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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책은 내게 전혀 예기치 않게 받아버린 선물과도 같았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오늘날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의 보르헤스와 맞먹을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나온 그의 작품은 딱 둘 뿐이다. 하나는 '모렐의 발명', 다른 하나는 '러시아 인형'. 전자는 장편이고 후자는 단편집이다. 카사레스는 생전에 9 개의 장편을 썼는데, 소개 된 것은 초기작인 '모렐의 발명' 딱 하나인 것이다. '러시아 인형'은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단편집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그의 첫 모습과 마지막 모습밖에 없다. 중간 과정이 싹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카사레스의 네 번째 장편인 '영웅들의 꿈'이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중간 과정, 한창 자라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열렬히 보고 싶었던 내겐 선물이라 할밖에. '영웅들의 꿈'은 '모렐의 발명'과 색깔이 많이 다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그리 드러나지 않는다. 현실 속 아르헨티나의 공간을 가져왔고 이야기 역시 리얼리즘적인 색채가 강하다. 물론 이것은 '모렐의 발명'이 가상 현실을 다루고 있고, '영웅들의 꿈'이 실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영웅들의 꿈'이 '모렐의 발명'과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실이 반복되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미스터리적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진리는 외부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부의 문제라는 것과 사랑이 이 모든 당황스럽고 혼란과 불안 속에 내던져진 우리네 삶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게 그러하다.
주인공은 가우나란 남자다. 어느 날 그는 경마에서 큰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친구들과 함께 모조리 써버리기로 작정한다. 그러다 우연히 가면을 쓴 여자와 만났다. 그는 단 번에 매혹되었는데, 술에 몹시 취한 상태에서 어쩌다 헤어져 버린다. 그는 여인을 잊지 못하고 내내 그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연극을 하고 있는 '클라라'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잠시 가면을 쓴 여인을 잊지만, 그녀가 자기 말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 한 사실을 알게 되자 멀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가우나는 배신을 당해 헤어지는 건 자존심이 상해 클라라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별하는 것으로 보게끔 그녀를 피하는 것으로 거리를 둔다. 대면 보다는 회피를 선택한 그는 비겁하다. 우리는 여기서 이 소설이 두 개의 대비되는 세계가 있는 것을 본다. 하나는 비겁자의 세계고 다른 하나는 영웅의 세계다. 그렇다. 제목의 '영웅들의 꿈'은 자신에게 아무리 상처가 되고 두려움과 역경을 가져다 주어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자들을 나타낸다. 소설에서 영웅이란 마주 보는 자, 당당하게 겨루는 자다. 이런 영웅에 가장 걸맞는 존재는 클라라다. 우리는 소설 마지막에서 가우나가 꿈처럼 겪었던 가면을 쓴 여인을 만났던 사건의 진실과 그것이 내내 반복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클라나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가우나처럼 피하려 하지 않는다. 마법사인 아버지가 남겼던 예언을 믿고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건다. 이렇게 소설 '영웅들의 꿈'은 믿음과 영웅에 대한 소설이다. 그것을 비겁자에서 영웅으로 나아가는 가우나의 여정을 통해 보여준다. 그의 옆에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귀가 덮일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썼으며, 손으로 도자기 그릇을 들고서 돈을 받았다. 그 아이를 보자 가우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불쌍한 그리스도! 손에 침 뱉는 그릇을 들고 있다니! 이것은 배꼽 잡고 웃어도 될 일이야!'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달빛>을 들으면서 그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인류 전체와 우애를 돈독히 하겠다는 긍정적인 충동을 가슴으로 느꼈고, 선을 위해 행동하겠다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느꼈으며,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하겠다는 우울한 욕망도 느꼈었다. 목이 매어 눈물을 흘리면서 그는 마법사가 죽지 않았다면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p. 293 ~ 294) 믿음이 나오는 것은 비겁자가 되느냐, 영웅이 되느냐가 바로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 해석이란 세상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낸다. 즉 '믿음'이다. 이런 믿음의 테마는 클라라 아버지인 마법사의 예언을 통해 제시된다. 비겁과 영웅의 대비와 마찬가지로 '영웅들의 꿈'엔 또 하나의 뚜렷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믿음이 없는 자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있는 자의 세계다. 소설 초반에 가우나가 속했던 '발레르가 박사'의 세계가 전자의 것이고 클라라 아버지 세계는 후자의 것이다. 