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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정부에서 감성정부로>라는 제목과 표지에서 이책이 정치적인 색깔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책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강한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었다. 저자의 소개를 보면 평생 중앙정부의 문화재단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25년)와 지방정부의 문화재단인 지역문화재단(5년)에서만 활약했고, 자신의 오랜 경험과 생각을 이론적 바탕 위에 엮은 문화정책 칼럼집이라고 이 책의 소개까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책 소개를 읽고보니 책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01편의 칼럼은 지역문화정책의 과제와 전망, 전국 문화재단들의 위기, 순수예술, 문화도시, 문화의 행정화 등으로 나누어진 큰 주제들 아래 저자의 10여년 동안 쓴 칼럼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의 시대는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가 곧 외교이고 자원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도 외국인 관광객이나 투자자들을 위해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투자는 도시와 수도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나라 지역 곳곳엔 아직도 보존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할 문화들이 있지만 뚜렷한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그 수만 많을뿐, 지역민의 관점이 무시된 채 공급자인 문화예술 단체의 관점으로만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문화행사가 아니라 전문성이 결여되고 부족한 예산과 지역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등으로 인한 연례 행사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단'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지방정부 문화정책의 전문성과 책임성, 효율성과 민주성을 높이기 위해 구축하는 민-관 협력 네트워크이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사업의 근본 취지와 목적을 따져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등의 까다로운 점과 공공기관의 감시와 심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생활로서의 문화를 즐기고 있기에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문화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성정부에서 감성정부로>는 짧은 칼럼들이지만 약 10년전에 쓰여진 것들을 모아 최신성은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왔는지는 알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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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약력을 보면 (재)대전문화재단과 (매) 울산문화재단 이사로 일했던 기록이 나온다. 전국 80개의 문화재단 중 두 곳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문화란 무엇이며, 광복 이후 국민이 바라보는 문화에 대한 인식은 어느정도인지 살펴보고자 한다.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잘 나타나 있으며,관료화되고 있는 문화재단의 현주소와 문제점울 집어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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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우리나라 중앙과 지역의 문화정책 현장에서 일해온 저자 박성언씨가 문화행정과 예술경영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 연구하여 얻은 전문성을 양 기둥으로 하여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문화적인 철학과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101편의 이야기를 통해 요목조목 설득력있게 실어놓았다. 사실 '이성정부'나 '감성정부'라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문화를 좋아하고 향유하는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한 마음에 읽어본 책이었다. 우선 어마어마한 두께에 살짝; 놀랬었다. 특히 책의 처음을 장식한 기초예술/순수예술 및 지역문화정책의 과제와 전망 부분은 아무래도 정책적이거나 이론적인 내용이 많아 정신을 집중하고 읽어야 했다. 하지만 작가의 현장 경험이 이야기로 나오는 3장부터 매우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작가가 스스로 양손에 쥐었다고 말한 두 깃발/슬로건인 "모든 경영을 예술경영으로"와 "예술, 누구에게나 언제나"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문화재단을 설립해야하는 이유, 어떤 비전을 가진 문화재단을 설립해야 다른 재단과 차별성을 갖는지 문화재단에 들어가는 지원 심의와 예술지원정책 부분은 과거 정부의 '문화'를 통해 국민을 '길들이고 다듬어가려는' 정책들이 정부기관들, 각종 대회 및 지역축제를 통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다가오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지역마다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릴 것이다. 어떤 축제는 사람들이 몰리고, 어떤 곳은 기념관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을 뿐 잊혀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몰려가서 지역의 분위기가 좋게 바뀌기도 하지만 그곳 고유의 특색이 없어지기도 한다. 우리도 익히 겪은 문화 행정의 문제들을 작가가 대표로 있는 지역의 예를 들어 풀어낸 점도 인상깊게 와 닿았다.. 일회성이나 전시성에 그치지 않고, 세금을 낭비하는 '실패'로 끝나지 않고 혹은 예술가의 시도가 '실패'하여도 책망하거나 질책하지 않고 다시 노력해볼 수 있도록 행정의 문화화와 문화의 행정화가 균형을 갖추어 상생하는 관계로 맺어지는 방법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생각, 철학에 동의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해박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취향을 언뜻 엿볼 수 있는 6장 바벨탑의 언어와 예술의 탄생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향유하지 않았던 다른 분야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도 일었다. 문화의 세기에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 어떤 철학으로 임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언제나 예술을 향유하도록 하는 정책 (문화의 날 같은!) 예술인들을 외롭거나 색깔로 덧칠하지 않고 도전하고 창조할 수 있는 받침을 든든히 하는 정책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 계기를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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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서 세월호 4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300명의 넘는 아이들이 수장되는 동안,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그랬다. 정부가 조치를 해야 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잤고, 그의 참모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즈음, 박근혜에게 보고를 하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근혜는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참모들을 향해 “대면보고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했다. 박근혜를 악마화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한 줌의 이성을 갖고 있지 않은 권력욕에 취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떠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지 박근혜는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그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다듬어 달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너무 힘든 것 이었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진상조사를 시켜달라는 세월호 가족들을 뒤로하고 박근혜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국회로 들어가는 길을. 세월호 가족들이 박근혜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외쳤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말이다. 이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이성적이지도 않았고 감성적이지도 않았다. 감성의 다른 의미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해석하면 그것은 탐욕적인 정부 그 이상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이성정부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성정부보다 한단계 더 나아갔다는 감성정부란 무엇인가 Upgrade? “감성가 이성을 두루 인지하면서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감성적 지성이라고 한다. 국민의 문화적인 삶에 기반을 둔 행복 그리고 이 행복을 꿈꾸는 감성적인 욕구는 지성으로써만 진정으로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관료들은 감성적 지성의 행정을 펼쳐야 하며, 이러한 행정부가 감성정부다.” 저자가 생각하는 감성정부에 대한 정의다. 솔직히 낡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딱히 없다. 하지만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어쩌면 잘난척 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도 솔직히... 좀 꼰대가 쓴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팍팍드는 책이다. 어쨌든. 우리가 정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하나의 합법적 폭력을 가진 존재가 우리 모두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과 같이 가장 강력한 존재가, 모든 것을 제어할 때 우리 모두는 평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탄생한 것이 우리의 정부다. 정부 자체는 우리 이성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한편으로 감성적인 것을 업신 여기는 측면이 있다. 이성과 감성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이것에 서로에 대해 배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감성적인 것이 이성적을 더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대로 오느 순간 이성적인 것이 더 옳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국가는 어쨌든 인간들이 만들오 이끌어 가는 조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다. 감성 정부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곳 이성을 모두 버리고 감성에 호소하라는 것이 아니다. 감성은 이성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완벽히 시민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그 겉을 감성으로 덮으라는 것 아닐까. 어쨌든. 감성정부라는 말을 배워서 재미있있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감성정부인건 맞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