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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란 인물은 문사라기 보다는 장군이란 호칭이 더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4군 6진을 개척한 인물이 김종서-최윤덕 이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머리말의 소개부터 나의 선입견을 깨고 있었다. "당대 제일의 역사가,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라고 김종서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서는 실제로 매우 뛰어난 학자였다고 한다. 성균관 유생들이 최고라고 인정할 만큼 그는 자타공인 성리학의 최고봉이었다. 또한 그는 매사에 원리원칙대로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세종은 그에게 감찰 업무를 많이 맡겼고, 그는 그 때마다 120%로 믿음에 답하곤 했다. 그는 양반이나 벼슬아치의 편이 아닌 민중의 편에 서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융통성이란 탐관오리를 적발하는 경우보다는, 백성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데에만 발휘하였다. 세종대왕이 훗날 북방 개척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무신이 아닌 문신 김종서에게 맡긴 것도 이런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세종대왕 서거 후 문종이 즉위하였다. 이 때 김종서는 어느덧 정승(좌의정)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의 나이나 능력이나 공을 봐서도 당연한 것이였고, 그 명망과 주위의 존경을 생각하더라도 그는 사실상 조정의 최고 실세였다고 보여진다. 세종에 못지 않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문종과 이를 위시하는 경륜있는 신하들. 조선 초기, 북방 개척으로 인해 어수선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종은 병약해서 즉위한지 1년이 지나고 유명을 달리하였고, 나이 어린 단종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역사에 가정을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작가 이덕일씨는 "문종이 건강해서 최소한 단종이 성년이 될 때까지만 살아있었더라도 조선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문종은 세종에 못지 않을만큼 성군이 될 자질을 갖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 크다. 사실 세종대왕 치세의 후반기에는 세종대왕의 건강 악화로 인해 왕세자 위치에 있었던 문종이 공동으로 정치를 했던 만큼, 세종 후반기의 업적 (예를 들어 용비어천가 발표)은 문종의 업적이기도 하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어쨌든 나이 어린 단종이 즉위하게 되자 숙부 수양대군이 왕위를 노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 되었고, 그의 주변엔 한명회같은 건달들이 모여들었다. 수양은 김종서를 가장 두려워하였고, 김종서만 없앤다면 왕위는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왕위 찬탈을 위한 거사(?)는 수양이 직접 김종서를 습격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구체적 실행일이나 방법등을 알았을 리는 없겠지만, 김종서가 수양의 의도조차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 때 김종서가 단종의 허락을 얻어 금위대를 직접 지휘 아래 둔다던지, 별기군 등의 성격으로 일천명 정도의 군사들을 수도에 머무르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먼저 수양을 공격했더라면..? 참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왕족이라서 그럴 수 없었을 테지만, 김종서가 조금만 현실과 타협했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그만큼 김종서는 힘이 있었고 충분한 인망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종서는 평생의 신념이였던 명분과 정도와 법리만을 생각하였다. 어찌 보면 그다운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수양과 그 무리에 의해 정권은 장악되고 역사는 왜곡되기 시작한다. 김종서를 따라서 영의정 황보인과 수많은 강직한 인물들이 수양의 무리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그 후 역사는 크게 뒤틀리고 그 후유증은 몇 십년 후,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는 무오사화까지 이어지게 된다. 역사를 제때 바로잡지 못하면 그 후유증이란 한 세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 교훈은 아직 친일파와 군부 독재의 역사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던 사실은, 김종서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실제 편찬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고려사는 정인지가 편찬한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정인지는 김종서를 모함하고 수양을 따른 인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렇듯 승자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이 책의 제목 "거칠 것이 없어라"를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서라는 인물을 빌려서 작가 이덕일씨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보고도 못본척하고 알아도 모른척해야 하며 눈치껏 움직여야 한다. 그게 세상 살아가는 법도라고 혹은 지혜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평범한 사람의 생각이며 한계다. 적어도 백 명중에 한 명은 세상에 굴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려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그들에 의해 사회는 진보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로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음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지켰던 인물들의 희생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500년 전의 인물이었던, 그냥 그렇게 흘러가버린 인물로 잊혀져 버릴 뻔 했던, 김종서란 인물이 역사학자 이덕일 씨에 의해서 다시 되살아났다. 적어도 그처럼 강직했던 인물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어 책값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 나라의 역사엔, 특히 근대와 현대사에는 잊혀진 대호가 너무나 많다. 그뿐이랴. 간사한 여우가 대호로 둔갑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대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복권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은혜를 입고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나아가 우리 역시 이 시대 속의 대호가 되도록 해보자.
