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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분량만큼이나 난해한 작가의 사상 전개
"작품의 분량만큼이나 난해한 작가의 사상 전개" 내용보기
대학시절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과제물로 독후감을 내야 했는데, 그 때 내가 제출한 것이 "카라마조프의 형제"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로 10여년이 지나도록 그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반적으로 다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이 진
"작품의 분량만큼이나 난해한 작가의 사상 전개" 내용보기
대학시절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과제물로 독후감을 내야 했는데, 그 때 내가 제출한 것이 "카라마조프의 형제"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로 10여년이 지나도록 그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반적으로 다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이 진행되었다. 마치 어떤 일이 일단 시작되고 나면 주위 상황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동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 일은... 이랬었다. 의욕적으로 수강신청했던 시작과 달리 공부에 별 흥미가 없던 내게 ''문학의 이해'' 역시 끝은 시큰둥해졌다. 책 읽기 좋아하고 대학에 다니지 않는 한 친구가 내 과제를 대신 해 주겠다고 했다. 친구로부터 타자기로 작성한 과제물을 건네받고는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제출했다. 어쨌든 고생해서 작성한 친구의 글을 읽어보지도 못 했으니 아쉬운 내 맘도 내 맘이려니와 친구에게 미안하다. 이제서야... 친구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 드디어 나도 책을 읽었다. 작년 가을 병원에서 지낸 시간의 사이사이를 메워준 책이다. 한 때는 러시아 문학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내 성격상 정신없이 푹 빠진 건 아니고 그저 다른 일에 비해 조금 깊게 조금 오래 관심을 가졌던 정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푸쉬킨, 고리키, 세르게이 예세닌...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나 보다. PC통신이 막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채팅을 하다가 서로 필이 통해 그날 바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혼자 나간 나와 달리 겁이 났는지 친구를 하나 데리고 나왔는데 부록으로 딸려온 그 사람이 러시아어과에 다닌다고 했다. 어색함을 의식하며 대화를 계속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나도 한때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었다고 말했는데(사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 사람, 적당히 할 것이지... 누구의 무슨 작품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하긴 그까짓 거 물을 수도 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난감하게도 갑자기 생각나는 이름과 작품이 없었다. 어쩜 그렇게 새카맣던지, 아니 안개처럼 하얗던 것 같다. 결국 음...음...그거 읽었었는데...하며 어버버버 거리고 말았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날의 번개는 서로 화면 속의 환상이 깨지면서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걸로 끝났다. 뭐, 지금도 작가와 작품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러시아 문학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이 있다. 우선은 집에 있던 문학전집의 탓이 크겠지만 양장제본의 고전적인 느낌. 그리고 방대한 분량. 모두 그렇진 않은데 몇몇 작품이 주는 인상이 압도적인 면이 있다. 광활한 대지와 농촌 풍경. 러시아 귀족과 농노제.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관계의 내면과 고뇌. 이런 것들... "카라마조프의 형제"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450쪽 분량 상,중,하로 구성될만큼 방대한 텍스트의 양이며 작품의 분량만큼이나 난해한 작가의 사상 전개,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어색하고 고전적인 문체, 등장인물들의 고뇌.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생각나는 한 단어가 있다. "야누스" 양면성. 선과 악, 신과 인간, 인간의 본성(성선설과 성악설), 신앙과 불신, 복종과 반역... 딱딱한 철학책으로나 쓰여질 법한 주제들을 소설로 풀어낸 저자의 능력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상의 찬사를 할 능력이 내겐 없다. 이 책이 쓰여진 게 1880년 전후니까 120년이 지났다.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말을 한다. 이 소설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인간의 탐욕, 부자간의 갈등, 서로 다른 형제들의 모습, 사랑, 음모... 살아가는 일의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현실을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은 120년이 지난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다.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온갖 인간의 굴레와 삶과 존재에 대한 의문들은 나의 삶과 내 속에서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 종종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던 질문들이었고 특히 선과 악의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잡고 흔들곤 했다. 나로선 아직 답을 찾지 못 했다.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여서 끝내 생을 마칠 때까지 난 결코 답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도 나는 답을 얻지 못 했다.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소설이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와 인류 공동의 불변의 진리에 해답을 준다고 했지만, 나로선 읽어도 모르겠다. 그 답이 무엇인지. 그냥 사는 동안 내내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고민하고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한동안 그런 질문조차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하권의 끝에 두 편의 작품론이 실려 있었다. 거기에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이 인용되어 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의 문호 스태판 츠바이크(Stefan Zwig)가 그와 그의 작품을 평한 글이다. (난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자들 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늘날 가장 위대하다. 이 격정적인 사나이, 이 비정상적인 인간처럼 많은 영혼의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음은 친구 E. N. 오포체닌이 이 소설을 쓸 즈음의 도스토예프스키를 묘사한 글이란다.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그의 모습은 평범하고 다소 딱딱해 보였는데, 붉은 기가 도는 수염엔 윤기가 흐르고 얼굴은 여위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오른쪽 볼에는 사마귀가 있었다. 그리고 슬퍼 보이는 두 눈은 의혹과 불신으로 이따금 불타 오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깊은 생각과 슬픈 표정에 잠겨 있었다."
n***b 2006.01.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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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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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는 김학수만 믿고 따라가라.민음사, 열린책, 범우사 다 읽어봤는데 범우사가 짱임.특히 범우사는 종이를 넉넉하게 사용해서 읽기도 훨씬 편함. 열린책은 망한 자간줄이기 때문에 눈알 빠지는줄ㅋㅋ도갤러 xx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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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는 김학수만 믿고 따라가라.