때문에 소설 후반에서 클라라를 두고 발레르가와 가우나가 결투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우나가 클라라처럼 영웅이 되기 위해선 발레르가의 세계를 찢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믿음이란 결국 자신에게 달린 것이므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를 보는 시선이 곧 세상을 보는 시선인 것이다. 그 시선을 통하여 발레르가 박사와 마법사의 세계는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전자는 속물의 세계요, 후자는 영웅의 세계라는 것을. 모든 걸 하나로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발레르가의 세계는 이런 의미가 된다. 믿음이 없어 오로지 세상의 기준에 눈을 맞추어 자신의 부족과 불행만을 보고 보다 고귀한 가치를 위하여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 피하려 한다면 비겁자요,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법사의 세계는 여기에 정확히 반대의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웅은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바로 카사레스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는 궁극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영웅은 자신의 결단을 통해 형성한다고. '모렐의 발명'이 그랬듯이, 우리는 어떤 존재를 찾기만 하면 삶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건 대개 가상 현실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우나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가면을 쓴 여인이 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구원은 사실 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고인 물을 감로수라 여기며 마셨던 것에서 깨달은 '일체유심조'와 통하는 이야기라 말하겠지만, 그래도 어쩌랴! 진리는 물과 같아서 담는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질지언정,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을. 이런 구도의 소설로 읽으면 왜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보르헤스에 버금가는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지 잘 이해될 듯 하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좋은 문장이 많아서 그렇게 여길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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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헤겔을 비판했던 마르크스는 그에 덧붙여 “헤겔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라고 말했다. 나는 필연과 운명론을 꺼내기 위해 이 인용을 한 게 아니다. 인간의 서글픈 메커니즘을 말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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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마음이 열린 것은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였다. 몽환적이면서 게다가 반전의 묘미로 잔상이 오래 남았던 [파이 이야기]와 영화 [일 포스티노]의 정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이야기들은 나에게 생소한 라틴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야기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에서 당황스러움이 밀려왔고 내재되어 있는 의미 전달은 고사하고 절반을 넘기면서도 글자만 읽힌 듯했다. 또한 1920년대의 아르헨티나의 모습이 잘 구현돼 있다고는 하나 당대 배경지식의 부족이 문제였다. 그렇게 무언가 허공만 짚어대다 추리의 끝이 보이는 막장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막이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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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나는 그날 밤에 언뜻 보았던 것을 다시 보겠다고,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에밀리오 가우나는 이발사 마산토니오의 제안으로 경마에 배팅했고, 운 좋게도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마산토니오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가우나는 벌어들인 돈을 함께 모이곤 하는 친구들과 그가 존경하는 박사를 위해 쓰겠다고 결심한다. 마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카니발이 한창이었는데, 가우나는 카니발이 열리던 사흘 내내 술과 클럽에 흠뻑 빠져 돈을 펑펑 쓴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었던 세 번째 밤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게 됐고 호숫가 근처 낯선 곳에서 홀로 정신을 차리게 된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환상적이었다고 생각되었던 그 세 번째 마지막 밤에 집착을 하게 된 가우나는, 그 때 경험하고 보았던 것들을 다시금 보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게 된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집착하게 된 가우나. 과연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그 기억 그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선과 악의 쟁투, 그리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선함, 그리고 악함의 공존을 가장 극명하게, 또 분명하게 드러내고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든 [영웅들의 꿈].
