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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뭐라고? 존경하는 디자이너의 주옥같은 말씀, ‘우리의 삶은 보너스와 같다’의 감명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 유재필이 인간 탄생의 벅찬 순간을 절절히 풀어낸다. 인간 생명의 시작은 수억 대 일의 승리 정자에서 비롯되고, 위대한 위너 정자께서 결승선을 가른 ‘가슴 벅찬 순간’이 바로 우리의 탄생 순간이며, 고로 우리에게 주어진 생은 고생을 인내하신 정자께서 받아 마땅한 보상―‘세상 밖으로 나가면 좀 쉬어야지’―일 수도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 ‘정자가 성취한 거룩한 업적’이며 정자들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보너스’일지도 모른다는 뜬금포에 늦은 밤 누운 독서 중에 “뭐라고?”를 외치며 이불을 박찰 수밖에. 아무리 ‘정자의 관점에서’라는 해자를 (그래봤자 일곱 글자) 둘러쳤다 해도 인간의 시작, 생명의 씨앗이 승리 정자임을 확신하는 정자 파시즘은 정말이지 ‘맙소사’다. 출산의 공이 온전히 여자의 것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손가락에 잡힌 물집, 눈꺼풀의 다래끼, 발바닥의 티눈, 입 속 작은 염증 하나에도 이물감과 불편함, 쓰라림과 욱신거림을 겪어봤다면 정자예찬 대신 새 생명을 제 안에 받아들여 수개월 수태하며 몸집을 키워내고 손발과 심장을 만들어 목숨 걸고 세상에 내놓는 그 기겁할 일을 어찌하여 경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내 진지하게 한 번 묻고 싶다는 얘기다.(여자들은 제왕절개로 세상에 아이를 낳을 때 2리터의 피를 잃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분만을 하다 목숨을 잃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허나 이것은 가벼운 에세이일 뿐이지 않은가, 내 과한 페미니즘은 아닐까 다독이며 미심쩍은 동작으로 다시 누워 몇 장을 더 읽다말고 다시 한 번 이불을 제쳤다. 결혼하지 않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베트남 며느리’를 운운해 경악하였다는 에피소드. 나야말로 아닌 밤중에 경악하였다. 이주여성, 다문화가정에 대한 어떠한 양해의 말도 (단 몇 글자의 해자조차) 없이 자신의 당황만을 이야기하는 저자에게 할 말을 잃었다. 정자의 강인함 덕에 인간이 생명을 얻었고, 우리네 삶은 정자가 내어준 거룩한 보너스이며, 베트남인과의 결혼이 (그저 언급이었음에도) 자신을 뒤흔든 충격이었다고 책을 써냈다는 것이…. 그래, 정말 놀라웠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아직 남은 페이지에 어떤 좋은 글이 담겼을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그만큼의 아량이 없다.
이 서평은 저자의 글을 꿰뚫지 못한 채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의 분통을 터트리는 글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애 첫 악평의 독서후담을 쓰고 있는 나의 심정도 후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변명삼아 적어둔다. 맙소사. |