Ronis, [CE JOUR-LA], 2006. 어느 유명인의 전시회나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서 가끔은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우연인가, 연출인가? 초상권은? 어떤 렌즈를 사용했을까? 어떻게 보정을 했을까? ... 그리고 어떤 뒷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윌리 로니스라는 이름은 몰라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다란 바게트를 들고 가는 어린아이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일상으로까지 파고든 한 장의 사진을 인연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 작은 삶의 기적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윌리 로니스(1910 - 2009)는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인이라고 한다. 솔직히 문외한이라 불행하게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명성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사진 스튜디오를 하는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고 사진에 입문하여 파리 곳곳을 누비는 사진가로의 삶을 시작한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그의 일생은 프랑스의 근대 역사와 함께하는데... 1934년 노동자 시위 촬영을 시작으로, 1938년 시트로앵 자벨 자동차 회사 파업을 담은 연작 촬영, 제2차 세계대전 전쟁포로 귀환 촬영, 1951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진 '규소폐증에 걸린 광부'를 촬영... 20세기의 모든 사건 현장과 이미지와 풍경 등을 '르포르타주'한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의 사진기자가 되었으며...
그날은 1947년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교외 술집 분위기를 좋아해 자주 가곤 했다...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중앙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당장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위치를 잡아야 했다. 춤추는 장면 전체를 다 잡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무대와 춤의 전체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의자 위로 올라갔다. 사진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커플 바로 뒤에 내가 있다.(p.7) 디지털카메라와 보정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셔터를 누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1947년의 세상에서 기계식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한다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사진가의 머리는 수많은 계산을 해야 하고 몸은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는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쪽의 두 아가씨와 아주 신나게, 아주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청년이었다. '그래, 이게 주제야.' 난 주제를 찾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청년에게 좀 가까이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가 나를 보았고, 두 아가씨와 정신없이 춤을 추면서도 내 뜻을 알아챘는지 점점 앞으로 나왔다. 바로 그 순간에 찍은 사진이다. 그는 정말 신처럼 춤을 추었다. 두 여자와 함께 그렇게 추려면 춤에 대단한 재능이 있어야 했다. 음악이 끝나고 그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얼이 빠졌다. 그는 외다리였다! 춤을 출 때는 그런 줄 몰랐는데.(p.8) 두 여자와 멋지게 춤을 춘 남자는 외다리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오른쪽 아가씨로부터 작가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녀는 신문과 잡지에서 가끔 이 사진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 청년은 이날 처음 만났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역동적인 몸동작이 그려진 한 장의 사진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렘브란트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감싸면서도 드러내는 그 어슴푸레한 빛, 그들은 정말 거리와 외따로 떨어진 듯했다. 나는 전혀 빛을 바꾸지 않았다. 주변은 어두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은 오스만 가였다. 거리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었다. 빛이라곤 진열창에 설치된 조명뿐. 그러나 그 조명은 진열창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위로 반사될 정도로 강했다.(p.11-12) 진정 신비한 장면이 현현하였다. 그녀는 불현듯 중세의 동정녀 마리아가 되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게, 나머지 다른 승객들은 다 어둠 속에 있는데 그녀 얼굴에만 빛이 들어온 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다.(p.27) 드디어 혼잡과 희망으로 요동치는 분위기 속에 깡마르고, 피곤에 지친 포로들이 도착했다. 그 속에서 어떤 간호사가 한 병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수송 기차에서 그를 돌봐준 간호사였을 것이다...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사진을 어떤 책에 소개할 수 있었다.(p.49-50) 사진의 내용이나 담긴 이야기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찍어보고 싶은 사진은 빛을 최대한 이용하는 사진이다. 세 장은 사진은 단순하면서도 광선으로 아름답게 돋보인다.
이 사진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양쪽 스키 플레이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도약할 때 내가 코치에게 매달려 뛰었기 때문이다. 내 등 뒤에 코치의 배가 닿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코치의 두 스키 사이에 내 두 스키가 엇갈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각자의 오른쪽 스키다. 왼쪽은 화면 밖에 있다.(p.42) 1992년, 여든두 살의 나이, 스키를 탈 수 있다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이이다. 평생을 사진가로 살아온 작가는 패러글라이딩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열정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나 보다.
여행 중에 아내를 모델로 하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지금은 모두 노인이 되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부인, 이 아이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빵을 사서 나올 때요. 빵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찍어보고 싶은데요." "그래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세요. 안 될 거 없죠." 나는 약간 뒤로, 좀 멀리 가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빵을 사서 나온 아이는 이토록 귀엽게, 이토록 신나게 달렸다. 난 최상의 사진을 얻기 위해 아이를 세 번 뛰게 했다. 이 사진은 정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엽서로, 포스터로 제작되어 심지어 뉴욕이나 유럽 여러 도시의 식당이나 빵집에서도 볼 수 있었다.(p.171-172) 사진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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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사진과 관련된 책은 지나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무슨 전문가 수준의 사진 실력은 아니라서 그저 아이들의 일상 정도를 기록하는 사진 정도?
서점에서 보게 된 윌리 로니스의 사진 에세이집은 표지부터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역시 아이들의 표정이란.....
책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행동들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사회 고발적인 사진도 보이지만 그래도 시선이 가는 사진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평범한 사진들이다.
2차대전부터 2000년대까지를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것들을 담담하게 담아 낸 인정많은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든다.
두 권을 샀다.
하나는 아이들과 같이 보려고, 또 하나는 절친에게 선물하려고 ....
표지도 두껍고 단단해서 보통 책 보다도 훨씬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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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이렇게 찍는것이다' 라고 부르짖는 다수의 기술적 정보를 담은 책과는 다르게 이 책은
'사진이란 이런 장면을 찍는것이다'라고 말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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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런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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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타국의 어느 일상. 그 낯설음에 쉬이 눈길을 주지 못한다. 영어 Test 문제에 나오는 흑백 사진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내 짧은 식견 탓이리라.
일상에서 의미 찾기란 참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눈과 귀를 비롯한 신체는 점점 자극적인 것에 반응하고 일상적인 것에는 무던해지고 있다. 그러한 자극적인 것을 갈구하는 대중을 위해 대중매체는 좀 더 자극적이게 contents를 포장한다. 또 한편으로 대중매체의 포장이 워낙에 자극적인 것으로 변모하기에 대중은 자연스레 둔감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서로 맞물려 '자극성'을 추구하는 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한다. 포착된 순간만을 놓고 앞 뒤 상황에 대한 상상을 펼친다. 이것이 사진과 어떤 목적성을 띄고 그린 그림과의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이 사진을 통해 그려질 수 있는 부분이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 사진,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음식. 지금 떠오르는 사진들이다. 풍부함을 지닌 사진이라기 보다는 단순함을 지닌 사진들만을 보고 지내는 듯 하다. 상상력이 필요 없는 사진들에 익숙해서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렇게도 지루해 했나보다.
- 자기愛가 강한 청춘 ilmy (http://www.il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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