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기대없이 봤다가 완전 빵 터진 소설. |
|
내 나이 스물아홉. 그 시절의 나는 결혼 1년차였고, 결혼하자마자 허니문베이비가 생겨 정신없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직장 생활하랴, 아이 똥기저귀 하나 제대로 갈지 못하는 초보엄마로서 힘들어 울고 싶었던 때였다. 나의 삶이라는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좌충우돌 초보 주부였다. 그런 초보 엄마와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는 딸아이를 두고 신랑은 섬으로 발령이 나 버렸다. 아이를 안고 많이 울었기도 했던 내 스물아홉 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나이 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만 생각하면 너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갓난 아이를 키워야 하고 신랑도 섬으로 발령나 없는 그 와중에 직장생활까지 다시 하라고 하면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 혼자 싱글이었던 때로 돌아간다면 몰라도. 다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이 제일 하고 싶을까. 사랑 애찬론자인 나는 죽어도 좋을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어할까? 일흔다섯 살의 할머니인 엘리. 자신의 생일 파티를 앞두고 엘리는 자신의 찬란하고 아름답고 탱탱했던 젊었을 때의 자신을 생각해보며 왜 그동안 찐한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해 봤는지, 젊음을 좀더 즐기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하며 한참 아름다운 자신의 손녀딸 루시를 부러워 한다. 다시 한 번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일흔다섯 개의 촛불을 구할 수 없어 스물아홉 개의 촛불을 케이크에 꽂고 소원을 빌던 엘리는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스물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거라며, 이번엔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한다. 아침이 밝았다. 다른 때와는 달리 아주 가뿐한 기분이 들며 깨어났다. 늘 흐릿한 시력으로 인해 시계를 보려면 안경을 써야 했던 엘리는 밝게 보이는 시계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마주한 엘리는 깜짝 놀랬다. 피부가 빛이 날 정도로 탱탱하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젊은 날의 자신이 거울속에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지르며 깜짝 놀라고, 엘리는 다시 일흔다섯 살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 옷을 갈아 입지만 옷이 너무나 크고 헐렁하다.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에 가서 케이크 세 개와 초 일흔다섯 개를 사와 촛불을 켜고 다시 소원을 빌지만 일흔다섯 살의 모습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자신과 많이 닮은 손녀딸 루시가 찾아와 믿을 수 없어하는 루시에게 확인시키고 할머니 엘리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단 하루지만 스물아홉의 아름다운 시절을 즐기고자 루시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걸어 돌아다녀도 전혀 힘들지 않는 활기찬 스물아홉의 젊은 엘리의 모습을 하고. 사랑없이 결혼했다고 생각한 엘리. 젊고 잘생기고 특히 파란 눈을 가진 남자와 하룻밤 사랑을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면 자신은 다시 일흔다섯 살의 할머니.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겠지만 막상 그 시절로 돌아가면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까? 나도 처음엔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러기는 힘들거라고 본다. 그시절의 사춘기를 겪느라 마음에 타오르는 번뇌와 함께 방황할 것이며 또 옛날처럼 공부보다는 노는게 더 좋지 않을까.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면? 젊음을 부러워하는 할머니가 하룻밤 스물아홉 살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너무도 뻔해 처음엔 약간의 거부감마저 들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런 기분은 희미해졌다. 마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한 편의 짧은 로맨스 영화를 본 느낌도 들었다. 우리는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랑을 하고 친구들과도 정을 나누고 하는 지금 이 순간들이 지나고 보면 과거가 되고 그리워하는 시간들이 되지 않는가. '그때 열심히 살걸, 열심히 사랑도 할걸' 하고 후회하지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겠다.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
|
‘여자의 일생’이란 ‘모파상’의 그것처럼 매양 신산한 어떤 통증을 준다. 아마 여자의 성적 자유와 삶의 여러 수단들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남자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는 약자에 대한 연민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한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피부는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육신이 못 견디게 느껴지는 어떤 날이 되면 문득 지나버린, 혹은 잃어버린 듯한 젊은 시절의 이루지 못한 욕망들로 몸을 부르르 떨어댈지도 모를 일이다.
스물아홉 살 처녀로 변해버린 엘리, 죽은 남편 하워드와의 삶이 자신의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와의 일생에 과연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긴 한 것인지, 그 주어진 하루가 확인하려 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휘몰아쳐대던 열정적 밤과의 작별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
|
이야기에 대하여...