민음사, 열린책, 범우사 다 읽어봤는데 범우사가 짱임.

특히 범우사는 종이를 넉넉하게 사용해서 읽기도 훨씬 편함. 열린책은 망한 자간줄이기 때문에 눈알 빠지는줄ㅋㅋ

도갤러 xxlee

2****4 2011.10.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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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인간들과 인류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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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이다.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글을 읽으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인간 내면의 섬세함을 잘 그려서 인간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다. 즉 인간이 보여주는 단순한 행동의 이면에 있는 복잡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포작
"방황하는 인간들과 인류에 대한 사랑" 내용보기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이다.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글을 읽으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인간 내면의 섬세함을 잘 그려서 인간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다. 즉 인간이 보여주는 단순한 행동의 이면에 있는 복잡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포작하여 묘사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겉모습을 넘어선 각 개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선한 마음을 읽어낸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가져야 할 위대한 품성은 인류에 대한 사랑임을, 삶이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은총임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삶이란 일상의 곳곳에 스며있는 삶의 환희를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책 뒷면에 있는 저자의 얼굴은 평온하지 못하고 고뇌에 차 있다. 이 책 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잡다한 상념들이 그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과도한 상념의 여파로 찌들어진 얼굴을 가진 그가, 숱한 번민 속에 찾아낸 진실이란 것은 단순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포근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진실을 깨닫고 글을 쓰면서도 얼굴의 평화를 얻지 못함은 번뇌에 시달렸던 삶의 기록이요, 아직 그의 영혼이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체화하지 못한 까닭인 것 같다.  그의 얼굴은 우리에게 단순한 진실을 받여아들이고 번뇌에 빠져 방황하지 말라고 중고한다.

이 글은 까라마조프가에서 일어난 부친 살해라는 엽기적 사건을 줄거리로 하여 그 가족 구성원들의 삶과 생각을 그렸다. 며칠 상간에 일어난 일을 적은 단순한 이야기지만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그 속에서 등장인물이 가지는 생각의 흐름을 자세하게 따라가기 때문에 내용은 풍부하다.

이야기의 축인 세 형제와 나머지 몇몇 등장인물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한다.