ps: 김영사의 책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다. 훌륭한 제본 상태와 편집.. 나무랄 데 없다. 적절한 사진과 텍스트의 교차. 오타가 딱 두 군데 눈에 띄긴 했는데, 문맥상에서 잘못 쓰인 단어 같은 경우라서 아예 교열에서 틀린 것은 아니라 봐줄만 하다. 옆에 책이 있으면 여기에서 가르쳐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이 애석하다. 어쨌든 책은 정말 잘 만들었다. -_-b 짝짝짝 [인상깊은구절] ...이긴 것이 곧 정의라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때로는 진 것이 정의이며 탄압 받는 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은 패배한 정의와 탄압 받는 진실의 편에 섬으로써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인생 자체를 버리기도 한다. 짐승의 논리는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조롱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의해 우리 사회는 짐승 집단이 아니라 사람 사는 사회로 존속해 올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패배한 정의와 탄압 받는 진실의 편에 섰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순간의 이익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의 이야기이다. 역사가 현실의 승자가 아니라 가치의 승자를 기록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느낄 수 있다면 한 역사학자로서 그 이상 다행이 없겠다... |
| 그동안 쭉 느껴왔던 점인데,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위인전기를 많이 읽지만 대다수는 서양의 위인들이고 우리나라 위인들이라 해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그 범위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서양의 위인들 전기를 읽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 우리 조상들이 어떤 환경속에서 어떤 사상을 갖고 역사를 이끌어 오셨는지 먼저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아동용 위인전기는 많은데 비해서 성인들이 읽을 수 있는 평전은 몇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처음 알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김종서 평전은 참으로 반가웠다. 이 책은 특히 세종 재위시절의 김종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종과 김종서의 인간적인 관계, 문신인 김종서가 북방으로 가서 보여준 무신 못지않은 역량 등이 잘 나와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저자는 북방 개척에 김종서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강조하고자 했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종서하면 4군6진 개척이 생각날만큼 둘 사이는 매우 밀접한데, 이 책에서는 북방에서 고군분투하는 김종서의 모습은 많이 나와있지만 구체적인 4군6진 개척의 모습은 부족한 편이다. 북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바로 그 개척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장소에 어떻게 개척해나가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주요사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종서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뒤따르는 것 같다. 김종서의 사상, 문인으로서의 역할과 선비로서의 생활, 개인적인 일화 등은 거의 빠져있고, 세종대왕 시절의 북방개척 모습, 계유정난 와중에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내용등 일반 역사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개인의 평전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이름만 알고 있던 김종서를 도도한 역사의 줄기에서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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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역사적 인물을 자세히 안다는것은 참으로 뜻깊고 즐겁고 보람된일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물이 정말 우리에게 존경받을만하고 좋은업적을 남겼다면 두말할 나위없다. 나의 이런 즐거움과 보람의 기쁨때문인지 그냥 겨울밤이 심심해서인지 '거칠것이 없어라'를 읽게 되었다. 김종서라고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냐 하면은 아마도 사군육진의 개척의 선봉장역할을 한것이 떠오를수 있겠고, 그리고 끝가지 단종에게 충성을 바쳐 세조에게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문종의 약속을 지켰던 충신으로 이미 내 머리에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던 느낌이 들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 임진왜란의 구국영웅 이순신 등에 가려서 왠지 쓸쓸하게 비추어진 김종서를 나는 외면하지 않았고 필연처럼 이 책에 손이 간것은 아마도 김종서장군이 나를 불렀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이책을 읽고난뒤 느낌이지만 정말 나는 김종서에 대해 이제까지 눈꼽만치도 몰랐던 사실을 느꼈다. 그의 사군육진 개척과 나라에 대한 충성도 물론 배울점이지만, 그의 강직함과 완전주의에 대해 더욱더 많은것을 느꼇다고 볼수있을것이다.
그리고 정말 몰랐던 사실인데 '고려사(高麗史)'를 원래는 김종서가 편찬한것인데 어느 몹쓸사람들 한테 가려져서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업적은 이 책을 통해서 나를 놀라게하는데 작가는 많은 문헌자료를 통해서 김종서의 업적과 그의 사상을 정말 자세하게 기술해 놓았는데 읽기 편하고 흥미로웠던 같다. 세종 - 문종 - 단종 대에 역사를 알면 정말 아쉬움을 먼저 감출것이 없다. 작가는 말한다. 문종이 좀 더 오래살았으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거라고. 여기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역사가 어디있겠는가. 우리는 김종서의 정신과, 이 시대 왜 우리가 아쉬움을 느끼고 지금까지 한탄을 하고있는지 잘 알아서 이 시대에 거울로 삼아야 하지 않나싶다. 이런이유 때문에 역사가 존재하고 내가 역사를 공부하고, 김종서의 충성심과 강직함 그리고 완전주의가 몇백년이 지난 지금 빛을 잃지않고 우리에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것이다. 그는 조선시대를 넘어서 지금 이 시대까지 거칠것이 없었던 우리의 진정한 대호(大虎) 였던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썩은 저 선비야, 우리아니 사나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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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이 없어라' 우리 도서계에 흔치 않은 평전이고 김종서란 인물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전문가가 쓴 일대기를 알고 싶었다. 북방 개척의 업적을 두고 많이 듣던 말 중에 "내가 있어도 종서가 없었더라면 사진을 능히 개척하지 못했을 것이요, 비록 종서가 있었더라도 내가 없으면 이 일을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세종대왕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세종대왕과 김종서 두 인물의 절대적인 신뢰를 느낄 수 있었고, 과연 역사에 이름이 남을만한 군주와 신하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나라 역사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건이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일 것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었고 그 중, '한명회'라는 책을 전에 읽어 보았다. 그 책에서 수양대군을 비롯한 한명회의 무리들은 역사의 소명을 받아 활약한 일세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계유정난을 미화하고 있기까지하다. 사실 글쓴이의 필법도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한명회 등과 같은 계유정난의 공신들이 오히려 새 역사의 주인공인양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아마도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소설 형식의 글과 더욱 정확하고 철저한 역사의 고증을 거쳐 쓴 평전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글을 쓴 작가의 시점에 따라 충신도 될 수 있고 역신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줄곧 생각해 왔던 계유정난에 대한 나의 판단이 이 책으로 인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전문 지식과 한 인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한 이덕일씨의 의견을 쫓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도 잘못된 고증이나 권력자들의 횡포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 오명을 남긴 인물들이 많은 것 같다.