미국의 여류 작가 아데나 할펀의 경쾌함과 진지함이 알맞게 균형을 이룬 이 작품 '스물 아홉'은 일흔 다섯의 생일을 맞은 한 할머니가 생일 케익에 대고 빈 소원으로 인해 다시금 스물 아홉의 나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종의 '백투더 퓨쳐'식의 시간 여행이 아니라 신체의 나이가 스물 아홉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모든 건 그대로고 몸만 젊어지는 것이다.
일흔 다섯살이 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옳거늘. 젠장, 나도 말은 그렇게 한다. 나이 듦의 가장 큰 기쁨은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그래야만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 헛소리다. 그러나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들 절망할텐데. 그들이 내 나이가 되어 진실을 깨닫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일흔다섯살로 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누군가 말해주었더라면 나는 오래전에 이 상황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자살을 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건 안될 노릇이다. 아마도 무인도 같은 곳에 가서 냉혹한 진실을 강요하는 거울 없이 살았을 것이다 .(P. 9 ~ 10)
일흔 다섯의 생일 케잌을 앞에 둔 할머니 엘리가 이토록 자신의 나이에 대해 진저리를 치는 것은 그녀 자신 그 나이가 되도록 단 한번도 자신의 뜻에 따라 제대로 인생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이 지금 엉망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무난하고 충직한 남편을 만나 속 한번 섞지 않고 비록 평범한 아내이긴 하나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잘 꾸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나이먹음에 대해 속절없음의 한탄일까? 그건 또 아니다. 그녀가 저렇게 한탄을 하는 것은 그녀 자신 한번도 자신의 뜻에 따라 인생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거나 처녀시절엔 엄마의 뜻에 따라 움직였고 당시 사회적 통념에 따른 보통 여자의 삶만을 주려했던 엄마의 뜻대로 그녀는 원했던 공부 마저도 포기 하고 그저 평안한 생활을 보장해 줄 능력 하나만 보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렇게 그녀는 연애는 커녕 사랑의 열정 조차 제대로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채 그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상품 마냥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위치를 켜는 누군가가 인도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삶만을 살아왔을 뿐, 그 인생 자락 어디에도 자신의 의지는 없었다. 이것은 마치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의 노래 'C' est la Vie'의 첫 소절과도 같다.
Have your leaves all turned to brown
그랬던 그녀였기에 남편이 결국 죽었을 때,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처럼 애오라지 남편만을 중심으로 살아온 그녀로서는 자신의 삶을 유일하게 지탱해주던 근거를 상실한 느낌을 받게되고 중심의 인력이 없어진 물건이 오로지 원심력만의 작용을 받아 바깥으로 튕겨 나가버리는 것 처럼 그렇게 그제서야 그 인생의 바깥에서 제대로 자기 인생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모든 게 오로지 후회로 채색되어 있음을.
Oh, c'est la vie
그래서 엘리는 당연히 지금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20대의 손녀 루시를 질투가 나리만치 부러워한다.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걸어보지 못한 길' 처럼 자신이 걸어보지 못했던 인생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걸어보길 원한다. '다시 한 번 루시 처럼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절대로 지금 같은 인생은 살지 않을거야.' 라고...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 로버트 프로스트, '걸어보지 못한 길' 중에서 -
바로 그 바람을 그녀는 일흔 다섯번째의 생일 케익 앞에서 소원으로 빈다. 그리고 행운의 여신이 이마에 입이라도 맞추어 주었는지 딸 바바라가 실수로 가져오는 바람에 케잌에 꽂혔던 스물 아홉 개의 양초 갯수 그대로 엘리는 다음 날 아침 스물 아홉의 몸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스물 아홉 엘리의 하루 동안의 '인생 되찾기 좌충우돌 여정'이 시작된다.
작가 아데나 할펀은 우연히 꽂은 양초 개수라는 것으로 스물 아홉의 나이로 돌아간 것에 특별한 의도는 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드리웠지만 사실 그 나이를 선택한 게 전적으로 우연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바로 한 해 뒤의 '서른'이란 나이는 종종 서양에서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의 상징 같은 것으로 쓰이곤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라 불리는 극작가 외젠느 이오네스코는 '남자는 서른 부터 자기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서른'은 진짜 어른이 되는 나이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남자만의 경우는 아니다. 여성 역시도 서른을 중요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여겼음을 우리는 바로 독일의 여류시인이자 역시나 극작가이기도 한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소설 '삼십세'에서 엿볼 수 있다. 거기서 바하만은 서른이 되어 비로소 진짜 인생에 눈뜨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빌어와 그녀 자신이 느끼는 서른이 주는 '무거움'을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다시금 리와인드 되는 '스물 아홉'은 진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 준비로서의 나이이자 제대로 된 진짜 삶을 선택하기 위한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 자체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즉 이 제목과 돌아간 나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 하루 동안의 엘리의 여정 자체가 진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여정은 오로지 보다 더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 소설 역시 '부머랭으로서의 여정'인 것이다.