큰 아들 드미뜨리 표도로비치는 미쨔라고 불린다. 부친 살해 혐의를 받으며 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는다. 그는 유복하지는 않지만 큰 어려움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인물로 깊이있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삶의 쾌락을 즐기며, 명예를 추구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인물이다. 감정에 휘둘려 살고 사람을 때리는 못된 짓도 하지만, 자기자신을 알고 있으며, 순간 순간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게 산다. 그루센까라는 여인을 두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위해 아버지와 경쟁하고 아버지에게 그녀를 뺏기지 않으려고 온갖 짓을 한다. 하지만, 신의 가호인지 자신의 마음속 깊은 의지 때문인지는 모르나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에 이르지 않고, 집의 하인을 다치게 하는데 그친다. 인간의 법정에서 아버지 살해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지만, 그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함에 신의 가호를 받아 큰 죄를 짓지 아니한다. 그는 겉보기에 불한당으로 보이지만, 저자의 심리묘사를 따라 그의 내면을 살펴보면 선한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약혼녀 까제리나 이바노브나와 관계와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그의 순수함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미쨔는 아버지의 돈 문제에 괴로워하는 이바노브나에게 돈을 주어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지만, 그는 돈을 빌려줄 때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순수하지 못했던 생각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며 그녀를 가까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서 떠나고 싶어하며 이를 위해 큰 돈을 받는다. 그리고, 이 돈을 새로운 여인 그루센까와 시골마을에서 축제를 벌이며 탕진한다. 그런데 돈을 다 쓰지 않고 반을 남겨놓으며, 돈이 아쉬운 매우 어려운 순간에도 남겨둔 반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돈을 다 쓰면 자신이 파렴치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집에서 집사를 해치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죽을 생각을 하고서야 광란속에서 그 돈을 써버릴 수 있었다. 아버지 살해사건을 조사하는 인물들이 생각하듯 남에게 받은 돈을 탕진하면서 전부를 쓰는 것과 반을 남기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마는 그에게는 심각한 차이였고 그는 그것을 지키기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리석지만 자신이 삶속에 느끼는 조그마한 차이,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충실하게 듣는 인물이다. 고매하지는 못하지만 순수한 영혼은 돈 때문에 품위있는 여인과 친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여인이 주는 돈은 번뇌의 씨앗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를 미워할 수 없으며, 오히려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가지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며 온갖 실수를 하고 사람을 폭행하는 악행까지 행하지만, 그 마음에는 어린아이 마음같은 순수함이 있다. 그래서, 신의 가호를 받아 아버지를 살해할 위기를 모면하고 그에게 머리를 맞은 집사도 죽지 않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욕망에 따라 살고 삶의 환경에 따라 심하게 무너지기도 하지만, 마음에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 선량한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신의 은총을 깨달은 그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항소하지 않으며, 유형을 자신의 죄과에 대한 벌로 여기고 달게 받는다. 그리고 유형길에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그루센까가 동행한다.

                                               

둘째 아들 이반 표도로비치는 냉철한 사색가이다. 그래서 신학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신문에 기고할 정도로 지적이지만 그의 영혼은 논리에 빠져 지혜를 얻지 못하고 헤맨다. 타인을 따뜻하게 사랑하지 못하며 자기관념에 빠져 냉정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본다. 이복동생인 사생아 스메르쟈꼬프에게 나쁜 정신적 영향을 주어, 결국 동생을 부친살해라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성에 기초한 사회에 빠져 진실한 삶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깊이있는 논리적 분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남에게 정연하게 이야기 하지만, 그의 사상은 뿌리가 없다. 신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이성의 가르침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외치는데, 존재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의 고뇌를 따라가 보자. 인간이 행하는 수많은 악행을 보면 그 사악함을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신은 없다. 그런데, 신이 없다면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말해 초월적 존재에 기반한 원래적인 선악이 없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따라서, 탐욕에 찌들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도 사회의 선을 위한 것이기에 꺼리낌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를 죽이는 것과 아들이 죽이는 것에 무엇이 다름이 있겠는가. 그런데, 막상 이를 행하려고 하면 할 수가 없다. 그것을 못하게 막는 자신의 영혼이 있음이요, 신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로만 파고들고 논증에 빠져 있으면 눈 앞에 선명한 사실마저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반은 자신도 행하지 못하는 그 관념을 이복동생 스메르쟈꼬프에게 심어주어 아버지를 죽이게 한다. 지혜없는 상념은 악을 만들었을 뿐이다.

현실의 적나라함 앞에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상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반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순수함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따라 아이들처럼 살면 족할 것인데, 부질없는 지식에 발목을 잡힌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상념에 빠져 시들시들 병들어간다.

이반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 지식만 가득한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리고 지식 속에 스러져가는 인간이다. 존재와 사랑에 대한 생각에 앞서 사회적 선이나 불의에 눈뜬 사람이며, 인간이 가지는 한계 앞에 겸허해지기 보다는 자신의 상념만 믿고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욕망에 따라사는 형 미쨔보다 더 불행한 일을 만들며 그 형보다 즐겁지 못하다. 형이 가지고 누리는 욕망의 충족을 통한 원초적인 즐거움조차 얻지 못하는 가련한 삶이다.

