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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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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된 공동체』(내가 읽었을 때는 『상상의 공동체』였는데)는 민족주의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분석한다. 공동체를 구성할 때 종교 대신 민족이 더 중요해지게 한 기재로 민족어, 센서스, 지도, 제국-식민지 등이 있다. 민족이라는 게 완전하게 허구이진 않아도, 여하튼 구성된 개념이라는 게 책의 논지. 자유, 평등, 복직국가 등이 대부분 민족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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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된 공동체』(내가 읽었을 때는 『상상의 공동체』였는데)는 민족주의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분석한다. 공동체를 구성할 때 종교 대신 민족이 더 중요해지게 한 기재로 민족어, 센서스, 지도, 제국-식민지 등이 있다. 민족이라는 게 완전하게 허구이진 않아도, 여하튼 구성된 개념이라는 게 책의 논지. 자유, 평등, 복직국가 등이 대부분 민족국가 체제에서 추구되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를 마냥 허구이고, 국뽕이라 무조건 매도할 순 없겠지만 때로는, 아니 자주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 1

바로 한국과 일본 관계가 대표적이다. 일본이랑은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나. 아니, 대체 왜 그렇게 해야 하나. 36년 식민지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맞다. 일본은 매우 잘못했다. 마찬가지로,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미국과 같이 다른 공동체를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 모두 잘못했다. 비슷한 식민지 경험이 있는 대만은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본을 향한 증오가 덜한 듯하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분석했을 텐데, 이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생략하기로.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민족주의 감정이 국사 교육을 비롯한 여러 통로로 퍼지고 그에 따라 일본을 나쁜 나라로 여긴 걸로 끝. 그 이상으로 일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예컨데 일본 하면 나쁜 놈. 왜 나쁜가. 제국주의 하면서 여러 나라 괴롭히고 여전히 사과도 안 하잖아. 나 역시 그러한 수준.


# 1.5

이면서도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일본 소설, 일본 음악. 일본어도 JLPT 1급 딸 정도로 배웠다.


# 2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나, 중학교 사회 시간이었나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이 하셨다. 일본과 조선과 관계는 특이했다고. 여러 식민지는 갑자기 난데없이 다른 인종에 지배당했고 백인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조선은 원래 일본보다 앞서던 나라였는데 잠시 헤매던 사이 뒤쳐진 나라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그러니까 18세기까지는 삼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왕조가 일본보다 우월했단다. 지금이야 GDP라는 수치라도 있지, 전근대 어떤 기준으로 국력을 평가할지 모호하다는 점에서 일단 저 설명은 틀렸고. 16세기에 벌어졌던 임진왜란이라 불리는 조선-일본 전쟁에서 조선이 그렇게 발린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다. 


# 3

『속국 민주주의론』으로 들어가는 잡설이 길어졌다. 우리는 일본을 모른다.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문제다. 왜냐하면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근대화를 추진했고, 먼저 성공했고, 빨리 망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게 많다. 최근 조한혜정 교수님의 『선망국의 시간』이 나오는데, 사실 한국보다 훨씬 일찍 망한 게 일본이다.


# 4

책은 대담집이다. 진보(?) 성향의 두 사람이 대담한 건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두 사람의 성향을 규정하자면. 대미 종속에서 벗어나자는 점에서 민족주의자인 듯하고, 현재 보수 양당 체제를 격하게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공산주의자는 아닌 듯. 미국이 시켜서 평화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를 비판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평화 짱짱, 우리는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해, 이런 느낌은 아니다. 이런 두 사람이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관해 망한 일본을 논한다.


# 5

두 사람이 바라보는 일본은 진짜 망했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게 정치고. 경제는 망했다. 돈을 못 버니,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생긴다. 읽으면서 알았는데, 일본에서도 세월호 같은 사건이 있었다. 가루이자와 버스 사건. 저가 여행 상품으로 여행하던 사람들이 버스 사고로 죽는다. 그 사고 지점이 위험한 곳이었다. 굳이 거기로 갈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어처구니 없다. 고속도로 통행료 아끼려다 참사가 발생한 사건. 코스파(우리말로는 가성비)화는 사회에서 계층 격차는 커지고 능력 있는 사람은 일본을 떠나려 한다. 서민은 파멸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라이 사토시는 교토세이카 대 인문학부 교수인데, 교육에 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 거참 망했다고요. 그리고 두 사람은 이렇게 총체적으로 망한 상태를 니힐리즘이라 규정한다. 하이데거가 규정한 소극적 니힐리즘과 적극적 니힐리즘은 말장난일 뿐. 여기서 일컫는 니힐리즘이란, 다 끝났으니 망해버려라는 파국을 기다리는 비관 이상도 이도 아닌 자세.


# 5.5

정치와 경제, 그래서 정치경제학인데. 미국 속국의 한계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보듯 명확하다.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하겠다 하면, 속국들도 따라야 한다. 산업보다 금융, 고용 악화, 분배 악화, 비정규직 만연, 사회 안전망 붕괴... 미국, 일본, 한국 공통으로 북유럽보다 더 심하게 앓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다.


# 6

이런 망한 징조가 최근에 벌어진 건 아니다. 버블 붕괴 이후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1997년 이후 망하기 시작한 한국이랑 매우 비슷하다. 일본 대신 한국을, 일본의 고유명사 대신 한국의 고유명사를 넣으면 딱 그대로다. 그래서. 한국에서 먹고 살기를 고민한다면 이 책을 읽어야겠다.