다시 '김종서평전'으로 돌아와서 그의 인물됨을 살펴보자. 흔히 김종서를 문신보다는 무신으로 알고 있고,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나도 새로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최고봉의 학자로서 존경과 평가를 받았다고 하니 그의 능력에 비해 후대의 평가는 너무도 야박한 것 같다. 더구나 세종대왕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뛰어난 인물이 많았던 시기로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이름을 날릴만한 인물들도 기라성 같은 우수한 인물들에게 묻혀 평범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자신의 친구가 아직도 위나라의 한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위나라에는 얼마나 뛰어난 인재가 많기에 아직도 그런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라고 감탄했다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와 비교될 정도로 세종대에는 인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속에서도 현실 비판이 강한 젊은 지성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김종서란 인물이 신비스럽기까지하다.
변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보여준 그의 실천적 행동과 헌신적인 희생은 어느 시대이든 위정자라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와 군주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어떠한 도전에도 기개가 꺾이지 않는 베짱과 두려움을 모르는 대호로서의 용감무쌍함을 가질 수 있게 했다고 저자도 평가하고 있다. 초지일관이라고 하듯 자신의 깊은 심지를 죽을 때까지 지켜온 흔치 않는 인물이 김종서이다.
좀 아쉬운 것은 너무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수양대군 무리의 계유정난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역이든 순이든 역사의 큰 흐름을 누군들 바꿀 수 있을것인가?
객관성과 사실을 위주로 한 김종서 평전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크나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문무를 겸비하여 변방에서 오랑캐들의 간담을 써늘케 했다던 대호 김종서.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호'라는 닉네임은 아무에게나 붙여 사용하면 절대 안 될 것 같다. 진정한 대호 김종서를 낮출 수는 없으니까. [인상깊은구절] "간인이 나를 시험해 보자는 것일뿐, 제까짓 놈이 무슨 일을 한다고해서 내가 놀라겠는가?" 김종서는 비록 유신이었지만 무신 못지 않은 배포가 있었다. 무신의 배포가 남다른 무예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김종서의 배포는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확신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의 학문, 즉 사상이고 애국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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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군으로만 알고 있는 대호 김종서. 그는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수양대군이 집권하기 위한 제거대상 1호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강직한 성품덕분에 시기하는 무리가 많았다. 그래서 변방쪽으로 가게되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사진을 개척한다.
세종은 자신과 김종서 둘중 하나만 없었어도 사진을 개척하지 못했다며 김종서를 매우 아낀다. 김종서는 충성으로 그에 보답한다. 단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그는 왕을 보호하기위해 애쓴다.
그러나 끝내 수양대군에 의해 죽게 된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며 당시 단종의 충신이기 때문에 수양대군은 그를 가장 먼저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에 길이 남는 충신이 되었기에 살아서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과 대결에서 결국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김육이 지은 <<해동명신록>>에는 세종이 사진개척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는 구절이 나온다. "비록 내가 있으나 김종서가 없었더라면 사진을 능히 개척하지 못했을 것이요, 비록 종서가 있으나 내가 없었더라도 이 일을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해동명신록> |
| 계유정난의 희생자, 북방개척을 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인물, 그가 이책에 다시 태어 났다. 국사 교과서에서 그냥 가볍게 터치한 김종서를 그의 인간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그의 활약상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알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우리시대에도 대호는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한국사와 관련한 여러가지 책을 내놓았다. 당쟁으로... 사화로... 누가 왕을.., 사도세자의... 그 동안 교과서로 막연히 알고 있는 사실을 재미있게 또 실감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서술한 것이 좋다. 그런데, 저자의 이 책을 포함한 여타의 책들에 이름을 잘못 적거나 왕후의 이름을 잘못 적는 등 그 빈도가 심심찮게 많다. 꽤 많아서 일일이 여기서 적지는 않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아울러 이 책에 지도라도 좀 그려넣어 시각적인 효과를 가미하는 성의를 보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몇번 가져본다. 이책에 나오는 지명은 분단이 원인이겠지만 독자들에게는 낯설다. 아울러 김종서의 세세한 점에 대한 서술은 미약하지 않았나 본다. 이상과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속의 한 인물을 지금 이 시대에 그리워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