소설에 대하여...
이 소설을 음악 형식으로 비유하자면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소나티네'라고 할 수 있다.
세 부분으로 만들어진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의 노래 'C' est la Vie'를 굳이 인용한 것도 그래서이다. 그렇게 엘리가 왜 그런 소원을 빌게 되었는지 스스로 고백하는 첫 시작을 제시부인 1악장으로, 스물 아홉으로 돌아간 엘리의 하루 동안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을 전개부인 2악장으로,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엘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부분을 재현부인 3악장으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말했듯이 소나타라는 음악 형식 자체가 인생 그 자체를 상징한다면 이렇게 소나티네 형식으로 보아도 별로 무리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1악장인 엘리의 고백은 조금 느린 안단테 이지만 2악장인 전개부 뒤로는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로 경쾌하게 진행되는... 한 할머니의 새로운 인생 찾기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그렇게 부담없이 간간이 미소까지 머금어가면서 벗할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가 여성이고 등장인물들도 모두 여성들이기 때문에 확실히 남성들 보다는 여성들에게 더욱 어필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더욱 어필할 수 있는 쪽은 아마도 지금 스스로 인생 황혼기에 있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네 부모님들이 아닐까 싶다. 아데나 할펀 역시 책 앞머리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있다. 정말로 소설을 읽다보면 할펀이 자신의 어머니 심정을 헤아려가며 써내려 갔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어느덧 숙제를 다 마쳐가는 아이와도 같이 등 뒤에 놓인 세월을 뒤돌아보게 되는 시기에 놓인 어머니에게 딸이 진심을 담아 보내는 당신의 인생은 그 자체로 넉넉했고 아름다웠으며 당신다웠다고 속삭이며 깊이 안아주는듯한 그런 위로와도 같은 느낌이... 그래서일까 읽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내 어머니였다. 새삼 당신에게도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무심하게도 늘 잊고 지낸다. 어머니에게도 '여자'로서의 그녀의 바람이 욕망이 삶이 있었을 것임을... 이 책에 대하여 내가 감사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새삼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는 것. 공기가 주변에 늘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모르는 것 처럼 어머니라는 존재 역시도 그런 것 같다. 아데나 할펀 처럼 소설은 못 써 드리지만 자주 연락드리고 할수 있는 한 많이 얘기를 들어드리자 다짐해 본다. 이걸 잊지 않기 위해 '다모클레스의 칼' 처럼 한동안 머리 맡에 두고 자야겠다. |
|
가정법은 상상의 여지가 없는 문법의 세계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부분이다. '만약 -- 한다면'을 하나 생각해서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난 그것을 매우 좋아했지만, 언젠가 그게 자신, 그리고 과거나 현재등을 도피하는데 사용된다면 그다지 좋지않을 수있다는 글을 읽고 시들해져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가~ ^.~
여자에겐 나이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연하남을 사귀던 친구가 남친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여친들과 MT같이 여행에 가서 겪은, 그녀보다 어린 지지배들의 얄미운 짓거리 같은게 가장 극적인 신경쓰임이겠지만, 며칠 뒤 태어났다면 4년마다 한번 생일을 치루며 나이도 1/4씩 먹을 수 있음에도 좀 일찍 태어나, 학교도 일찍 가서 학번소개할때마다 나이까지 정정하곤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런데, 75살 할머니의 55살 딸내미에 대한 귀여운 복수라니. ㅎㅎ 75살이 되서도 민감하지않다는 것은, 무조건 너그러운건 아닌데다 나이들면 현명해진다고 자족하는 것은 다 개뿔이라는 식의 오프닝은 정말 눈길을 잡았다.
그렇지만 75세의 할머니가 생일케이크에 소원을 빌어 하루동안 29살로 돌아간다는 얘기, 정말 영화에서 많이 봤던터라..
([완벽한 그녀에게 딱한가지 없는것]으로 나왔구나. 딱한가지 없는거...줄거리가 가물가물한데, 아마 가슴이었던가? ㅋㅋ 어른이 된 제니퍼 가너가 자기 가슴을 보고 놀라는 장면에서 '놀랄 가슴이 있었어?ㅋㅋㅋ'했었는데.. 이건 13살의 서러움많고 자신감없는 소녀가 하루밤에 잘나가고 할말못할말 다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정작 자기가 놓치는건 뭔지를 보여준 영화였는데...참, 13살에 그걸 깨달으면 정말 그 이후로 잘~~살았겠다. 여하간, 중요한건 언제나 간과되는 옆에 있는 것이란 뻔한 이야기였다...만 남자배우가 괜찮아 뭐~)
근데 말이다. 역시나 진화하는 칙릿이다. 긴 소설 중간에 잠깐 잡은 이 책은 정말 너무 시기적절했던거 같다. 아니, 요즘 내가 뭔가 마구마구 고프다가 스스로 해탈하는 타이밍인지 몰라도..