# 7

지정학 책을 보면 논자마다 약간씩 다르긴 한데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세일을 얻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대륙으로 진출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책임은 지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하나둘 뺀다. 그중에서 한국과 대만이 애매하다. 빼기도, 유지하기도. 일본은 망했다고 해도, 여전히 큰 나라지만 이 둘은 그렇지 않다. 물론 한국은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다. 뭐 이런 식. 아베는 트럼프 웃기려고 골프장에서 구르기라도 했는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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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미군기지는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에 근거를 어디선가 찾아내는 것입니다. - 우치다 (20쪽)


냉정한 현실 인식이 불가능해진 것과 일본 정치가 저열해진 것 사이에는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치다 (38쪽)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은 유럽 이상으로 좌익의 노동 운동이 강력한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나름의 진단이긴 합니다만, 그러한 미국의 '강한 좌익'을 철저하게 짓밟은 자가 후버, 마지막 숨통을 끊은 자가 매카시입니다. 미국은 가소성이 높은 나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우연적인 또는 속인적인 요인에 의해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 우치다 (54쪽)


플라자 합의는 경제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돈 이야기가 아니라 주권 문제입니다. "너에게는 네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 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다"라는 메시지를 다시 전하고서, 일본인이 "예, 맞습니다. 깜빡 잊고 잘난 척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며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 우치다 (61쪽)


어차피 국민국가라는 게 모두 환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환상이 육체성을 띠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국민국가의 통합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민국가'는 유감스럽게도 공동환상이 육체성을 띠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탄 국가가 속출합니다. 이것을 재통합하려면 과거에 한 번은 강한 통합력을 발휘했던 공동환상이 재등장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 우치다 (121쪽)


일본에서는 글로벌화 시대와 로컬화 시대가 번갈아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일본의 경우 글로벌화가 끝나고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또는 로컬화가 끝나고 글로벌화가 시작되는 두 시대의 단경기에 독특한 문화가 태어납니다. (132쪽)


지금까지 "돈 이야기가 아니었던" 영역까지 시장원리가 들어왔습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합기도나 수영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만큼 수업료를 냈다, 이만큼 학습에 노력했다, 그렇다면 그 대가로 학교는 무엇을 줄 것인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명시하라고 학생이나 보호자가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코스파라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적은 부담으로, 가능한 적은 학습 노력으로 교육 '상품'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 우치다 (174~175쪽)


지금 '완전 고용'을 목표로 내걸고 회사를 차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국민경제'는 본래 그런 것입니다. 우선 "일본열도에 사는 1억2천만명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은가"라는 순서로 생각해야 합니다. 완전 고용이 국민경제의 최종 목적이며, 바로 그 점에서 글로벌 경제와 정반대입니다. - 우치다 (191~192쪽)


문제는 개별 가정교육의 실패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의 미성숙과 노인의 유치화가 사회적으로 전면화하고 있는 것은 "성숙하지 마라"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 우치다 (221쪽)


일본이 없어져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준비되어 있는 사람, 그런 수완 좋은 사람이 현대 일본 사회에서는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거꾸로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고,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살아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살 곳도 없고, 일본의 산하를 좋아하고, 일본식 식사를 즐기고, 일본의 종교나 의례를 좋아하고, 일본의 음악을 좋아하고, 일본열도는커녕 고향을 벗어나지도 못한 로컬한 사람은 이 글로벌 사회에서 최하위로 평가받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이동할 수 없다", 그러니까 기동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인간이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최하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역설적인 얘기입니다만, 현대 일본에서는 "언제든 마음이 내킬 때 일본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일본이 파국적인 상황에 이르러도 조금도 곤혹스러울 게 없는 사람"이 국내적인 평가에서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인데, 그것은 "선장 자리를 맡겼더니 배가 난파하자 즉각 구조선을 불러 승무원과 승객을 남겨두고 자기 함교에서 탈출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합니다. 일본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런 사람에게 일본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해달라고 말하니까요. - 우치다 (232~233쪽)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는 귀여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시시껄렁한 일본 아저씨가 되잖아요. (웃음) 여자아이는 그 시시껄렁한 일본 아저씨에게 시달리는 불행한 여성이 되지요. "어느 쪽이든 싫다. 이런 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시라이 (238쪽)


이런 감각이 니힐리즘 아닐까요? 니힐리즘이 도대체 무엇인지 니체를 읽어도 잘 알 수 없지만, 우치하시의 이 책을 읽어보면 그 본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민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생업에 대해 실은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보다 편안하게 돈이 들어오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 시라이 (247쪽)


결국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현재 시스템의 수혜자도, 시스템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정권의 지지자도, 반대자도 "지금 여기 있는 것을 파괴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 우치다 (259쪽)


시라이 : 수입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고통스럽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도 나는 훌륭하다. 세상이 틀려먹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더욱 힘들 겁니다.

우치다 : 맞습니다. "세상이 틀려먹었다"라고 뻗대지 않으면...

시라이 : 물론 그렇게 몇 년씩 버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뒤틀려버릴 위험성도 있지요. 다만 근거 없는 자기 긍정이라는 것이 없으면 고통스러움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치다 :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정말 소중합니다. (286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8.08.1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