이반은 저자의 자화상이다. 깊은 심연속에 이런 생각에 빠져 마음을 번민에 빠뜨린 사람만이 이반을 이렇듯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다. 대심문관이라는 제목하에 길게 늘어놓은 신과 인간에 대한 상념은 저자 자신의 번뇌였다. 지적인 활동에 앞서 삶은 싱싱하게 이어지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상념의 노예가 되는 것은 어리석음에 빠졌다. 인간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또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평안을 느낀다. 악한 인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게 악행이 행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도 삶의 일부인 것을, 그렇다고 그 모습에 빠져 아름다운 인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저자는 지혜를 얻었음에도  그에 따라 편안하게 살지 못한다. 이성 중심의 사고에 한 번 빠지면, 단순한 진실을  관념 속에서는 이해하더라도 삶 속에서 녹여내는 것은 어렵다. 간교한 이성이 계속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고 속삭이며, 인간은 그 늪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실은 그 상념에 애당초 빠지지 말았어야 했다.

셋째 아들은 알료샤라고 불리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이다. 누구나 사랑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선한 인간이다. 그는 장로 밑에서 생활하며, 삶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인물이다. 그가 모신 조시마 장로는 찾아오는 사람을 이해해주고 영혼의 빛을 선사하는 수도사이다. 많은 것을 설명하지도 누구를 설득하지도 않고 존재 그 자체로서 사람을 감화시킨다. 알료샤는 한 여인을 사랑하며, 그를 이끄는 알 수 없는 힘에 순종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어떤 곳에 가야한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왜라는 질문을 하기보다 그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 영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집안의 액운을 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의 무죄를 확신한다.

알료사에 대한 묘사는 두 형에 대한 묘사에 비해 분량이 적다. 신의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은 그 만큼 단순하기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메르쟈꼬프, 까라마죠프가의 형제이건만 이 글 속에서 위치는 이방인이다. 거지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들, 엄마는 그를 낳는 과정에서 죽었으며, 그는 아버지 집에서 하인으로 자란다. 간질이 있는 병적인 인물이며, 삐뚤어진 영혼은 형 이반의 현란한 논변에 넘어가 부친을 살해한다. 누군가의 도구인 가련한 인물이다. 어리석게 태어난 불운한 삶을 악행으로 마감한다.

그루센까는 어려서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지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에는 미쨔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와 같이 살기로 한다.

까제리나 이바노브나는 귀부인다운 품위를 지닌 여인이다. 하지만 미쨔의 도움을 받고 그에게 헌신하고자하나 미쨔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지혜는 없는 여인이다. 누구를 돌보기 보다는 돌봄을 받는데 어울린다. 귀부인답게 현란한 수사와 논리를 가진 이반을 좋아하며 번뇌한다.

세형제의 아버지 표도르 빠블로비치는 욕망과 쾌락에 젖어사는 인물로서 어느 한 구석 고귀한 것이 없다. 돈을 얻기 위해 애쓰고 얻은 돈으로 즐기는 삶을 산다.

이 글에서 또스또예프스키는 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성의 위험함을 경고한다. 죄와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러했고 이 글의 이반이 그러하다. 영원한 진리의 한켠을 묘사하는 것에 불과한 이성을 생의 전부인양 바라보고 그 이성에 빠져 단순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죄악에 빠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삶은 죄가 아닌 아름다움을 보아야 하며, 남의 죄를 벌하기는 것에 골몰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노력 속에서 자연히 죄에 대한 올바른 태도도 만들어진다.

 

k*****e 2014.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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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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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번역, 범우사 출판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작년에 ‘해변의 카프카’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카라마조프의 형제’같은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포부를 말했을 때부터 나도 그 작품이 왜 그렇게 무라카미가 강조했는지 의문이 가서 자꾸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곧장 빌리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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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번역, 범우사 출판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작년에 ‘해변의 카프카’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카라마조프의 형제’같은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포부를 말했을 때부터 나도 그 작품이 왜 그렇게 무라카미가 강조했는지 의문이 가서 자꾸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곧장 빌리게 되었는데, 흔히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19c 러시아 현대문학은 난해하기 그지없다는 나의 편견도 작용해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소화해 낼 역량이 되는지 두려움까지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 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본 일이 있어서 일단 스토리를 대강 알고 있으니 막막함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사그라져 있었다.