엘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원하지만, 고등교육은 필요없다는 엄마의 말에 반항하지 못하고 타이핑을 배우고 변호사의 비서가 되었다 처음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10살많고 키작고 머리숱적은 변호사 하워드 제롬과 결혼, 50년을 해로한다. 그리고, 갑자기 그를 잃은 엘리는, 잔소리많고 신경질적인, 그러나 인생역정만큼은 자신을 꼭 닮은 55살의 딸 바바라보다는 25살의 반항아기질의 손녀 루시에게 보다 정신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언제나 과거의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가 많았던 그녀는, 75살의 생일날 케익에 소원을 빈다.
'단 하루만 29살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아침. 그녀는 29살의 신체로 돌아가있었다. 과연,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하느님의 뜻은 뭘까나. 그녀가 그토록 해결해야만 된다고 고민해서 하느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그 이슈는 무엇일까.
엘리 뿐만 아니라 난 바바라나 프리다도 눈에 들어왔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이란 소원을 빌고싶지않다는 프리다에게 더 공감이 가서 난 깜짝 놀랐다. 예전 같으면, 만약..뿐만 아니라 그 시기는 언제?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터인데.
나도 엘리 만큼이나 많은 결정에 의문을 던진다. 나의 29살을 생각하며, Chicago의 'Will you still love me', 뮤지컬 [Les Miserables], 영화 [Love Affair]의 비틀즈의 'I will'도, 나도 one and only love도, 소울메이트도 (엘리 할머니 만큼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추억도 다 비밀유지!). 하지만, 나에겐 그 모든 것을 상쇄할만큼 세가지 정말 잘한 결정(?)이 있다. 우리집에 태어난 것, 남편과 결혼한 것, 우리 강아지를 만나 집에 데려온 것 (그리고 한가지 추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 이것 때문에 난 다시 29살로 돌아가고 싶지않다. 지금의 답답함이 어쩜 이젠 익숙해지고 안정되어서 잠시 흔들어보고싶은 투정이라면, 다시 그 불안정하고 힘들고 노력해도 될지 몰랐던, 울어도 격렬히 울었던 그 시절은 다시 겪을 힘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지금이 그 불안정했고 힘들었고 아쉬웠던 모든 것들이 바탕이 되어 여기까지 왔음을 알기에, 다시 돌아가 무언가를 어찌 달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시 돌아가도 이만큼 하기 힘들었을 거란 것을 알기에 (하지만 딱 한가지 남은 나의 로망은, 언젠가 옛사랑을 만나도 그가 '다시 보지않고 추억으로 간직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안과 밖을 다 관리하는 것).
그 모든 것을 돌아돌아 겪은 하루동안 엘리는 다시 행복해졌을까. 그건 너무 뻔하다. 그녀는 아주 큰 슬픔을 느낀다. 표현되지 못했던 사랑, 너무 늦게 만난듯한 사랑, 그리고 같이 있을때는 몰라서 놓쳤던 것들. 하지만 또 그건 그것대로 좋았으리라. 그래서 그녀가 재커리에게 해준 말들은 너무나 진실되게 느껴져 뭉클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나이듦, 아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깨달을 수 있었기에,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해주었던 조언에 대한 칭찬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다음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데, 누가 캐스팅될까 궁금해 찾다 만난 꽤 괜찮은 작가의 팁 (ㅎㅎ, 난 이렇게 오지랍넓은 작가들이 좋아)
Adena Halpern’s 5 Do’s
1. Do put yourself first instead of paying for non-essentials. 2. Do use the good dishes and silverware every day (ㅎㅎ 이건 오늘 아침에 내가 한 것과 비슷할지도) 3. Do listen to your best girlfriends. 4. Do Take a moment to enjoy the sights. 5. Do READ CHICK LIT AT 2am (작가왈, 자신과 같다면 어쩜 새벽2시에 깨어 걱정과 패닉에 잠길 수있는데 그때 그냥 화장실에 가서 타올가운 두르고 Becky Bloomwood의 책을 하나 읽으며 잊으라는)
|
|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면서 일흔 다섯번째 생일을 맞게 된 '할머니' 엘리는 자신의 나이가 정말 싫다. 일흔 다섯보다는 훨씬 젊어보인다는 말을 들어도 싫다. 끔찍하게 싫다. 이제 막 갓 피어난 꽃처럼 탱탱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손녀딸 루시가 미치게 부럽다. 그래서 엘리는 일흔 다섯번째 생일날, 생일 케익위에 일흔 다섯개를 꽂수가 없어서 선택 된 숫자, 스물 아홉개의 촛불을 끄며 빌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스물 아홉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정말 스물 아홉살의 엘리가 되어버린 아침. 여전히 일흔 다섯의 정신인 엘리는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다. 