가우나가 선택한 부분에 대해서 인과응보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 또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재의 소중한 것을 놓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점에서 내가 생각했고 또 예상했던 그런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실수가 보이고 나약했기에 더욱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가우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꿈. “현재를 배신하는 대가로 과거에 충실할 수는 없”다고 말했던 한 등장인물의 말처럼, 과거, 그리고 현재를 넘나드는 한 영웅의 인간적인 쟁투를 함께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어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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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장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영웅들의 꿈>은 위의 두 가지 부문을 모두 접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특히 환상적 사실주의 작품들로 유명한 보르헤스가 극찬한 작품이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책 띠지에는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선구자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란 문구가 적혀 있어 강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환상문학이란 수식어와 <영웅들의 꿈>이란 제목, 마치 고대문명과 같은 표지를 보며 신화적 소설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으나 그 상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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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작품 <영웅들의 꿈>은 아르헨티나가 세계 10대 부국이었던 시대인 1927년부터 1930년 3월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서적에 대한 해석과 감상은 독자에 따라 매우 다양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생각이 깊어질수록 또는 1927년 카니발 사흗날 밤에 에밀리오 가우나에게 벌어졌던 일에 대한 추리와 상상을 하면 할수록 저자의 선과 악의 메타포에 점점 빠져 들 우수한 서적이다. 주인공인 에밀리오 가우나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 맡겨져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정비소에서 근무하는 21세의 청년이다. 어느 날 이발사인 마산토니오의 조안을 들어 배팅한 경마에서 많은 돈을 벌어 자기가 모델이자 스승으로 모시는 세바스티안 발레르가 박사와 카페에서 어울리던 친구들과 카니발 사흘 동안 술과 클럽을 다니며 모두 써버린다. 하지만 사흗날 밤에 일어난 일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신비롭고 마술적 경험을 했다는 잔상에 그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3년 동안의 여정과 3년 후 1930년 3월 경마에서 다시 많은 돈을 벌어 똑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그 그룹과 카니발 기간에 어울리려 3년 전 벌어진 기억을 찾는다. 1927년 카니발이 끝난 후 사이 마법사 세라핀 타보아다찾은 날 그의 딸 클라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여 부족하지만 행복한 기간을 보내면서도 가우나는 순간 순간 의리를 저버리는 게 아닐까 혹은 타인의 눈에 멋진 남자로 비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20대 초반의 미숙함이 보여진다. 이 서적에서 박사라고 불리는 발레르가는 악마이다. 야비하고 비천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순진하고 어리숙한 청년들을 거짓과 공포심을 유발해 장악하여 악의 굴로 인도하려 한다. 그리고 마법사인 타보아다는 선인으로 알레르가와 그의 진정한 친구 라르센에게 지식도 가르치며 진짜 영웅으로 사는 법을 가리치고 그의 딸 클라라는 가우나의 수호천사이다. 가우나에게 타보아다는 발레르가 박사그룹과 어울리는 게 매우 좋지 않다고 경고까지 하며, 클라라에게는 가우나를 반드시 지키라고 유언을 남긴 후 임종을 한다. 가우나가 마주하는 3년 전에 벌어진 놀라운 진실은 독자들을 가장 흥분시키는 부분으로서 서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적은 피 끓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극명한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과 더불어 인간이 지닌 악과 선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가장 좋은 부분은 타보아다가 가우나에게 했던 말이 울림을 주었던 부분이었다. 서적을 읽으며 조금은 복잡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고 싶어 하는 독자라면 매우 환영을 받을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P201"우리는 친구들에게 항상 충실할 수는 없네. 일반적으로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는 창피해지네. 그래서 현재를 배신하는 대가로 과거에 충실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자신의 판단을 따르지 않는 사람보다 더 커다란 재앙은 없다고 자네에게 말하고 싶네“ P237 행복에는 관대한 아량이 있고, 모험에는 이기주의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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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라틴문학이다. 한참 소설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설 속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설을 드문드문 읽게 됐다. 그리곤 쉽게 읽히는 추리소설만 찾아읽게 됐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라틴아메리카 소설. 유럽 소설과도 다르고 미국 소설과도 확연히 다른 이 소설에 흠뻑 빠져 며칠간 허우적거렸다. 보르헤스 소설에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오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영웅들의 꿈>도 분명 좋아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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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단 한 번만 존재한다. 그것을 그는 알지 못했었다. 그것이 과거를 불러일으키려는 마술, 즉 가우나의 미약한 시도가 실패한
이유였다. (318p)
그는 마침내 자신의 운명이 과거의 방향을 되찾았고, 자기 운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냥 그렇게 느꼈다. 또한 그 것이 올바르다고 여겼다. (380p)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이끄는 두 명의 이름을 붙여서 ‘비오르헤스(비오이+보르헤스)’라고 한다는데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알고 있었지만,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름은 저 역시 낯설었어요. 하지만 <영웅들의 꿈>을 읽고 나니,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알 거 같더군요. 저자의
말의 마무리에 그의 이니셜이 ‘A.B.C’가 눈에 들어오더니, 어쩌면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들이 하나씩 더해져 나갔는데요. 시간, 기억, 꿈, 운명, 선택, 사랑, 거짓말, 불행 그리고 영웅으로 이어지더군요. 그리고 계속 그 단어들에서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시간 여행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분명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1927년 그리고 1930년 카니발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웅 신화 속으로 점프하는 기분도 들고, 때로는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희곡이 투영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한 때는 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도시로 성장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영과 쇠퇴를 작품에 그대로 녹여놓은
거 같기도 하고요. 1927년 행렬로 가득하고 축제의 정신으로 고양되었던 카니발이 이제는 ‘시커먼 몰락’으로 물들었던 것처럼 말이죠.