연극으로 한번 본 것이어서 그런지 대강의 큰 스토리는 대충 기억이 났다. 선과 악의 구분조차 없이 추태를 일삼는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 난폭하고 정욕의 화신이지만 한편으론 그지없이 순수한 장남 드미트리(미챠), 굉장히 이성적이고 똑똑한 차남 이반, 카라마조프가이지만 순수한 신앙심의 소유자 알렉세이(알료사), 그리고 이 작품의 극적인 존재인 사생아 스메르쟈코프. 이 들이 벌이는 갈등은 단순한 가족의 문제가 아닌, 러시아의 그리고 인류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결코 확대 해석이 아닌 듯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인물들을 통해 신에 대해, 선악에 대해, 가족에 대한 그의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이 그의 말년에 쓰여진 마지막 작품이어서 그런지 그의 인생에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다시 재현된 장면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죽음이나, 시베리아 유배 등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할 특별한 경험들을 했다. 이런 불행들이 오히려 이 작품에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은 작가가 이반을 통해서 무신론을 펴거나, 재판이 농민들에 의해 오판이 내려지는 결과에서 사회를 보는 작가의 눈을 볼 수 있다. 이 시니컬한 냉소적인 눈빛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갈등을 극적으로 몰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과연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보면(물론 작품 속에서는 러시아 정교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독실한 사람들은 이 책을 악마의 작품이라고 부를 것인가?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이 무신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미챠를 죽도록 미워하던, 그리고 아버지를 교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이반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형을 돕기 위해 마지막 법정에서 혼신을 다해 노력한 것을 보면, 결국 귀결은 해피엔딩이 된다. 이들 형제의 용서와 화합은 결과적으로 가족의 결합인 동시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 인물의 결합이고, 인류의 결합을 나타내는 결말이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이 작품을 어려워하고 있다. 특히 <대심문관>에 나왔던 부분은 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일부에서는 추앙을 받지만, 일부에서는 미치광이의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런 문제를 떠나 그가 인류에게 남긴 질문으로 인류는 더욱 고민하게 할 것이고, 더욱 인간을 성숙시켜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한 명의 ‘카라마조프’이기 때문이다.
z*******2 2009.04.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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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시 읽고 싶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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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졸업하고 읽었던 책인데, 재미 있으면서 지루하기도 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와 존경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세심한 묘사들 사이에서 재미와 지루함을 함께 했던책...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단 말을 하지않는거야'' 라던 그멘트는 이 책에서 왜 미안하단 말을 하지 말라는 건지 그 이유와 함께 나오는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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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졸업하고 읽었던 책인데, 재미 있으면서 지루하기도 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와 존경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세심한 묘사들 사이에서 재미와 지루함을 함께 했던책...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단 말을 하지않는거야'' 라던 그멘트는 이 책에서 왜 미안하단 말을 하지 말라는 건지 그 이유와 함께 나오는걸 보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들.. 세상의 인간군상이 모두 다 표현된듯한 이책에서 나는 이들중 어느 인간상인가? 적어도 3형제는 아니고 4째? 이상하게도 그 4째 아들에게, 열정적이지도 않고, 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결한 성품을 가진것도 아니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어했던, 그 사상이라도 따라하고 싶어했던 4째 아들이 연민이 느껴지고, 왠지 내게는 더 가까운거 같아 작가에게 항변하고 싶었던, 막 화가났던 기억들... 다시 한번 읽고 싶긴 한데....다시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y****w 2006.04.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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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 (1,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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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읽었으나 기억의 흔적이 희미한 것을 보면 당시 내 자신의 문학적 감상력이 낮았나보다. 나이가 들고 감상력이 조금 나아진 지금에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위대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톨스토이와 동시대의 인물로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톨스토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의 범위안에서 상황과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면 도스토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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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읽었으나 기억의 흔적이 희미한 것을 보면 당시 내 자신의 문학적 감상력이 낮았나보다. 나이가 들고 감상력이 조금 나아진 지금에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위대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톨스토이와 동시대의 인물로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의 범위안에서 상황과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광기, 이중성, 혼란, 비굴 등등 광폭의 감정적 역동을 느끼게 한다. 이 부분이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주는 묘한 중독성인듯도 하다.