딸 바바라가 알기 전에 얼른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바바라와 통화를 하고, 가장 친한 친구 프리다의 전화를 받았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들이닥치기 전에 빨리 이 괴상한 상황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엘리는 동네 케익집에서 미니케익을 여러개 사서 다시 한 번 소원을 빌어보기로 했다. 소원을 빌어보기도 전에 손녀딸 루시에게 들켜버리고 만 엘리는 루시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고 함께 이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하지만 루시는 할머니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니었다면 왜 촛불앞에서 그런 소원을 빌었느냐며 하루만이라도 할머니 자신만을 위해 스물 아홉으로 살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엘리는 스물 아홉의 너무나도 젊고 예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마구 뛰어도 관절이 아프지 않고 숨이 차지 않는 자신의 몸에 기뻐하며 그 하루를 만끽할 준비를 한다. 일흔 다섯의 정신에 스물 아홉의 몸을 가진 할머니 엘리, 그녀의 하루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한 동안은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하면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후회없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다시 또 누군가 묻는다면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것 같다. 공부보다는 놀고 싶기 때문일까? 한참 청춘일 때 법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또 학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나에게 일탈이라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조용조용히 인생길에 있어 진흙탕은 피해가며 조심조심 걸어온 나에게 일탈이라는 것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와서 가던 동네 오락실, 교재 산다고 말하고 교재값을 더 부풀렸던 기억쯤이지 다른 것은 없다. 만약 다시 청춘이 된다면 그렇게 조용조용 말고, 조금은 소란스러운 청춘을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사실 생각뿐 다시 청춘이 된다해도 오롯이 나 혼자가 아니라면, 주위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마 또 똑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고 늙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늙었다는 것 말이야.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 지겹다면 그걸 바꿀 순 있겠지. 그거라면 할 거야.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이미 다 해봤어. 너도 날 잘 알잖아. 나는 TV를 볼 때도 재방송은 안 봐. 이미 본 거니까. 한번 지나간 건, 그냥 지나간 거야." -p. 289
나도 그렇다. 물론 이 할머니들처럼 이미 일흔이 훨씬 넘어버린 할머니는 아니지만 나도 내 나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이.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아줌마. 눈가에 잔주름이 굵어지기 시작하고 머리 어딘가에서 흰 머리가 자주 출몰하는 나이. 몸의 탄력도 예전같지 않고 아픈 데도 많은 것 같아지는 나이. 그런 나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가슴이 소란해지고 불안하고 떨리던, 아무것도 안정된 것 같지 않던 그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더욱이 내게 있어 스물 아홉은 아마도 여태까지의 내 인생 중에 가장 힘든 한해였으리라. 그러므로 더더욱 스물 아홉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열아홉이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특권이다. 젊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것이 용서되고 이해된다. 역자후기에 인용된 세익스피어의 말을 보고 가슴을 쳤다.
유혹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배반하고 싶은 것,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절묘한 말인가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 나를 유혹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스스로를 배반하고 싶어지는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청춘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 뜨거운 불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사위어 가는 것이랄까? 그래도 또한 그 불덩이가 죽는 그 날까지 아마도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 것이라고 안다. 가끔씩 가슴 속에서 후끈 달아오르는 불덩이를 느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 그래도 요즘처럼 단풍이 흩날리면서 쓸쓸한 찬바람이 불어올 때는 나도 뜨거운 불덩이에 데여도 좋으니 하루쯤 스무살로 돌아가봤으면 하고 바래본다.