소설을 읽으며 하나씩 더해지던 단어를 나열할 때도 책 제목이기도 한 영웅이 가장 마지막이었는데요. 책을 읽다가도 문득 왜 책 제목이 ‘영웅들의 꿈’인 것일까 의아해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와서 그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소설 속의 영웅들은 자신의 위대한 모험담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웅은 조금은 다른 형태일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죠. 스스로도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약간의 위트를 더해 이 작품을 꼽았다고
하더니,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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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아주 낯선 작가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유명 작가들의 추천글에 비해 너무나도 인지도가 떨어진다. 오히려 추천글을 쓴 작가들이 더 낯익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작가 이력을 보다 발견한 작품 중 한 권이 이전에 읽은 적 있는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이다. 이 소설을 아주 힘들고 어렵게 읽었던 기억만 있다. 아마 그 당시 읽었던 것도 공저자 보르헤스 때문이다. 그가 쓴 탐정소설이란 홍보에 혹해서 읽었고, 취향과 너무 달라 어려워했었다.
이번 작품을 읽게 된 이유도 역시 추천글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대표작이란 것과 몽환적 환상으로 채색되었다는 글에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1927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의 카니발 기간에 있었던 일을 3년이 지난 후 다시 재현한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을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억들은 뒤로 한 채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영웅들의 꿈’이란 제목만 보고 실제 영웅들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이 기대는 읽기 시작하자마자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대신 이 기대는 가우나의 솔직한 심리 변화와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생활상으로 대체되었다.
가우나는 자동차 정비공이다. 이발사의 추천으로 경마에서 1,000페소의 상금을 번다. 사실 이 금액이 현재 화폐로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이야기 속에서 큰 금액임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 돈을 자본으로 삼아 더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가우나는 존경하는 발레르가 박사와 친구들과 함께 이 돈을 모두 사용하기로 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 흥청망청 돈을 쓴다. 그러다 가면을 쓴 여자와 만난다. 정체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사흘 동안의 체험은 희미한 기억 속에 남겨진 채로 말이다. 뚜렷한 것은 가면 쓴 여자뿐이다. 이후 그는 이때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한다.
가우나의 삶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난다. 마법사의 딸 클라라다. 이 둘의 연애는 아주 현실적이다. 들쑥날쑥하는 감정의 변화는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솔직하게 드러난다. 미묘한 마음의 변화와 행동은 가우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쉽게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그 동네 최고의 미녀라는 클라라의 연인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감정의 변화는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 그 당시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일까? 이 과정 속에서 나의 과거 연애 모습들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의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랑이다. 물론 결론은 사랑의 확신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사흘 동안의 카니발 이야기와 클라라와의 연애와 다시 잊고 있던 카니발의 기억을 재현하는 마지막 부분이다. 작가는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한 번 더 가우나에게 경마에서 큰돈을 벌게 한다. 이 재현은 변화한 시대상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체가 불명확한 발레르가 박사 무리와 함께 그때를 재현하려고 한다. 이 상황 속에서 예측했던 것 하나가 맞았지만 다른 결말로 이어지면서 현실과 꿈의 사이를 되짚어보게 만들었다. 마지막 문장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고, 환상과 시간 속에서 한 인물의 운명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모두 읽은 지금도 그 환상 속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돌아보고 의미를 생각한다. 아직은 나에게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