동 작가의 이전의 모든 작품들이 이 한권을 위한 습작이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다. 다 읽는데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철학적, 종교적 사상이 있는 부분은 곡선주로 같아 속도를 늧출 수 밖에 없으니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작가의 스타일은 아무래도 그의 생활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와는 달리 경제적인 곤란 등 삶의 질곡속을 달렸기에 정신적인 광기가 마치 종이에 스며든 얼룩처럼 그의 작품 속에 베어있나 보다. 소설 작품론에 그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묘사한 그의 용모를 통해 그가 어떠한 인물이였을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장편소설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각 인물에 대한 단편들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복합성을 띄게 되고 여러 맛을 전달해주는 진수성찬이 되는 것 같다.


아버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세속적이고 물욕적인 난봉꾼인 표도로 파블로비치와 그의 세 아들, 미챠, 이반,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 여기에 이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여인들, 캬차, 그루센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는 "살인"이 많은 경우 테마로 등장하게 된다. 여기도 빼놓지 않고 "친부살인"이라는 테마가 등장한다.  긴 소설의 줄거리를 여기에 적을 일은 아니겠지만 "죄와벌"에서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고민하는 라스콜라니코프의 모습도 보이고 "악령"에서 느낀 스트로브긴의 정신적 분열도 느끼게 한다. 알료샤는 "백치"의 무슈킨과 흡사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니 이 하나의 소설이 그의 전작들의 집대성이란 느낌을 받게 한다.


유명한 작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작품론이 있고 이 책 말미에도 두편의 작품론이 있기에 분석적인 측면은 그 내용을 보는 것이 나을 듯 싶다. 


톨스토이의 종교관이 좀 이단스러운(?) 점에 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분히 종교적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그의 작품속에 무신론과의 많은 투쟁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작가도 머리속에서는 신앙과 불신간에 많은 고뇌가 있었을 듯 싶다.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추앙하는 것도 그런 비슷한 고뇌를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론은 서로가 다르게 내렸을 망정...


훌륭한 소설은 읽는 과정 속의 시간이 행복이다. 텍스트가 나를 단순히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때에 따라서는 광대가 될 수 있는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느끼게도 하고, 또 어떤면은 인간이 얼마나 따뜻한지 진한 감동을 준다. 더불어 철학적, 종교적으로 논쟁속에서는 삶에 대해 고뇌와 초월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모든 것이 한편에 녹아 있는 소설이다. 