|
|
그동안 살아온 날들 중에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다면 그 때는 과연 언제일까? 이런 비슷한 질문을 했던 책들을 몇 권 만났는데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책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삶을 바로잡겠다고 답하고 다른 어떤 책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죽던 날로 돌아가 죽음을 반복하는 그런 상황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에서는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어느 할머니는 자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손녀의 나이인 “스물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일 케잌을 앞에 두고 소원을 빈다. “아데나 할펀(Adena Halpern)”의 <스물 아홉 살(원제 29 / 비채 / 2011년 10월)>은 이런 “말도 안되는” 소원이 실제로 이뤄진 후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소동과 함께 달콤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하지만 다 헛소리로만 들리는 올해 일흔 다섯 살 생일을 맞은 “엘리”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딸 “바바라”가 한사코 우겨서 할 수 없이 하게 된 생일파티에케잌 촛불 아래서 꼭 그맘때의 자신을 빼닮은 손녀딸이자 그 젊음이 부러워 미칠 지경인 “루시”와 같은 나이인 스물 아홉 살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한다. 생일 케잌 앞에서 하는 기도만큼 허망한 게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잠에서 일어나 보니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고 쳐진 가슴은 탄력을 되찾았으며 얼굴에는 주름하나 없는 스물 아홉 그 때의 나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근 옷 매장에 가서 손녀가 디자인한 옷을 사입고 케잌까지 잔뜩 사들고 돌아온 집에서 자신을 찾아온 손녀 “루시”를 마주하게 된다. 루시는 당연히(!) 할머니 집에 있는 낯선 여인을 경계하지만 할머니와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 몇 가지 확인을 한 후에 그 낯선 여인이 할머니임을 알게 되고 역시 놀라지만 이내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자신이 책임져주기로 한다. 엘리는 루시와 미용실에도 가고, 속옷도 사며, 저녁에는 루시가 자주 가는 술집도 가는 등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상상만 해도 기쁘기만 하다. 그런데 이들의 특별한 하루를 훼방놓을 방해꾼들이 있었으니 바로 엘리의 동년배 절친인 “프리다”와 성가시만 한 딸 “바바라”이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와 반응으로 전화 응대하는 엘리의 신상에 이상이 있다고 직감(?)한 둘은 의기투합해서 엘리의 집으로 찾아오지만 집은 텅비어 있고 경비원에게서 있지도 않은 조카 손녀와 루시가 함께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루시에게 계속 전화를 해대지만 루시는 묵묵부답이고, 둘은 엘리를 찾아 나선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내보지만 하루가 지나야만 신고를 받아준다고 그러자 화가 난 둘은 길을 정처없이 걷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바바라는 노상강도를 만나 보석과 금품을 빼앗기고 만다. 한편 엘리는 루시와 함께 스물 아홉 살 젊음을 만끽하고 루시의 단곱 술집에서 루시의 애인과 애인의 친구인 푸른 눈의 멋진 남성을 만나 저녁 약속을 하게 된다. 과연 엘리의 특별한 하루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까? 두 방해꾼의 고난스러운 여정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과거의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는 설정은 사실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결말이 빤히 보이는 통속적이고 식상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통속성과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 재미있다. 이런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별로 안즐겨하는 내가 불과 3~4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낼 정도로 말이다(그래서 별점은 만점을 준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어딜까? 물론 스물 아홉 살로 돌아온 엘리가 자신이 이렇게 예뻤다는 것을 깨달으며 손녀와 함께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멋진 남자와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다는 기본 줄거리는 사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그런 줄거리이지만 그 전개가 꽤나 기발하고 로맨틱해서 재미있었던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개그 콤비인 “바바라”와 “프리다”가 벌이는 기가 막히는 “엄마(또는 절친) 찾기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참 수다스럽고 어리숙한 두 콤비는 하는 짓마다 실수 연발이다. 열쇠와 지갑을 집 안에 두고 잠궈 버려 쫄쫄 굶고, 프리다와 엘 리가 사는 집과 불과 몇 블록도 안 떨어진 곳인데도 길을 헤매다가 총도 아닌 손가락(!)으로 위협하는 노상강도를 만나 금품을 털리며,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지만 바바라가 학창시절 괴롭혔던 친구가 경찰이 되어 마주하게 되자 머뭇머뭇 거리기도 한다. 