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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나 SNS에서 가끔 이슈의 인물이 되던 정희진을 보아서였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희진의 책을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책이 정희진이 쓴 책과의 첫 만남이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혼자, 영화 등의 낱말이 내 생활과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장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정희진이 영화를 보는 방식은 이렇다. 영화를 보는 나만의 습관이 있다. 일단, 혼자 본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대사를 메모하느라 대개는 두 번 본다. 극장에서 본다. (P. 11) 혼자 극장에서 보는 행위는 내가 영화를 보는 행위와 닮아 있어서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게 느껴졌다. 다만 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는 데다 두 번 보는 일은 전무한데 반해 글쓴이는 메모하고 두 번도 보니 이해와 감상의 깊이로는 비교할 바가 아니겠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들 중 소위 블록버스터 류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소수이다. 28편의 글에 31편의 영화 제목이 나오는데 글 제목에 등장하는 영화 제목 기준? 엄청나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개 한 편의 영화를 하나의 글에서 다루지만 비슷한 냄새를 피우는 영화들을 여럿 모아서 평한 글도 한편 있다. 널리 알려진 영화 말고도 우리가 볼만한 영화가 많이 있음을 은연 중에 표시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어떤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같은 정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그런 외부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받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책의 내용 중에서는 영화 ‘타인의 삶’과 ‘밀양’을 다룬 두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둘 다 본 영화라서 인지 글쓴이의 시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관점을 대할 때에는 뜨끔하거나 신선한 자극이 다가왔다. 내가 생각하던 바와 같은 관점을 읽을 때에는 작은 희열이 일기도 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질문한다. (P. 110) 타인의 삶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영화를 TV에서 봤는데 이 영화 방송할 때 늦게까지 안 자고 보던 기억이 난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영화의 내용을 생각했었다. 가해자 앞에서 겁먹고 주눅 들었던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분노한다. “내가 왜 그 사람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을까?”…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이 간단한 윤리, 아니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P. 115) 이는 밀양을 본 평 중 일부이다. 극장에서 볼 때 똑같이 느끼던 감정이 떠올랐다. 위에서는 그런 내용을 많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책은 실질 상 여성주의 시각으로 해석한 영화 평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느끼지 못하던 바를 글쓴이의 글을 통해 알게 될 때에는 내 시각의 고루함과 궁핍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의 한계가 있음을 통탄하게도 된다. - 남자의 나이가 많다면 ‘사랑의 장벽’ 같은 것은 없다. 여성이 어리다면 계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젠더는 이렇게 강력하다. (P. 36) -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주체이자 타자이다. 물론 이것은 곡예다.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규범을 따르는 ‘주변부 남성’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타자 되기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고 낙인일 수도 있다. (P. 106) - 북한은 소재일 뿐이다. 이 영화들의 ‘주제’는 한국 영화의 주요 소비 계층인 20~30대 여성과 북한 남성의 가상 로맨스이다. 남성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남북한 화해라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포장한다. .. 남한의 영화 산업은 북한 남성을 대상화함으로써 득을 보고 있다. (P. 184) - 계급과 섹스는 맞물리는데, 성별에 따라 정확히 반비례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여러 여자와 섹스할 수 있지만, 권력이 없는 남자는 한 명도 차지하지 못해 한 여자를 여러 남자와 공유한다. 반대로,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남자와만 섹스하거나 무성애자고, ‘밑바닥 인생’일수록 여러 남자를 상대하게 된다. (P. 204) 예를 들어보자면 위의 내용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물론 글쓴이가 여성주의 시각에만 고착되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여성주의 이외에도 영화가 제시하고자 했던, 때로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비판 의식으로 영화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다소 간에 생각을 요구하는 책이었고 깨우침과 부끄러움을 함께 주는 책이었다. 여성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것도 꽤 유용한 방법이 되리라 본다. 책의 활자가 푸른 색으로 인쇄되어 읽는데 다소 불편을 느꼈다. 편집/구성의 별 수는 이를 감안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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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저 영화를 보기만 하고 그로부터 받은 느낌을 사흘 정도 곱씹는다. 그것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마음과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는 수준. 참 부끄럽게도 이 책처럼 깊게 분석해 본 적이 과제할 때 말고는 거의 없었다. 나는 저자의 책 중 <페미니즘의 도전>을 먼저 접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저자 정희진 씨를 '선생님'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페미니즘의 대가, 책으로만 만나본 선생님. 그런 그가 오열하고 마음으로 앓은 영화들이란 과연 어떤 것들인가! 아쉽게도 그 영화 감상문(?)은 <페미니즘의 도전>만큼이나 어렵다. 감상을 담은 글이라는 점에서 페이지를 나갈 수 있었지만. 게다가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결말이 나오는 부분이 있어(특히 위플래시!) 스포에 주의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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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학자인 정희진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상을 풀어 서술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를 영화광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28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책의 제목만을 보아서는 처음에는 여성주의 영화에 대한 비평서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본 결과 영화비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화라는 제재를 빌어 자신의 생각을 토로한 에세이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라는 소재가 글의 주제를 이룬다기보다, 그것을 통해 저자가 평소에 생각했던 바를 풀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나 여성학자인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잘 묻어나고 있으며, 조금은 삐딱한(?) 그러나 남성주의에 찌든 현재의 세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영화와 홀로 마주하여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 영화를 통해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등장인물들과 만나고, 그 인물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나의 내면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혼자서 본 영화>는 저자에게 ‘자신에게 말 걸기’이자 ‘타인에게 말 걸기’의 기록이라고 하고 있다.
저자의 영화를 보는 방법이 일견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어떤 영화는 한번 이상은 보지 않으며, 반복해서 여러 번 보는 영화도 있다.
저자가 소개한 영화 중에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이 있어 언젠가는 봐야할 영화 목록에 저장해두기로 하였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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