3/15/2014






a***k 2014.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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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놓을수 없었던 명작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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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범우사에서 나온 세권(상중하)들중에서 상이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책은 범우사에서 1988년도에 출판된 책으로 상과하권 두권으로 엮어진 책이다. 물론 헌책방에서 싸게 샀다.   그런데 그 당시가 아무래도 약 이십년전에 나온 책이다 보니 인쇄상태가 깔끔하지 못하거니와 글씨체 역시 지금 현재 출판되는 책들의 글씨 크기에 비해 크기가 약 3분의2 정도의 크기라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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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범우사에서 나온 세권(상중하)들중에서 상이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책은 범우사에서 1988년도에 출판된 책으로 상과하권 두권으로 엮어진 책이다. 물론 헌책방에서 싸게 샀다.   그런데 그 당시가 아무래도 약 이십년전에 나온 책이다 보니 인쇄상태가 깔끔하지 못하거니와 글씨체 역시 지금 현재 출판되는 책들의 글씨 크기에 비해 크기가 약 3분의2 정도의 크기라서 책을 볼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내용의 분량 역시 엄청난 장편인데 세권을 총 합하면 약 1300페이지정도가 될듯한데 아마도 이 책에 덤비려면 대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면 책을 놓을수가 업다.   그런 책과의 어려운 씨름에서도 이 책은 내가 오기로라도 보고자 했는데 읽다보니 내가 읽는것을 포기 할수 없게 만든다. 이책은 두권을 약 두달동안 보고 오늘에서야 막을 내렸다. 후련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보니 아쉽기도 하다.   이 책의 등장하는 까라마조프가의 4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까라마조프적 특징과 각 개개인간의 확고한 개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어떤 영화보다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묘사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데 어떤 부분이나 어떤 인물에 대해 묘사할때 그 글이 보이는것 이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특징이 있다.   까라마조프가(家)와 그의 하인들을 중심으로 여러명의 인물들(여인들과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사건에 휘말리며 누명을 쓰게된 장남 드미뜨리와 실제의 아버지를 죽인 하인 스메르쟈꼬프의 자살 그리고 그후 법정에서의 잘못된 오판으로 결국 짓지않은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엮이면서 풀어나간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작가 역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작가로 보이는데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의 글 안에서 많은 문제로 나타난다. 그것을 까라마조프가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확고한 개성에 반영하고 그들의 사상적 대립과 심리적 상태를 통하여 그가 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표출하는것 같다.   가장 중요한 핵심적 문제는 신의 문제와 자유의 문제인데 '신이 있느냐 없느냐' 또 자유에 관한 초점등을 난해하고 어렵지만 지금의 시대에서도 우리와 멀지 않은 대립들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도 무수히 나타날 대립을 이 책을 통하여 표현한것이라 생각된다.   톨스토이와 동시대를 살았고 그와는 또다른 그의 문학은 지금도 무수히 많은 나라에서 읽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없는것 같은것이 아쉽다. 아마도 그의 내용의 난해함, 복잡성, 종교성, 사상성등 여러가지 관점을 이용한 혼란과 방대한 분량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책이라 생각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것은 읽어보면 알게 될것이다. 흥미는 관심이 없다면 아무래도 떨어지겠지만 가끔가다 심오한 생각도하고 인류와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을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한번보았지만 아마도 앞으로 몇십년을 더 살게 되는 동안 두세번 더 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만약 시간이 많다는 전제라면 읽어볼것을 권한다. (시간이 없다면 몇달 각오하고 봐야할것이다.)
p*******2 200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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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가장 감명 깊게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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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1997년) 때 학급 문고 한켠에 꽂혀있던 책이다. 제목도 왠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이고 책도 예쁘다기보단 투박해보이고 게다가 전 3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책이기에 처음엔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학급문고에 있는 책들이 거의 그랬다.종의 기원, 적과 흑, 성 등 다들 고전이고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이었지만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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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1997년) 때 학급 문고 한켠에 꽂혀있던 책이다. 제목도 왠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이고 책도 예쁘다기보단 투박해보이고 게다가 전 3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책이기에 처음엔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학급문고에 있는 책들이 거의 그랬다.종의 기원, 적과 흑, 성 등 다들 고전이고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이었지만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친구 중 책귀신이 있었는데 왠만한 책은 한, 두시간이면 독파하는 엄청난 속도로 책을 읽어대는 이 친구가 바로 이 책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내게 추천하는 것이었다.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러시아 사람들의 긴 이름 --; 그리고 애칭 등 정신이 없었으나 읽다보니 그 재미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신과 인간, 인간의 본성, 죄와 벌, 추리 등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소설. 출판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당시 라이벌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능가하는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쓰게 되었다는 이 걸작을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은 학생이나 단지 흥미를 위해 책을 찾는 사람 등 모두에게 감히 추천한다. 명작 중의 명작, 고전 중의 고전이다.
s******1 2003.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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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자유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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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제목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고전중의 고전으로 알려져있고, 여러 문학 텍스트로서 선택되어지는 책이다. 하지만 또 그만큼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어서 쉽사리 접하기는 힘이 드는 책이다. 무슨 굳은 결심을 한것처럼 책을 폈지만 방대한 양에 다시 한번 기가 죽어야 됐던 책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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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제목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고전중의 고전으로 알려져있고, 여러 문학 텍스트로서 선택되어지는 책이다. 하지만 또 그만큼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어서 쉽사리 접하기는 힘이 드는 책이다. 무슨 굳은 결심을 한것처럼 책을 폈지만 방대한 양에 다시 한번 기가 죽어야 됐던 책이다. 하지만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고 단순히 줄거리 위주의 몇몇 책들과는 달리 읽는 내내 철학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물론 나는 평상시 철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또다른 명저인 ‘악령’에서처럼 여기서도 신의 존재 문제가 그 핵심이다. ‘신은 있느냐 없느냐’, 없다면 자기 자신이 곧 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또 하나의 것은 자유이다. 즉 신에 복종하면 느끼는 종교적인 (기독교적인) 자유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오로지 자기자신을 향한 고독한 실존의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항상 신과 자유의 문제로 고뇌하며 갈등한다. 그리고 그는 탁월한 심리묘사로 그들의 고뇌하는 감정과 사고를 마치 우리 자신이 그들과 같은 시간에 그들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언제나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덮고 나면 마치 긴 수행을 하고 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수행은 곧바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화두처럼…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처럼 비종교인은 신은 그저 내 맘속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완전히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l******2 2001.1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