엘리가 “판타지”한 캐릭터였다면 현실적인 캐릭터가 이 두 사람일 텐데 현실감보다는 영 희극적이어서 웃음만 나오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하루는 엘리에게만이 아니라 바바라와 프리다의 삶도 변화시키는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되어 버려 다소 개그스러움이 퇴색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엘리의 로맨틱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로맨스 판타지”로, 아니면 바바라와 프리다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코메디”로 각자 취향대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아 그리고 결국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엘리의 모습에서 감동적인 면도 느겨볼 수 있으니 모두 합쳐서 “코믹 감동 로맨스 판타지”로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굳이 교훈을 찾고자 한다면 한번 지나고 나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바로 청춘이니 그 순간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쯤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굳이 그런 교훈이나 감동꺼리를 찾을 필요 없이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책이었다. 홍보글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정신없이 웃다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결국 펑펑 울게 되는 이야기” 라는 대목은 공감하기 어려운 데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엘리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와의 로맨틱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떠올리며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교훈 - 문구에 아예 교훈이라고 못 박고 있다^^ - 인 마지막 글귀 만큼은 한번쯤 생각해 볼 만 해서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나는 여러분이 삶에서 원하는 것 모두를 얻기 바란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설령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당신의 인생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스물아홉살이건 일흔 여섯 살이건, 여러분 앞에 얼마나 많은 날이 남아 있건, 뼈아픈 교훈을 얻은 나의 말을 믿어라. 여러분에게는 아직 변화를 이룰 시간이 남아있다. 바로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
|
내 나이 스물아홉에 난 뭘하고 있었나를 먼저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스물아홉.. 우리나라의 남성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뭔가를 시작할 나이쯤으로 받아들여지는 또래의 나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대학 4년에 군대 2년 6개월을 보내고 막 졸업하면 내 나이 스물여덟이 됩디다.. 물론 민증상의 나이인거죠.. 중간 복학하는 시점과 휴학이나 재수가 한번쯤 걸리면 딱 저 나이가 됩니다.. 스물 아홉.. 뭔가 시작해야될 나이.. 사회에 발을 내딛는 일반적인 나이.. 여지껏 내다보던 세상과 막상 부딪히는 세상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나이.. 참 지랄맞은 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과 나를 원하는 세상의 현격한 차이를 제대로 인식했던 나이였으니까요..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좌절했던 나이입니다.. 뭔가를 시작할 시점에 뭔가에 좌절부터 하게되더군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군가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활기찬 시간의 젊음이라고 하더만 닐리리 맘보같은 나이였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네요.. 전 그랬다는겁니다.. 그때 내가 원하는 취직이 될수만 있었다면 길가에 돌맹이 수천개는 와그작 씹어먹을 준비가 되어있었더랬습니다.. 뭐 혹자는 돌맹이를 씹어도 즐거운 나이라카긴하더만(설마?).. 독서실에서 꾸질한 츄리닝 차림으로 취직공부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돌맹이는 커녕 집에 식은밥 한끼 얻어먹기도 눈치보이던 시절이었거덩요.. 그러니까 전 그랬다는겁니다.. 참 부정적이죠?..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된장맛나던 시절을 보낸 후 현재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뭐 긍정의 마인드로다가 생각해볼때 그렇게 나에게 나쁜 시절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은 스물아홉의 젊음을 찬미하고 있나봅니다..
"스물아홉"이라는 번듯한 제목에 걸맞게 활기찬 소설입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의 스물아홉의 나이를 가르킵니다.. 전적으로 여자사람들의 감성과 사랑과 과거와 인생을 다룬 소설작품이라고 보시면 되시지 싶네요.. 그런 작품을 40대 아저씨가 읽은거지요.. 사실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의 나이는 일흔 다섯의 할머니신데 말이죠.. 생일날 우연히 하루만 스물아홉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몸이 스물아홉으로 돌아가 있는거죠.. 대강 짐작이 가시죠?..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죠?.. 그렇습니다.. 예상하시고 낌새를 느끼시고 조짐을 가지신 그런 부류의 작품인 것입니다.. 75세의 할머니가 29세의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인으로 바뀐 뒤에 벌어지는 부산스럽고 즐거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니 말이죠..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위의 내용만 보시더라도 아하,라고 하시지 싶어서 길게는 적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75세의 할머니가 29세의 젊은 매력녀로 바뀌었지만 그 마음이나 삶의 경험은 그대로이라는 것이죠.. 겉모습을 제외한 모든 것은 변함없는 할머니라는 점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 싶네요..
소설 자체의 구성적 재미보다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많습니다.. 헐리우드 로맨틱 영화 한편 보는 느낌 딱 그대로입니다.. 문장이 그림처럼 영상처럼 그대로 투영되어 나오니까 말이죠.. 심리적 묘사도 중요하지만 상황적 묘사가 안겨주는 독서의 재미가 상당합니다.. 즐겁죠.. 금방 읽힙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성향의 묘사방법도 상당히 감칠맛나게 잘 만들어 주셨구요.. 그래서 인물들의 모습들을 살피는 재미도 만만찮습니다.. 특히나 엘리 할머니의 딸 바바라의 모습은 정말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멋진 캐릭터의 맛을 살려주신 듯 하더군요.. 밉쌀스러우면서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50대 후반의 아주머니의 역할을 잘 묘사해 주셨더군요.. 꼭 울 어무이처럼 말이죠..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이 바바라여사의 캐릭터가 작품의 재미에 크게 보탬이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소설적 구성의 흐름은 별볼일 없는 반면 상황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산스러운 캐릭터의 맛깔스러움이 너무나 좋았거덩요.. 단순한 소설적 구성만 놓고보면 무지 재미없는 흔하디흔한 상황적 연결이라는 느낌이 큽니다.. 수천번을 울궈먹은 상황들이니까요.. 하지만 바바라나 프리다같은 캐릭터가 엮어내는 상황적 재미는 그 수천번의 되새김질의 장면일지라도 소설적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작품임이 시작부터 끝까지 나타납니다.. 여성분들이 읽으시면 무척이나 재미있어 하실만한 작품인거죠.. 읽는동안 흐뭇하고 읽고 나서도 그 즐거운 느낌이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남자인 저도 참 흐뭇하더라구요.. 그리고 돌이켜 제 나이 스물아홉의 짜증스러움(?)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도 같구요.. 혹시라도 이 글과 이 책을 보실 아직 서른이 넘지 않으신 수많은 스물아홉 즈음의 여인네들에게 또는 남정네에게 혹시라도 지금이 힘들고 지치고 짜증스러운 나이의 인생일지라도 - 저에게는 아주 생각하기 싫은 나이였습니다만 - 앞으로 펼쳐질 당신의 세상은 당신이 만들어 나가는대로 다가온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지금 당장은 참 눈물나는 나이일지는 몰라도 돌이켜보면 가장 가치있는 나이가 될 것 같기도 하군요.. 스물아홉, 당신의 인생을 시작하고 만들어 나가는 가장 활기찬 시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아마 작가인 아데나 할펀씨도 그런 의도로 작품을 집필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스물아홉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제가 돌이켜본 세상도 대강 그러한 것 같습니다만.. 아님 말구요.. 땡끝
|
|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면 '지금 느끼는 것을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조금 더 어렸을 때' 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 더 젊었다면'으로 바뀌어 가겠죠. 학생 때 어떻게든 더 많이 여행을 다녀볼 걸 ,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볼 걸,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도 만나서 많이많이 사랑해볼 걸.-하는 아쉬움들은 분명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는 기회가 점점 적어질 것이라는 걱정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봐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와우. 그런데 이 할머니, 엘리. 저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하지 못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습니다. 자신의 손녀딸이 부러워죽겠다고, 스물 아홉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며 말이에요. 아마 저였다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얻은 것도 많으니 나는 절대 네 나이가 부럽지 않다며 허풍을 떨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솔직하고 호탕한 이 엘리 여사, 심지어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불면서 진심으로 소원을 빕니다. 하루만 스물 아홉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마법처럼 그 다음 날 아침, 엘리 여사는 스물 아홉의 예쁜 아가씨로 하루를 시작하죠.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 할머니라는 이유로 포기하고 살았던 많은 일들을 즐겁게 해치워나가면서, 엘리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집니다. 내가 이 나이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이미 영화화가 결정된 이 작품은, 연말이 다가오며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는 향수와 로맨틱함, 판타지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지금에 충실하라는, 진부하면서도 소중한 깨달음까지 전달해주죠. 솔직히 요즘, 잠이 많은 제가 밤잠을 깊이 못 이루고 있어요. 나의 미래는 뭘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청소년기에나 할 법한 고민들 때문에요. 이런 고민들은 나이를 먹으면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인생이란 끝없이 이어진 산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 산들이 높고 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순간순간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지금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그 산을 넘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 줄테니까요.
저는 우선은 '나는 예쁘다'로 시작해 보려구요. 요즘 얼굴 좋아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할 뿐더러 (왜 그럴까요;; 잠도 설치기 일쑤고 많이 피곤한데 말이죠. 밤에 영양크림을 푹푹 퍼 바르기 때문인지도;; ) 남아있는 날들 중에서는 오늘의 제가 가장 젊고 예쁘지 않겠어요?! 엘리 여사의 말씀처럼, 햇빛을 조심하고, 부지런히 배우고 읽고 생각하고, 아침 저녁 수시로 보습을 잊지 않고, 일생에 한 번 할만한 미친 짓을 뭘까에 대해 생각해보고,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 보렵니다. 적어도 엘리 여사처럼 일흔 다섯이 되었을 때 손녀딸을 향해 이를 부득 갈면서 '네가 부러워죽겠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부럽기는 하겠지만 그 한편에 나이를 먹은 저에 대한 뿌듯함도 함께 느끼고 싶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랄까요. |
|
재미와 감동, 스물아홉의 하루에 담다 - 스물아홉 _ 스토리매니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